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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만큼은 내가 가장 아름다워야 했다. 다른 때는 몰라도 그에게 마지막으로 기억되는 그 순간만큼은 그 여자보다도
아름다워야 했다. 끝자락이라도 잡고 싶은 미련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젠 정말 끝이었다. 지금 와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갑자기 턱이 불거지며 부르르 떨렸다.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오산이었나보다. 벌써부터 눈가가 젖어들고 있었다.
'울지 마. 결국 마지막을 선택한 건 나잖아. 웃으면서 끝내자. 강회연, 넌 할 수 있어.'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했던 안나수이 립스틱. 결혼 기념일 선물이라고 불쑥 건네준 이 작은 선물에 내가 얼마나
기뻐했던가. 그 동안 보물처럼 모아둔 립스틱들은 싸그리 치우고 이것만 고집해 썼다.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빨간색임에도
불구하고. 이젠 이 립스틱을 바르는 것도 마지막인만큼 입술에 꼼꼼히 칠했다.
어차피 그는 내가 이 립스틱을 발라도 알아보지 못할 테지만.
"잘할 수 있어."
거울 속의 나는 더 없이 평온해보이는 얼굴로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 모습이 숨겨둔 내 마음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
난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 문을 열었다. 그의 그녀는 눈에 잘 띄는 곳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턱을 괴고 앉아
긴장한 표정으로 창 밖을 보고 있는 그녀의 머리 위로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았다. 빛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밝은 금색으로 보이게
했다. 그에 반해 나는 빛이 비추지 않는 그늘 속에 우두커니 서서 멍하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하고 작게 탄성을 내지른 나는 테이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찍 왔네요."
자리에 앉으며 내가 말했다. 그녀는 내 눈을 피하며 대답 없이 스트로우로 레모네이드를 휘저었다.
우리 사이에서는 한동안 긴 침묵이 이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와 마주하고 있는 그 아내 사이에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 안부? 하하, 웃음 밖에 안 나온다.
"할 얘기가 있어서 불렀어요."
먼저 긴 침묵을 깨뜨린 것은 나였다.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내 목소리에 그녀의 손이 긴장하는 것이 보였다.
난 딱딱하게 굳은 그녀의 손만을 주시했다.
"얘기 하세요."
그녀가 조금은 버겁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꺼라 예상했길래 저토록 긴장하는 걸까? 설마 내가 돈 봉투를 내미는,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던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상황이 몹시 우스워진 나는 작게 실소를 터트렸다. 그녀는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잠깐 나를 쳐다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해인씨는 내가 어려워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또 대답하지 않았다.
"난 해인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려운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하려는 얘기에 부담 가질 필요없어요."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들었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은 여전히 꺼려했다. 그것은 내 외모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차갑다는 인상을 자주 지적받았으니까.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울렁이는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아마 내가 하려는 얘기가 해인씨에겐 좋은 소식이 될 거에요."
"........"
"나, 그 사람이랑 이혼하려고 해요."
그녀는 놀란 듯 커다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혼'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미친 듯이 아려왔지만 주먹을 꽉 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거니까. 나, 해인씨에게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차피 사랑 없는 결혼이었으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말아요."
그 다음부터는 내가 했던 말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음 속에서 간헐적으로 외치는 마음의 소리가 내 머리를 잠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믿지마. 거짓말을 내 진심으로 치부하지마.'
몇 마디 더하다가 결국 나는 내가 준비했던 말을 다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눈가를 적셔온 내 눈물 때문이었다.
.
"사모님, 괜찮으세요?"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내가 차 안에 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운전대를 잡은 윤지혜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난 괜찮으니까 서인씨 회사로 가줘."
난 정말...괜찮은 걸까?
.
"서인씨, 나올래요? 저녁 같이 해요."
그는 거부했지만 나는 계속 매달렸다. 결국 그는 내 고집에 손을 들었고 내가 예약해 놓았던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내가 한 쪽
손을 들자 그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다가왔다.
"뭐 먹을래요?"
그는 대답하지 않고 웨이터를 불러 자신이 먹을 요리를 주문했다. 이런 면에서 그와 그녀는 참 많이 닮았다. 웨이터가 가고 나서도
나와 그는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빤히 응시했다. 특히 그는 내 입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설마…!
"당신 입술이 너무 빨갛다는 건 알고 있어? 저번부터 왜 어울리지도 않는 색을 고집하고 그래?"
잠깐동안 부풀었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더불어 내 가슴은 이제 형태를 알아볼 수도 없게 형편없이 무너져내렸다. 그는 역시
자신이 선물한 립스틱 색을 알아보지 못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래도 난, 그가 자신의 아내에게 어울리는 색은 찾지
못해도, 적어도 선물을 살 때만은 나를 많이 생각해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그것조차 오산이었나?
나는 크게 웃었다. 그와 주변 사람들은 인상을 찡그리고 나를 바라보았지만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당신 미쳤어? 왜 그래?"
그가 속삭이듯 나에게 말했다. 난 씁쓸함에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서인씨. 생일 축하해요."
갑작스런 내 말에 그는 찡그린 표정을 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요? 아무리 사랑 없이 한 결혼이라지만 그래도 아내인데 당신 생일조차 몰랐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계속해서 멍한 얼굴이었다. 나는 한 쪽 손으로 턱을 괴며 그 얼굴을 잠깐 감상했다. 그 얼굴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색다른 표정을 지을 줄도 아는구나. 맨날 차가운 표정만 짓는 줄 알았는데..
그는 곧 정신을 차린 듯 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포크를 집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해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내가 당신 생일이라서 선물을 준비했어요. 아마 당신과 해인씨한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거에요."
내 입에서 해인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는 집었던 포크를 떨어뜨렸다. 적잖게 놀랐나보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를 줍고는
내 것을 그에게 주었다.
"당신이…해인이를 어떻게 알아?"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눈동자가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모른 척 하고 있었을 뿐, 몰랐던 건 아니에요. 명색이 당신 아내인데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겠어요?"
나는 여전히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여유 있게 싱긋 웃었다.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가다 못해 재가 되어 흩날렸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끝내기 위해서 내 모든 감정들을 억눌러야했다.
그는 그녀가 걱정이 되는 모양인지 인상을 찌푸렸다.
"걱정 말아요. 당신이 걱정할 만한 짓 같은 건 하지 않아요. 이젠 내게 그럴 구실조차 남지 않았으니까."
"당신, 그게 무슨 뜻이야?"
"아 참, 내가 해인씨도 불렀어요. 괜찮죠?"
"무슨 뜻이냐니깐!"
그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화가 난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난 대수롭지 않은 듯 핸드백을 열어 조용히 봉투를 꺼냈다.
계속해서 아려오는 가슴과, 자꾸만 시큰거리는 눈가 때문에 모든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었다. 빨리 끝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가 준비했던 몇몇 과정들을 건너뛰었다. 그는 이런 내 행동이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하게 보일까?
"여기 영화표 두 장하고 아까 말했던, 당신과 해인씨에게 줄 선물이 들었어요. 자, 받아요."
"너 진짜 지금 뭐하자는 거야?"
그가 갑자기 호칭을 바꿨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에 따라 내 가슴도 지끈거렸다.
..제발요, 서인씨..그러지 말아요..마치 나를 사랑한다는 듯이 흔들리는 모습 보이지 말아요..나 더이상 착각 속에서 살지 않게..
나 좀 놔줘요..나 이제 행복해지고 싶어요..
"뭐하긴요. 끝낼 준비하잖아요."
"무슨 말이야. 뭘 끝내?"
"..그동안..옆에 잡아두기만 해서 미안했어요..내 욕심 때문에 두 사람 많이 힘들어했다는 거..나도 알아요.."
"난 대체…."
"아, 해인씨! 여기에요!"
그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무언가를 말하려는 찰나, 입구에서 쭈뼛거리고 있는 그녀를 발견한 나는 그녀를 크게 불렀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불편해하지 마요. 난 이제 일어나려는 찰나였으니까. 그리고 내가 해인씨 음식 마음대로 시켰는데 괜찮죠?"
"아, 네에."
"그리고 저 사람이 포크를 떨어뜨려서 해인씨 자리에 있는 거 줬으니까 포크가 하나 더 필요할 거에요. 그럼 저 가볼게요.
맛있게들 식사하세요."
나는 핸드백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그녀의 옆을 스쳐지나가는데 그가 갑자기 내 손목을 잡았다. 아직까지 혼란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빼냈다.
"회연아."
"왜 이래요, 갑자기. 해인씨가 질투하겠네."
"강회연!"
..
"잘…지내요."
그게 끝이었다. 나는 레스토랑을 나왔고 그와 그녀는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할 것이다.
괜찮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었다. 내 가슴이, 무너져서 이젠 회복될 수 없다고 생각한 내 가슴이 그에게 마지막을 고했을 때
다시 한 번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웃으면서 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올 것이다.
그 때까지만..그 때까지만..내 가슴아 그 때까지만 버텨줘..
첫댓글 번외 콜>?
번외ㅠ_ㅠ
번외 원츄에요.ㅜㅜ
아 재밋어요 ! 번외점 ㅋㅋ 근데 남자가 왜 아내를 붙잡는건지.. 해인이란 여자를 좋아하지않는건가 ?;;
헐.........뭔가오해가잇을꺼같은데 ㅠ_ㅠ..............수학여행갓다와서빨리써주세영
번외번외번외여
번외번외 번외 필요해요 꺄울
번외편 기대합니다 .. 얼른 보고싶네요 .. 다시 이어지는 건가요?
번외번외>+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