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독일 월드컵을 1년여 남겨 두고 벌어진 '미리 보는 월드컵' 2005 컨페더레이션스 컵은 통산 여섯번째 월드컵 정상에 도전 하는 브라질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호나우딩요, 호빙요, 아드리아누로 이어지는 공격진이 막강한 화력을 뽐냈던 브라질은 준결승에서 독일, 결승전에서 '남미 라이벌' 아르헨티나를 격파하며 그들의 화려한 역사에 또 하나의 트로피를 추가하는 데 성공했다.
FIFA가 주관한다고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 대회의 중요도가 떨어지는 컨페더레이션스 컵에서의 성적을 가지고 내년 월드컵을 전망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번 대회에 참가 했던 8개팀 중 대부분이 내년에 다시 한 번 독일땅을 밟을 것이라는 점에서, 대회에 참가 했던 국가들에게는 미리 '현지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음에는 틀림 없다. 우승권 전력을 가지고 있다는 팀들이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중도 하차한 사례가 많이 있기에, 컨페더레이션스 컵 참가국들은 2006 독일 월드컵에 대한 '어드밴티지'를 일정 부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으로 관측 된다.
3-4위전에서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를 천신만고끝에 물리치고 3위를 차지한 독일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 관점에서 비교적 후한 편이다. 우선 대회 진행에 대한 점은 합격점을 받았다. 비록 경기 중 관중 난입이 빈번하게 일어나 '옥의 티'를 남겼지만 경기장 시설, 조직 위원회 구조, 관중 열기, 치안 등 전반적인 면에서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이미 74년 서독 월드컵을 개최해 본 경험이 있는 독일은, 당장 월드컵을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꼼꼼하게 준비를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독일 대표팀에 대한 평가는 '절반의 성공'이 주된 평가이다. 특히 최근 들어 강호들을 상대로 종종 득점력의 결여를 드러내며 어려운 경기를 펼쳤던 독일이, 현역 시절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었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조련 하에 어느 팀을 상대로든 골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유감 없이 보여줬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섯 경기에서 무려 15골을 기록했다는 수치적인 면을 차치하더라도, 미드필드에서의 공격적인 움직임과 많이 간결해 지고 깔끔해진 패싱웍 등은 클린스만의 색채가 독일팀에 녹아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증명하고 있다.
다만 찬사를 받은 공격진에 비해, 다섯 경기에서 11골을 허용한 수비진에 대한 비판 역시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독일 축구가 토너먼트 대회에서 유난히 강했던 이유는 쉽게 골을 허용하지 않는 촘촘한 수비 라인에 기인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그러한 전통에 다소 실례가 될 정도로 좋지 못한 수비력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역습 상황에 허둥지둥대는 모습이나, 볼 처리 측면에서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지 못했던 이번 대회의 수비진은 '합격점'을 받기 어려웠다. 이러한 비판의 중심에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신예 선수들이 자리 잡고 있다.
팀을 맡은지 1년 여가 되가는 클린스만은 이번 대회에서 뭔가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지만, 베테랑 수비수들인 크리스티안 뵈른스와 프랑크 바우만을 휴식 차원에서 배제하고 신예들을 대거 내세워 대회에 임했다. 특히 많은 경험과 경기 시야의 필요성을 지적 받는 중앙 수비 자리에, 로베르트 후트와 페어 메르테사커를 붙박이 주전으로 투입하며 팬들을 놀라게 했다. 그렇다면, 어떠한 요소가 클린시로 하여금 이 두 신예 수비수들을 주목하게 된 것일까? 이번 글은 이 두 '자이언트 스토퍼'에 관한 이야기다.
베를린 장벽, 로베르트 후트
후트가 공을 잡으면, 관중들은 일제히 알다가도 모를 괴성을 질러댔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야유의 목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후~~~~트"를 연호하는 관중들의 목소리였다. 사실 독일 대표팀을 통틀어 이번 대회에서 후트 만큼 많은 비판을 받은 선수도 없었을테지만, 후트는 어딜 가나 자신의 이름을 불러대는 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도 "왜 그런지 알 수 없다"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을 만큼, 그의 인기는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나라 자체가 자유분방한 나라의 이미지가 아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독일의 젊은 신예들을 보면 너무 모범생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그들은 항상 용모단정해야 하고, 언론에는 항상 겸손해야하며, 팬들에게는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일 때도 있다. 특히 90년대 후반 이후의 젊은 스타들에게는 그러한 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라스 리켄이 그랬고, 세바스티안 다이슬러가 그랬으며 근자에는 토비아스 라우와 필립 람까지, 독일의 젊은 스타들은 틀에 벗어나는 행동에 대한 조심성을 보였다.
슈테판 에펜베르크와 마리오 바슬러의 젊은 시절 처럼 '기행'을 일삼는 젊은 스타들이 사라진 시점에서, 후트는 조금 특이한 '예외 조항'이다. 188cm의 장신에 다부진 몸을 자랑하는 후트는 '터미네이터'처럼 상대 선수들과의 몸싸움을 즐기며, 다혈질적인 성격을 경기 중에 유감 없이 드러내고 심지어는 대표팀의 주장이자 선배인 미카엘 발락과의 신경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인터뷰에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배어 있고,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러한 점이 자유분방한 젊은 층에 어필이 되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지 않을까?
통독의 수도 베를린 출신으로, 그의 장대한 기골과 맞물려 '베를린 장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후트는 베를린 소재의 클럽 우니온 베를린 유스팀에서 그의 축구 인생을 시작 했다. 약관 16세에, 잉글랜드 프리미어쉽의 명문 첼시에 스카우트되어 독일을 떠난 후트는 독일 유스팀의 단계를 모두 밟으며 '될성부른 떡잎'으로 평가 받아 왔다. 지난 2003년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과의 경기(대한민국 2:0 승)에 참여하기도 했던 후트는 비록 독일의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대회 내내 좋은 평가를 받으며 주목 받기 시작한다.
첼시에서의 주전 경쟁은 여전히 힘든 상황이지만, 후트는 클럽과 대표팀에서 서서히 입지를 넓혀 가고 있다. 특히 대표팀에서의 입지 확장은 비약적이다. 지난 2004년 8월,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대표팀 첫 경기를 가진 후트는 현재까지 11경기에 출전하며 클린시의 신임을 받고 있고, 이번 컨페더레이션스 컵에서는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붙박이 주전으로 기용되며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는 자신의 A-Match 첫 골을 기록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이제 후트는 젊은 축구 팬들에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Latte', 페어 메르테사커
사실 분데스리가에 아무리 박식하다고 해도, 1년 전에 페어 메르테사커(21, Per Mertesacker)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메르테사커는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지 고작 1년 남짓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03/04 시즌 중반, 강등 위기에 빠져 있었던 하노버 96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전 수비수들의 부상으로 골머리를 썩던 팀이었고 메르테사커는 이러한 기회를 통해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신데렐라'였다. 물론 당시 주전 수비수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아 메르테사커가 데뷔할 기회를 잃었다면, 그것 역시 현재의 하노버로서는 생각하기 싫은 시나리오겠지만 말이다.
메르테사커를 처음 봤을 때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198cm에 이르는 그의 키와 호리호리한 체구다. 컨페더레이션스 컵 대 호주 전에서, 메르테사커가 몸을 뉘여 강력한 슛팅을 터트렸을 때 많은 팬들은 마치 장대가 뉘여 있는 인상을 받음과 동시에 왜 그의 별명이 'Latte'(독일어로 골 포스트라는 뜻)인지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외형만을 봤을 때는, 도저히 중앙 수비수의 그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인상을 받은 팬들이 한둘이 아니리라. 장신의 키는 스피드 측면에서, 호리호리한 체구는 파워 측면에서 해가 될 것이라는 고정 관념이 그러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주된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메르테사커의 경기를 보면 이러한 고정 관념은 금새 깨어진다. 긴 다리를 이용해 성큼성큼 달리는 메르테사커의 주력은 현 독일 대표팀의 수비수 중 크리스토프 메첼더와 더불어 가장 빠른 축에 속하고, 힘을 이용하기 보다는 탁월한 위치 선정과 넓은 경기 시야로 상대 공격수를 제압한다. 198cm의 장신에서 나오는 높이는 결코 공이 자신의 뒤로 넘어가지 않게 함은 물론이다. 지난 시즌 하노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메르테사커는, 본인도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빠른 성장세를 이어 나가고 있다. 본인의 말대로, "1년 전까지만 해도 하노버 유스팀에 속해있던 내가 이제는 독일 대표팀의 걸출한 스타들과 함께 뛰고 있다"라는 것이다.
메르테사커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이러한 외형적인 것도 있겠지만, 차분하고 깨끗한 그의 플레이 스타일도 그를 돋보이게 하는 훌륭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는 상대에게 도가 지나친 태클을 하는 일이 없으며, 분데스리가 44경기를 뛰면서 단 한 장의 경고를 받았을 정도로 깨끗한 플레이를 자랑한다. 심지어는 심판에게 얼굴을 붉히는 일도 없고, 상대 선수의 유니폼을 심하게 잡아 당기는 모습도 볼 수 없다. 또한 내면적으로 차분한 성격인 메르테사커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평정심을 흐트리지 않는 선수로 유명하다. 이러한 측면은 동연배 선수들과는 다르게 기복이 심하지 않은 메르테사커의 모습을 가능케 해준다.
하노버에서의 활약을 인정 받아 메르테사커는 지난 2004년 10월에 벌어진 이란과의 경기에서 A-Match 데뷔전을 치뤘고, 현재까지 12경기에 참여하며 대표팀에서의 입지를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이번 컨페더레이션스 컵에서의 괄목할 만한 활약으로 인해 2006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독일 최고의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그를 주시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한 메르테사커는 그러나 "독일 대표팀의 스쿼드에서 위치를 공고히 해 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라고 말하며 이적보다는 자신의 기량을 향상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는 '성숙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대가 끌리는 이유
두 선수에게 공통점을 찾아 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굳이 언급하자면 주 포지션이 중앙 수비이고, 84년생이라는 점 정도가 두 선수의 교집합일 것이다. 그만큼 외모부터 성격, 그리고 플레이 스타일에 이르기 까지 두 선수는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플레이 스타일에 있어서 두 선수는 많은 차이점을 보이는데, 긍정적인 것은 두 선수가 서로를 보완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스 시절부터 팀의 스위퍼 역할을 도맡아 수행 했던 후트는 커버 플레이와 수비선 조율에 능하다. 지난 컨페더레이션스 컵에서 독일의 왼쪽 수비가 하염 없이 뚫리자 후트는 왼쪽 공간을 넓게 커버하며 위협적인 상황을 사전에 차단한 바 있다. 반대로 메르테사커는 앞으로 전진하는 데 능하다. 결코 무리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드리블로 중앙선까지 치고 나올 줄 알고,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전방의 동료에게 정확한 패스를 연결해 줄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후트가 젊은 시절의 거칠었던 위르겐 콜러를 연상 시킨다면, 메르테사커는 우아했던 옌스 노보트니의 20대 초반을 생각나게 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위르겐 클린스만이 이번 대회에서 두 선수를 주전으로 기용한 이유 중 하나는 독일 대표팀의 장기적인 수비틀을 구상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두 선수가 역할 분담을 통해 수비 라인을 책임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테스트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이번 컨페더레이션스 컵에서의 활약도가 클린시를 100% 만족시키지 못했을지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두 선수에 대한 테스트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물론 당장 2006년 독일 월드컵부터 '후트-메르테사커'의 수비 라인이 형성될 가능성은 그리 높다 할 수 없다. 얼마전 독일 대표팀에 대한 독설을 쏟아 냈던 슈테판 에펜베르크의 말처럼, 지금 두 선수에게는 월드컵의 특별한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경험이 현저하게 모자란 탓이다. 크리스티안 뵈른스, 크리스토프 메첼더, 아르네 프리드리히 등 메이저 대회를 경험한 베테랑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두 선수가 일으킬 수 있는 시너지 효과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아깝고도 거대한 가능성이다. 두 선수가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를 끌어 당길 수 있을 때 '반대가 끌리는 이유'는 좀 더 가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팬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어찌 보면, 두 선수가 약관 21세에 출전한 이번 2005 컨페더레이션스 컵은 두 선수가 만들어나갈 수 많은 영광의 시작일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자산은 나타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지는 것임을 증명해 왔던 축구 역사가 두 선수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첫댓글 훗 기자가 김태우라 그런지 제목도 GOD 노래 제목이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