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금처럼 냉장고가 없던 조선시대에 나라에서는 겨울에 한강 물이 4치 곧 약 12cm 이상 두껍게 얼면
예조의 지휘 아래 군인과 노비들을 동원해 얼음을 깼습니다(채빙).
얼음 한 덩이는 가로 4척(1척=약 30.3cm), 세로 6척, 두께 1척 이상의 규격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얼음을 뜨고 저장하는 일은 쉽지 않았는데 얼음을 뜰 때 칡으로 꼰 새끼줄을 얼음 위에 깔아 놓아
사람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지요.
▲ 한강 채빙 사진(1929) ©《경강: 광나루에서 양화진까지》(서울역사박물관, 2018), 135쪽
그렇게 만든 얼음덩어리는 한강 가 두뭇개, 곧 지금의 성동구 옥수동의 동빙고와
지금의 서빙고동 둔지산(屯智山, 용산 미군기지 안) 기슭에 있었던 서빙고에 보관하였지요.
동빙고의 얼음은 주로 나라 제사용으로 쓰고, 서빙고의 얼음은 임금의 친척과 높은 벼슬아치들에게도 주었는데
활인서의 병자, 그리고 의금부 죄수들에게까지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에 대한 기록은 19세기 서울의 관청, 궁궐 풍속 등을 정리한 《한경지략(漢京識略)》의
궐외각사(闕外各司) 조항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서빙고의 얼음을 정당하게 나누어 주기 위해 관리들에게 '빙표(氷票)'라는 얼음 교환권을 지급했습니다.
관직의 높고 낮음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얼음의 양과 횟수가 달랐지요.
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한여름에는 활인서(국립의료기관)의 환자들, 전옥서의 죄수들,
그리고 나이가 많은 기로소에 들어간 퇴직 벼슬아치들에게도 더위를 이겨내라며 얼음을 지급하는 복지 제도가 있었습니다.
▲ 한강에서 채빙한 어름을 보관했던 '서빙고 터' 표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