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 외 2편
김나영
그가 뒤통수를 내어 준다 나에게
나도 뒤통수를 깃털처럼 내어 준다 뒷사람에게
우리는 뒤통수를 얼굴로 사용하는 사이
무덤덤하게 본척만척
서정과 서사가 끼어들지 않아서 깔끔하지
서로 표정을 갈아 끼우지 않아도
평생을 함께하지 반복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권리를 위하여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서로 헐렁헐렁한 고무줄 바지가 되지
어떤 좌석에 앉아서 굵고 짧은 잠에 빠져들 때
입을 벌리고 자도 보자마다 잊히니까
평화롭지 정면이나 측면이나 측백나무처럼
한결같지 동일하게 지루해도 숨통이 트이지
내 뒤통수와 모르는 사람의 뒤통수가
내 등뼈와 모르는 사람의 등뼈가
내 엉덩이와 모르는 사람의 엉덩이가 물컹하게 겹친 적 있다
몇 번을 앉았다 일어나도 뒤끝이 없지
포스트잇처럼
등을 깊게 파낸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총총 멀어져 간다
아는 사람
둥글게 모여 앉더군 옆구리가 물컹해지도록 뜨거원 농담을 탁구공처럼 주고받으며 즐거워하더군 그들 중 하나가 화장실 가서 팬티를 내릴 때 터진 입으로 그의 사생활을 빨갛게 벗겨 내리더군 인간이랍시고 더할 나위 없이 인간적으로 골고루 돌아가며 평등하게 일관된 덕목처럼 어떤 허물이 실뭉치처럼 함부로 부풀 때까지 지척에서 신물 나게 맛보고 즐기고 뜯더군 팔천구백칠십이만 칠천칠책이십팔 개의 내 털이 오싹해지도록 그가 돌아오는 순간 재빨리 바꿔치기하는 미소란, 내 매끄러운 허리로 저보다 유연하지는 못하지 안 그런 척 입을 씻고 돌아가며 화장실을 가고 너덜너덜한 귀를 1/N씩 나눠 갖더군 겉으로 끈끈한 듯 보여도 밀도 약한 박력분의 끈기처럼 저기 엉성하게 가담하고 있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쯧쯧 모르는 사람으로 돌아가기도 틀려먹은, 네 발로 태어나서 두 발밖에 사용할 줄 모르는 족속들 내가 선반 위에서 내리깔아 보고 있는 줄 모르는 뒤통수들 일찌감치 내가 집사로 부리길 잘한
원정
톱니처럼 생긴 꽃, 민들레가 맞물려서피어나고맞물려서피어난다
꽃이 꽃을 길어 올린다 대기에 미세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아무 곳 아무 데로 전투적으로 번 져 간 다 번 져 간 다 석유 한 방울 사용하지 않고
인조석과 활주로를 가볍게 넘는다 총 칼 없이 미사일 없이 드론 없이 국경과 바다를 건너
방글라데시 로힝야족 난민들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발아를 기다린다 시리아 홈스 주택가 주인 잃은 신발 안에도 뿌리를 내리고 상처 난 대지를 꽃으로 봉합한다
꽃으로라도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저렇게 비폭력적인 이데올로기도 없다
민들레 씨앗 안에는 엎질러지기를 소망하는 초록 물감이 수십억 톤
23.5° 기운 민들레 씨가 지구의 자전 속도에 따라 지구촌 어디든 번 져 간 다 번 져 간 다
― 김나영 시집,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천년의시작 / 2021)
김나영
1998년 《예술세계》 등단. 시집 『왼손의 쓸모』 『수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편저 『홍난파 수필선집』이 있음. 2005 ·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한양대학교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