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냐옹고양이] 인간답게 살아야 해 (부제: 마음의 여름)

[냐옹고양이]

"우리, 인간답게 살자. 그래야 살 수 있어."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네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갈 때, 너는 내게 말했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모든 것이 비밀이야."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째서 비밀이었을까. 이런 의구심을 입 밖으로 내기도 전에 너는 모든 것을 시작하고 끝맺고 확정짓는 말을 내뱉었다.

"시-작!"

……그리고 그 후의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흐른 지금까지 나는 아직도 인간답게 살고 있다.

◈ 인간답게 살았던 우리들의 이야기

　　　　　　　　　W.냐옹고양이

　　　　　　　　　　　　　　　－강재연과 한이정의 이야기

그저 보이는 것이 죄다 단색이었던 그 곳이 지겨워서 몰래 빠져 나왔다.  빠져나온 곳의 일부도 단색이었지만 상관치 않았다. 적어도 사방이 단색인 곳보단 나으니까. 내가 너의 다른 면을 본 것은 그 때, 그 장소가 아닐까 싶다.

"뭐 하냐?"

차갑고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는 목소리. 머리, 꼬리 다 잘라먹은 말투에 살짝 기분이 나빠져 고개를 돌렸지만 그 누구도 없었다. 당황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곧 짜랑짜랑한 웃음소리가 울렸었지. 나는 아직도 그때의 우리를 기억해.

"누구야?"

참 바보같지만 난 누구라고 물었다. 왜였을까, 금방 알 수 있었을텐데…늘 시끄럽게 재잘대는 수다쟁이들의 구설수에 가장 자주 오르던 것이 그 사람이었는데. 단박에 보면 알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오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멍청이같이 물었다.

"에, 나 몰라?"

그녀는 내가 단박에 누군지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했었나보다. 꽤나 당황한- 아니,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르키며 말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흥미롭게 나를 쳐다보는 그 시선이 낯뜨거워 얼굴이 시뻘개졌다.

"흐응- 더 날뛰어야하나? 이러다간 내기에서 지겠네."

곧 장난스러운 미소를 내보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곧 죽어나갈 수다쟁이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했다.

"여튼, 꼬맹아. 여기서 뭐 하냐?"

한쪽 손에는 뭉게뭉게 연기를 피워내고 있는 담배를, 또 다른 한쪽 손에는 빛나는 반지를, 한쪽 귀에는 붉은 피어싱을, 머리는 샛노랗게하고, 얼굴에는 장난끼 다분한 미소를. 그래, 미소였다. 그 사람이 항상 지어내보이던, 그 사람과는 지독히도 잘 어울리는 미소….

"그냥."

밑이 너무 싫어서 올라 왔다고 하기도 뭣 하여 나는 그냥 이라고 대답했다. 간결한 내 대답에 곧 내게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담배를 태우는 그녀.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가장 무난했던 순간은 이 때였다-고 훗날 말했었지.

"너, 너! 강재연! 아직 올라오면 안된다고 그렇게!"

"아아, 알았어요, 알았어!"

"너 이노무 버르장머리도 없는 자식! 어디서 어른 말을 잘라먹어!"

"내 나이가 얼만데 당신이 어른이야?"

"네 나이 이제 갓 성인인거 안다 이 자식아!"

"동안이네?"

"누가 이자식이야! 동안이라고 해준 건 고맙지만… 에? 동안?"

그 어색하면서도 기분좋은 침묵을 깨버린 수다쟁이 한 명과 정신없이 말싸움을 하고 있는 중 뜬금없는 소리에 무심결에 답하다 무언가 아닌데-하고 느낀 순간, 째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세상에, 한이정씨! 손에 들린 거 뭐에요!"

"아, 이거?"

손에 들린 담배를 보며 경악하는 수다쟁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들어보이며 씨익 웃는 한이정. 그 천연덕스러움에 절로 혀를 쯧쯧 차게 되었다.

"그건 또 어떻게 구한거에요?! 여튼 둘 다 문제아야, 문제아! 빨리 빨리 내려가요!"

찰싹 찰싹 꽤나 세게 등을 내리치며 쫓아내버리는 수다쟁이에게 나지막히 욕을 읊조리면서 내려가는 20개 남짓하는 계단에 섰을 때, 나는 문득 생각했다. 왠지 지금 이 기분이라면 죽어도 좋을 것 같아. 그리고 발걸음을 뗐을 때, 나는 공중에 떴다.

"강재연!!!!"

쿠당탕탕. 내 생에 살면서 두 번째로 절망스러운 소리였다. 소리를 듣는 다는 것 자체가 실패했다는 것이니까.

"쯧쯧, 쟤 저렇게 안 봤는데 완전 미친놈일세."

바로 눈 앞에서 자살시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 않고 오히려 혀를 차며 스쳐지나가버리는 그녀, 한이정. 그녀의 직선적인 비난에 고개를 떨구었다. 정말, 미쳐버릴만큼 부끄러웠다. 비난과 눈길, 혀. 모두가 나를 부끄럽게 했다.

"너 지금 미쳤니?! 무슨 짓이야!"

황급히 날 일으켜 세우며 다그치는 수다쟁이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오직 그녀가 지나간 그 길만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어째서 나를 동정하지 않았을까. 어째서 그렇게 지나갈 수가 있었던거지?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이 물음은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난, 3월의 봄까지 쭉 계속됐었다.

"안녕, 미친놈."

한쪽 손에 들린 담배와 붉은 피어싱만이 그대로인 그녀는 대뜸 이렇게 말했었지. 그리고 나는…

"안녕, 한이정."

이렇게 응수했다가 맞을 뻔 했었고. 빛나던 반지가 끼어진 손을 내게 척 내밀면서 지었던 그 얼굴을 아직 난 잊을 수가 없어. 얼굴을 잊을 수 없는데 말은 덜 할까.

"잘 부탁한다 강재연 미친놈 꼬맹아."

이 모든 게 일어났던 3월의 어느 날을 기억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주하고 있다.

\. 5월

"야, 여름이 언제쯤 올 것 같냐?"

아침부터 쳐들어오더니 하릴없이 뒹굴거리다 뜬금없이 묻는 그녀의 생뚱맞음에 나는 경의를 표했다. 더불어 그녀의 개념없음을 욕했고. 하여튼 나는 이론적으로는 5월 6일경인 입하부터 8월 8일경인 입추 전날까지를 말하나, 기상학상으로는 6, 7, 8월을 여름으로 쳐. 라고 대답해주었다.

"새꺄, 그런 거 말고."

괜히 대답했나? 가끔씩 한이정은 대답을 바라지 않고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런 경우인가?

"됐다, 너랑 무슨 얘길 하겠냐."

"나 무시해?"

"꼬맹이니깐."

킥킥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한이정을 뚱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갈색인지 까만색인지 모를 눈이 나를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저번에 한이정이 날 비난했을 때 부터, 나는 한이정의 눈을 잘 보지 못하였다.

"야 미친놈."

"그 소리 좀 그만해."

"네 반응 보면 그만 둘 수가 없다."

쳇. 나는 또 다시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는 수 박에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녀와 말싸움을 하는 것은 사양이었으니까.

"여름이 여름이지. 또 뭐가 있는데?"

"그런게 있어, 바보야."

"뭐가?"

어린애같이 되묻는 나에게 너는 씩 웃으며 마음속에서 오는 여름말야. 하고 대답해주었다. 마음속에서 오는 여름이라. 말도 안 되는 소리. 코웃음치는 나에게 그녀는 제법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있어, 정말. 살다보면 느끼게 될거야.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죽는거야.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에, 자연으로 오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그 계절이 왔다 느낄 때에. 적어도 내가 죽을 때는 그 때라고 생각해."

……. 전혀 다른 사람이 내 앞에 있었다. 늘 장난스럽고 가볍게 살아가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참으로 이질적인 존재가 그 곳에 있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알기위해선 인간답게 살아야해. 무슨 뜻인지 알겠어?"

"……"

"거짓없이 살아야한단 거야. 웃으면서 칼을 쥐고 있고, 울면서 웃고, 뒤돌아서는 순간 끝나는 관계에, 비밀로 남겨두어야 할 것을 밝히는 것은 인간이 아니야, 인간의 탈을 쓴 무언가지."

고개를 끄덖일 시간조차 주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그녀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발견했으나 곧 덮어버렸다. 그녀의 이론에 의하면,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밝히기를 원치 않는다. 웃는 것과 우는 것은 순수하게 , 뒤돌아서도 안심할 수 있는 관계. 그것이 그녀가 추구하는 이상이며 가치인 것이다. … 상당히, 그녀답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마음에서 오는 계절을 깨닫지 못해. 그래서 언제나 세계에 휘말리지. 죽을 때를 찾지 못하고 돌고 돌다 저 먼 곳 어딘가의 나락으로 빠지는 거야. ……넌 그러지마. 넌 가능성이 있어보이니깐 말해주는거야. 결코 넌 그래선 안 돼."

다짐시키는 그녀를 따라주지 못했다. 직선적인 그녀가 아니었으므로. 이질적 존재가 하는 말과 다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빨리 그녀가 그녀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래서 난, 여름을 찾고 있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가 돌아왔다. 다시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꼬맹이 주제에 이 분의 심오한 말을 이해나 하겠어?."

"뭐얏!?"

그 당시의 나는 너무나 이기적이라 알 지 못했던거다. 장난스런 미소의 한 켠의 씁쓸하고도 쓸쓸한, 그녀의 미소를.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체 한 것이 아닌 가 싶기도 하다.

"후, 벌써 6월…."

무심결에 바라본 창 밖엔 물기를 머금은 장미가 피어있었다. 이제 '진짜'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이정이 말한 여름은 언제 올까. 문득 생각나는 계절에 답답해져오는 가슴을 붙잡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타이밍 죽이네~ 미친놈 꼬맹이."

시건방진 말투에 단박에 나는 그녀인지 알아챘다. 예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실수를 만회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있으니 그녀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기분이 좋았다.

"한 대 피울려고 했는데 왔네. 필래?"

딱 두개 남은 담배가 들어있는 말보로 담배갑을 나에게 내미는 그녀에게 몸에 나빠. 라고 딱 잘라 말 하며 거절했다. 그녀는 뭐 그렇게 고지식해! 하고 빽 소리를 지르며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말없이 우리는 그 곳에 있었다. 한이정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까지의 우리를 생각했다. 지금까지 했던 대화, 웃음, 시간. 그 짧고도 많은 것들을.

"마지막이다. 안 펴?"

마지막 담배를 꺼내면서 권유하는 그녀가 참 낯설었다. 절대로 담배를 누구에게 넘기는 일은 하지 않았었는데. 많이 낯설다.

"쳇, 속 좁긴."

그녀가 한 모금씩 빨아들일 때 마다 담배가 짧아져간다. 묘한 기분에 계속 담배를 응시하자 그녀가 담배를 입술에서 뗐다.

"새끼."

픽 웃으면서 억지로 내 입술에 담배를 물리고는 코를 막아버린다.

"……!!"

결국 난 담배를 피워야 했다. 그 뒤에 콜록이며 눈물을 글썽이는 내 모습을 보며 그녀가 박장대소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사내자식이 담배 맛도 알아야지."

화끈하게 살아, 임마. 남자같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충고하듯 말하는 그녀를 확 째려보자 그녀는 빙긋이 웃어보인다. 아, 또다. 다시 이질적인 존재가 내 앞에 서 있다.

"우리, 인간답게 살자."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네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갈 때, 너는 내게 말했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모든 것이 비밀이야."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째서 비밀이라는 걸까? 예전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서. 혼란스러웠다. 비밀인 것과 비밀이 아닌것. 한이정이라는 존재와 이질적 존재.

"쉿, 비밀인데…여름을 찾았어."

비밀이라면서 왜 알려준 걸까? 혼자 알고 혼자 조용히 품고 갔으면 됐을 것을…. 나를 바깥 세상으로 끄집어낸 그 비밀을 혼자 알았다면….

"여름이 왔다는거, 무슨 뜻인지 알지?"

고개를 가로젓자 검지 손가락을 곧게 세우고 담배를 피던 입술에 갖다대고 그녀가 웃었다. 장난끼어렸으면서도 조용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녀가…아래로 내려가는 문을 열었다.

"그때 왜 네가 실패했는지 알아?"

모른다. 그런 것은. 그때는 그저 왠지 이 기분이라면 죽어도 좋을 것 같다고 느껴서 충동적으로 한 짓이니까. 또, 너의 비난에 나는 미치도록 부끄러웠으니까.

"내가 널 붙잡아서 그런거야."

"하아?"

"넌…내게 여름을 찾아줄 것 같았거든."

풋하고 웃어보인 그녀가 손을 펼친다. 웃는 그녀가 친숙하다.

"그리고 찾아줬지. 고마워…."

고맙다고 하는 그녀가 어색하다.

"안녕, 미친놈 꼬맹이."

인사하는 그녀가…익숙한 호칭이… 어색하면서도 친숙하다.

잡을 수도 없게 그녀가 뒤로 넘어갔다. 20개 남짓한 계단 위로 그녀가 굴렀다. 날아올랐다. 떠올랐다. 

………잡을 수가 없다….

"꺄아아! 한이정씨!!"

"한이정씨!!"

수다쟁이의 입에서 그려진 그녀는 난폭하고 제멋대로 하기를 좋아하며 외곬수인 사람. 하지만 내가 본 그녀는 자유롭고 털털해서 좋게 말하면 쿨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줏대없었다. 그렇지만 쿨하게 옆에 있어주는 그녀를 존중했고 좋아했다. 수다쟁이들이 자신의 몸을 만지는 걸 싫어했던 사람. 이 단색의 세상에서 투명해지지 않던 사람. 담배를 좋아하고 장난스럽게 웃던 사람. 늘 엉뚱한 소릴해서 내 상식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던 사람… 그렇던 사람이 저렇게 기하학적으로 비틀린 채 누워있단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뭐야…"

'여름을 찾았어.'

그 말은 곧 내가 죽어야 할 때를 찾았어. 와 같은 말이었나. 그리고 그 때는 지금이었던 건가…. 왜 하필이면. 지금이었을까…

'그리고 찾아줬지. 고마워…….'

그게 그렇게 고마워 할 일이었나? 아, 맞아. 고마워 할 일 이긴 했다. 이 곳은 차라리 죽음이 나을 정도로 끔찍했으니. 눈을 감고 이미 싸늘해져가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한 명이 나가고 한 명을 계속해서 못 나가게 하는 구나. 참 잔인한 사람이야, 한이정. 마지막엔 담배를 가르쳐 놓다니….'

그래. 그녀가 자신의 담배를 왜 나에게 피게 했는지 이해가 갔다. 참 잔인한 사람. 참…잔인한…사람….

"기다려, 곧 찾을게. 나의 여름."

-에에, 예쁘게 봐주세요! (_ _ )

부끄러워요 >_< 댓글 많이 달아주신다면 이정이의 번외도 쓸 수 있습니다! +_+

+간단한 Q~

과연 재연이와 이정이가 있던 곳은 어디일까요!?

1.학교

2.도서관

3.정신병원

4.반상회

5.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