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없다는 점을 비유한 속담이다.
또는 어떤 소문이 돌 때, 그런 소문이 있게끔 한 일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은유하기도 한다.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온다.
거꾸로 어느 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그집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연기는 불과 필연적 수반관계를 갖는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우리나라의 전통 속담이긴 하지만
불교의 인명학 문헌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추론적 사유 가운데 하나다.
불교교학의 하위 연구분야로 초기불교, 아비달마교학, 중관학, 유식학, 밀교학,
정토학, 화엄학, 선학 등을 들 수 있는데, 이에 덧붙여 인명학(因明學)이란
분야가 있다 인명학을 문자 그대로 풀면 '원인'을 밝히는 학문'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원인'이라 '우리에게
어떤 앎이 일어나게 하는 원인'으로 요인(了因)이라고 부른다.
요인에 대응하는원인으로 작인(作因)이란게 있다.
예를 들어서 먼 산에 불이 나서 연기가 피어오를 때, 불은 연기의 작인이 되고,
연기는 불의 요인이 된다. 요인이 인식론적 원인이라면 작인은 존재론적 원인이다.
인명학에서는 우리가 앒을 얻는 수단을
현량(現量)과 비량(比量)의 두 가지로 구분한다.
현량은 감각과 같은 직접지각,비량은 사유를 통해 얻는 추리에 해당한다.
인명학은 이렇게 지각론과 추리론을 겸한 학문인데,
서양철학과 비교할 때, 전자는 인식론 후자는 논리학에 해당하기에
인명학을 '불교인식논리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인명학을 체계화 한 인물은 디그나가(Dignaga, 480-540년경) 스님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디그나가를 한자로 진나(陳那)라고 음사했다.
디그나가 스님은 전통적인 인도논리학을 불교의 무아설과 연기(緣起)설, 그리고
공사상에 부합하도록 개작하여 불교적 인식논리학인 인명학을 창시하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煙氣) 날까?" 인명학 문헌에서는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꿀뚝에서) 연기난다."는 점, 즉 연기와
불의 필연적 수반관계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추론식을 작성하였다.
'주장(宗,종): 저 산에 불이 있다.
이유(因, 인): 연기가 있기 때문에, 실례
(喩,유): 마치 아궁이와 같이.' 그런데 이런 추론식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이유또는 근거로 사용한 '연기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세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주장명제에서 거론한 '저 산'에 그 연기가 있어야 하고,
둘째, 그 어디든 불이 있는 곳에서 연기가 난 적이 있어야 하며,
셋째, 그 어디든 불이 없는 곳에는 결코 연기가 없어야 한다.
인명학에서는 이를 '타당한 추론이 되기 위해서 이유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인(因)의 삼상(三相)'이라고 부르면서,
차례대로 변시종법성(遍是宗法性), 동품정유성(同品定有性),
이품변무성(異品遍無性)이라고 명명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논리학의 장비를 갖추면서, 불교교학은 더욱, 풍요로워졌고,
포교의 설득력은 더욱 강력해졌으며, 논리로 무장한 외도를 제압할 수 있었다.
과학주의와 합리성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불교를 전하기 위해서
불교적 인식논리학인 인명학의 부흥이 시급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을 보면서 떠오른 단상(斷想)이다.
속담 속에 담은 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