|
긍휼히 여기심이 끝날 때
By Robert Militello
“그들 조상의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사자들을 통해 말씀을 보내시되, 제때에 일어나사 보내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그의 백성과 그의 처소를 긍휼히 여기셨음이더라”(대하 36:15).
그리 오래 전이 아닌 시절에 웨스턴 유니언(미국의 전보 회사)社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전보 배달원으로 고용했었다. 2차세계대전 중 전보 배달원들은 바다 건너 전쟁터에 있는 군인들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급한 메시지들을 담은 전보들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배달했었다. 그 시절 정복을 입은 배달원이 집 문을 노크하면 사람들은 혹시 나쁜 일이 생겼을까 해서 긴장하고 문을 열었었다. 오늘날의 미국이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우리들이 주의 승인을 받아 하나님의 신실한 메신저 임무를 수행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축복된 일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세상에 전해야 하는 소식은 생사가 걸린 급한 메시지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소식이 아니다. 현 세상은 시궁창에 빠지기 직전의 취객처럼 비틀거리고 있다. 세상이 지금 들어야 하는 소식은 이것이다: “다가오는 진노에서 피하라”(마 3:7; 눅 3:7).
“그러나 노아의 날들과 같이 인자의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마 24:37).
노아는 창조주에 대한 반역이 만개한 세상에 파송된 하나님의 첫 번째 메신저였다. 그는 청중을 두렵게 하는 불길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그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 중에 두려움 때문에 방주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홍수 심판에서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주께서는 그 방주와 같으시다. 주께서는 위선자들과 자기 의에 가득 찬 도덕군자들을 다루시는 수단으로 두려움도 쓰신다.
“너희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떻게 너희가 지옥의 저주에서 피할 수 있겠느냐”(마 23:33).
하나님의 말씀은 온갖 경고들로 가득 차 있고 그 말씀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연민을 함께 담고 있다.
지금 우리 나라는 또 한번 정치판의 드라마가 연출되는 시기가 되었는데 여러분은 미국의 미래에 대한 온갖 미사여구들을 듣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여러분이 각 후보자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막”에 노출되어 있으면 필시 역겨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나라와 사회는 이미 주의 법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여러분은 이 나라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모든 대통령 후보자들은 우리 앞에 장밋빛 미래가 펼쳐져 있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이 어리석고 현혹된 몽상가이고 당신의 꿈이 워싱턴 D.C. 펜실베니아 거리 1600번지에 있는 하얀 집에 입성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유권자들에게 구세주처럼 보임으로써 표를 얻어내기 위해 무슨 말이든 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을 구원할 사람이 누구인가? 오바마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수백만의 사람들은(오바마 이전에는 조지 W. 부시, 부시 이전에는 클린턴) 이제 누가 백악관 집무실에 입성할지 결정할 것이다. 미국은 한때 이 나라가 가졌던 위대함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살펴볼 것은 이 나라의 가족 구조에 생긴 변화이다.
“기초들이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 수 있으랴?”(시 11:3).
미국이 당면한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문제이다. 누가 백악관에 들어가던지 상관없이 이 나라의 영광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정해진 파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리라”(시 9:17).
미국이 세계 선교에 지대한 공헌을 해 왔다 해서 주께서 이 나라를 봐 주실 거라 생각하지 말라. 아무리 많은 라디오, TV, 인터넷 설교자들이 영적 부흥을 위해 기도하며 대하 7:14을 인용한다 해도 USA라는 이름의 이 퇴물 권투 선수는 링으로 복귀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나라는 죄악으로 인해 너덜너덜해졌다. 주께서는 이 나라가 성도착자들, 마약중독자들, 폭력과 도로의 폭력 난동으로 가득 차게 놔 두셨다. 우리는 자신이 토해낸 토사물들에 질식될 지경이 되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이것을 치유할 수 있는가? 시험해 보라: 변호사들이 거짓말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는지. 정상인이라면 어느 시점에 가면 실상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결국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극도의 망상에 사로잡힌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 B.C. 586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의 상황처럼 이 사회는 진리가 길에 쓰러졌다(사 59:14-15). 예레미야가 전파한 두려운 경고의 목소리는 그 때 유대인들에게 소 귀에 경 읽기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절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부정적인 진리들을 자동적으로 거부하는 시대이다. 은혜롭고 자비로우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때로는 냉소적이고 복수의 기운으로 가득 찬 말씀도 하신다는 사실을 이 교만한 자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늘로부터 오는 “전보”를 받아 이런 세상에 강력하게 선포할 강한 영적 위장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가?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거역하였고 내가 손을 내밀었으나 아무도 개의치 아니하였으며 오히려 나의 모든 조언을 무시하였고 나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므로 나도 너희가 재앙을 당할 때 비웃을 것이요,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 조롱하리니”(잠 1:24-26).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이나 나라를 멸하시면서 비웃으신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 대답은 29절에 있다.
“이는 그들이 지식을 싫어하며 주를 두려워하기를 원치 아니하였음이라.”
여러분은 주께서 자신의 성호보다 높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등을 돌렸다(시 138:2). 여러분은 고등교육과 기술 발전의 토대 위에 건설된 이 사회가 주의 조소와 조롱 가운데 무너질 것을 알지 못하는가? 이 나라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래 구절과 같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고 자신들의 계략들로 배부르리라”(잠 1:31).
여기서 “계략들”(devices)이라는 단어를 주시하라. 우리의 기술이 결국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생각해 보라. 많은 청년 크리스찬들이 이미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등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여러분이 페이스북에서 빠져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얼굴을 돌리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있든 여러분의 책임이다.”
아직 상황이 절망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며 대하 7:14처럼 순종한다면 주께서 미국에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실 것이라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잘 살펴보라.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또 그들을 위하여 소리 높여 부르짖지도 말고 간구하지도 말고 나에게 중보하지도 말라. 이는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할 것임이라”(렘 7:16).
최근 나는 어떤 대통령 후보자가 미국의 미래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밝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듣고 있노라니 민망했다. 이 나라 정치인들의 마음은 가련할 정도로 혼미함에 빠져 있다. 매년 6월은 “게이 프라이드 달”로 지정되어 미국 주요 도시들에서 게이들의 행진이 벌어지는데 클린턴과 오바마가 도입한 성도착자들의 이 방탕한 행사에 대해 미국인들은 무감각하게 웃어 넘긴다. 정치인들, 언론, 연예계, 그리고 60% 이상의 미국 시민들이 소위 “게이들의 권리 행사”에 찬성하고 있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그들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고 얼굴도 붉히지 않았도다”(렘 8:12). 이 나라는 계속해서 술 취한 자처럼 진탕 마신 후에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배수로에 고개를 박고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천명하신 것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다(계 4:8).
“그분 앞에 모든 민족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그 민족들이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곧 헛것보다 못하게 여겨지느니라”(사 40:17).
이 나라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기 위해 유세하면서 성경 구절을 곧잘 인용하지만 그들은 미국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생각이 담긴 말씀은 회피한다. “보라, 민족들은 통 속에 한 방울 물 같고, 또 저울의 작은 티끌같이 여겨지느니라”(사 40:15). 미국도 그 통 속에 든 물에 포함되는가?
“미국은 예외”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삼키기 괴로운 알약과 같다. 우리는 자신이 최고라 믿고 싶어 한다. 미국인들이 차에 붙이고 다니는 스티커는 그들의 자부심을 대변한다. “내 아이는 우등생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매우 예외적인 국민인데 우리는 지구상의 어떤 나라들보다 복음을 많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처럼 축복하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정산해야 할 것이 그만큼 더 많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길!
미국인들 중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러시아가 전통적인 혼인의 신성함을 고수하는 반면 이 나라는 “게이” 결혼을 포용하게 될 것을 말이다. 나는 서방 지도자들의 “게이” 결혼 금지를 완화시키라는 압력에 대항하라고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로비를 한 러시아 정교회 지도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정교회 수도대주교는 푸틴에게 러시아 정부는 그 나라 가정의 영예와 도덕성을 수호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놀라운 일인가? 한 때 무신론의 보루였던 러시아가 지금은 이 시대의 도덕적 타락에 저항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반면 이 나라는 복음이 전파되고 있음에도 하수구의 돌멩이처럼 타락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이 나라 대통령은 푸틴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그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나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여전히 말하기를 “주께서 말씀하시나니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며 또 그들은 자기 마음의 상상대로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말하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오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렘 23:17).
마귀에게 비밀리에 고용된 설교자들이 하는 긍정적인 설교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회중들에게 호감 있게 들리는 설교는 없다. 주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기 직전에 그곳에 만개했던 거짓 설교자들의 메시지와 같은 설교를 하는 목사들(남자들, 이제는 여자들까지)로 미국의 교회 강단들은 넘쳐 나고 있다. 예레미야는 홀로 부정적인 메시지를 외쳤다. 그의 부정적인 메시지 때문에 그는 외톨이가 되었고 그는 슬피 울었지만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을 설교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미국은 유대인이 하나님께 받은 것과 같은 민족적 보존의 약속을 받은 적이 없다. 유대인들은 민족들 가운데 유일하게 그 약속을 받았다.
“주가 말하노라. 오 내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 말라. 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내가 너를 쫓아냈던 모든 민족들은 완전히 끝낼 것이지만, 내가 너는 완전히 끝내지 않고 공의로 바로잡을 것임이라. 그러나 내가 너를 전혀 벌하지 않은 채 두지는 아니하리라”(렘 46:28).
오늘날 교회 강단에서 심판을 설교하는 것은 심지어 침례교 설교자들에게도 위험한 일이 되고 있다. 정직하게 말해서 이 메시지는 거의 전파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암 4:12).
그렇다면 어떤 설교를 들어야 여러분은 그 날을 대비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나를 사랑하십니다” 같은 설교는 애들 간식거리일 뿐이다. 어떤 설교가 필요한 것인가?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2016년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주 외에 누가 알겠는가? “이는 지금이 우리가 믿었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음이라”(롬 13:11).
미국인들은 옛 카나안인들이 그랬듯이 도덕적 더러움 가운데 허우적대고 있다. 우리 사회는 혼과 영에 찾아든 이 질병 때문에 나날이 연약해져 가고 있다. 이 영적 암은 치명적이며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근래에 내 친척 중 한 명이 간암 선고를 받았다. 내 사촌인 그는 그 암이 치유 가능한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그가 내게 연락해서 자신의 암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남은 방법은 방사선 치료와 화학 요법을 병행하는 것인데 그렇게 한다 해도 수명을 6-9개월 정도밖에 연장할 수 없다고 했다.
누구든 그런 일이 자신의 경우가 되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그럴 경우 의사들이 솔직하게 말해주기를 바란다. 우리들 대부분은 모르는 것보다 아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나 역시 그렇다.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있다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에게나 아닌 사람에게나 하나님의 자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백만의 사람들이 의사들로부터는 진실을 듣기 바라면서 성경대로 믿는 설교자들로부터는 진리를 듣지 않으려 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가져오리니 그들이 그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또 그들이 내게 부르짖는다 해도 내가 그들에게 경청하지 아니하리라”(렘 11:11).
법정에서 판결이 내려지면 판사에게 판결을 뒤집어 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예레미야 46:28을 보라. 종종 법정에서는 사건의 성격에 따라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집에 돌아가서 가사를 정리하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작별 인사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감옥살이를 피하려고 도주할 우려가 거의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의 시간인 것이다. 내가 볼 때 우리 나라도 하나님께 이런 시간을 받은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내가 믿기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날려 버린 것이다.
“또 내가 그녀에게 자기의 음행을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녀가 회개하지 아니하였도다”(계 2:21).
1960-70년대부터 이 나라에는 미치광이 은사주의자들이 들어왔고, 기적을 추구하는 것과 “역동적인 경배 체험들”, 긍정적 사고방식, 선포하면 이루어질 거에요 신학, 그리고 “예수를 당신의 삶에 받아들이세요” 같은 주문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주를 두려워함의 능력이 실종되고 말았다. 설교자들은 경비견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애완견처럼 변질되었다. 아직 이곳 저곳에 하나님의 말씀(KJV 1611)을 믿고 설교하는 소수의 설교자들이 남아 있지만 마귀는 이 나라 교회의 대부분을 잠에 빠뜨렸다. 미국은 다시 위대해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고 어떤 정치인도 그 기회를 다시 가져올 수 없다.
“주의 자비하심으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하였으니 그의 긍휼히 여기심이 사라지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애 3:22).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대단한 위로가 되는 말씀인데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시험을 주시지만 그 시험을 통과한 남은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런 위로를 받을 수 없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목적에는 때가 있으니”(전 3:1).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어떻게 다루시는가에 대해 이 점을 명심하고 있으라. 전도서 3:6은 이렇게 말씀한다: “얻을 때와 잃을 때, 간수할 때와 버릴 때며.” 내가 2절부터 “때”라는 단어를 헤아려 보니 “잃을 때”는 열여덟 번째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6+6+6(666)이다. 즉 이 나라가 마귀에게 넘어갈 때, 여러분이 패배할 때를 말하는 것이다!
점점 더 우리 정부는 모든 방면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조직적으로 맞서고 있다. 우리가 마귀에게 넘어가고 말 것인가? 여러분이 내게 말해 달라. 자식들에게 “징계하는 막대기”(잠 22:15)를 대야 그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 부모들은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푸틴이 그런 우리를 보고 타락한 사회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러시아 국기는 우리처럼 삼색 곧 적, 백, 청으로 되어 있다. 어쩌면 크리스찬 부모로 살려면 여기보다 러시아가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오해하지 말라, 예레미야가 자기 백성을 사랑했듯이 나도 조국을 사랑한다. 그러나 여러분이 우리가 처한 이 나라의 현실을 보고도 외치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은 영적으로 소경인 것이다.
아직 할 수 있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를 신실하게 외쳐야 한다: “마귀 짓을 그만두고 ‘다가오는 진노에서 피하라.’” 하나님께서 내가 38년 전 그런 설교자를 브루클린에서 만나게 하신 것에 대해 나는 감사드린다.
“주를 사랑하는 너희들아,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들의 혼들을 보호하시며 그가 그들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 내시느니라”(시 97:10).
감사합니다, 예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