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 만리 7월 15일 월요일. 여행 17일 차
만사가 도로아미 타불이 되었다. 차에 오르면 틈틈이 자판을 두드려 여행 메모를 해두던 중에 그만 잠깐 졸다가 운 없이 지우기 키에 손이 닿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부 기록이 날아갔다. "이런 젠장..." 어제 '페리메도우'에서 짚차로 하산하던 일부터 '바브사르패스'를 넘어 '나란'에 도착하기까지, 그리고 오늘 아침 서둘러 출발했던 메모가 날아가고 말았다. 맥 빠진다. 혹시나 해서 열심히 뒤져봤지만 역시나 헛수고다. 따로 어디 웹에 올려 둔 곳도 없다. 에라 모르겠다. 음악이나 듣자. 인간사가 다 그런거지. 리스크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나. 그래, 이제는 뭘 기어히 하려들지 말자. 그나마 몽땅 날리지 않은 게 어딘가. 포기가 빠르면 세상사가 편하다.
아침 식사도 생략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여기 파키스탄 시아파의 최대 종교 행사인 '아슈라' 날이어서 어디를 가든지 복잡하단다. 이슬람 세계에서 시아파인 '이맘 후세인'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로써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전투 중에 순교했다. 이를 기리는 40일 간의 애도기간을 '모하람' 이라 하는데 그 중에 9일과 10일 째에 행하는 가장 특별한 행사가 '아슈라'다. 그 때문인지 이 좁은 산간 오지에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요즘 처럼 더운 계절에 피서지로 톡톡히 유명세를 치루는 곳이다. 그러니 차량 또한 얼마나 많이 몰렸던지 주차장이 부족할 지경이다. 자칫 길에 갖히고나면 대책이 없겠기에 러시아워를 피하여 새벽부터 서둘렀다. 그 까닭에 잠이 부족했던지 깜박 졸다가 이렇게 메모를 날려먹는 사단이 난 것이다.
각설하고, 세시간을 달려 고도 천미터 이하의 세상으로 내려왔다. 지난 달 29일 집 떠나온 이후 17일 만의 일이다. 이제는 눈앞에 펼쳐진 산들이 우쭐대지 않으니 시야도 편안하다. 어제의 인더스강 검은 물결과는 달리 수목이 우거진 이곳은 물이 맑고 푸르다. 넓은 계곡에 힘차게 흐르는 물줄기, 마치 장마철에 물 불은 강원도 어디쯤 인 듯 익숙하다.
화장실은 가야겠고 기사는 쉴 생각을 않고. 나서서 세워달라자니 그도 귀찮고. 젊던 시절 수학여행 인솔 시 학생들이 쉬 마렵다고 할 때 농담 삼아 "아가들아, 고추 끝을 꽉 쥐고있거라."라 했다. 요즈음 같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을 일. 큰일 날 소리다. 그 정도의 말은 유모어로 치부되던 낭만의 시대였다.
세시간 동안 구불진 산길을 달려 '발라콧'에 도착했다. 여기는 지진의 도시. 이십년 전에 찾아온 뜻 밖의 재앙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이제는 그 생채기가 많이 아물어서 스쳐가는 나그네에게 보여주진 않겠지만 재난의 잔영은 여전히 남았으리라.
늦은 아침식사를 위해 찾아간 강가의 노천식당은 미류나무 그늘 아래 천막을 쳐두었다. 편안한 의자에 걸터 앉아 가만히 들어보는 청량한 물소리. 긴 시간 승차의 피로가 한 순간에 날아간다. 주식인 빠라타(기름에 부쳐낸 넓적한 밀빵)는 기본이고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는 커리 맛 때문에 파키스탄에 또 한 번 반했다.
재 급유를 위하여 주유소를 들렀다. 경유가 리터 당 281루피니까 우리돈으로 하면 1,400원 대. 한국과 비슷한 수준. 하지만 여기의 개인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다. 모든 게 전반적으로 고물가. 현재 파키스탄은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 IMF의 관리 하에 나라 살림을 운영중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부분, 일반 국민들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어 내핍(內乏)을 강요 당하는 꼴이다. 여기에 오면 물가가 저렴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 중에서도 큰 착각이었다.
수도인 이슬람아마드 가는 길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 중 하나인 '탁실라'유적지를 찾아가기로한다. 여기는 오랜동안 다양한 왕국의 흔적을 담고 있는 곳으로서 특히 중요한 불교 중심지이며 간다라 예술의 시발지이다. 고대 인도와 헬레니즘, 페르시아, 쿠샨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문화적 교류의 증거를 보여주는 곳이다. 어제까지의 여정은 자연과 함께였고 이제는 짧게나마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차례다.
여기서 발라콧에서 탁실라까지는 네시간 거리. 출발한지 얼마 않되어 고개길에 접어들자마자 교통사고 현장이다. 소형 승용차 하나가 계곡에 쳐박혔다. 길이 좁고 굽은 곳이 많아 언제라도 사고 위험이 도사린 곳이다. 우리의 차만은 안전하길 빌 뿐이다. 한편에서는 구난 작업이 이루어지는 중에 다른 한편에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웃어가며 찻잔을 나누는 젊은이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설령 내가 없다해도 잘만 돌아간다.
차량이 정체된 틈새에 다가와 "기브 미 루피"를 웨치는 아이들. 우리에게도 미군들을 향하여 기브미 초코렛 하던 어릴적이 있었다. 이제 막 좋아하게 된 파키스탄. 앞날에 풍요가 함께하길 빈다.
구글지도를 검색하니 탁실라까지 115km로 딱 두시간 거리란다. 12시 39분 도착이라하니 구글의 신뢰성을 한번 봐야겠다.
시골의 작은 마을 안 길을 지난다. 길 가에 수십기의 무덤이 나란히 놓였다. 우리네와는 달리 마을 안에 산 사람과 죽은 자가 함께한다.
이제 '하자라 모터웨이'로 진입했다. 수도인 '이슬람아바드'까지 이어진 4차선 고속도로. 이제까지 하도 털털거리다 보니 미끄러지 듯 달리는 것이 도리여 낯설다.
탁실라 35km 이정표.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일반도로를 간다. 속도는 조금 덜 나겠지만 곧 닿으리라. 이제 해발 육백미터 아래가 되었다. 대략 삼천미터를 내려 온 것이다. 살수차가 마른 땅에 물을 뿌린는 것으로 보아 차 밖의 세상은 찜통 더위다. 날씨어플에는 현재 34도 체감온도 37도가 찍혔다. 이곳 날씨로는 우리가 운이 아주 좋단다. 오늘의 날씨면 많이 시원한 것이란다.
먼저 탁실라 박물관에 도착했다. 구글 지도의 정확도가 대단하다 두시간 전 검색 때 12시 39분 도착이라더니 어김 없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불가마에 든 듯 하다. 확 다가오는 뜨거운 열기, 얼굴이 후끈하다.
알고보니 박물관은 2시 반까지 브레이크 타임이란다. 이런 젠장, 더워 죽겠는데. 그렇다면 인근에 탁실라 유적지를 먼저 찾아가자. 다시 승차 후 유적지를 찾으니 땡볕 아래 탐방객은 오직 우리 일행 뿐. 찌를 듯 한 자외선이 무서워 썬그라스는 기본이고 두건으로 안면까지 몽땅 가린 채 나선다. 마치 전장에 나서는 듯 각오가 대단하다. 무슨 아가들 수학여행도 아니고. 이 상황이 좀 짜증스럽다. 그런데 어쩌랴. 등 떠밀려 온 게 아닌, 그야말로 무한 값을 들여 스스로 선택한 귀한 여행인 것을.
여기 탁실라 유적지는 초기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로서 현재는 거의 무너져서 아래쪽 기단 부분만 남았다. 하지만 많은 스투파(불탑)와 수도원의 터가 있어서 당시의 웅장했을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많은 것들 중에 부처님의 뼈 유물이 있다. 현재는 인도의 갠지즈강 곁에 있는 바라나시박물관에 모셔졌다지만 발견된 그 사실 만으로도 불자에겐 성소로 여겨진다. 나 또한 불자의 한 사람으로서 남다른 감회가 있다. '봉헌탑'이라 명명된 '다르마지카 스투파'는 '바라나시'에 있는 부처님 최초 설법지 '사르나트(녹야원)'의 불탑을 연상케한다. 간다라시대의 유적인 이곳은 석가모니 열반 후 8곳으로 나누어 사리를 모신 곳 중에 하나다. 이제 비록 온전치 못한 상태이지만 경건함을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백년 되었다는 보리수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박물관 입장시간을 기다리려면 여기서 최대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참 뜨겁다. 그늘 밑이라도 엄청 덥다. 한 중년의 사내가 다가와 말을 걸어오더니 주섬주섬 뭔가 꺼내든다, 이 지역 출토품으로 보이는 손바닥 만 한 부처님 상이다. 이 지역은 고대의 간다라 지방에 해당하니 이게 곧 간다라 미술품인 것이다. 흑시 모조품일 지도 모르겠지만 기념 삼아 모셔가기로 했다.
두시 반에 맞추어 탁실라 박물관에 들어갔다. 안내원은 촬영 금지를 강조한다. 이 지역에서 발굴된 많은 유물들이 진열된 가운데 유독 눈에 띤 것은 부처님 치아 사리다. 마치 사찰에 봉안된 듯 정중하게 모셔졌다. 그런데 무슬림인 직원이 다가와서는 자꾸만 기부금을 권하며 귀찮게 한다. 터번 쓴 이슬람교도의 부처님을 앞세운 영업행위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강조하던 촬영 금지도 현지인에게는 해당이 없다. 어이없다. 다리가 아프다. 소파에 앉아 청소년 시절 미술책에서 익숙히 봐 왔던 간다라양식의 부처를 마주한다. 남다른 감회가 인다.
탁실라에서 수도인 이슬람아마드까지는 불과 한시간 거리. 역시 도로상태가 좋아 편안한 여정이 되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예약 된 탄두리(항아리형 화덕) 양갈비 집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대사관 직원들의 단골집이란다. 명불허전(名不虛傳), 미리 주문해 둔 음식이 나왔다. 양갈비 한마리 분을 통채로 구워낸 요리다. 오늘을 위해서 아껴둔 와사비 쏘스를 내놓았다. 다른 말이 필요없다. 그냥 정말 맛있다.
오늘 또한 뽕술의 유혹을 잘 견뎌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