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째 또 이런 일이….”
1995년 4월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의 끔찍한 기억이 채 가시지도 않은 18일, 또한번의 끔찍한 참사를 맞은 대구는 시 전체가 온통 충격에 빠졌다.
사고 직후인 오전 9시55분께부터 지하철뿐 아니라 대구 중심가로 들어가는 지상의 모든 길이 통제돼 도시 기능도 일시 마비됐다. 대구 시내의 버스들은 대부분 중앙로를 거쳐 가도록 돼 있어 이날 시내 교통은 하루종일 극심한 정체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또 불이 다 꺼진 뒤에도 유독가스가 환풍구를 통해 인근 중앙로 지하상가까지 퍼져나가 251개 점포가 밀집한 상가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대구시민들은 일일이 집 밖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했고, 현장에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수많은 시민이 몰려들었다. 시내로 가는 길이 막힌 탓에 이들은 외곽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 몰려든 시민 중 일부는 지하철역 안에 갇힌 가족한테서 ‘살려달라’는 전화가 휴대폰으로 왔다며 절규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30대의 한 시민은 “지하철에 불이 났는데 안에 갇혀 있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달려왔다”며 “제발 좀 살려달라”고 구조대에게 매달리기도 했다.
대구시와 지하철본부, 소방본부, 경찰 등은 현장에 지휘본부를 설치하고 소방관 등 1100여명과 소방차 119대를 동원해 불 끄기와 생존자 구조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방독면도 소용없는 유독가스가 끊임없이 쏟아져 3시간여 동안 현장에는 진입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야 했다.
가족들과 연락이 안 된 시민들은 온종일 동산의료원과 경북대병원 등 환자들이 이송된 병원을 찾아다니며 초초한 표정으로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장에는 가족들을 찾는 시민들을 위한 상황실이 설치됐다. 중앙로역 인근 아카데미극장 앞에 마련된 상황실 앞 상황판에는 병원으로 옮겨진 사망자와 부상자의 신원이 파악될 때마다 명단이 올라왔다. 또 현장에서는 실종자 접수도 동시에 받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와 실종자, 부상자가 계속 늘어났다.
시민들은 직장과 집에서 텔레비전과 라디오 뉴스에 귀를 기울이며 초조한 하루를 보냈다. 서철호(26·대학생)씨는 “95년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의 끔찍한 경험이 겹쳐 대구시민들은 앞으로 지하철을 이용할 때 불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오후 늦게까지 대구 중심가에서 솟구치는 시커먼 연기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대구/특별취재반 -한겨레- society@hani.co.kr>socie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