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빌 3:13에 말하기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축복 받으려면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지난 일을 잊어버리기도 해야 하지만 한편 옛날 일을 기억하고 생각하기도 잘 해야 합니다.
눅 16:25에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마 24:6에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신 32:7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신명기에 “옛날을 기억하라 애굽땅에서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하라 부요해져서 잘 살게 되거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라”하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축복받는 생활을 하려면 옛날을 잘 기억할 줄 알아야 합니다.또 본문 창세기 35장에 보면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서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그 벧엘이 어떤 곳입니까 죽이려고 덤벼드는 형의 낯을 피하여 도망한 야곱이 들에서 돌베개 베고 잠자던 고난의 장소요,거기서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던 곳이요,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에게 언약을 세워 주시던 곳입니다.그 벧엘에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며 옛날의 감격을 되새기며 옛날을 생각하라고 하셨고 후손들은 어른들에게 그 벧엘에 대하여 물으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그러므로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1.고난 받던 때를 기억하라,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창 35:3에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고 하면서 야곱이 옛날 고생하던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은혜 베푸시던 때를 기억했습니다.
또 하나님이 그 고생하던 때를 기억하기 원하셨습니다.지금 야곱은 많은 처자식들과 많은 재산을 벌어서 부자가 된 때였으므로 옛날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형을 피하여 도망을 하면서 돌베게 베고 광야에서 잠자던 그때를 다 잊어버릴 뿐 아니라 신앙도 많이 약해졌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은 고난을 받던 옛날을 회상케 하기 위하여 잊어서도 안되고 잊을 수도 없는 자신의 운명을 바꿔 놓은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마치 개구리가 올챙이때 생각 못한다는 말대로 사람이 편안하고 잘 살면 옛날의 고생하던 때를 쉽게 잊어버리게 됩니다.
약 40년 전 우리는 6.25를 당했습니다.그 처참했던 6.25가 이제는 점점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으며 역사의 한 페이지로만 남아가고 있습니다.기성세대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고 젊은이들은 비참하고 처절했던 그때의 모습을 전혀 알지 못하고 우리와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통일을 해야 될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 것은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인지 모릅니다.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6.25의 비참했던 사실과 공산당의 잔인 무도한 만행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는 줄 압니다.
신명기에도 “옛날을 기억하고 자녀들에게 그것을 가르쳐라”고 했습니다.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손들에게 옛날 애굽땅에서 종살이 할 때의 고생과 광야 생활의 40년을 부지런히 가르쳐서 기억하게 했습니다.초막절이 되면 매년 광야에 나가서 초막을 짓고 거기서 고생스럽던 생활을 회상하면서 자녀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지상낙원이라고 할만큼 부유하게 잘 사는 덴마크에서는 청년들이 호화스런 파티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옛날 선조들이 고생할 때 먹던 까만 호밀 빵을 한 쪽씩을 물과 함께 먹고 나서 파티를 즐긴다고 합니다.참으로 잘하는 일입니다.
지난번 선교 현지 답사차 갔던 인도네시아도 시골집 대문 기둥이나 벽에 194
5.
8.17일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 집이 많았습니다.그것은 바로 그들이 독립 국가가 된 그 날이었습니다.그들은 매년 8월 17일이 되면 과거 343년간 화란으로부터 식민지때 고생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자손들에게 과거 조상들이 화란의 식민통치때 당했던 그 참혹한 생활들을 온갖 행사를 통하여 대대적으로 마을마다 거행하며 가두행렬을 한다고 합니다.다시는 그런 비참한 일이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고 과거를 모르고 오늘의 자유와 현대 문명을 즐기는 젊은이들에게 가르친다고 합니다.그런데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문제가 많습니다.오늘날 젊은이 학생들이 6.25일을 점점 잊어버리고 있을뿐 아니라 귀찮게 여기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모릅니다.부모들이 잘 가르쳐야 합니다.
2.하나님을 만나던 때를 기억하라,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창 35:1에 “형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창 28:1-4,10-18에 보면 야곱이 부모를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길에 하란 광야에서 하룻밤 돌베게 베고 잠자다가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이삭의 하나님이다.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고 하면서 감격했던 그 때를 잊어버리고 신앙이 나약해져 가므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 그 곳에 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창 31:40-42 참고) 또 전설에 의하면 삭개오가 가끔 말없이 집을 나가곤 해서 그의 아내가 뒤를 밟아 보니까 전에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만나던 것을 생각하고 그 나무에 물을 주고 그 나무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광야에서 혈혈단신으로 밤에 돌베개하고 기도할 때 하늘문이 열리며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던 환상을 보던 그 때를 생각하게 하기 위하여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 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어느 기도원에서 목사로서 처음으로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은사를 받던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해마다 그날이 되면 그 기도원에 가서 그 자리에 앉아서 며칠씩 기도하고 온다고 합니다.여러분은 처음 은혜 받고 감격스러웠던 때를 잊어버리고 있지나 않습니까 그 때의 첫열심과 첫사랑을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계 2:4-5에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면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경고했습니다.은혜를 잊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께 잘못된 죄인지 모릅니다.
사 1:3-4에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고 하나님이 탄식하셨습니다.
고후 12:5에 바울은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는 자랑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사도 바울은 늘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고 생각하면서 살기 때문에 자신을 딤전 1:12-16에 고백하기를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핍박자요,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고전 15:8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고 했습니다.내가 모든 사도보다 수고를 더 많이 했으나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고전 15:10)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격했던 그 때를 늘 잊지 말고 살아갑시다.기억하고 생각하고 물어 가면서 삽시다.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십니다.
3.축복 받던 때를 기억하라,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지금 이만큼 번창하고 잘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임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 축복 받던 벧엘로 올라가라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잊어버리면 우쭐대고 교만해지게 됩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늘 살기를 원한다면 매일매일 순간순간 하나님의 축복임을 기억하고 명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고후 3:5에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음식을 먹어도 이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옷을 입어도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자동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도 지금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태워주고 날라다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낼 때 늘 감사와 감격이 넘치고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명성이 높아져도 늘 자기는 이새의 말째 아들이요 양치는 목동이요 비천하고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였음을 늘 기억하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하나님은 다윗의 이러한 거짓없는 중심을 늘 기억하면서 다윗이 계속 그렇게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삼하 7:8-9에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고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처럼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듣게 된 다윗은 삼하 7:18에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하고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서 유명해지거나 부자가 되거나 높은 사람이 되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겸손해야 합니다.그런데 이 다윗왕도 잠깐 마귀 시험에 빠져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나 교만했던 일이 있어서 하나님이 괘씸하게 보신 적이 있습니다.
역대상 21:1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두목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서 내게 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이렇게 마귀 시험에 빠진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어 보고 군대의 수가 많은 것을(레위와 베냐민 사람을 계수하지 않은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만한 자가 110만,유다 중에 47만,합 157만명을 요압장군이 보고했던 것이다.) 자랑하고 교만한 마음이 생겼습니다.그래서 역대상 21:7에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대상 21:12에 삼년 기근 가 석 달을 대적에게 패하고 쫓기는 일 가 온역이 사흘동안 땅에 유행을 하여 이스라엘 백성 칠만 명이 죽었습니다.다윗이 잠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잊어버리고 사단의 격동에 빠져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신 8:17-18에 “두렵건데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기차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기차 안에는 백인과 흑인 노예들이 타고 있었는데 흑인 노예가 말을 안 듣는다고 백인이 칼을 집어들고 찔렀습니다.그때 같이 기차를 타고 가던 선교사 한분이 재빨리 손으로 칼을 막았습니다.흑인은 위기를 모면했으나 대신 선교사의 손바닥에 칼이 박혔습니다.그 선교사는 그 백인에게 오히려 노예의 값을 치뤄 주고 그 노예를 자유롭게 해 주었습니다.그랬더니 그 노예는 너무 고마워서 선교사에게 따라가서 평생 동안 선교사의 종노릇을 하겠다고 간청해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오랫동안 같이 지내다가 노예가 조금 생활이 편해지니까 가끔 선교사의 말을 안 듣곤 했습니다.그럴 때마다 이 선교사는 자기가 대신 다친 손바닥의 상처를 펴 보이면 과거의 일을 기억해서 누그러지곤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기억해야 겠습니까 우리의 억만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상처는 기억해야 됩니다.깊이 더 깊이 항상 기억하고 생각하고 물어 봐야 합니다.우리가 그 은혜를 잊어 버린다면 무서운 죄에 빠져 마귀의 종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과거의 고난 받던 때를 기억하고 하나님 만난 때를 기억하고 축복받던 때를 기억하고 생각하여 교만하여 지지 말고 겸비한 마음으로 믿음생활 잘 할수 있는 성도들이 됩시다.
이 세상 떠나는 최후 순간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생각하고 재확인하고 확신하면서 승리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