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공학 10가지 도전적 질문 ⑨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로봇을 만들 수 있을까?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55호(2024.06.17)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의 ‘과학과 기술의 미래 클러스터’(클러스터장 이정동)에서 최근 ‘그랜드 퀘스트 2024’(포르체)를 펴냈습니다. 이정동 클러스터장은 “도전적 질문 (Grand Quest)이 진정한 혁신의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10개의 도전적 질문을 통해 최신 과학∙공학의 이슈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서울대총동창신문에서 10회에 걸쳐 그 내용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Grand Quests 연재 순서 1. 집적회로기반 양자컴퓨팅 2. 프라이버시 기반 인공지능 3. 효소모방 촉매 4. 추론하는 인공지능 5. 체화 인지구조 인공지능 6. 인공지능 기반 항체설계 7. 노화의 과학 8. 초미세/초저전력 반도체 9. 환경적응적 로봇 10. 초경량 배터리 |
조규진 (기계설계92-98) 서울공대 기계공학부 교수
김현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제한된 환경에서 주어진 명령만을 수행하는 로봇은 재난 상황처럼 복잡하고, 끊임없이 환경이 변화하는 상황에서는 쓸 수 없다. 변화된 환경을 인지하고, 이에 맞추어 행동을 적응시키면서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을 만들 수 있을까?
로봇의 활용 영역은 제조업 분야에서 특정한 태스크의 자동화에 사용되는 산업용 로봇부터 의료 로봇, 서비스 로봇, 휴머노이드 로봇 등, 비정형 문제로 확장되어 왔다. 이러한 비정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복잡한 외부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환경적응적(adaptive) 로봇이 필요하다.
기존의 로봇 구동 방식은 1) 로봇의 몸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주변 환경 정보를 감지하는 ‘인지’, 2) 센서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모든 움직임을 계산하는 ‘판단’ 그리고 3) 액추에이터(actuator)를 통해 움직임을 구현하는 ‘제어’의 세 단계를 거쳐 작동한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과 동물이 움직이는 방식은 로봇과 달리 단계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으며, 판단에 있어서도 의식적 반응과 무조건 반사가 모두 일어난다. 따라서 최근에는 비정형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러한 인간과 동물의 물리적 상호작용(Physical Interaction) 방식을 모방하여 외부 환경에 대한 적응성이 향상된 소프트 로봇(Soft Robot)이 주목을 받고 있으며 딥러닝 기술을 로봇에 적용하여 성능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소프트 로봇의 핵심은 임바디드 인텔리전스(Embodied Intelligence)를 가진 로봇을 구현하는 것이다. 임바디드 인텔리전스와 유사한 개념으로 임바디드 AI(Embodied Artificial Intelligence)가 있다. 임바디드 AI는 주로 AI에 로봇의 몸을 장착하는 개념으로 로봇의 소프트웨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실제 로봇을 만드는 연구자들의 관점에서 보는 임바디드 인텔리전스는 로봇의 바디에 따라 AI가 다르게 발달한다는 개념으로, 로봇의 하드웨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카메라 같은 시각 센서나 물체를 다룰 손이 없는 로봇 구조라면 받아들이는 정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데이터 수집과 학습이 한정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임바디드 인텔리전스의 구현을 위해서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로봇의 소프트웨어적인 개선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자체가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져야 한다.
기존의 로봇은 학습을 위한 데이터를 모으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일반적인 AI와 달리 임바디드 인텔리전스는 실제 로봇이라는 하드웨어를 사용해서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 그러나 구글에서 수행하는 규모가 큰 실험에서도 로봇 20대를 동시에 활용하는 정도에 그치는 등 데이터의 수집 규모가 제한적이고, 로봇의 구동 속도 또한 느리기 때문에 데이터 수집이 더디게 이루어진다. 게다가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로봇 손 같은 경우 인간의 손처럼 높은 자유도를 갖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가격과 무게 등 한계가 있고, 보다 소프트한 집게(gripper)와 같은 경우 장시간에 걸친 반복 정확도나 미세한 작업을 수행하는 능력이 제한적이다.
임바디드 인텔리전스의 구현에 있어서 핵심은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인지-판단-제어가 통합된 새로운 로봇의 몸을 구현하는 것이다. 가장 간단하게는 로봇암(Robot Arm) 전반에 센서와 프로세서를 더 많이 부착하는 방법이 있지만 무게와 비용 등의 단점이 있다. 또 다른 대안으로는 센서 없이 연성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로봇의 몸 자체가 환경에 적응하여 변형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일례로 로봇의 암을 부드러운 소재를 활용하여 물체의 형상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이후 소재의 경성을 바꿔서 물체를 잡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로봇의 몸 자체가 인지(sensing)와 제어(actuation) 역할을 모두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로봇이 다양한 상황에서 동작하게 하기 위한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현재는 산업 현장에서 물류나 공정의 자
동화를 위해 로봇암을 도입할 때 어쩔 수 없이 작업 환경 자체를 바꾸고 있는 실정이다.
범용적인 하나의 로봇을 만들기보다는 임무에 맞는 다양한 로봇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로봇은 폼 팩터(Form Factor)와 사용처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인간만큼 범용화된 기능을 가진 로봇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또한 로봇에는 범용성과 속도, 가격, 무게 간의 근본적인 트레이드오프(Tradeoff)가 존재한다. 다양한 물건을 잡을 수 있는 로봇은 물건의 종류에 따라서 상호작용 방식이 다르므로 센서와 프로그래밍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범용성이 높은 로봇일수록 구동 속도가 느리고, 비싸고, 무겁다. 그러므로 실제 현장에서는 성능 측면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범용적인 로봇보다는 저렴한 가격으로 특정 임무를 더 빠르게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의 수요가 더 많을 것이다.
산사태, 지진 등 재난재해의 대응이나 3D 업종을 로봇이 대신함으로써 안전한 노동 환경을 구축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와 저출산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돌봄 로봇 등을 통해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여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이처럼 인간을 대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을 보조할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Wearable Robot)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