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서 먹는 메뉴
엊저녁은 한식, 점심엔 중식, 이 저녁은 햄버거, 하루사이에 이리 다양한 국제적 메뉴를 몽고에서 갖다니. 여행은 매일의 도전이라 끼니마다 무엇을 먹을 가, 날마다 무엇을 볼가를 결정해야만 한다. 그게 예상을 능가하는 행운이면 신나고 더러는 실망도 하니 흥미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몽골 시골로 긴 여행을 떠나면 양고기에 물린다고들 했었지? 도착한 어제는 아들이 선택한 한국식당에서 그의 돈가스와 나의 불고기에 김치와 밑반찬이 나왔으니 따로 주문해야하는 중국, 몽고식과는 달랐다. 우리가 아는 몽고식 칭기즈칸 요리는 실상 이곳 사람들이 시작한 것은 아니며, 몽고 요리가 그다지 다양하지도, 또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 인상이었으니까.
목축업으로 육류는 많았지만 텐트로 떠돌아다니면서 살아왔으니 요리가 발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들판에서 통째로 양을 불에 구워서 칼로 뜯는 되레 간단함을 이용했을 테니까.
(돈가스)
아이는 알지 못하겠지만 그의 돈가스가 또한 요상한 국제적 복합요소들을 지닌 메뉴이기도 한 걸. 앞머리의 돼지 ‘돈(豚)’자는 중국의 한자를 따다 붙였고, ‘가스'는 영어로 얇게 저민 고기라는 뜻의 커틀릿(cutlet)을 합하여 만든 국제적 짬뽕 단어가 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따지지도 않은 채 그렇게 불러왔는데 어디서 유래 되었는지 영어의 커틀릿은 일본식으로 또 발음되었다. 한중일(韓中日) 동양 삼국과 서양까지 뒤섞인 용어에다 몽고에서였으니 더욱 세계적인 셈이었네.
정작 음식 자체는 커틀릿도 아닌 게 돼지고기를 밀가루에 튀겨서 야채를 썰어 곁들인 것이다. 양식인 줄 알고 다소 고급스러운 양 먹었던 옛 생각에 미치자 데이트라도 할 때에 조금은 멋스럽게 여겼던 귀여운 때가 있었네.
경양식 집이나 가벼운 술집 같은 데서도 팔던 메뉴로 학생들의 그때의 얇은 지갑으로는 약간 비싸기도 했었지. 맥주 한 병을 포함하여 모두 9달러 정도일 뿐이나 대개는 한국 식당이 어디서나 좀 값이 더나가듯이 여기서도 그랬다.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경제적인 숙소들 중에는 식빵에다 마가린과 잼을 아침에 제공하는 곳들이 많은데 김 씨가 운영하는 UB게스트하우스도 같은 경우였다. 둘째 날도 그렇게 우리가 아침을 하고는 다시 숙소를 찾아야했다. 단체객 예약 때문에 하루만 묵어야 한다고 어제 그랬었는데 메뚜기도 오뉴월이 한철이라 듯이 몽고 여행도 여름이 한창이라 방이 조금 달리나보다.
다행이 서너 블록(blocks) 떨어진 곳으로 역시 몽골 안내서에서 찾은 콩고르(Khongor)게스트하우스에 두 개의 침대가 있는 작은 방이 12,000토그롤에 가능했고 주인 부부는 훨씬 더 친절한 몽고인들로 영어도 곧잘 했다. 체크인(check in)하자 점심때였다.
자연사 박물관 도중에 위치한 중국집이었다. 아이의 피망 쇠고기(靑椒牛肉)와 내 목이(木耳)버섯 쇠고기볶음이 9천 토르콜에다가 밥값을 더하여 대략 9달러가 조금 못 되었다. 중국식당에서 종종 느끼는 바는 양이 늘 넉넉하였다, 몽고의 이 집 경우도 그랬으니 많이 먹어서라고 할런지, 먹고 넉넉히 남겨야 중국인들의 미덕이라서인지.
샤오츠두오찬(少吃多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량을 자주 먹는 게 좋다는 중국 표현이 정석인데도 말이다. 점심 맛이 좋았다고 우리는 둘 다 동의를 했다. 세상이 다 아는 중국요리가 북경(北京), 상행(上海), 광동(廣東), 사천(四川)식 등, 종류도 메뉴도 다양하여 선택의 여지도 많다.
자연사 박물관은 3층으로 된 작은 방들에 은하계와 지구가 생긴 것에서부터 간단히 진화과정을 설명하면서 이 나라에서 많이 발굴되는 공룡 화석 전시, 몽골의 광석, 동물, 조류, 식물들을 소개했다. 작으나 몽골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낙타가 몽고의 남쪽에는 많다든지 야생마가 멸종 되었으나 다행히 영국인이 가져다가 보존한 것을 다시 들여와서 지금 번식시켜 유지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발견된 것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공룡의 알을 가진 이 박물관 안내서에는 한글도 찍혀있는 걸 보면 한국관광객들이 많다는 증거가 아닌가.
돌아오는 길가 평지에다 펼친 몽고 천막인 게르(ger)에를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다. 말로만 들었던 마유주(馬乳酒), 말 젖을 발효시킨 몽고식 전통 음료수를 마시는 휴게소인 셈이다. 무엇인지 아지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아 호기심으로 들여다 만 보니 주인 여자가 맛보라며 퍼서 주었다.
막걸리처럼 뿌연 색깔이지만 묽었고, 시큼하고 비린 듯 너무 이상해서 다 마실 수가 없다. 미안했는데 주인여자는 ‘한국‘이라는 단어를 섞어가면서 무엇인가를 자꾸 설명을 했다, 종합하여 추측하건데 자기 아들이 한국말을 할 줄 아는데 지금은 없다는 모양이다. 말은 몰라도 몸짓이나마 대강 통하지만 마유주의 맛은 첫 번에 통할 수가 없었다.
('아이락'이라는 마유주 젓는 아낙네)
일요일인데도 문을 연 은행이며, 환전소들, 심지어 자동차 안에서도 환전을 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아마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돈 바꾸는 장사가 그나마 몽고에선 좋은 모양이다. 환율도 은행과 서로 비슷하고 어떤 곳은 조금 더 나은 액수를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북경의 중국은행에서 정책상 달러로 환전할 수가 없어 중국 돈만 가지고 왔는데 몽고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달러 당 1,160토르콜이 일반적인 현재의 시세였고, 내일 떠날 긴 여행을 위해서 적당한 계산으로 몽고 돈을 환전했더니 분량이 잔뜩 이라 둘이 나누어 보관을 했다,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
저녁은 뭐로 할 가고 돌다가 울란바터의 관광의 중심거리인 평화 로에서 서양식 햄버거 숍(Hamburger Shop)의 큰 간판으로 네 개의 눈이 쏠렸으니 며칠 만에 아이에겐 미국식이 그리운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채소를 별로 생산하지 않는 몽골 햄버거에 끼운 야채는 빈약했다.
맥도날드(Mcdonald)와 버거킹(Burger King) 햄버거에는 기름기가 많은 그라운드 비프(ground beef)라 살찌게 만들어 삼가 해 왔었는데 두 켜를 넣은 몽골의 햄버거는 고기의 질이 훨씬 좋았다. 자연의 초원에서 자란 소들이고 육류가 흔하여 살코기를 갈아서 만들었는지 기름기가 확실히 적어 좋은 햄버거를 오랜만에 몽고에서 즐기게 되다니.
한길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