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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하얀집(Casa Bianca)》이란 노래를 전한 가수는『Marisa Sannia』이지만, 우리들에게 이태리어
로 전해져 이 노래를 대중화 시키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노래를 독일어(Das weiß Haus)와 영어(The
White House) 및 프랑스어(La petite maison bleue)로 불러 크게 유행시킨『Vicky Leandros』가 우리에게
아무래도 더 잘 알려져 있다.
더구나 두류봉은 20대시절에 독일이라는 먼곳에 머물면서 뽀송뽀송한 몸매와 싱싱한 젊음을 지닌 10 대의
어린 가수『Vicky Leandros』를 무척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덧없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자가수라면
동양에선 세기의 가수인 鄧麗君을 최고의 가수로 좋아하지만, 서양가수로는『Vicky Leandros』를 가장
좋아한다. 鄧麗君은 1953년 1월 29일생으로 1995년 42살의 젊은 처녀의 몸으로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Vicky는 1952년 8월 23일생으로 지금 50대후반의 중후한 나이에 세 아이의 엄마인데도 그 인기가
그칠 줄을 모른다.
아마 우리나라의 50대후반이상의 세대라면 Marisa Sannia는 혹 모르는 사람이 있어도 Vicky Leandros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 Vicky Leandros는 어떤 사람인가? 필자는 당시 LP판으로 그녀
의 노래를 듣던 시대사람이고, 독일에 머물고 있을때에는 직접 그녀 콘서트에도 참관하였을 정도로 그녀를
좋아했다. 그래서 디스크표지에 소개된 그녀에 관한 내역을 아직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녀의 정보를 더 많이 알기 위해 Vicky Leandros의 홈페이지를 찾아
첫페이지를 열어보니 아직도 날씬한 몸매에 빵빵한 가슴을 자랑하는 사진이 실려있다. 독일어로
쓰여진 내역의 대강을 여기에 번역하여 옮기고 원문을 아래에 싣는다. (www.vickyleandros.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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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키 레안드로스(Vicky Leandros)』의 생애(Biographie) ◆
- 국경을 뛰어넘은 그녀의 이력 -
지난 40년 동안 가수활동을 하면서 4천만명이상의 음악팬으로부터 세계적인 폭넓은 사랑을 받고, 최고상인
금상(金賞)이나 백금상(白金賞)을 수상하면서, 유럽의 음악무대에서 우뚝선 스타로 군림하여온『비키 레안
드로스(Vicky Leandros)』의 이력。
예술인으로서 성공한 경우로 완전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스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최고의 권위
있는 대중음악의 유명한 기네스사전에 매니저도 없이 자기 스스로를 알려서 성공한 경우도 별로 없는데, 비
키자신은 혼자서 그렇게 하여 그런 높은 가치의 기록을 남겼다. 여기에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일치되었다.
● 1952년 8월 23일『비키 레안드로스』는 그리스(Greece)의 코르푸(Korfu)섬의 휴양지 팔레오카스트리차
(Paleokastritsa)에서 태어났는데, 본래는 이름을「바실리키 파파타나쉬(Vassiliki Papathanassiou)」라
고 지었다. 1958년 Vicky는「레오 레안드로스」로 알려진 아버지「레오 파파타나쉬」와 어머니「키리아
아카프로타파파」와 함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독일의 Hamburg로 갔다.
1961년에 Vicky의 부모는 이혼으로 갈라서게 되는데, Vicky는 이때 아버지와 함께 Hamburg에 남아 살게
되었다. 이곳에서 Vicky는 Gymnasium에 다니게 되었고, 그러고나서 통역학교에서 공부했다. 어릴 때부
터 이미 성악과 기타 그리고 발레 수업을 받아왔는데, 이것은 나중에 그녀가 음악의 길로 들어가 성공하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
1965년에는 뺨에 살이 도독이 찐 틴에이저로《Messer, Gabel, Schere, Licht》라는 싱글-데뷔판을 내놓
았는데, 이것이 독일이라는 유럽의 한 변방에서 행한 첫 걸음마였다. 그녀는 학교친구와 공동으로 NDR의
가설무대행사에 가서 노래를 불렀는데, 거기서 출연료로 200DM(마르크)를 받았다.
1967년에 Vicky는 처음으로 오스트리아의 비인(Wien)에서 열린 국제적인 큰 행사에 참가하였다. 그녀는
Luxembourg 대표로 가요제로는 가장권위있는〈Grand Prix Eurovision (Eurovision Song Contest)〉에
참가하여 《우울한 사랑(L'amour est bleu)》을 프랑스어로 불러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주목 받을 수 있는
4등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이《우울한 사랑(L'amour est bleu)》을「폴·모리아(Paul Mauriat)」악단에서 다시 편곡 연주 취입하
여 1968년 빌보드차트 1위를 5주 이상 유지하여 세계적인 연주곡이 된다. 당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
짧고 간단한 노래로 인하여 빌보드 1위를 한 프랑스의 유일한 곡이 되고, Vicky 라는 가수도 세계적인 인물로
알려지게 된다.
이 노래는 5개국어로 즉시 번역취입되어 Eurovision의 모든 방송시간대에 최고로 많이 방송되었으며, 최고의
자리를 4배이상 유지해 나갔다. 1968년에 Vicky는 유럽에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되었다. 독일이라는 지역
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폭 넓은 활동을 하여, 성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독일어、희랍어、프랑스어、영어、이탈
리아어와 일본어로 노래 부르고, 그 뒤에 계속하여 스페인어와 화란어로도 노래를 불렀다.
1971년에 Vicky는 몽트로이히(Montreux)의 〈Ich bin〉이라는 텔레비전 쇼에서 동장미(銅薔薇)역을 맡게 되는
데, 이 자리에서 일약 스타가 된다. 그러는 동안 Vicky는 완전히 성숙한 숙녀가 되었고, 그때부터 비키 레안드로
스(Vicky Leandros)라는 이름이 등장하여 그렇게 바꿔 부르게 되었다.
1972년은 젊은 예술인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해였다. 그해 3월 25일 Scotland
의 Edinburgh에서 열린〈Grand Prix Eurovision〉가요제에 두번째로 참가해 달라는 Luxemburg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룩셈부르크 대표로 다시 참가한다.
최고들 중의 정상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영국의 신인 출연자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는데, Vicky는 《Après toi
(당신이 떠난 후)》라는 노래를 불러 최고상을 차지하게 된다. 이 노래는 7개국어로 번역하여 불렀는데, 영어로는
《Come What May》로 번역되어, 영국에서 1위의 인기에 이르면서 역시 크게 히트한다. 이 앨범의 총 판매 매수가
오늘날에는 1천만장을 훨씬 초과하여 팔려 한 곡목의 노래로는 지금까지 그 기록은 전무후무하다.
1974년에는《Theo》라는 노래를 취입하여, 주로 독일에서 크게 히트하더니 다음에는 역시 전유럽(全欧洲)의 여
러 유명 음반계에서 취입 제안이 들어왔다.
1975년 미국에서 새 앨범 《Across the Water》를 내놓게 되는데, 이 앨범은 칸츄리, 록, 소울의 리듬이 혼재된
것으로 유럽에서 내놓았던 작품과 달라 미국전역과 빌보드에서도 좋은 반응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녀는 미국에서
앨범을 내는 조건으로 CBS와 백만불의 계약을 체결하여, 헐리웃에서 『킴 포울리』와 함께 음악활동을 하게 되지
만, Vicky는 고향에서 처럼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유럽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피력했다.
미국에서의 체험으로 그녀는 독일의 민요를 앨범으로 내고, 크리스마스 캐럴과 스페인어 앨범도 스페인이나 라틴
아메리카에서 대단한 인기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80년대에는 Vicky는 임신과 출산으로 인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녀는 70년대의 최고의 여가수로는 알려져 왔기 때문에 전세계에 걸쳐서 앨범이 판매되었고,
수십차례나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수백 회나 열린 그녀의 콘서트에서는 항상 입장권이 매진되었으며 마찬
가지로 5대주의 인기차트에서 수십 차례나 1위를 차지하였다.
이렇게 한 평생을 음악과 함께 보낸 그녀는 아들 하나와 두 딸의 엄마로 지금도 왕성한 가수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
는 전유럽과 미국, 캐나다, 중남미, 그리고 남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일본, 중국,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명성이 들어나
지 않는 곳이 없는데, 이는 충실한 연예활동과 그녀의 다양한 언어능력으로 인하여 더욱 돋보이고 있는 것이다.
Seit 40 Jahren auf der Bühne, weit über 40 Millionen verkaufte Tonträger weltweit, etliche Gold- und Platin-Auszeichnungen, und nach wie vor zählt sie zu den Top-Stars der europäi-schen Musikszene: Vicky Leandros !
Die Erfolgs-Bilanz der Künstlerin, die als eine der ganz wenigen nicht-englischsprachigen Stars auch in der renommierten 『Guinness Encyclopedia of Popular Music』 mit einem eigenen Kapitel vertreten ist, ist so reich an Höhepunkten, daß sie ein Buch füllen würde. Hier einige Reflektionen:
Am 23. August 1952 wird Vicky auf der griechischen Insel Korfu geboren und erhält den Namen『Vassiliki Papathanassiou』1958 kommt Vicky nach Hamburg, wo sich Ihre Eltern, Papa Leo Papathanassiou (Leo Leandros) und Mama Kyriaka Protapapa, in der Zwischenzeit niedergelassen haben.
1961 lassen sich die Eltern scheiden und Vicky bleibt bei ihrem Vater in Hamburg. Hier besucht sie zunächst das Gymnasium und dann die Dolmetscherschule. Schon von Kindesbeinen erhält sie Unterricht in Gesang, Gitarre und Ballett zur Vorbereitung auf ihre spütere Karriere.
1965 hat der pausbäckige Teenager sein Single-Debüt mit 《Messer, Gabel, Schere, Licht》und ihren ersten Auftritt im deutschen Fernsehen. Zusammen mit ihrer Schulklasse tritt sie in der Aktuellen Schaubude des NDR auf und erhält 200 Mark als Gage.
1967 folgt der erste große internationale Auftritt in Wien. Sie singt für Luxemburg beim『Grand Prix Eurovision』 und erreicht mit 《L´amour est bleu》 einen beachtlichen vierten Platz. Der Song wird -in fünf Sprachen interpretiert- das meistverkaufte Eurovisionslied aller Zeiten und erreicht vierfachen Platin-Status.
1968 wird Vicky mit der Goldenen Europa ausgezeichnet. Inzwischen ist sie weit über die Grenzen Deutschlands hinaus bekannt und singt ihre Lieder erfolgreich in Deutsch, Griechisch, Französisch, Englisch, Italienisch und Japanisch - später auch noch in Spanisch und Holländisch.
1971 gewinnt Vicky mit ihrer Fernsehshow 『Ich bin』 die Bronzene Rose von Montreux und den RTL-Löwen in Bronze. Vicky ist inzwischen zu einer jungen Frau geworden, die nun unter dem vollen Namen Vicky Leandros auftritt.
Danach folgen zahlreiche Hits wie 『Ich hab' die Liebe geseh'n』 (die Single verkauft sich 1,5 Millionen mal,
『Die Bouzouki klang durch die Sommernacht, Ich liebe das Leben』. Die Verkaufszahlen schnellen in
illionenhöhe. Vicky avanciert zum Weltstar.
Vicky Leandros wird in der "Billboard"-Bilanz als "bestselling artist" gelistet. In diesem Jahr hat Vicky 6 Millionen
Singles weltweit verkauft. Ihr Après toi ist in diesem Jahr das meistverkaufte Lied weltw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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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hite House》/ 『Vicky Leandros』
어느 동네에 하얀 집 한 채 추억이란 다 그런 거지요..
There's a white house in a town
Old and scared and tumbled down
I can build it up once more
That's what memories are for
There's a fire, a chair, a dream
Was I six- or seventeen
As the years go by you'll find
Time plays tricks upon the mind
White house joy will disappear
What became of yesteryear
With my mother and my father there
I knew love was everywhere
Was it hate that closed the door
What do children know of war
Old and scared and tumbled down
Gone the white house in the town
White house joy will disappear
What became of yesteryear
With my mother and my father there
I knew love was everywhere
There's a white house in a town
Old and scared and tumbled down
I can build it up once more
That's what memories are for
That's what memories are for
The white house
낡고 무섭고 무너져 가는 집
그 집을 다시 세우고 싶어요
추억이란 다 그런 거지요
그곳에 난로와 의자와 꿈이 있었죠
그때 난 열여섯이나 일곱이였던가요
세월이 흐르면 알게 되지요
시간이 마음을 속인다는 걸
하얀 집의 기쁨 사라질 거예요
지난 날은 이제 어디로 갔지요
어머니 아버지 그곳에 계실 땐
사방에 온통 사랑이 넘쳤죠
미움이 문을 닫고 말았던가요
아이들이 전쟁을 어찌 아나요
낡고 무섭고 다 쓰러져 가는 집
동네의 하얀 집 사라지고 없어요
하얀 집의 기쁨 사라질 거예요
지난 날은 이제 어디로 갔지요
어머니 아버지 그곳에 계실 땐
사방에 온통 사랑이 넘쳤죠
어느 동네에 하얀 집 한 채
낡고 무섭고 무너져 가는 집
그 집을 다시 세우고 싶어요
추억이란 다 그런 거지요
그 하얀집의
첫댓글 '비키 레안드로스'의 이력을 자세히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네 무릉도원님이 오셔서 필자가 쓴 비키 레안드로스에 관한 이야기를 다 읽어주셨네요. 두류봉은 20대에 독일이라는 곳에서 공부한답시고 외롭고 힘들던 시절의 젊은 나이에 비키의 노래를 무척 좋아했죠. 지금은 모두가 늙어가는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