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전 스님의 본생담으로 읽는 불교
32. 사마 본생②(‘본생경’ 540번)
"독 화살 맞고 피를 토하면서도 원망 않는구나”
사냥하던 바라나시 왕 “분노·탐욕에 이끌려” 사마에 화살 쏘아
분노 대신 부모 걱정하는 사마 모습에 반성하며 평생 봉양 약속
악을 선으로 대하자 악이 선으로…불행을 감내할 때 행복 도래
인도 산치대탑 서문의 부조.
갑자기 눈이 멀게 된 부모님을 기쁜 마음으로 봉양하던 사마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휘몰아쳐 온다.
어느 날 저녁 무렵에 사마는 두 마리 사슴을 한데 매어 그 등에 물독을 싣고 손으로 받치면서, 사슴들에게 둘러싸인 채 먹을 물을 길으러 미가삼아타강으로 갔다. 그때 바라나시왕 피리약카가 나라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다섯 가지 무기로 무장하고 히말라야까지 와서 사슴고기를 탐하고 있었다. 그는 사마가 물을 긷는 곳까지 와서 사슴 발자국을 보고 마니주 빛깔의 나뭇가지로 허름한 집을 짓고 독을 칠한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그는 물을 길으러 사슴들과 오는 사마를 보고는 일단 제압하고 그 정체를 물어보기로 하였다. 사마가 물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길어 올린 물독을 왼쪽 어깨에 멜 때, 왕은 “지금이다!” 하고 독화살을 쏘았다. 독화살은 사마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왼쪽 옆구리로 관통했다. 사슴들은 다 도망가 버렸다.
사마는 물독을 떨어뜨리지 않고 마음을 안정시켜 천천히 그것을 내려놓았다. 모래를 파헤치고 그것을 포개 놓고는 양친이 계신 쪽으로 머리를 두고 모래 위에 누웠다. 사마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고통을 참으면서 “이 히말라야 산지에서는 내게 적이 없고, 나도 누구에게 적의를 가진 적이 없었다” 하면서 입으로 피를 토했다. 그리고 게송을 외웠다.
‘내 이 살은 먹을 수 없는 것이다./ 내 가죽 가져도 이익 없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무슨 이유로/ 나를 쏘아야 한다고 생각했는가//어떤 사람이냐, 누구의 아들이냐/ 어찌하여 나를 쏘고 또 숨느냐’
이 말을 듣고 왕은 “저 사람은 내 독화살을 맞고 쓰러졌는데도 나를 꾸짖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마치 내 심장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친절한 말씨로 내게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서로 통성명을 하였다.
왜 쏘았느냐는 사마의 질문에, 왕은 “사슴 떼들이 너를 보고 도망가는 바람에 쏘았다”고 우기다가 “분노와 탐욕에 이끌려 화살로 너를 쏘았다”고 실토했다. 그리고 사마의 집이 어딘지, 누구의 심부름으로 물을 길으러 왔는지 물었다. 사마는 게송을 외웠다.
‘얼마마한 음식이 그들에게 있으니까/ 엿새 동안은 그 목숨 살아가리라/ 그러나 만일 이 물 없으면/ 아마 그 장님들은 죽고 말리라//이제는 가엾어라, 우리 어머님/ 밤새도록 탄식하며 슬퍼하리니/ 혹은 밤중이나 혹은 새벽에/ 말라버리고 말리, 저 강물처럼//이제는 가엾어라, 우리 아버님/ 밤새도록 탄식하며 슬퍼하리니/ 혹은 밤중이나 혹은 새벽에/ 말라버리고 말리, 저 강물처럼//힘 닿는 데까지 정성 다하여/ 그 발을 만져드린 나 이었으니/ 사마, 내 아들아, 탄식하면서/ 우리 양친 숲 속을 하마 헤매리//장님인 우리 양친 다 못 뵈옵고/ 나는 이 목숨 버리는 것을./ 이 둘째 화살이 내 가슴을/ 못내 어지럽히네, 이 가슴을’
이 비탄게를 듣고 왕은 사마가 고통 속에서도 양친을 위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왕위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였다. 그러자 사마는 왕에게 양친이 계신 곳을 가르쳐 주고, 두 손을 모아 부양해 주기를 간원하였다.
그리고는 화살 독 때문에 의식을 잃고 마침내 실신하였다. 입을 닫고 눈을 감고 손발은 꼿꼿해진 채 전신은 피투성이가 되고 호흡은 끊어졌다. 이러한 사마의 모습을 보고 왕은 비로소 노사(老死)를 알게 되었다. 왕이 게송을 외웠다.
‘오늘 그는 죽음에 다달았어도/ 조금치도 비방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지옥에 떨어지리라/ 지옥에 떨어짐 정한 일이다.’
그러나 왕은 마음이 흔들려 ‘이 숲에 사람 없나니 누가 나를 기억하겠는가?’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때 바후소다리 여신이 나타나 왕이 아무 죄 없는 부모와 아들, 세 사람을 한 화살에 모두 해쳤으며, 그러나 두 장님을 법답게 부양하면 왕이 선취(善趣=좋은 세계)로 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에 왕은 다시 “왕위 따위 무엇하리. 저이들을 부양하리라” 하였다.
왕은 황금색 사마는 확실히 죽었다 생각하고 갖가지 꽃으로 그 몸에 공양한 뒤, 물독을 들고 사마 양친의 집을 향해 떠났다.
아버지 두쿠라는 사슴을 찾아 헤매는 카시국왕이라고 소개하는 피리약카를 환영하고, 틴두카 등 여러 가지 나무 열매와 동굴에서 길어온 맑고 시원한 물을 권하였다. 왕은 ‘누가 이 과일과 물을 가져오는가’ 하고 묻자 두쿠라는 자신의 아들 사마이며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제서야 왕은 사마를 자신이 활로 쏘아 죽였다고 고백하였다. 가까운 초막에 있던 어머니 파리카가 이 말을 듣고 남편의 초막으로 와서 “사마가 죽었다는 말에 심장이 떨리네. 외아들을 죽인 자에게 어떻게 화내지 않으리” 하였지만 두쿠라는 “그 피를 우리는 따지지 말자” 하면서 ‘겨우 얻은 사랑하는 우리 외아들/ 장님인 우리들을 부양하였다./ 그런 외아들을 죽인 자에게도/ 성내지 말라고 현자들 말하였네’ 이렇게 말하고 그들은 두 손으로 가슴을 치면서 사마의 갖가지 덕을 찬탄하며 슬퍼했다. 왕은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하인이 되어 부양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왕에게 그런 일은 자신들에겐 걸맞지 않으며 “우리는 당신 발아래 예배할 뿐이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처럼 내가 죄를 지었는데도 내게 대해 조그만 불평도 없이 도리어 나를 환영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하였다.
사마의 부모는 왕에게 사마가 있는 장소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사마는 독이 퍼져 죽어가는 고통이 어머니 아버지를 뵙지 못하는 아픔보다 더 크다고 느낀다. 죽어가면서도 부모님을 향해 머리를 두고 눕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독화살을 쏜 왕에게 화를 내지도 원망하지도 않는다. 다만 살아가기 막막할 부모님을 걱정할 뿐이다. 사마의 효심은 죽음도 원수도 초월하고 있다.
아버지 역시 자신의 외아들을 죽인 왕에게 화를 내지 않고 원망하지도 않는다. 왕이 부양하겠다는 제안도 거절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자신들이 발아래 예배할 대왕으로 대우한다.
사마의 태도는 왕으로 하여금 자신을 반성케 하고, 자신을 대신해 부모를 부양할 마음을 내게 해 주었다. 아버지의 태도 역시 왕으로 하여금 부양에 대한 의지를 더욱 강하게 하고, 자신들을 사마에게 데리고 가게 하여 사마의 마지막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악을 선으로 대처하자 악이 선으로 변한 것이다. 죽음이라는 손해를 무릎 쓰자 상응하는 이익이 결과된 것이다. 손해를 무릎 쓸 때 이익이 오고, 불행을 감내할 때 행복이 온다. 생명의 죽음보다 더한 불행과 손해는 없을 것이며, 생명의 부활보다 더한 행복과 이익은 없을 것이다.
[1679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