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구좌읍 송당리 1773번지 북쪽
시대 ; 조선~현대
유형 ; 민속신앙(산신당)
송당리 중산간동로에서 송당서길을 따라 400m 지점에서 서쪽으로 난 농로(시멘트길)를 따라 가다가 200m 쯤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서 150m 정도 가면 농로가 포장되지 않은 부분이 50m 정도 있는데 이곳을 지나면 다시 시멘트 포장길이 이어지다가 한 번 더 비포장/포장길이 이어진다. 이렇게 300여m 가면 길 오른쪽(북쪽)에 말을 기르는 축사(畜舍)가 보인다. 이 목장 안을 통해서 갈 수도 있지만 이는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일반인은 축사 있는 밭에서 남서쪽으로 100m 못미처 두 갈래로 갈라지는 데서 오른쪽 길로 가면 고압송전탑이 있고 그 탑에서 북쪽으로 목초지를 건너 70m 정도 지점에 당이 있다. 일반적으로 당이 마을 가까이에 있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당이 있는 곳은 송당리 산61번지이지만 산61번지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 번지로는 정확한 위치를 찾기 어렵다. 당의 바로 남쪽에 작은 땅이 송당리 1773번지여서 이 번지를 기준으로 찾으면 당을 바로 찾을 수 있다. 15m 정도 간격을 두고 동쪽에는 산신당(사라흘산신당), 서쪽에는 사라흘일뤠당이다.
젊어서 사냥을 좋아하는 송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체오름 주변에 사슴이나 산돼지가 많이 서식하고 밤에는 체오름 앞의 사라흘못에 짐승들이 물을 먹으러 자주 모이는 것을 보고 송씨는 연못 주변에 은폐물을 설치하여 숨어 있다가 활을 쏘아 짐승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여러 번 쏘아도 맞지 않자 포기하고 잠시 쉬는데 비몽사몽간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내가 키우는 짐승을 잡으려면 나부터 대접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송씨는 그 길로 집에 와서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니 부인이 제물을 준비하여 제를 지내도록 도와 주었다. 제를 올리고 나서 사냥을 했더니 백발백중이었다. 그 후 이러한 얘기가 전해지면서 마을 주민들 모두가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우마를 잃어버리면 제물을 준비하여 ‘사라흘’로 가서 제를 올려 우환을 풀었다. 제일인 11월 7일에는 주민 대부분(필자가 140505에 만난 마을 주민의 말로는 70여명)이 참석하여 제를 올리는 산신당이 되었다.(구좌읍지 673쪽)
『학교가 펴낸 우리 고장 이야기』(2014)에는 당 이름이 송당리 상덕천 체오름 산신당이라고 되어 있으며, 본래 여드렛날 다녔으나 공봉선씨가 번거롭다고 하여 일뤠당과 함께 제를 모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연석을 허리 높이로 둥글게 둘러쌓아 사각형으로 제장을 마련하였다. 제장 입구에는 커다란 누룩낭이 있고, 제장의 안 동쪽과 서쪽에 팽나무가 한 그루씩 있는데 동쪽 팽나무를 신목으로 삼는다. 신목에는 지전과 물색이 걸려 있다. 신목 아래 넓적한 자연석을 남북 방향으로 길게 배치하여 제단으로 삼고 있다.
이 당에서는 ‘삼신선백관’ 또는 ‘한라산신’을 비롯한 9신위를 모신다. 제물로는 쇠고기나 날고기를 올리는데 돼지고기는 금한다. 메 3그릇, 떡, 제숙, 달걀, 육류, 생선 등을 제물로 올린다. 처음에는 마소 돌보는 사람, 사냥하는 사람들이 주로 다녔다.(북제주군문화유적분포지도 266쪽)
이 마을 출신 박세용씨(1955년생, 140505 대화)의 증언으로는 이 당은 원래 체오름 분화구 안에 있었는데 일본군이 내쫓았기 때문에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말을 어른들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체오름 분화구 안쪽은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약 600m 남짓 된다. 체오름 동쪽 사면 하단부에 일본군 갱도진지가 있음을 감안하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체오름산신당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제장 입구 동쪽 담에 시멘트로 직사각형의 평평한 면을 만들고 〈2001년 윤4월 17일 처오름 사라을당 783-3××× 011-699-3×××〉라는 글씨를 새겼는데 이 당을 책임지고 있는 심방의 연락처로 추정된다.
제장 입구 서쪽 어귓담에 붙여서 가로×세로 1.5m쯤, 높이 1.2m 쯤으로 보이는 돌담을 쌓고 지붕을 스레트로 만든 조그만 건물이 있고 문을 달아 놓았는데 틈으로 들여다보니 별다른 물건을 놓아둔 것 같지는 않았다. 용도가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하였다.
《작성 140505, 보완 1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