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 만리 7월 17일 수요일. 여행 19일 차.
코가 찍찍하다. 감기 기운이다. 밤새 에어컨 바람이 이롭지 못했다. 중간에 잠시 깨어나서 나름 조절을 했음에도 이 모양이다.
식은 몸을 덥히려고 밖에 나왔다. 새벽 공기가 따뜻하다. 마치 온돌방의 열기인 양, 스며드는 따스한 기운에 몸이 조금 나아진다. 거꾸로의 경험이 재미있다. 점점이 구름 박힌 새벽 시간. 새들도 아침을 즐기는지 지저귐이 여유롭다.
오늘은 오전에 '파이잘 모스크'를 방문한 뒤 바로 인도와의 국경 '라호르'로 간다. 이 나라 땅덩어리가 넓다보니 차를 탔다하면 기본이 대여섯 시간. 남북으로만 대략 1,900km에다가 2억2천의 많은 인구를 가진 큰 나라다.
1979년에 착공하여 10년 걸려 완공된 '파이잘 모스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 국왕이 재정을 지원하여 지어진 회교사원이다. 수용 인원은 안팤으로 20만명. 어마어마한 크기다. 비록 유서가 깊진 않지만 이미 여기 이슬람아바드의 첫번째 랜드마크 자리를 차지했다.
아홉시 반, 호텔을 나선다. 파이잘 모스크까지는 지척의 거리. 채 십분도 되지않아 도착했다. 신발을 보관소에 맡기고서 올라가보니 정말 굉장한 규모다. 투루키예의 건축가 '베다트 달로카이'가 설계한 이 곳은 전체적으로 '베드윈족의 텐트 모양'을 차용했는데 날렵한 미나렛(첨탑)과 어울려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아직은 이른 시간, 복잡한 아슈라 행사 기간이라지만 무슬림들이 모여들려면 아직 멀었다. 한가할 시간을 요량해서 서둘러 온 것이 현명했다.
대리석 바닥은 아침 햇빛에 이미 달구어졌다. 양말을 신지 않았다면 당장 발바닥이 데일 것이다. 대리석 하얀 부분을 골라 밟으니 그나마 조금 낫다.
내부는 무슬림 이외는 출입금지. 다른 사원에 비하여 훨씬 엄격하다. 몇일 전 길기트에서는 모스크에 입장한 바가 있다. 유리창을 통해서 내부를 들여다 보고 가늠해 본다. 과연 알려진 대로 이십 만 명을 동시에 수용함이 가능할까? 짐작컨데 만약 그 숫자가 다 채워진다면 너무도 밀도가 높아서 반드시 무슨 사고가 날 것 같다. 지원과 관리 시스템이 궁금하다.
점차 모여드는 무슬림들이 호기심과 함께 환영의 눈길을 보낸다. 선한 표정에 따뜻함이 묻어있다. 역시나 사진에 진심인 이곳 사람들. 이래저래 촬영요청에 응하다보니 관람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대리석 바닥 그늘진 곳을 따라서 한바퀴 돌아본다. 달라지는 위치마다 변화하는 모스크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한다.
뜨겁다. 발바닥도 뜨겁고 콧속에 드는 바람도 뜨겁다. 덕분에 찍찍거리던 코 안이 현저히 좋아졌지만 이제부터 긴 시간 앉았어야 할 차 안의 어어컨이 신경쓰인다.
10시 반 라호르를 향하여 출발. 이십여년 전 대우건설이 시공한 파키스탄 최초의 고속도로를 달린다. 라호르까지는 대략 380km. 거의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이니 도로 상태 감안, 다섯시간은 걸리리라.
흐린 날씨. 태양이 숨으니 시야가 편안하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드디어 소나기가 내린다. 달궈졌던 차창의 열기가 순식간에 식었다. 코감기가 염려되어 에어컨의 송풍구를 막았다.
사고 다발 위험 구간이 시작되었다. 몹시 길고 자주 굽은 비탈길이다. 임시로 삼차선을 버스와 트럭 전용으로 하여 경찰차가 앞장서 에스코트한다. 아예 막아서서 속도를 통제하는 적극적인 사고 예방 조치다.
거의 삼십분이 지나서야 내리막 고개길이 끝나고 갑자기 산이 없어지면서 경찰 차도 비켜섰다. 그리고는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지면서 대평원이 나타났다. 그제서야 버스는 정상적으로 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그 새 소나기에 식었던 차창은 다시 달구어졌다.
점심을 위해 고속도로 가에서 햄버거를 먹기로했다. 맥도날드와 하디스 등이 간판을 올렸다. 오늘의 선택은 하디스. 이 지역에서 하디스만이 음료 무한 리필이란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에 제로콜라. 괜찮은 선택이 되었다. 최저 임금으로 보면 한국의 십분의 일에 불과한 이곳이 햄버거 값은 한국과 비슷하다. 엄청게 높은 물가. 일반 서민은 평생 햄버거 가게에 한번 와 볼 수가 없겠다.
오후 1시. 날씨 앱을 들여다 보니 현재기온은 40도, 체감온도는 49도다. 불가마 날씨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테이블에 앉아 무심코 창턱에 손을 올리고서 깜짝 놀랐다. 얼마나 뜨겁던지 잘못하면 데일 정도다.
식사하고 나오니 이제는 바람까지 일어 온 천지가 황사로가득하다. 한반도의 황사는 그야말로 새발의 피. 심지어 바로 건너편에 보이던 작은 마을이 순식간에 종적을 감췄다. 우리와는 다른 대륙의 스케일이다. 규칙적으로 불어대는 쎈 바람 때문에 길 따라 선 키 큰 나무들이 모두 한쪽 방향으로 누웠다.
북부와는 달리 이 지역은 물이 풍부하다. 어딜 보나 논밭에 푸른 빛이 가득하다. 무논에는 이제 막 모내기를 해둔 곳도 있고 한참 자란 벼도 있는 것으로 보아 동남아처럼 삼모작이 가능한 듯. 물가의 소들도 검정색 몸체에 둥그렇게 말린 뿔을 가져 동남아의 물소를 닮았다. 마치 베트남의 어디 쯤에 온 듯 하다.
육차선 고속도로가 오르내림 없이 지평선을 향하여 끝없이 달린다. 이슬람아마드 출발 다섯시간 만에 라호르 외곽 톨게이트에 닿았다. 다리 아래 라비강 넓은 물줄기가 이곳의 풍요를 대변한다. 이제 속도를 줄인 버스는 시내로 진입한다. 차도와 나란히 흐르는 수로는 시민들의 피서지. 섭씨 40도의 날씨는 인근 주민들을 물가로 불러들였다. 멱을 감는 사람. 나무 그늘에 쉬는사람. 뜨거운 태양도 사람이 살아가는 길목을 막아서지 못한다.
오늘은 수요일이지만 '아슈라'에 의한 공휴일이어서 도로가 그다지 붐비지 않는다. 전혀 고생 없이 쉽게 도착되었다. 오늘의 숙소는 시내 한 중심에 자리한 '아바리 익스프레스'. 좋은 위치일 뿐만 아니라 모든게 잘 갖취진 고급 호텔이다. 웃음으로 건네는 인사가 나그네를 편안케한다. 오늘따라 웰컴 드링크가 더욱 상큼하다.
처음 중국 서부의 변경인 신장성의 타스크루칸을 통해 파키스탄에 들어온 이후로 13일 만에 인도와의 국경도시 라호르에 입성했다. 이제 이곳 나호르에서 두 밤을 지내면 귀국길이다. 지속된 에어컨 바람에 목이 칼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