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굴국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 반송시장이 있다. 떠나온 학교에서 걸어 퇴근하면 거길 지나쳐 오게 된다. 가끔 칼국수 골목 지나 허름한 밥집에 혼자 들러 생탁을 들고 오기도 한다. 계란말이나 미역무침을 안주로 곡차를 들다 보면 한 병이 모자라 으레 두 병은 비운다. 이후 노점에서 할머니가 파는 푸성귀나 잡곡을 둘러보고 오지독에 기른 자연산 콩나물을 한 봉지 산다.
콩나물 2천원어치는 양이 제법 된다. 아내가 콩나물로 나물을 무치기기도 하고 국밥을 끓여 내기도 한다. 엊그제 사 온 콩나물은 아내가 감기 기운과 함께 몸이 쳐져 있어 내가 콩나물로 국을 끓여 보기도 했다. 그러고도 콩나물이 몇 줌 남아 냉장고에 보관 중이었다. 이후 거제 원룸으로 봇짐을 옮겨놓고 왔다. 며칠 전부터 내가 거기 지내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놓았었다.
이월 넷째 일요일 친구 내외와 함께 짐 보따리를 친구가 운전한 차 트렁크에 싣고 거제로 갔다. 거가대교를 건너 올봄 내 근무지가 되는 연초에다 짐을 부렸다. 가덕도에 사는 작은형님이 내가 원룸으로 짐을 옮긴다는 얘기를 듣고 아우와 제수 얼굴을 한 번 보려고 걸음을 해주었다. 부산 하단에서 고현까지 다니는 2000번 버스를 타면 내가 원룸을 정한 마을 앞에 내리게 되었다.
가덕도 사는 형님은 부산에서 지나다 교직 은퇴 후 형수와 함께 가덕도에 전원생활을 누리고 있다. 이태 전 일시 건강이 악화되어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 병마를 이겨내고 예전처럼 건강을 회복해 마음이 놓인다. 가덕도 해안선 산책이나 연대봉에도 오를 수 있는 정도다. 같은 교직에서 퇴직한 형수와 주민자치센터 문화강좌를 수강하고 헬스장도 이용한다고 듣고 있다.
창원에서 거제는 지리적으로 제법 떨어진 거리이나 가덕도에서 거제는 바로 이웃이었다. 친구 내외와 함께 원룸에 지낼 물건들을 부리고 있을 때 가덕도 형님이 그곳까지 찾아와주어 반갑고 고마웠다. 원룸 짐은 간편한지라 짧은 시간에 정리를 끝냈다. 형님 내외는 아우한데 오면서 양손 가득 뭘 들고 오셨다. 텃밭에 키운 배추와 돼지감자를 캐고 밀감도 한 박스 안고 나타나셨다.
가덕도 갯가에서 자연산을 채집해 말리는 미역도 챙겨오고 굴도 한 봉지 들어 있었다. 동행해 준 친구는 교장으로 승진해 나간 첫 임지가 내가 근무할 학교와 가까워 한 번 둘러보기로 되었다. 아내는 형님 내외분을 식당으로 모셔 점심을 대접하지 못해 못내 아쉬워했다. 형님은 아침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때가 이르다고 했다. 우리는 거제대교를 건너 통영 고성을 둘러왔다.
창원에 닿아 형님이 가져온 가덕도 배추와 미역을 친구네와 나누었다. 자연산 굴은 양이 많지 않아 나누지 못했다. 거제를 다녀온 이월 넷째 월요일 새벽이었다. 어제 형님이 보내온 돼지감자를 잘라 베란다 펼쳐 놓았다. 시간이 지니면 쪼그라들어 마를 것이다. 그러면 여러 건재들로 차를 끓이는 재료에 첨가할 예정이다. 가덕도 주민이 갯가에 채집해 깐 자연산 굴이 남아 있었다.
아내는 언제나 잠을 늦게 들어 기상이 늦다. 혼자 아침밥을 해결하고 설거지는 끝내도 잠을 깰 기미가 없었다. 친구와 점심나절 진주에 같이 걸음할 일이 있어 나는 산행이나 산책을 나가지 못했다. 냉장고엔 내가 전번에 사둔 반송시장 노점 콩나물이 남은 게 있었다. 나는 가덕도 형님이 보내온 굴로 콩나물굴국을 끓일 생각을 했다. 공교롭게 콩나물과 굴이 모두 자연산이었다.
먼저 냄비에 물을 채워 멸치를 넣어 가스레인지 불을 켜 맛국물을 내었다. 맛국물을 우려내는 사이 콩나물을 씻어두고 굴을 헹구었더니 굴에는 검은빛 비치었다. 흐린 물을 몇 차례 흘러 보냈더니 굴은 깨끗해졌다. 대파를 잘게 자르고 풋고추와 다진 마늘도 마련했다. 멸치를 우려낸 맛국물에 준비한 재료들을 투하해 한 번 더 끓여 간장으로 간을 맞추었다. 맛이 먹을 만하려나. 19.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