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부려놓고
보름 전 주말에 새 부임지가 되는 거제를 다녀왔다. 내가 운전을 하지 않은지라 거제 고현 가는 시외버스를 이용했다. 예전 창원에서 고현으로 가는 버스는 남마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했다. 내가 사는 창원에서 거기 가는데 시내버스로 1시간이 더 걸린다. 이제는 창원 팔룡동 종합터미널에서도 고성 통영을 거쳐 가는 시외버스와 거가대교로 바로 가는 시외버스 노선이 생겼다.
창원터널을 지나 김해외고 앞에서 부산 녹산과 신항만을 거쳐 가는 거가대교 노선 시외버스를 탔다. 거제 고현까지는 1시간 20분이 걸렸다. 생활권이 달라 거제 고현 가는 버스는 처음 타 봤고 주변 경관들이 모두 낯설었다. 고현에서 시내버스로 내 근무지가 되는 연초면 소재지로 되돌아 나왔다. 면소재지와 약간 떨어진 산기슭에 내가 근무하게 되는 고등학교가 보여 그 앞을 지났다.
토요일이라 학교 안으로 들지는 않았다. 학교와 약간 떨어진 곳이 연사마을이 위치했다. 거제가 섬이지만 그곳은 고현과 옥포 사이 면소재지로 바다와 접하지 않은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최근 도시가 평창하면서 그곳까지 원룸이 속속 들어섰다. 어림잡아 대충 헤아려도 10개 동은 더 되어 보였다. 마을 어귀 편의점만 하나 보이고 식당이나 찻집은 전혀 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내가 지낼 원룸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골목을 지나치며 주인 연락처로 전화를 넣었더니 두 곳이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 전화번호에다 원룸을 구하려는 사람이니 내게 전화를 주십사고 문자를 남겼다. 어느 골목에서 세 번째 원룸을 살펴 전화를 넣으려니 마침 1층으로 중년 부부가 나왔다. 나는 그들에게 이곳 원룸에 사시느라 물었더니 그렇다면서 마침 주인이라고 했다.
나는 창원에 사는 사람으로 올봄 저기 건너편 학교로 부임하게 되어 이 마을 원룸을 알아보는 중이이라 했다. 그랬더니 주인은 아주 반가워하면서 혼자 지낼 방으로 바로 곁의 1층 문을 열러 나에게 보여주었다. 조선 경기 불황에다 원룸이 과잉 공급으로 빈 방이 많은 듯했다. 내가 들린 그 방도 언제부터인지 비어 있었다. 주인이 산다는 4층에도 빈 원룸이 있다기에 올라 둘러보았다.
나는 1층과 4층 중 한 곳에 지낼 생각을 굳혔다. 4층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고 주인 내외가 곁에 살아 1층이 마음에 내켰다. 다른 동 원룸이 있었으나 더 둘러보지 않고 주인 연락처 전화번호와 통장 계좌번호를 넘겨받았다. 창원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상의 후 주말을 지나 보증금 선금으로 일부를 입금시키겠다고 했다. 이후 연초에서 시냇가 둑길을 따라 걸어 고현 시내로 향했다.
걸어서 고현으로 나가는 중 아까 문자를 남겼던 원룸 주인이 뒤늦게 내게 전화가 왔더랬다. 나는 알아보던 원룸을 정해두었다면서 짧은 통화로 끝냈다. 창원 집으로 복귀 아내에게 경과를 설명하고 그곳에 둥지를 트는데 동의를 구했다. 이후 시내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초등학교 친구를 통해 원룸의 건물과 토지 등기부를 열람해보라 했더니 은행에 상당액 근저당이 잡혀 있었다.
친구는 보증금 선금이 일부 건네졌음을 알고, 그럼 주인과 구두로 정한 보증금 액수를 최대한 낮추라고 해 주인과 타협이 되었다. 주인도 자기네 건물에 근저당 액수가 많기에 보증금을 많이 걸 생각은 않았다. 아마 거제 많고 많은 원룸들이 액수의 많고 적음에 차는 있을지라도 대부분 금융권 채무가 있을 듯했다. 며칠 전 부임 인사 차 학교 들린 걸음에 원룸 임대차 계약서를 썼다.
이월 마지막 일요일 아내와 거제 원룸 생활에 필요한 짐을 옮겼다. 재활용이고 최소화시킨 짐일지라도 대학 동기 내외가 도와주어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다. 주중 그곳에 머물 사람은 난데, 아내는 뭔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불편한 심기였다. 1층이라 한데와 마찬가지라는 둥, 주차장이 가깝다는 둥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비바람 피하고 대여섯 자 몸만 누일 공간이면 족하다고 했다. 19.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