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절 이야기(1)
예수 오심(Advent)의 세 가지 상징의 의미
첫째. 예수께서 깊은 밤에 오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깊은 밤과 같은 죄악 가운데 신음하는 사람들 가운데 오셨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내면의 정신적 상처로 고통 받는 사람, 불치의 병으로 절망하는 사람, 사랑에 목마른 사람, 물질적 가난으로 한숨쉬는 사람, 가정 파탄으로 방황하는 사람,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 지은 죄로 인하여 쉼을 잃어버린 사람, 절대 불안과 절대 허무로 그 영혼이 여위어 가는 사람, 등등 그런 사람들에게 그 모든 부정적이고 죄악 된 짐을 풀어주시고 위로하시고 자유케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깊은 어둠에 잠겨 죽어 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둘째. 예수께서 빛나는 별로 오셨다는 것은 방향 감각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인생의 올바른 방향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인도의 시성 타골은 <별은 작게 보임을 두려워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작게 빛나는 별이라 할지라도 실제 별 자체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밝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별이라도 별은 바다, 사막, 산에서 길 잃고 헤매는 사람에게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주어 살길을 열어주듯, 예수님은 인생 여정에서 길 잃고 방황하는 사람에게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지 그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 주는 별빛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께서 말구유에 오셨다는 것은 사람의 삶을 완전히 전환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마구간은 가축의 똥, 더러운 냄새, 지저분한 쓰레기로 더러운 곳입니다. 그러나 그런 곳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천사의 찬송, 동방박사의 예물, 목자들의 경배가 어우러지는 영광된 곳으로 변화하였습니다.
내 옷도 나를 싫어할 만큼 더러운 죄악으로 가득한 나, 냄새나는 나, 지저분한 나, 우왕좌왕 헤매는 나, 야비하고 비열한 에고이즘으로 똘똘 뭉쳐진 나 같은 사람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모시고 살기 시작하면 내 속에 있던 그 모든 더러운 것들이 변하기 시작하여 천사들, 동방 박사, 목자들 같이 순수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참 기쁘고 뜻 깊은 크리스마스는 백화점 쇼윈도우, 네온사인 휘황 찬란한 음식점, 연예인들의 현란한 쇼와 그것에 열광하는 청중들의 아우성 소리가 질펀한 텔레비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 메리 크리스마스는 깊은 밤 같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냄새나는 자신의 마구간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저 이상한 별빛을 밤이 새도록 간절히 바라보는 일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 축제
성탄절 축제가 언제부터 시작 되었을까? 기독교의 성립 후 처음 300년 동안에는 성탄절 축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온 교회의 관심이 오직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 승천하신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육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 사상가들이 주님의 인성에 대하여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교회도 성육신의 심오한 의미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특별히 동방의 기독교인들이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사건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교회는 성탄절을 기쁨과 경이로써 축하하기 시작하였다. 오늘 우리에게 알려진 성탄절에 대한 기록 중의 최초는 4세기 초기의 이집트 파피루스에 남은 기록이다.
이 파피루스에는 수많은 손자국들이 찍혀 있는데, 이것은 이미 그 파피루스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파피루스는 4세기 초의 성탄절이 1월 6일 저녁부터 7일까지 축하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냈을까? 2세기에 있었던 이단 분파인 알렉산드리아의 영지주의 추종자들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날(1월 6일 또는 10일)을 축제일로 지켰다.
그들은 예수께서 세례를 통하여 신성의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또한 1월 5-6일 밤엔 나일강 물이 놀라운 기적의 힘을 갖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날을 에피파니(Epiphany) 또는 `현현'이라고 불렀다.
한편 정통적인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것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세례 받으심과 탄생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역시 1월 6일을 축제일로 선택했다. 이 에피파니 축제는 오랫동안 팔레스틴에서 장엄하게 행해졌다.
성탄절이 1월 6일에서 12월 25일로 바뀐 것은 언제부터인가? 그리고 왜 바뀌게 되었나? 가장 유력한 가설은 AD 325년에서 354년 사이에 로마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AD 336년에는 그리스도의 성탄일이 12월 25일로 증명되고 모두가 그것을 신봉하도록 공포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12월 25일은 정복되지 않는 태양신을 경배하는 이교도들의 축제일이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빛의 축제가 세상의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성암부로스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새로운 태양'이라고 말했다. 한동안은 태양의 축제를 그리스도의 성탄절에 통합한 것이 많은 혼란을 주었다. 그리고 많은 반대도 있었다. 성탄절을 12월 25일로 확정지은 것은 크리소스톰에 의해서였다.
그리스도 탄생일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예수님의 탄생일자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성경에 그 날짜가 기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절기는 성서의 사건을 기념하며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속사의 사건을 오늘에 재연하는데 의미가 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기를 대략 AD70년경으로 볼 때 그 시대에 가장 근접한 초대 교회의 기억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것 조차도 명확한 문서상의 기록이 없을 때에 우리는 전통에 의지하게 된다. 그 전통은 단순히 공동체가 무작위로 어느 날을 정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전래되어 내려오는 구전과 문서와 전통적 관습에 의지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탄절의 유래도 아래에 기술된 바와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성탄절의 날짜에 대하여는 많은 논란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서방교회(개신교와 카톨릭)는 12월 25일로, 동방교회 (그리이스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등)는 1월 6일로 삼고 있다. 이 날짜는 단순히 그 날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날에 구속의 주로 오신 하나님의 성육신을 기념하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태어나는 데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처음 지키기 시작한 것은 4세기의 일이다.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키기 전에는 1월 6일을 크리스마스로 지켰는데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예수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는 이중 명절로 지켰고, 예루살렘에서는 같은 날 예수의 탄생만 경축 하였다.
우리가 12월 25일이라고 하는 것도 태양력에 의한 것이다. 우리가 성탄일로 지키는 "크리스마스"의 날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12월 25일 설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의 자유를 선포하고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지날을 채택한데서 비롯되었다. 당시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 - 다음해 1월 6일)을 하나의 대축제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일부에서는 어떻게 기독교가 이교도의 풍습을 따를 수 있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주장은 지극히 단순한 논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날짜라는 단순한 시간적 개념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회가 이 날을 절기로 지키게 된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이 날을 굳이 성탄의 날로 삼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축제일인 동지를 예수의 복음의 시작, 기독교 탄생의 날, 이교도의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세게에로의 전환, 이교적 삶의 청산과 기독교적 삶의 시작이란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하게 된 것이다.
크리스마스, 예수님의 생일
오늘은 성탄절, 예수님 생일이라고 합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태어난 날을 정확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서에는 예수님의 탄생 년도나 날짜의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C.E. 4C 이전에는 성탄절이 없었습니다. 2세기에는 1월 6일을 ‘신현절’이라 하여, 이날을 예수의 나신 날과 세례 받으신 것을 기념했습니다. 325년에는 1월 6일을 그리스도가 동방 박사들에게 나타난 것, 예수님이 세례받을 때 아버지와 성령이 나타나신 것, 주님이 가나에서 처음 행하신 이적 등을 기념하여 성탄절로 지켰습니다. 353-354년경 로마교황 리베리어스가 1월 6일을 신현절 혹은 세례절로, 12월 25일을 성탄절이라 하여 예수님의 탄생일로 공식 발표하여 로마에서 이를 지키기 시작하였습니다.
로마역사에서 보면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C.E. 336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is solis invicti)’이라는 로마인들의 축제와 같은 날에 기념하기를 원했기 때문일 거라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로마에서는 하루 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보고 이날을 축제일로 삼아 농업을 주관하는 Saturnalia라고 불리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것은 주후 274년 Aurelian 로마황제에 의하여 된 것입니다. 북유럽에서는 이전부터 태양이 다시 소생하는 동지(冬至)를 크게 기념하는 축제를 지켜 왔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요 1:9)이라고 합니다. 로마에서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정한 것과 기독교에서 “세상의 빛”이 탄생한 날을 12월 25일로 결정한 것은 이교도들의 “태양의 빛”과 기독교의 “세상의 빛”을 기념하는 날을 일치시킴으로 기독교를 이교도들에게 더욱 의미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예수님의 생일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기억하는 날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유래
크리스마스"의 날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12월 25일 설은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지날을 채택한데서 비롯됐다. 당시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 - 다음해 1월 6일)을 하나의 대축제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고대 교회의 "로마" 주교는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의 축제일인 동지를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채택했다.
"크리스마스"를 교회가 교리적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4세기 후반 부터이다. 고대 "로마"교회에서 기원한 "크리스마스"를 지키기 시작한 년대에 대해서는 335년설과 354년설이 맞서있다. "성탄일"은 그 후 동방 교회로 퍼져나가 "콘스탄티노롤리스"(379년),"카파도기아"(382년)등에서 지키기 시작했고 교회력의 기원이 되었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시력 기원의 시원이 되었다.
"로마"의 "액시그누스"(500-544)가 533년 부활절표를 작성할 때 계산한 데서 비롯된 시력기원의 기점인 "그리스도"의 탄생은 실제로는 현재보다 4년이 앞당겨진다.
"성서"에는 예수님의 탄생 년도나 날자의 기록이 전혀 없다.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한 최고(最古)의 기록이라는 "안디옥" 주교의 "데오필로스"기록(175-183)도 학자들간에는 위작(僞作)이라고 단정되고 있다.
"그리스도"와 "미사"가 합쳐 구성된 용어인 "크리스마스"사건에 관한 성서적 근거로는 "마태복음 제 1 장"과 "누가복음 제 2 장"을 들 수 있다.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처녀 탄생은 천사의 고지, 이상한 별의 출현, "베들레헴"의 말 구유까지 박사들을 인도한 빛 등은 "그리스도"가 인간이된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바늘과 실의 관계 처럼 성탄에 널리 유행하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관습은 고대 "애급"에서의 동지제(冬至祭) 때의 나뭇가지 장식, "로마" 축제 행렬에서의 촛불을 단 월계수 가지 장식 등 옛날의 성목(聖木) 숭배에 그 기원을 두고있다.
흔히 "크리스마스 트리"로 전나무를 사용하게 된데는 전설이 있다. 8세기경 독일에 파견된 선교사 "오딘"은 신성하다는 떡갈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야만적 풍습을 중지시키기 위해 옆의 전나무를 가리키며 " 이 나무 가지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한데서부터 비롯됐다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모든 성실한 종교개혁의 후예들, 정통 신앙의 말씀 중심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 하나님께서는 말씀 하신다.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출23:1~2)
크리스마스, 예수님의 희생제사
성탄절을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의 미사(Cristes Maesse)’에서 유래했고, 이는 “그리스도의 미사(희생제사)”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생일을 제삿날의 의미인 희생제사로 부르는 것은 아이러니 하면서도, 그 속에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과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연관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크고자 하면 너희의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면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하여, 그리고 많은 이들을 대신하여 몸값으로 그의 목숨을 주기 위하여 왔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있을 텐데, 복음서에서는 그 목적을 섬김이라고 합니다. 단순한 봉사를 넘어서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른 모든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희생하기 위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조금 부드럽게 표현하면 섬기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들이 올림프스 산에서 지내다가 심심하거나 지루하면 인간 세상으로 놀러 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아름다운 여인이나 청년을 만나면 희롱하고 즐기는 신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위하여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이 되어 세상에 왔습니다. 그것도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기까지.
생일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날을 제삿날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사용한 다는 것은 역설(Paradox)이면서도, 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의 태어남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절반(半)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에 저마다의 사명(소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거나 깨달은 사람도 있고, 소명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직접 자기가 이 땅에 온 목적이 섬김을 받으러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 섬김의 구체적인 내용은 희생입니다. 자기의 목숨을 다른 사람들,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내어주는 것입니다. / 이병일목사
크리스마스의 각국 시작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처음 지키기 시작한 것은 4세기의 일이다.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키기 전에는 1월 6일을 크리스마스로 지켰는데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예수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는 이중 명절로 지켰고, 예루살렘에서는 같은 날 예수의 탄생만 경축 하였다.
로마 교회
로마에서는 4세기에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결정하고 이어서 1월 6일을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를 방문한 현현일 (Epiphany)로 기념하였다. 예수의 세례 기념일은 1월 6일로 부터 옥타브가 되는 다음주 같은날로 연기하여 지키는데 이날에는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정도로 기억할 뿐 특별한 행사는 없다.
본래 로마에서는 하루 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보고 이날을 축제일로 삼아 농업을 주관하는 Saturnalia라고 불리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것은 주후 274년 Aurelian 로마황제에 의하여 되어진 일이다. 북구라파에서는 이전부터 "태양이 다시소생"하는 동지 (冬至)를 크게 기념하는 축제(Festival)를 전통적으로 지켜 왔었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요 1:9)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빛"의 탄생이다. 로마에서 이교도들이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정한것과 기독교에서 "세상의 빛"이 탄생한날을 12월 25일로 결정한 것은 이교도들의 "태양의 빛"과 기독교의 "세상의 빛"을 일치시킴으로 기독교를 이교도들에게 더욱 의미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사용한 그 시대를 기록한 력기를 보면 주후 336년전에 이상과 같이 결정해서 지킨것을 알수 있고, 이날(12월 25일)을 교회력의 첫날로 기록하고 있는것을 볼수 있다.
이집트
이집트에는 희랍의 철학, 동양의 신비주의, 기독교의 교리등을 종합하여 얻은 "인간의 지식에 의하여 인간 영혼의 구원을 얻을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노시스(Gnostics)라고 하는 기독교의 이단 집단이 있었다. 약 200년경에 Clement (Clement of Alexandria)가 1월10일 (일부 사람들은 1월 6일 이라고도 함)을 그리스도의 세례를 기념하는 날로 지켰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집트에서 1월 6일을 교회의 축일로 정한 것은 그노시스 교도 보다 2세기 후인 380년에서 400년 사이에 결정된 일이다. 이집트에서는 이 날을 예수 의 탄생일 겸 세례 기념일로 지켰다고 그 무렵 이집트를 방문한 John Cassian이 기록하고 있다.
동방교회
동방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특정일로 정해서 지키기 시작한 것은 380년 Constantinople에서 비롯 되었고, Antioch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계속 반대해 왔었다. 동 로마제국에서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1월 6일을 현현일로 명확하게 분리하여 지키게 된것은 431년 에베소 공의회(Council of Ephesus)에서 결정한 이후 432년 부터 이다.
예루살렘과 아르메니아
예루살렘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계속 부정해 오다가 6세기 이후부터 1월 6일과 12월 25일로 분리하여 경축하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Armenia 지방의 교회에서는 1월 6일에 성탄절을 지키고 있다. 이와 같은 전통 때문에 1월 6일 현현일을 "작은 크리스마스"(Little Christmas) 또는 "구 크리스마스"(Old Christmas)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 개신교회에서도 현현일을 지킬수 있도록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동방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같은 날 천사들에 의하여 "기쁜소식"을 들은 목자들의 방문(눅 2:11)도 겸하여 경축하고 동시에 성경에는 동방박사가 언제 찾아 왔는지 확실한 날짜는 밝히지 않았지만 동방박사의 경배도 아울러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탄생과 목자만을 기억하고 동방박사의 경배는 현현일에 기념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에
“미국에서는 요즈음 크리스마스 날에 ‘메리 크리스마스 ’라는 인사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에 ‘해피 홀리데이’라는 인사말을 쓰는 게 대세다(중략).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에 몇 년 전부터 미국 대통령은 ‘해피 홀리데이’라는 메시지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동훈 저(著) 《청춘달력 365》 (어문학사, 366쪽) 중에 나오는 구절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옥타비아누스)는 제국의 인구 조사를 명하며, 모두 자기 고향으로 가서 조세 등록을 하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요셉은 나사렛 성읍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다윗 가문이었으므로 임신한 마리아와 함께 조세 등록하러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 여관에 빈방이 없어서, 아기 예수님을 구유에 누였습니다. 그때나 오늘이나 예수님이 누우실 빈방이 사라져 갑니다.
미국 대통령은 이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해피 홀리데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흔적을 하나 둘씩 지워가는 것입니다. 성탄절도 이미 예수님과 상관없는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크리스마스 파티와 캐롤이 점령해 갔습니다. 우리의 빈방을 내어드려 예수님을 모셔야 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새벽송이 듣고싶다
성탄절 새벽을 깨우던 새벽송이 사라진지 오래다. 흥청거리는 연말 분위기를 바로잡는다는 구실로 군사정권 시절 성탄 캐럴도,성탄 장식도 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 분위기에 주눅든 교회들마저 마치 죄지은 사람 생일잔치하듯 조용한 성탄절을 내세우며 움츠렸던 때가 있었다.
그때 필자는 “이래선 안된다 축제가 있고 노래가 있고 감동이 있는 성탄절을 회복해야 된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교회학교 아이들 가정을 대상으로 새벽송을 부활시켰고 12월 첫 주일이면 교회 안과 밖에 장식을 끝내고 점등식을 가지는 등 성탄절 축제를 벌였다. 물론 성탄절을 상품화하거나 주인 없는 생일잔치로 전락시키는 것은 반대다. 그러나 교회가 앞장서서 성탄축제의 불을 꺼서는 안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호호 불며 이 동네 저 동네를 돌며 불렀던 새벽송 소리가 그립다.황금문명의 불빛에 밀려버린 사랑의 호롱불빛이 그립다.우리 모두 작은 불빛이 되고 함께 노래가 되어 세상을 밝히고 울리는 소리가 되어야 한다.
캐롤의 유래
캐롤(carol)은 원래 프랑스어인 carole에서 온 말로, 중세 프랑스에서 둥근 원을 만들어 춤을 추었던 원무(circle dance; waltz)를 일컫던 말이었다. 이 원무는 동지 때 했던 축제에서 사용한 이교도들의 무곡(dance music)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캐롤은 본래 춤출 때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 말이므로 캐롤이 모두 크리스마스와 반드시 관계가 있다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독일어로는 바이나흐 리트(Weihnacht Lied)라고 하는데, 이는 영어로 Christmas eve song이란 뜻이고, 프랑스에서는 노엘(Noel)이라고 한다. 노엘은 영국으로 건너와서 노웰(Nowell)이라 불려졌다. 19세기 상반기 영국에서는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캐롤을 불러주는 관습이 있었다. 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때 쓸 돈을 모으기 위해 11월 말부터 각 집을 돌아다니면서 캐롤을 부르곤 했던 것이다.
이 같은 캐롤링은 그리스도 탄생의 기쁜 소식을 천사들이 찬양하며 전했던 것처럼 크리스마스 새벽이면 구주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집집마다 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나라에선 6.25 이후 얼마동안 캐롤링이 이루어지곤 했으나, 퇴근에는 새벽의 노랫소리가 비기독교 가정에 방해가 되며 크리스마스 밤이 너무 무질서하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자진하여 삼가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상 최초의 캐롤
역사상 최초의 캐럴은 천사들이 불렀다. 천사들이 예수의 탄생을 알리며 “하늘엔 영광,땅에는 평화”라며 부른 찬양이야말로 최초이자 최고의 캐럴이다. 캐럴이란 말은 피리 연주에 맞춰 추는 춤을 일컫는 헬라어 ‘choraulien’에서 기원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이런 종류의 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중세시대까지 프랑스 남부에서 ‘캐럴’은 원을 돌며 추는 춤을 뜻했다. 12세기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가 마구간 앞에서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행사를 연 것이 오늘날 캐럴의 시초다.중세시대 교회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엄격한 형식의 성가로 제한되면서 민간에서 흥겨운 캐럴이 유행하게 됐다. 17세기 청교도 운동 당시에는 캐럴이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성탄절을 앞두고 마을 광장에 성가대가 모여 지나가는 행인들을 위해 캐럴과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찬양을 즐겨 불렀다. 요즘도 12월에 영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거리 곳곳에서 캐럴을 부르는 찬양대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성탄예배에도 꼭 캐럴 공연이 곁들여진다.
옥스퍼드 사전은 캐럴을 ‘단순하고 유쾌하며 부드럽게 유행되는 현대적이며 종교적인 노래’라고 정의하고 있다. 요즘에는 코미디언들도 캐럴 음반을 내며 성탄절 분위기를 돋운다. 예수 탄생의 기쁨을 더 많은 사람이 즐기는 것은 좋지만 흥겨움에 취해 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를 잊어선 안될 것이다.
작은 마을 베들레헴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마2:6) 는 말씀은 구약성경미가 5장 2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를 자유롭게 번역, 인용한 것으로서 예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이 작은 마을이요 그곳에 자리잡고사는 족속이 작은 지파임을 나타내 주는 말씀이다.
일발적으로 베들레헴은 스불론에 있는 같은 이름의 성읍과 구별하기 위해 유다 베들레헴이라고 불리워진다. 위치는 예루살렘의 남남서쪽 약 10Km 지점에 있으며 예루살렘과 헤브론 및 네게브 지방을 연결하는 남북 주요 도로 가까이에 있는 작은 성읍이다.
작으면서도 작지않은 마을 베들레헴
성읍의 크기로나, 유대 족속 중에서의 위치와 세력에서 작은 에브라다 지파가 사는땅 베들레헴은 작으면서 작지않은 의미있는 지역이다. 왜냐하면 비록 작고 적은 마을이지만 그곳에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온 백성의 목자가 되기 때문이라고 성경이 증언하기 때문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 자신을 목자라 하고(창48:15, 시23:1등), 왕을목자라 하기도 하였다(삼하5:2). 후자의 경우는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뜻으로 그렇게불리운 것이다. 또한 신약에서는 예수께서 "선한 목자"라 자칭하셨고(요10:11), "영혼의 목자"(벧전2:25), "목자장"(벧전5:4)이라 불리워 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참 하나님이시며, 왕이시며, 목자장이신 예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은 작으면서도 작을 수가 없는 마을인 것이다.
작은 곳을 찾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왕이신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출생지도 결정된 곳이 어째서 작은 곳을 베들레헴이어야 했을까? 좀더 나은 곳, 좀 더 큰 도성이면 안되었던 것일까?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에덴 바깥, 즉 인간이 사는 이 세상으로 내보내셔서우리들 인간의 처지를 그대로 경험케 하시려고 하실 때에 즉, 사람이 낙원에서 추방되어 바라지 않는 고장, 이 세상으로 쫓겨난 것처럼, 그 영광의 세계, 하나님의 자리를 비어놓고(빌2:6) 이 삭막하고, 화평이 없고, 악이 들끓고, 궁핍과 질병과 죽음이 가득찬 이 세상에 사람으로 독생 성자 예수님을 보내려고 하실 때에 철저하게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자 커지려고만 하는 세상 중에서 작은 마을을 택하시고 높아지려고만 하는인간들 중에서 연약한 족속의 땅을 택하시 것이리라.
우리는 작은 마을 베들레헴을 당신의 출생지로 정하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연약하고 보잘것 없는 인생들을 오늘도 긍휼히 여기시고 선택해 주시며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떡집에 오신 생명의 떡
다윗의 옛 고향이기도 한 베들레헴이란 지명에 담겨진 뜻은 "떡의 집"이다. 또한,떡의 집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께서는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서 "생명의 떡"(요6:35)이라고 하셨다. 이런 면에서 볼 때에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떡의집에 오신 생명의 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떡은 여러가지 용도로 쓰이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특별히 떡은 손님들이 사용하는 선물로서 언급되고 있다.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가지고 아브라함을 맞으러 나오며(창14:18), 유숙할 곳이 없어서 성읍 거리에 앉아있던 레위 사람은 그를 청하는 한 베냐민 노인에게 자신들을 유숙시킬 집 주인의 종들에게도 줄 떡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삿19:19). 이런 점에서 떡집인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주어진 생명의 떡이시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가리켜서 `참 떡'이라고 하신다. 제자들이 `만나'에 대해 `하나님이하늘에서 내리신 떡'이라고 말하자 예수는 그 자신이 바로 이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보내신 `참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에 제자들이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옵소서라고 요청하자(요6:31-34) 예수께서는 다시 자신이 `생명의 떡'이며 그를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히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여말씀하셨다(요6:35).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요6:48-52). 이런 점에서 볼 때에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생명을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시며 세상의 생명을 위한 사랑과 희생 그 자체이다.
성탄 축하하다 죽을 수도 있는 나라들
캐나다의 한 일간지가 "성탄절을 기념하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나라"라는 제목의 가사를 실었다.
지난 1997년 12월14일 `오타와 시티즌`지는 성탄절을 기념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들을 전문가의 설명과 함께 소개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에서 성탄절을 축하하며 기도를 했다가는 추방당할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성탄절을 나타내는 어떤 표시도 불법이다. 지난 해 필리핀인 두 사람이 단지 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칼에 목이 잘려 희생됐다."
"수단 북부 무슬림 지역에서는 성탄절 선물을 사러 나가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경찰이 불시 단속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토론토 기독교 연구소의 폴 머셜은 가정이나 교회에서 조용히 성탄절을 기념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공공장소의 기도나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성탄절 축하 행위를 하다가는 폭도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나이지리아와 스리랑카이다.
이 나라들 외에 전 세계에서 15개국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박해를 받고 있으면서도 성탄절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나라는 중국과 베트남을 꼽았다. 북경이나 하노이 같은 대도시 상업 지구에서는 상탄 관련 상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성탄문화도 개혁되어야 한다
현란한 불빛 아래 크리스마스 트리가 내걸린다.
그리고 캐럴이 지나가는 발걸음을 붙잡고 매장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성탄절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 성탄의 밤은 사치기로 무르익어 간다. 원리틀, 투리틀, 쓰리리틀 인디언... 성탄은 그렇게 해서 우리 곁을 떠난다.
성탄절을 가장 반갑게 그리고 맨 먼저 맞이하는 곳은 백화점과 시내의 환등가이다. 성탄절을 떠나보내며 가장 아쉬워하는 이들이 젊은 연인들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성탄절을 가장 저주스러워하며 가슴을 치는 이들은 말 못하는 크리스마스 베이비들이다.
찾아야 할 것들을 되찾자. 예수 그리스도는 '나신'분이 아니라 '오신'분이시다. 이 때 성탄은 불탄절과 격이 다른 날로 다가선다. 여태껏 교회가 '오심'보다 '나심'에 무게 중심을 두었으나 '오심'으로 중심을 옮겨 놓을 때 그리스도가 주셨던 평화와 자유, 어두움을 이겼던 빛, 백성들에게 던져진 구원의 의미가 살아났다.
세속적인 때를 벗겨내고 영적인 옷을 입기 위해서 말씀을 연구하자. 성탄절의 하루만을 때우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부활, 승천과 재림의 전체 복음과 연결시켜 균형 잡힌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다.
구속사적 사건들은 성탄만이 아닌데도 성탄에만 매달려 배불뚝이 절기를 만들어 내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해서 기형적인 신앙 인격자 출산을 막기 위해 말씀의 예방접종을 할 필요가 있다.
성탄은 겨울의 사순절이라 불리는 대강절 없이는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교회들과 많은 신앙인들이 대강절 없는 절름발이 성탄을 지키는 것도 문제이다. 깡그리 무시된 절기 교육은 성탄절을 잘못된 기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강림절을 중심한 교육적 접근만이 성탄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성탄문화는 이러한 의식개혁 작업부터 출발된다. 복음을 더 널리, 더 높이, 더 깊이 증거하고 자유와 평화를 심어 빛이 되기 위해 우리도 모두 성육신하자. 거기 성탄문화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황제 이야기
21세기에도 황제가 있다. 골프의 황제 타이거 우즈,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그리고 예전엔 축구 황제 펠레도 있었다. 중국의 진시황과 로마의 네로 황제는 나름대로 꽤 유명한 황제이다. 황제란 제국(帝國)을 통치하는 군주를 일컫는 말인데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연유한다. 로마의 오랜 정치 형태였던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가는 길을 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성(性)인 ‘카이사르’가 ‘황제’라는 뜻이 된 것이다.
신약성경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나온다. 이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라는 뜻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존엄한 자’라는 뜻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로마의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에게 원로원이 바친 존칭이다. 그러므로 가이사 아구스도는 옥타비아누스를 말한다. 로마의 초대 황제요 존엄한자로 불린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제국 전체에 호적 조사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호적을 통해 세금의 탈루를 막겠다는 것이다. 황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재물과 권력을 목적으로 통치한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황제가 등장한다. 바로 고종 황제이다. 고종은 일본과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들이 호시탐탐 노리던 조선 말기의 임금이다. 나라는 영토와 국민과 통치가 있어야 하는데, 조선은 통치를 잃은 나라가 되고 만 것이다. 이때 조선 임금 고종은 나라의 이름을 ‘대한제(帝)국’으로 바꾸고 황제로 등극한다. 그리고 당시의 수도인 한성의 이름도 황제가 있는 곳이라 하여 황성(皇城)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황제는 이름뿐이었고 황제로서의 역할도 할 수 없었다. 그 이름뿐인 대한제국마저 1910년 한일병합으로 끝이 난다.
36년간의 일제강점기 후 45년 해방을 맞이하게 되고, 48년 나라의 이름이 ‘대한민(民)국’으로 바뀌게 된다. 이를 줄여서 한국이라고 한다. 외국에서는 코리아(Corea, Korea)라고 부르는데 이는 조선 이전 ‘고려’의 호칭이 유럽에 전해지면서 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임금이나 황제가 주인이 아닌 민, 즉 국민이 주인인 대한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에도 영토와 백성과 통치가 있다. 하나님 나라의 영토와 백성의 해당 범위는 전 세계와 모든 민족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동시에 천국 백성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천국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통치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이 땅의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막 1:15)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통치는 예수님의 탄생과 죽으심, 즉 십자가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곳은 작고 허름한 시골 베들레헴 마구간이었다.
그리고 이 땅에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은 권력과 재물의 상징인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로 말미암아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께 영광, 사람에게 평화’를 그 내용으로 한다. 성탄절의 분위기가 아닌 성탄절의 내용이 참 좋다.
샬롬을 들고 내려오신 예수님
하나님의 본체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눅 2:12). 천사 가브리엘은 이를 가리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 말합니다(눅 2:10). 불안과 공포가 가득한 이때 이 좋은 소식을 함께 나누며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을 누리게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오실 때, 빈손으로 오시지 않고 선물을 하나 들고 오셨습니다. ‘샬롬(평화)’이라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땅에서는 평화로다”하며, 천군천사가 찬송했던 것입니다(눅 2:14). 그런데, 샬롬을 선물로 들고 오셨다 했는데, 과연 이 땅에는 샬롬이 있습니까? 지금 날아다니고 있는 저 포탄과 들려오는 총소리는 무엇이며, 절규하는 이 목소리는 무엇입니까? 도대체 이 샬롬은 언제, 어떻게 누릴 수 있는 것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샬롬이란 저절로 주어지는 평화가 아닙니다. 매우 역동적인 힘의 논리가 거기에 존재합니다. ‘샬롬’이란 ‘몸 값(Ransom)’을 뜻합니다. 적군에게 끌려간 포로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지불하는 ‘보상금’을 말합니다. 아무나 이 몸값을 지불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가장 세신 천지의 창조주 하나님만이 지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그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이 샬롬을 다 지불하셨는데, 이제는 인간 스스로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샬롬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한 연약한 인간은 다시 포로로 끌려가고 맙니다. 권력의 포로, 돈의 포로, 성공의 포로, 욕망의 포로, 건강의 포로, 관계의 포로로 끌려가 다시 묶여버립니다. 여기로부터 탈출해 보려고 인류는 많은 몸값을 지불합니다. 그중 하나가 제사 때 드리는 ‘예물’입니다. 그래서 각종 제사를 통해 그토록 많은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려야 했습니다. 또 다른 몸값 하나는 ‘율법 지키기’ 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죄 때문에 잘 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 결심하십니다. 직접 오시기로 말입니다. 직접 오셔서, 죄의 포로가 된 백성들을 해방시킬 것을 정하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독생자(요 3:16)께서 샬롬을 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단번에 모든 샬롬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래서 천군천사들이 “땅에서는 평화로다”라고 그토록 찬송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샬롬을 지불하시는 방식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말구유에 오신 방식입니다. 가장 힘이 세신 분께서 가장 약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분께서 가장 초라한 곳에 누워계십니다. 이게 바로 샬롬의 본질이며, 샬롬의 원리인 것입니다. ‘묶여주는 방식’을 뜻합니다. 진짜 센 자는, 묶여주려고 낮은 곳까지 내려와서 눈높이를 맞춰가며 무릎을 꿇어 주기까지 합니다. 이걸 가리켜 충성(헤세드)이라 합니다.
샬롬을 들고 내려오셔서 세상과 화해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우리가 이 샬롬을 들고 더 낮은 세상으로 내려가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샬롬을 노래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보증을 서시며 우리의 삶을 지키십니다. 우리가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영적으로 더 강해지도록 중보하십니다. 그래서 더 낮게 내려가 누군가에게 묶여줄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 주실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내려가 샬롬이 되어 줄 때, 그 사람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동시에 또 다른 힘 센 누군가도 나에게 내려와 샬롬이 되어 줄 것입니다.
나눔 섬김으로 최고의 성탄을 열자
자크 아탈리는 19세기는 자유의 시대요, 20세기는 평등의 시대요, 21세기는 사랑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꼭 맞는 말은 아니지만 공감이 갑니다. 지난 세기가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는 시대였는데 왜 혼란과 갈등과 전쟁이 그렇게도 많은 시기였는가 반문하며 반성해 봅시다. 그것은 사랑이 부족한 자유, 사랑이 부족한 평등의 추구였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자유는 방종과 타락을 가져오고 사랑이 없는 평등은 폭력과 대립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자유와 평등은 사랑의 바탕에서만 평화롭게 정착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는 사랑의 시대가 되어야만 합니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현재를 위기문명이라고 진단하면서 생존조건으로 인류가 하나되는 통일정부 수립과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함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바탕은 사랑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요한1서 4장을 인용하였습니다.“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 안에서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느니라”
새시대가 사랑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미래학자와 역사학자의 이야기인 동시에 그 이전에 이미 성서에 계시된 말씀입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거리에는 캐럴이 울려퍼지고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러 이 땅에 오셨으며 사랑과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섬기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새 세기가 되었으나 그 첫해부터 온세계는 테러와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사랑의 주님을 본받아 섬기는 삶을 살므로 이 땅에 자유와 평등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참된 평화와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 카드
기네스북에 의하면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카드를 가장 많이 보낸 사람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워너 에어하드라고 합니다. 그는 카드를 무려 62,824장이나 보냈습니다. 그 시간하며, 비용, 노력 등이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많이 보낸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어느 한해에 기록을 세우기 위해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천 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를 알리시고, 주인공으로서 몸소 크리스마스카드의 원본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성경에 이를 자세히 기록하여, 세계 곳곳에 있는 민족의 언어로도 옮기게 하여 수억, 수십억의 손에 전달되게 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보다 더 바람직한 크리스마스카드는 없을 것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에는 카드에 단지 안부만을 전하지 말고, 꼭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예수님으로 인한 풍성한 삶을 나누도록 하십시오.
크리스마스 카드의 유래 -헨리 콜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이웃에게 정성껏 편지를 써서 보내던 미국의 박물관장이 있었다.
평소 베풀어준 은혜에 대한 감사를 정감 있는 추억담과 함께 전하던 이 사람의 이름은 헨리 콜. 1843년 12월 초 갑자기 바빠진 콜은 '사랑의 편지'를 일일이 다 쓰지 못하게 되자 친구인 화가 존 호슬리에게 그림을 한 장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기꺼이 그림을 그려 주었고 콜은 이것을 인쇄해서 짤막한 글을 그 안에 담아 이웃에게 보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 카드'는 이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밤중에 숲 속을 산책하고 있었다.그날은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였다.루터는 평소 어둡던 숲이 전등을 켜놓은 것처럼 빛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소복하게 눈이 쌓인 전나무 숲 사이로 영롱한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어둡던 숲에 빛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다.그는 여기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도 저 전나무와 같다.한 개인은 초라한 존재일 뿐이다.그러나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루터는 이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려고 전나무 하나를 집으로 가져왔다,그리고 나무에 눈모양의 솜과 빛을 발하는 꼬마전구와 촛불을 장식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이다.
인간은 지극히 나약한 존재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에 예수의 빛이 스며들면 보석처럼 영롱한 인생으로 변한다.
크리스마스 씰(seal)
19세기 후반, 유럽은 산업 혁명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도시는 거대해져 갔지만 대다수의 서민들이 살고 있는 빈민가는 매우 지저분했고, 각종 질병과 전염병의 온상으로 여겨졌습니다.
당시 가장 큰 골칫거리는 결핵이었습니다. 쉽게 전염되지만 보균자를 찾기 어려웠고, 특히 어린 아이들의 사망률이 높아 전 유럽이 골치를 앓고 있었습니다. 덴마크의 한 우체국에서 우체국장으로 일하던 ‘아이날 홀벨’도 결핵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의 소식에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우체국장에 불과한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우체국은 언제나 수많은 편지와 소포들로 넘쳐났습니다. 우편물을 정리하던 홀벨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만이라도 우편물 하나에 동전 한 닢씩만 넣어 보내도 많은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번뜩이는 생각을 조금 더 구체화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기간에만 결핵 아동을 돕기 위한 특별 우표를 발행해 보는 건 어떨까?’ 1904년 12월, 크리스마스 씰이 덴마크의 한 우체국에서 첫 발행이 되었고, 큰 호응을 얻자, 덴마크 국왕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0여 년 뒤, 씰은 전 유럽에서 발행되었고, 이후 전 세계로 확대 되었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마다 12월의 첫 날이 되면 크리스마스 시즌을 알리는 전령사처럼 전 세계에서 발행되고 있습니다.
훌륭한 아이디어는 많은 돈을 벌게 하지만, 따뜻한 아이디어는 오랜 시간 가슴에 남을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연말연시가 다가왔습니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시대입니다. 단 몇 주 만이라도 따뜻한 사랑의 아이디어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곳에서 실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 담긴 '크리스마스 실(Seal)' -아이나 호보엘
덴마크에 아이나 호보엘이라는 우체국 직원이 있었다. 그는 마을의 작은 결핵요양원이 경제난으로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고 슬픔에 잠겼다. 그는 결핵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던 중,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우표 모양의 실(Seal)을 만들어 판매하자. 사람들은 실 한 장을 구입하는데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이 수익금으로 결핵환자들을 돕자."
그는 정부와 상의해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했다. 이 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그 수익금으로 결핵요양원은 계속 운영됐다. 그 결과, 덴마크는 세계에서 결핵사망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됐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실 운동이다. 한국은 1933년 셔우드 홀 선교사에 의해 크리스마스 실이 처음 보급됐다. 사랑의 마음을 품으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 위대한 일은 보통 작은 사랑의 실천에서 시작된다.
평화의 아기
20세기는 인류가 싸운 100년이었다. 영국에서 발행한 ‘평화 속에 전쟁’이란 보고에 의하면 세계2차대전 후만도 100개국에서 130건의 분규가 있었고 3500만 명이 전쟁으로 희생되었다고 한다. 1차 대전에서만 1000만 명이 죽었고 2차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에서 약 5000만 명이 희생되었다. 인류는 20세기 100년 동안에 세 가지 사실을 배웠는데 이데올로기보다 자유가 낫다는 것과 자원보다 두뇌가 낫다는 것과 대립보다 공존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립이란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 너는 나를 따라야 한다’는 교만에서 나온다. 그러나 공존은 ‘함께 살자. 피차 돕고 의지하자. 함께 잘 되자’는 형제애 정신에서 나온다. 놀랍게도 하나님 자신이 이런 생각을 가지시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공존이란 이름을 붙여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말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평화의 고시였다. 옛날 인도네시아의 이리안 자야 족에 전도한 단 리처드슨 선교사의 이야기는 유명한 선교 사화이다. 그때는 아직 자야 섬에 식인족이 있을 때였다. 그들은 부족간의 싸움이 심하였다. 서로 싸우다가 만일 화해를 청할 때는 자기 마을의 갓난 아기 하나를 적군에게 제물로 주는 관습이 있었다. 이 아기를 ‘평화의 아기’라고 불렀다. 리처드슨 선교사가 이 섬에 도착한지 이태가 되던 해 다시 부족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인 부부가 아기를 안고 언덕에 나타났다. 대치하고 있던 그들은 놀란 눈으로 이 서양인들을 지켜 보았다.선교사 부부는 갓난 자신들의 아기를 ‘평화의 아기’로서 내놓은 것이다. 쌍방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공격의 외침이 아니라 평화의 도래를 가리키는 기쁨의 소리였다. 기독교를 전적으로 거부하고 있던 이리안 자야 족속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유명한 이야기이다. 아기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위하여 오신 평화의 아기시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증오의 벽을 허물기 위하여 오신 평화의 아기이시다. 예수가 탄생되었을 때는 참으로 어수선한 시대였다. 만일 그 당시 신문이 있었다면 아마도 이런 헤드라인들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헤롯왕 재혼, 왕비의 호소 일축되다!”“로마 황제 세금 인상 위해 유다 전역에 인구조사 지시” 이런 때에 팔레스타인 한 구석 목동의 마을에 평화의 왕이 한 아기의 모습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한국전쟁 때 미군 병사 존 토스네스가 참호에서 밤을 새우는데 갑자기 한국인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총을 들이대자 그들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그것은 평화를 노래하는 천사의 음성이었다”고 간증하였다.
성탄절을 위한 십계명
성탄절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님 이어야하는데,
산타클로스나 선물이 대신하는 경우를 볼수 있습니다.
‘기독교 문장 대백과사전’에 나오는 성탄절의 십계명입니다.
01.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라.
02.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그리스도에 대해 감사하라.
03. 주님께 드릴 최선의 방은 우리 마음속에 있음을 기억하라.
04. 교회에서 열리는 행사에 기꺼이 참여하라.
05. 이웃의 어려움과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라.
06. 가정과 친구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시간을 내라.
07.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예술을 향유하라.
08. 성탄의 기쁨을 나누기 위한 선물을 하라.
09. 나를 위해 수고한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라.
10. 자녀들에게 성탄절의 메시지를 가르치라.
성탄절은 우리를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님이 주신 사랑을 실천하며, 충만한 은혜의 기쁨을 누리기 위한 기념일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마지막 방법인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하는 성탄절을 보내십시오. 아멘!!
주님! 성탄의 감격과 기쁨을 매일의 삶에 허락하소서.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며 합당한 일을 합시다. / <김장환 목사>
성탄절 각국 풍습
영국
영국에서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봉건제도 시대에 장원 영주의 저택에서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린다다.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는 풍습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영국 사람들은 대강절 기간부터 교회나 가정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른다.그리고 이를 축하하고 성탄의 기쁨을 나누려는 뜻에서 카드를 보낸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여왕의 성탄절 메시지가 크리스마스 아침에 영국 전역에 방송됩니다. 영국 트리팔가 광장에는 거대하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진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밤에 통나무를 통째로 들여다가 벽난로 옆에 갖고 놓고 옛날의 풍습대로 온 가족이 통나무 위에 앉아 봅니다. 그리고 나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새해에는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통나무를 벽난로 속에 넣기 전에 인사한다.
어린이들은 벽난로 또는 화덕 옆에 긴 양말을 걸어 놓고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가득 채워 주시기를 바란다. 또한 우편배달부, 우유배달소년, 신문배달 소년, 청소년들에게 장갑, 털구두 따위의 선물을 안겨 주면서 한 해 동안의 수고에 감사한다.
성탄절 아침에는 치즈를 발라서 요리한 공작새 고기를 먹는다.
독일
독일의 성탄절은 크리스마스 장난감으로 유명하다. 독일에서는 12월 6일 전날 밤부터 크리스마스 축제가 시작되는데, 교회는 대강절 예배를 드리고 사람들이 마음에는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기쁨이 가득찬다.
독일의 크리스마스 풍습으로 첫째는 선물을 주는 일입니다. 아기 예수의 오심이 우리에게 기쁨이듯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의 물건을 만들어 선사한다. 한 예로 비누로 만든 장미, 종이로 만든 꽃(인형)등이 있다.
가정에서는 대강절 화환과 대강절 촛불을 켜둔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어머니가 장식한다. 12월이 되면 어머니는 혼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운다. 또한 크리스마스 식탁도 마련하는 것이다.
성탄절 전날 밤에 가족들은 어머니의 초대로 식탁이 마련된 방으로 초대ㄷ빈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아름다움에 환성을 지르기도 한다.
교회에서는 성탄절 전의 한 주간을 개방한다. 누구든지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갈 수 있도록 한다. 예배실 및 부속된 여러 방들과 기도실을 사용할 수 있다.
프랑스
비록 법적인 공휴일은 아니지만 12월 6일의 성 니콜라스의 날은 동부 프랑스에서 아주 널리 지켜지고 있다.프랑스에서 이 날은 아이들에게 선물과 캔디를 주는 행사로 간주되어 점차 성탄절을 대신하게 되었다.
종교적 행사와 가족 식사는 성탄절을 기념하여 축하한다. 성탄절 앞서 여러 주간 동안 파리의 큰 백화점의 상설 전시대에는 실물 크기의 전설적인 상들이 놓여진다.
가정에서의 축하의식은 성탄절 며칠전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함으로써 시작된다. 양초와 반짝이는 여러 가지 색깔의 별들이 장식에 사용된다. 성탄절 전날 밤에 어린이들이 잠들었을 때 작은 장난감과 캔디와 과일들을 가지에 매달아 '크리스마스 아버지'(Pere Noel)가 벽난로 옆 그들의 구두 속에 남기고 간 선물들에 추가시킨다. 구유에는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과 소와 나귀 그리고 목자들을 의미하는 작은 상(모형)들을 놓는다. '작은 성인들'(Santons, 본래는 인형 또는 동물상)이라고 불리우는 작고 채색된 토기상이 어떤 지역에서 사용되는데, 이것은 성경의 인물들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사람들도 나타내주고 있다.(즉 시장,사제,경관,도살업자,빵굽는 사람 등). '작은 성인들'의 세계적 중심지는 아우바그네(Aubagne)의 작은 마을이다. 비록 1224년 앗시스(Assisi)의 성 프랜시스가 구유(Crech3,구유 속의 아기 예수상)을 소개하였지만 16세기에 이르러서야 구유를 만드는 풍습이 널리 퍼졌다.
한밤 중에 세 차례의 미사가 집례된다. 이를 위해서 교회와 대성당은 아름답게 불을 밝히고,캐롤과 종소리와 차임(편종)의 멜로디가 메아리친다.
아침에 어린이들은 모두 흥분한 가운데 일어나서 벽난로와 성탄절 트리에 있는 선물들을 확인한다. 이어서 전 가족은 선물 교환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다.
최초의 구유와 캐롤의 결합을 통해서 대성당의 광장에서 행하여지는 예배식의 드라마가 생기게 되었다.14세기 이후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탄생의 이야기는 성탄절의 신비와 인형극의 형태로 전하여졌다.
미국
크리스마스는 미국사람들의 마음과 뜻의 형상을 신앙적으로 이끌어 주었다. 미국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선물을 사고, 분주했던 생활 가운데서 시간을 내어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한다.
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열리는 음악회 행사에 참석하고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하는 축제 프로그램을 즐긴다. 한해중 가장 눈에 뜨이게 사랑이 넘치는 계절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부모들은 자녀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여러 장식들을 집 안팎에 꾸민다. 대강절 넷째 주일되면 주부들은 빵,쿠키,푸딩 따위의 음식을 만들고 가족이 벽난로 앞에 모여 앉아서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밤이 깊은 줄 모른다.
교회와 성가대원들은 크리스마스가 가까와 올 즈음에 각 가정을 방문하면서 캐롤을 불러 준다. 이때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한테 어울러 캐롤을 부른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들을 위하여 선물을 포장하여 양말을 채워둔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아무도 모르게 한다. 이튿날 어린이들은 양말에 든 선물을 받고 기뻐한다.
아일랜드
아일랜드의 크리스마스는 11월말 대강절의 계절에서부터 시작된다. 교회와 각 가정에서는 대강절 찬송을 부르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린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세계의 성탄절 풍습 가운데서도 더 아름다운 풍습을 갖고 있다. 이 나라의 성탄절 축제는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 때 집안의 창문이 있는 곳마다 촛불을 켜 놓는다. 그리고 창을 조금씩 열어둔다. 이것은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호텔이나 빌딩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촛불을 켜서 창을 열어두는 것은 상징적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아기 예수를 낳기 위하여 마구간을 찾아 헤매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아침에 메리 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나 여인이 촛불을 끄도록 되어 있다.
네덜란드
네덜란드에서는 산타할아버지가 흰말(백마)을 타고 온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실제로 산타할아버지가 흰말을 타고 이집,저집을 방문한다. 따라서 흰말의 먹이와 물을 준비해 두는 의미로 어린이들은 깨끗한 나막신에다 마른 풀,빨간 무우(홍당무)등을 달아서 창문 앞에 놓는다. 물도 한 그릇 떠다가 놓는다. 이렇게 하고서 잔다 성탄절 아침에 아침예배가 끝나면 마을은 온통 축제에 휩싸인다. 괴상하고도 우습기만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춤을 추면서 이집,저집으로 다니며 성탄노래를 불러 준다.
아르헨티나
남반부에 위치한 아르헨티나는 우리와 정반대의 기후를 갖는다. 즉 우리가 얼음이 꽁꽁 어는 영하의 추운 겨울을 맞이하면 그곳에서는 땀을 뻘뻘 흘려야 되는 영상 40도시의 무더운 여름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나비다드(Navidad-성탄절)라고 부른다. 성탄 인사는 휄리스-나비다드(Feliz Navidad)라고 한다.
이때는 온 가족 및 친지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크고, 작은 휘에스따(fiesta,파티)를 갖는데 음악과 춤이 동반된 흥겨운 축연이 된다. 대표적인 음료로써 시드라(Sidra-사과주)를 마신다. 또는 비노블랑꼬(Vino Blanco-백포도주)나 비노 니그로(Vino Negro-흑포도주)를 차갑게 하여 축배를 드는데 살루드(Salud-안녕)를 빈다. 컵과 컵을 마주치며 '친 친 살루드(Chin-Chin -salud)' 라고 외친다.
축연이 계속되는 중 자정 12시에는 일제히 한 자리에 모여 하늘에 축포를 쏘아올린다. 연발되는 축포(권총 또는 화약을 사용)속에 자신들의 소원을 말한다.
아이들은 불꽃놀이와 함께 빠빠-노엘(Papa-Noel)이 가져오는 선물을 기다리며 나비다드 전날 저녁을 즐겁게 보낸다.
카나다
카나다는 본래의 원주민들과 이주해 온 사람들로 구성된 나라다. 넓은 땅과도 같이 카나다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즉, 북극의 에스키모, 북 아메리카의 북동부에 있는 마브라도르, 뉴퍼들랜드 섬이 독특한 성탄절 풍습을 갖고 있다.
에스키모 사람들이 지키는 크리스마스 축제는 백인들에 의해서 전해진 것이다. 그런 에스키모에는싱크덕크라고 불리우는 한 겨울의 축제가 있었다. 이 축제는 정해진 날에 각 마을 사람들이 긴개의 행렬이 끄는 썰매를 타고 한 곳에 모여 춤과 선물의 파티를 즐긴다.
북아메리카 북동부 위치한 라브라도르 어부들에게는 축제가 없었다. 이곳에는 백인들이 세운 선교교회로 말미암아 생활양식이 변화를 일으켰다.
선교교회에서 시작한 최초의 크리스마스 행사에서는 아이들의 순무위에 세운 작은 촛불을 받는다. 이 촛불을 받는 축제에서, 지금은 수입한 양초를 사용하지만 옛날에는 사슴의 기름으로 만든 초를 썼다.
뉴질랜드 주민들은 성탄절의 고기잡이 축제를 지킨다. 그들은 교회를 의해서 고기를 잡았다. 교회는 그 고기를 팔아 교회의 운영기금으로 사용하였다.
노바 스코티아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성탄절 아침에 찬송을 부른다. 또한 예수 노래와 캐롤도 부른다.
벵쿠버에서는 크리스마스 축제가 오락과 술의 파티로 지켜진다. 특히 선창가에는 외국의 여러 뱃사람들이 몰려드는 까닭에 이들을 위로하는 프로그램들이 해마다 마련되고 있다.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의 성탄절은 가정에서 시작한다. 그들의 가정이나 정원에는 크리스마스 크레쉬가 꾸며진다. 정원이 있는 집에서는 나무 아래에,그렇지 못한 집에서는 방안의 가운데에 아기 예수가 나신 말구유와 인형 따위로 아기 예수의 모양을 꾸미는 것이다. 그리고 방안 전체에 첫번 크리스마스의 장면을 재현한다.
성탄절이 가까우면 사람들은 이웃 가정을 방문한다. 그들은 각 가정에 꾸며진 크리스마스 크레쉬를 감상하면서 즐거워하고 아기 예수를 찬양한다.
최근에는 산타크로스 풍습이 등장하고 있다. 할아버지나 친척들 가운데서 한 어른이 산타크로스로 분장하여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준다.
멕시코
멕시코에는 포사다스라고 불리우는 축제가 있다. 포사다스는 12월 16일에 시작되는데 순례자의 축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12월 16일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포사다스의 본래 의미는 쉼,휴식이다. 즉,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그들이 기거할 장소를 찾기 위해서 고생하였던 일들을 기억하는 축제가 행해지는 것이다.
각 가정에서는 스페인 이끼와 상록수 가지로 집을 꾸민다.그리고 집안의 한 곳을 마구간처럼 장식한다. 소나무 가지와 이끼 따위로 작은 단을 만들고 여기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재현시킨다.
이들은 그 둘레에 마태복음 및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빈들의 양떼들과 밤을 지새우는 목자들, 큰 별, 동방박사를 꾸미기도 한다.
그런 다음에 이곳 사람들은 다른 집을 방문해서 빈 방이 있습니까라는 물음을 하고 다른 곳으로 가보시오라는 대답을 그 집의 주인이 하는 등 요셉과 마리아의 베들레헴 순례를 재현해 본다.
칠레
동정녀를 기념하는 안타콜로의 축제와 말 경기가 칠레의 크리스마스 풍습이다. 칠레에는 안타콜로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는 3피트 높이의 동정녀 상이 세워져 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때가 되면 수천 명의 방문객들이 여기에 와서 동정녀상 앞에서 마리아를 경배한다.
크리스마스 축제 시즌에는 수많은 무용수들이 색색의 옷을 입고 춤을 춘다. 거리에는 인형과 각종의 장신구들이 넘실거린다. 한편, 그들은 경주 말을 타고 뛰어난 인디언의 솜씨로 경주를 한다.
필리핀
오랫동안 서구의 지배를 받은 필리핀은 성탄절이 가장 큰 종교적 축제이다. 더운 나라인 까닭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지는 않으나 파스토레스라는 종교극을 공연하고 축하 예배를 드린다.
성탄절 이브가 되면 모든 교회(개신교,구교)는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언제라도 들어와서 기도를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구교에서는 크리스마스 기간 중에 매시간마다 미사를 드린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들도 이 기간에는 천주교회에 들어가서 미사를 드려본다.
필리핀의 시골 마을에서는 파스토레스 종교극이 무대에 올려진다. 이 종교극의 배우들은 청년 남녀들이 맡는다. 이들은 마을을 순뢰하면서 공연을 한다.
이디오피아
이디오피아의 크리스마스는 주후 330년경부터 축제로 지켜지고 있다. 이디오피아의 콥트 교회는 1월 7일에 성탄절 행사를 갖는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억하고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다. 이디오피아 사람들은 라리베라'라는 도시를 그들의 예루살렘으로 여기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디오피아의 사람들은 성지인 라리베라로 모여든다. 라리베라는 순레자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들은 성탄절 아침을 기다리고 1월 7일의 해가 떠오르면 근처의 산정에서 콥트교회의 예식에 따라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린다.
순례자들은 성직자들이 축복한 빵과 음료를 먹고 마시면서 기뻐한다. 예배 의식이 끝나면 성탄축하 연회를 갖는다.
이집트
기독교의 성립 후 처음 300년 동안에는 성탄절 축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온 교회의 관심이 오직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 승천하신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에 교회는 성육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 사상가들이 주님의 인성에 대하여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교회도 성육신의 심오한 의미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특별히 동방의 기독교인들이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사건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교회는 성탄절을 기쁨과 경이로써 축하하기 시작하였다. 오늘 우리에게 알려진 성탄절에 대한 기록 중 최초는 4세기 초기의 이집트 파피루스에 남은 기록이다. 이 파피루스에는 수많은 손자국들이 찍혀 있는데, 이것은 이미 그 파피루스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파피루스는 4세기 초의 성탄절이 1월 6일 저녁부터 7일까지 축하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왜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냈을까요? 2세기에 있었던 이단 분파인 알렉산드리아의 영지주의 추종자들은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신 날(1월 6일 또는 10일)을 축제일로 지켰다. 그들은 예수께서 세례를 통하여 신성의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한편 정통적인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것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이탈리아에서는 성탄절이 하루로 끝나지 않고 3주간의 성탄 시즌을 갖는다. 이곳에서의 성탄절 8일 전은 ‘9일 기도’의 시작으로 곧 성탄 시즌이 시작되어 성탄절 후 12일째 밤까지 계속된다.
이때 아이들은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성탄절 노래를 부르고 동전을 받기도 한다. 아이들은 이 돈을 모아 맛있는 음식을 사 먹는다. 어른들 또한 악기를 연주하고 캐롤을 부르며 이웃들을 방문한다.
일본
범신론을 믿고 있는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대단히 화려하게 성탄절을 준비하며, 즐긴다. 일본의 기업가들은 하나의 상품으로 성탄절을 취급한다. 그리고 일본의 많은 사람들은 “흥청거리며 놀 수 있는 날”쯤으로 성탄절을 인식한다. 그러나 이처럼 안타까운 일은 일본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크리스천이 전국민의 0.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일본에서는 성탄절이 공휴일은 아니지만 거리에는 캐롤이 울려 퍼지고, 젊은 사람들은 파티로 시끌벅적하게 보낸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 섣달 그믐이 되면 새해를 준비하는 대청소와 떡찧기를 한다. 대청소 후에는 소나무 가지 장식을 문에다 꽂고 짚으로 만든 것으로 현관을 꾸미며, 둥글게 빚은 떡을 불단이나 신붕(집안에 신령을 모시는 곳)에 올린다. 밤에는 백팔번뇌가 없어지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제야의 종이 108차례 울리고, 무병 장수를 기원하는 연월(음식)을 먹는다.
스페인
성탄절은 스페인 전역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기념하는 몇 안되는 축제의 하나이다. 무엇보다는 성탄절은 가족들의 축제이다. 12월 24일은 예수 탄생전야인 Nochebuena (노체 부에나: 좋은 밤이라는 뜻)이다. 오후에는 스페인 성탄절의 한 상징인 성탄 인형(Bele’n)을 애들이 세우면서 좋아한다. Belen은 목동들, 양들, 낙타를 탄 동방박사 (los Reyes Magos)등의 형상들의 풍경을 나타내는 하나의 건축물이다. 중요한 요소는 portal이라고 불리는 마굿간과 소, 노새, 구유통에 누여져 있는 예수와 성 요한과 성모 마리아상이다. 사람들은 이런 Belen을 집이나 교회, 학교 심지어 상가 등에 세운다.
Cadiz 지방의 Arcos de la Frontera와 같은 어떤 마을에서는 이런 축제를 위해서 마을의 한 부분이 살아있는 Belen들로 구성을 한다.
저녁식사 후 어린 애들은 소형탬버린 등의 악기를 이용해서 크리스마스 캐롤 (villancicos)를 노래한다. Jerez에서는 집시들이 zambombas라는 악기를 이용한 축제행사를 연다. 이 축제는 밤새 계속되며 거리나 집의 안뜰에서 아랍음악을 연상케 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에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춘다. Navarra지방의 Lesaka나 다른 마을에서는 성탄을 축하하기 위해서 산에서 내려오는 숯장이를 상징하는 누더기 옷의 인형이 설치된다.
러시아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 아닌, 그보다 13일 늦은 1월 7일이다. 여기에는 역사적 유래가 있는데, 슬라브 정교의 전신이었던 동방정교회는 옛 동로마제국의 국교로 현 터키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발달한 기독교 중 하나다. 1500년대 말까지는 동방정교회와 가톨릭 등 전 기독교계는 로마시절부터 내려오던 율리우스력을 따랐으나 가톨릭의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제정에 의해 1582년 동방정교회를 제외한 서구세계가 개정된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게 됐다. 율리우스력은 그레고리력보다 매년 11분이 늦어 현재는 총 13일로 차이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율리우스력을 쓰고 있는 동방정교회권은 크리스마스 등 전통행사들을 서구보다 13일 늦게 맞고 있다.
이곳 크리스마스 축제의 가장 큰 행사는 서구와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해당하는 ‘사첼닉’이다.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옛 소련시절엔 무신론 원칙 때문에 없어지다시피 했으나 91년부터 소연방의 해체이후 가장 큰 축제가 되었다.
러시아에도 산타클로스가 있다. ‘데드 모로자(얼음 할아버지)’라는 러시아 산타클로스가 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닌 12월 31일에 온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러시아 산타클로스는 ‘스네구르카(눈의 아가씨)’라 불리는 여자 파트너와 함께 다닌다는 점이다.
인도
여러 민족과 종교가 뒤섞인 인도에서는 일년을 통해서 수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다. 어떤 것은 계절이 변해감을 축하하고 어떤 것은 인도의 문화와 깊이 관련되어있다.
축제의 규모도 전국적으로 성대히 행해지는가하면 일부 지역만으로 조용히 열리는 것도 있다. 그 중에 크리스마스 또한 큰 행사 중의 하나이다.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타 종교의 사람들도 크리스마스를 열광적으로 축하한다. 델리, 뭄바이, 켈커타와 같은 큰 도시들에서는 축제분위기로 고조되고, 크리스마스 바겐세일과 축제행사가 진행된다.
콩고
기독교도가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 행사는 즐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트리로 쓸 만한 전나무는 전혀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콩고 사람들은 어린 바나나 나무나 야자나무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대신한다.
일반적으로 바하마인들은 정열적이고 신앙심이 깊으며 대부분 춤과 음악을 좋아한다.
국가최대의 축제는 연말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해서 연시에 2번 개최되는 ‘중카누(Junkanoo)’라 불리우는 행사로 아프리카 흑인노예들로부터 계승된 축제이다. 이 행사에는 화려하게 꾸민 수백명의 사람들이 큰 길로 나와 가 장행렬을 하면서 방울을 흔들고, 아프리카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며 즐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