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하고
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
천겁千劫을 거슬러 올라가도
옛날이 아니요,
만세萬歲를 뻗쳐서 내려가도
항상 지금 뿐이다.
옛날과 지금을 꿰었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옛날이 아니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지금 현재이다.
바다와 산이 서로 옮겨짐을 많이 겪으면서
바람과 구름의 변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는가.
<함허득통선사의 금강경오가해 서설>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유어일물차 有一物於此)
이름과 모양 끊어졌지만
(절명상 絶名相)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고
(관고금 貫古今)
한 티끌에 있으면서도
(처일진 處一塵)
우주에 두루한다
(위육합 圍六合)
안으로 온갖 묘함을 머금고
(내함중묘 內含衆妙)
밖으로 뭇 중생에 응하며
(외응군기 外應群機)
세상<천지인>의 주인이 되어
(주어삼재 主於 三才)
온갖 법도의 으뜸이 되니
(왕어만법 王於萬法)
넚고 커서 비길 것 없고
(탕탕호기무비 蕩蕩乎其無比)
드높아 짝할 이 없다
(외외호기무륜 巍巍乎其無倫 )
신비롭지 아니한가
(불왈신호 不曰神乎)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쳐다보는 사이 밝고 밝으며
(소소어부앙지간 昭昭於俯仰之間)
보고 들음에 잘 드러나지 아니하니
(은은어시청지제 隱隱於視聽之際)
심오하지 아니한가
(불왈현호 不曰玄乎)
천지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고
(선천지이무기시 先天地而無其始)
천지가 사라진 뒤에도 있으리니
(후천지이무기종 後天地而無其終)
비었다 할까? 존재한다고 할까?
(공야? 유야? 空耶 有耶)
나는 그 까닭을 모르겠다
(오미지이소이 吾未知而所以)
우리 석가세존께서
(아가문 我迦文)
이것 하나를 깨달으시고는
(득저일착자 得這一着子)
중생이 똑같이 이것을 타고 났으나 깨닫지 못함을 널리 보시고
(보관중생동품이미 普觀衆生同稟而迷)
괴이하다고 탄식하시고는
(탄왈기재 歎曰奇哉)
생사의 바다 가운데 나아가
(향생사해중 向生死海中)
바닥없는 배를 타고
(가무저선 駕無底船)
구멍없는 피리를 부시니
(취무공적 吹無孔笛)
묘한 소리가 땅을 움직이고
(묘음동지 妙音動地)
법의 바다가 온누리에 찼다
(법해만천 法海漫天)
이에 귀먹고 어리석은 것들이 다 깨어나고
(어시 농애진성 於是 聾碍盡醒)
마르고 시든 것들이 모두 윤택하게 되고
(고고실윤 枯槁悉潤)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대지함생 大地含生)
모두 본모습을 찾았다
(각득기소 各得其所)
이 반야경은
(금반야경자 今般若經者)
부처님의 말씀이요
(묘음지소류 妙音之所流)
진리의 바다가 시작되는 것이다
(법해지소자자야 法海之所自者也)
금강의 굳세고 예리한 날로
(이금강지견리 以金剛之堅利)
‘나'니 '사람'이니 하는 빽빽한 번뇌의 숲을 베고
(잔아인지조림 잔我人之稠林)
지혜의 해로 거듭되는 어둠을 비추어
(조혜일어중혼 照慧日於重昏)
나와 세계에 대한 집착에서도 벗어나고 (我空 法空)
나와 세계가 없다는 생각도 흩어서(具空)
(개혹무어상공 開惑霧於三空)
모든 것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단견과
영원히 존재한다는 상견의 두 구덩이에서 벗어나게 하여
(사지출단상갱 使之出斷常坑)
진실의 세계에 오르게 하며
(등진실제 登眞實際)
모든 수행의 꽃을 피워
(부만행화 敷萬行花)
성불의 열매를 맺게 하시니
(성일승과 成一乘果)
말씀의 예리한 칼날로 중생들의 번뇌를 끊고
지혜의 태양이 드러나게 함과 같고
(언언이인당양 言言利刃當陽)
구절들은 물뿌린 듯 붙지 아니한다
(구구수려불착 句句水麗不着)
[함허스님의 시]
明珠碧玉隱不露
大智如愚看似癡
道存乎己自發外
何用區區逆人知
莫謂渠無活計在
應用頭頭皆具足
밝은 구슬 푸른 옥
감추어서 드러내지 아니하고
큰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아서
얼핏 보면 바보라
도가 내 몸에 있으면
스스로 드러나게 마련인데
무엇 때문에 구구하게
사람들이 알아보도록 꾀할 것인가?
자네 살림살이 없구나 하고
말씀 마시게
일마다 응하여 척척 쓰거니와
모자람이 없다네
함허득통(函虛得通, 1376~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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