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괭이밥
2022년 3월 30일(수), 흐리고 비, 천마산
오늘 비가 내린다고 했지만 오후에 비가 찔끔 내릴 것이라고 하기에 천마산 야생화 탐방에 나섰다. 너무 일찍
찾아가면 늦잠꾸러기인 그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느긋이 간다. 경춘선 전철 사릉역에 내려 길 건너 버스
승강장에 수시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오남호수공원 입구로 간다.
오남호수공원 입구에서 팔현리로 빨리 가려면 택시를 타야 되겠지만 그러면 오남호수공원 데크로드 둘레길에
서 호수 수반(水畔) 위로 천마산 연릉을 바라보는 가경을 볼 수 없다. 걸어간다. 오남호수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가까운 왼쪽의 동네 골목길을 조금 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오른쪽 가장자리에 오남호수(오남저수지) 둑을 오르
는 데크계단이 있다.
데크계단 한 피치 올라 둑방에 설치해 놓은 명사들의 시 걸개를 들여다보며 돌아 화장실 들렀다가 데크로드에
든다. 호숫가 갯버들은 벌써 꽃이 지기 시작한다. 나는 갯버들(흔히 버들강아지라고 한다)을 갯가, 즉 해변에 자
라는 버들인 줄로 알았는데 ‘갯’은 ‘개울’의 줄인 말이었다. 개울가 또는 물가에 자라는 버들이었다!
이른 아침이 훨씬 지나 햇빛이 이미 익어 버려 호수 수반 위의 물안개는 없고 그 위로 옅은 안개도 없고 첩첩산
너머의 천마산의 연릉도 볼품이 없다. 물가 아카시나무 가지를 휘젓고 다니며 지저귀는 동박새(동박새가 조그
마하지만 노란 깃털이 색동옷을 입을 것 같아 무척 귀엽다)를 한참 바라보다 청정마을로 들어간다. 개울 건너
면 차들의 왕래가 뜸한 한적한 농로다. 밭두렁을 노랗게 수놓은 꽃다지(Draba nemorosa L.), 울밑에 고개 쑥 빼
고 세상 구경 나온 꽃마리(Trigonotis peduncularis (Trevis.) Benth. ex Baker & S.Moore) 등이 반갑다.
꽃이 아주 작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한 우주가 들어있다. 꽃마리 이 작은 꽃을 연구했다고 저명한
식물학자 5명이나 학명에 이름을 올렸다. 작년에 이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남산제비꽃(Viola albida Palib. var.
chaerophylloides (Regel) F.Maek. ex H.Hara)이 보였는데 올해도 나왔을까? 살금살금 간다. 눈 기약 지켰다. 여
럿이 함께 나왔다. 남산제비꽃은 잎의 모양이 독특해서 다른 제비꽃과 쉽게 구별이 된다. 잎이 뿌리에서 모여나
기하고 3개로 완전히 갈라지며 측렬편이 다시 2개로 갈라져 새발모양을 하고 열편은 다시 2~3개로 갈라지거
나 우상으로 깊은 결각을 이룬다.
노루귀
소로 바로 옆 계류의 물 흐르는 소리가 봄의 교향악이다. 여울에는 교향악이 더욱 우렁차다. 계류에 들러 물에
손을 담가본다. 차다. 예전에는 이맘때 알탕도 했는데 이제는 가망 없는 일이 되고 만 것 같다. 물가 바위에 이
끼 사이로 무리 진 천마괭이눈(Chrysosplenium pilosum Maxim. var. valdepilosum Ohwi)이 아직 어린
모습이다. 그래도 주변 어둠을 밝히려고 애쓴다.
꿩의바람꽃(Anemone raddeana Regel)이 보인다. 작년에 비해 저지대까지 내려왔다. 아니면 원래부터 이 근방
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꿩의바람꽃은 대개 홀로 떨어져서 핀다. 꽃은 흰 꽃으로 한 줄기에 하나씩 하늘을 향
해 핀다. 다른 바람꽃들은 대부분 꽃잎 모양으로 생긴 꽃받침이 5장인데 꿩의바람꽃은 꽃받침이 8~13장이어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꿩의바람꽃은 생약명이 죽절향부(竹節香附)라 하며 약용한다. 고상한 이름이다. 오늘 날
씨가 오전에는 잔뜩 흐리다가 오후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랬자 부슬비였다. 꿩의바람꽃은 부슬비가 내리자
마자 얼른 화판을 닫아버린다.
만주바람꽃(Isopyrum manshuricum (Kom.) Kom. ex W.T.Wang & P.K.Hsiao)을 처음 본다.
전에 보았어도 만주바람꽃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 같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만주바람꽃의 생육환경으
로 “이른 봄에 경기도 천마산과 남양주시 평내동 부곡골과 부근의 낙엽이 깔린 바위 사이에서 볼 수 있고, 계방산과
영동에서도 난다.”고 한다. 만주바람꽃은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이다. 하여 이 작은 꽃들을 혹시 나도 모르게 밟아버
리지 않을까 걸음걸음 살펴 간다.
만주바람꽃의 속명 Isopyrum은 양귀비과의 고대 그리스어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잎 모양이 양귀비와 비슷하다
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종소명 manshuricum은 원산지인 만주 지역을 가리킨다. 이곳 천마산의 만주바
람꽃은 저지대에서 고지대까지 넓게 분포하고 있다. 어느 꽃 하나 그냥 가기가 미안하여 일일이 눈 맞춤하자니
발걸음이 한정 없이 느려진다.
천마산의 바람꽃 삼형제라고 할까.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외에 너도바람꽃(Eranthis stellata Maxim.)이 있다.
천마산에서 가장 일찍 핀다는 너도바람꽃도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이다. 너도바람꽃은 벌써 끝물이다. 부슬비를
맞자 엷디엷은 꽃받침이 금방 창백해진다. 너도바람꽃은 바람꽃과 비슷한데 마땅한 이름이 없어 ‘너도 바람꽃
이라고 하자’라고 했을 것 같다.
너도바람꽃의 속명 Eranthis는 ‘봄꽃’, 종소명 stellata는 ‘별 모양의’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봄에 피는 별 모양의
꽃이라는 의미다. 어느 꽃 하나 예쁘지 않으랴마는 너도바람꽃은 변산바람꽃과 비슷하여 단연 미모를 자랑하고
있다.
현호색(玄胡索, Corydalis remota Fisch. ex Maxim.)이 한창이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등재된 현호색
은그 종류가 현호색을 포함하여 21종이나 된다. 사실 이 현호색이 다른 이름의 현호색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좀
현호색(Corydalis decumbens (Thunb.) Pers.) 만큼은 잎에 흰 점이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현호색의 속명
Corydalis은 그리스어 korydallis(종달새)에서 기인한 것으로 긴 거(距)가 달린 꽃의 형태에서 연상한 것이다.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오늘 천마산 야생화 탐방에서 가장 반가웠던 꽃은 큰괭이밥(Oxalis obtriangulata
Maxim.)이다. 알맞게 큰 흰 꽃과 여러 개의 붉은 줄이 실핏줄인 듯 신비롭다. 수술은 또 얼마나 영롱한가. 바위
틈에 다소곳이 고개 숙인 모습은 한편 새침하다. 인터넷에 큰괭이밥을 검색하여 보면 상찬 일색이다. 작년에는
내가 너무 늦게 가서 시들어 가는 큰괭이밥을 3개체를 보았는데 오늘은 무리지은 큰괭이밥을 본다.
기어이 부슬비가 뿌린다. 돌핀샘 바위틈에 천마괭이눈은 피었을까, 거기 절벽 위의 처녀치마는 어떠한지 궁금
하다. 간다. 계류는 마침내 밭고, 가파른 너덜 오르막이다. 빗물에 젖어 너덜이 미끄럽다. 너덜 사이 부토가 쌓인
곳에 미치광이풀(Scopolia parviflora (Dunn) Nakai)도 다른 꽃들과 경염경쟁에 뒤쳐질라 서둘러 꽃을 피웠다.
돌핀샘. 바위벽 천마괭이눈은 아직 피지 않았다. 절벽 위의 처녀치마도 아직 캄캄 새벽이다. 여기 오를 때 만난
몇몇 사람마다에게 물었다. 무슨 꽃들이 피었던가요? 하고. 얼레지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나도 보지 못했
다. 노루귀는 있던가요? 등로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돌핀샘에 오르기까지 2개체만 보았을 뿐이
다. 이걸 두고 그랬을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지만 이맘때 캐이 님도 노루귀를 보았
다고 했다.
돌핀샘 이정표에 팔현리 4.9km, 호평동 4.4km이다. 호평동으로 간다. 날은 어둑하고 부슬비는 내리고 배는 고
프고 갈 길은 멀고 길은 미끄럽다. 사면을 돌고 돈다. 오가는 사람 없는 한적한 산길이다. 지능선 두 곳을 돌았
을까 넙데데한 사면이 나오고 갑자기 주위가 환해진다. 노루귀 군락지다. 노루귀뿐만 아니다. 여태 본 꽃들이
다 모여 있다. 복수초 꽃봉오리가 화등처럼 혹은 용광로처럼 주변을 밝힌다.
부슬비가 잠시 멈췄다. 고개 숙인 그러나 미색까지 감출 수는 없는 노루귀다. 그와 눈 맞춤하느라 납작 엎드린
다. 카메라 셔터 소리에 나도 놀라고 노루귀도 놀란다. 하나 같이 앳된 모습이다. 새끼노루귀는 남쪽 섬에 산다
니 여기에 있는 노루귀는 새끼노루귀가 아닐 것이다.
노루귀 군락지 지나고 더는 땅바닥에 엎드릴 일이 없다. 올괴불나무는 가는 걸음에 본다. 안내판에 노랑앉은부
채 자생지라고 하는데 어두워 찾아볼 여유가 없다. 천마산 주등로에 들고 임도로 내린다. 임도 벗어나 골짜기로
난 길이 있지만 그리로 내리다 넉장거리할라 얌전히 임도로 간다.
호평동 버스종점이다. 가로등은 불을 밝혔다. 오남호수공원에서 오전 10시께 걷기 시작했다. 온 골짜기와 사면
을 누볐으니 적게 잡아도 10km는 넘을 것. 그냥 걷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엎드리기 수백 번이다. 사진을 817장
찍었다. 그래도 산중 8시간이 즐겁기만 했다.
첫댓글 큰괭이밥을 잘 보셨네요~ 도입종 옥살리스는 사랑초라고 이름붙여 팔지요...이파리가 접힌다고~ 복수초 등등 사진이 안 올라오네요
너무 많아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캐이 님은 어디서 보신 노루귀와 복수초인지요?
@악수 전 인제 북면의 모 계곡임다
식생이 천마산만 몬해요 ㅠ
한계령풀 군락지를 다시 함 봐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