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통 / 진해자
힘겹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이 있다. 삐쩍 마른 몸에 팔과 다리는 제멋대로 흔들린다. 얼굴 또한 많이 일그러져 있다. 하지만 티 없이 맑게 웃는 인상이 첫눈에 내 맘을 사로잡는다. “어서 오세요.” 얼른 일어서서 손님을 맞는다. 처음 보는 손님인 데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라 매우 낯설고 당황스럽다. 짐작건대 나이가 사십 정도인 듯하다.
보호자 없이 혼자 농협에 온 걸 보면 겉모습과는 달리 심한 지적장애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 생각도 잠시, 말을 하려는 순간 심하게 삐져나오는 혀 때문인지 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 뭐라고 열심히 하긴 하는데 전혀 소통되지 않는다.
“으으 어어” 손님의 요구에 얼른 응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한지 삐져나온 혀가 더욱 꼬인다. 답답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안되겠다 싶어 정신을 집중하면서 손님과 눈을 맞추어 본다. 사람은 눈을 보면 진실이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손님도 나의 뜻을 읽었는지 마음이 좀 가라앉는 눈치다. 메고 온 가방에서 통장과 도장을 꺼내어 쑥 내민다. 그리고는 불편한 손으로 글 쓰는 시늉을 해 보인다. 얼른 볼펜과 메모지를 건넸다. 손님의 얼굴이 환해진다.
메모지를 받아 보니 숫자가 적혀 있다. 숫자 네 자리는 비밀번호인 듯하다. 그 옆으로 ‘10000’이라고 적혀 있다. 또 그 아래로는 ‘100000’이라고 적혀 있다. 손님 눈을 주시하면서 물어본다. “손님, 만원권으로 십만 원 찾아가실 거예요?” 다행히 알아듣고 바로 대답이 온다. “으 어어” 하면서 손님의 입가가 실룩거린다.
그 손님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추운 겨울이었다. 칼바람을 맞으며 서투른 걸음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다. 이런 날은 정상인도 나다니기가 어려운데 불편한 몸으로 농협을 찾아온 용기에 조용히 격려를 보냈다. 코끝이 빨개진 게 몹시 추워 보였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권했다. 손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며 “으~으~어”를 반복한다. 아마 고맙다는 뜻일 것이다. 손님 접대용으로 드리는 알사탕 한 움큼을 호주머니에 슬며시 넣어 주었다.
손님이 가고 난 후 직원들이 한마디씩 한다.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남의 속을 잘 알아차린단다. 어느 직원은 몇 번을 거래해도 해석이 서투른데, 손님의 가려운 곳을 한 번에 시원하게 긁어 준다고 하니 괜스레 마음이 뿌듯해진다.
듣고 보니 그리 싫지는 않은 말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 손님을 보고 당황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진심으로 마음과 귀를 여니 말이 아닌 마음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청각 장애인과 언어 장애인이 말을 대신하여 몸짓이나 손짓으로 표현하는 것이 수화이다.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편할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온다.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요즘 TV를 보면 많은 사람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어들을 마구 쏟아 낸다. 그중에서도 나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의 회의 장면을 보면 저질스러운 말과 행동이 화면을 덮는 경우가 많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럴 땐 아이들이 볼까 전원을 얼른 꺼버린다. 어두워진 화면만큼이나 마음이 착잡해진다.
성서에는 유명한 바벨탑 이야기가 나온다. 원래 인간은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고 번영하여 마침내 하늘에 닿을 수 있는 탑을 건설하려고 했다. 하늘에까지 닿고자 하는 인간의 오만함과 교만함에 놀란 하느님은 언어를 뒤섞어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한다. 많은 형벌 중에서 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하는 벌을 내렸을까 궁금했다. 인간의 나쁜 생각과 그릇된 욕망이 모두 말의 잘못된 사용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했고, 그리하여 언어의 분열과 혼란을 주어 뿔뿔이 흩어지게 하였던 것이다.
신으로부터 제각기 다른 언어를 부여받게 된 인간에게 최대의 과제는 소통이었다. 신은 인간에게 다른 언어를 부여함으로써 서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후 인간은 삶에 있어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수단인가를 깨닫게 되었고, 언어의 차이로 인해 분열하고 갈등하는 존재가 되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언어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가족과 동료와 고객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고립감을 느낀다. 소통의 부재는 나와 타인 사이에 커다란 강을 만든다. 그 사이를 배회하면서 우리를 이어줄 완전한 언어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이런 소통의 부재가 언제부터 인간의 운명이 되어버린 것인가.
오늘도 몸을 제멋대로 흔들며 그 손님이 들어온다. 항상 웃는 듯 편안한 얼굴, 아니 항상 웃고 있다. 직업의 특성상 늘 웃어야 하는 나와는 정말 다른 웃음이다. 마음에서 솟아나는 샘물처럼 맑다. 그래서 그 미소가 한없이 아름답다.
“어서 오세요.” 직업 때문이 아닌 진심으로 환한 미소를 손님에게 보낸다. 자석에 끌리듯 내 앞으로 다가온다. “으으 어어” 하면서 통장 두 개와 도장, 그리고 쪽지를 건넨다. 이번 주문은 꽤 복잡하다. 자그마한 쪽지에는 여전히 숫자 몇 개 적혀 있는 게 고작이지만, 나는 어려운 암호를 풀 듯 한 번에 알아맞혔다. 잔액이 많은 통장에서 돈을 인출 후 정기적금통장을 만들고, 나머지는 다른 통장에 입금하고, 또 다른 나머지는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원활한 의사소통 덕분에 빠른 일 처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손님이 또 한 번 환하게 웃는다. 인간에게 언어가 부질없을 때가 있다. 말 없는 따뜻한 눈길과 손길이 얼마나 진실하고 인간적인가.
손님과 나만이 통하는 마음의 언어, 그리고 주고받는 미소가 있어 사무실이 한층 더 환해진다.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마음의 소통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