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390〉
■ 자동문 앞에서 (유하, 1963~)
이제 어디를 가나 아리바바의 참깨
주문 없이도 저절로 열리는
자동문 세상이다
언제나 문 앞에 서기만 하면
어디선가 전자 감응 장치의 음흉한 혀끝이
날름날름 우리의 몸을 핥는다 순간
스르르 문이 열리고 스르르 우리들은 들어간다
스르르 열리고 스르르 들어가고
스르르 열리고 스르르 나오고
그때마다 우리의 손은 조금씩 퇴화하여 간다
하늘을 멀뚱멀뚱 쳐다만 봐야 하는
날개 없는 키위새
머지않아 우리들은 두 손을 잃고 말 것이다
정작, 두 손으로 힘겹게 열어야 하는
그,
어떤,
문 앞에서는,
키위키위 울고만 있을 것이다.
- 2012 시집 <무림일기> (문학과 지성사)
*20세기 후반 들면서 과학기술 및 정보통신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자동화가 가속화되며 우리의 생활은 크게 편리해지고 속도는 더욱 빨라졌습니다. 일상생활의 웬만한 건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간편하고 신기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첨단기술에 의존하며 편리성만 찾다 보니 우리들의 주체성이 점차 퇴보해 가는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스마트폰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수동적인 인간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는 이 詩는, 현대문명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인상적인 작품인데 자동문과 키위새를 통해 현대인의 무력함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키위새는 뉴질랜드라는 천혜의 환경에서 천적 없이 풍요롭게 살면서 날개가 퇴화된 새이며, 이 詩에서는 자동문과 같은 편리한 물질문명에 길들여진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현대인을 상징합니다.
결국 이 詩는,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현대의 첨단기술과 문명의 이기(利器)에만 익숙해져 인간의 주체적 의지를 상실해 가는 현대인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을 가하는 글이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미래에는 날개 없는 키위새처럼 인간의 주체적 역량과 의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시인은 우리에게 경고해 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