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p를 본 순간, 마치 첫사랑의 그녀를 본 것 같았다.
나로서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비와는 전혀 상관도 없이 살아왔는데, 대학 시절이나 일본 유학 시절에는, 일년 내내 청바지와 티셔츠만으로 생활했다. 심지어 속옷도 입지 않았고 양말도 신지 않았다.
가능한 세탁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극도로 실용적으로.
사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런데, jeep 는 나를 물신숭배의 황홀경으로 몰아 넣었다.
게다가 난, 정치 권력이나 전쟁의 하수인 군대에 대해서는 지독한 거부감까지 있었는데,
어려서는 어머니가 옷을 사 주었고, 결혼해서는 아내가 옷을 사주지 않으면 옷을 산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었다.
아내에게 당장 jeep를 사러 가자고 하니까, 아내가 놀라서 나를 쳐다 보았다. 자동차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
나는 특히, 검은색 세단을 타고 다니면서 거들먹 거리는 인간들에 대해서는 혐오감이 들었다.
강원도에서 첨으로 jeep를 샀을 것이다. 게다가 국방색으로.
jeep 에 대한 기억이 또 하나 있다.
필리핀의 ‘지프니’이다.
미국의 군용 트럭 엔진을 이용해서, 스덴과 함석을 이용해서 겉 모습을 만들어서, 필리핀의 택시와 버스의 역할을 했던 차.
마닐라에 가면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차가, 지프니 다.
두마게티에서 리조트를 할 때는, 지프니를 200 만원 주고 사고, 운전사를 한달에 2 만원 주고 고용을 해서, 다이빙이 끝나면, 두마게티 시내에 술 마시러 돌아다녔다.
두마게티 공항까지 손님 픽업용이라는 것은 구실에 불과했다.
아마, 지프니에서 영감을 받았는가 보다.
아니면, 내 속에 감추어져 있어, 숨어있는, 숨어있는, 숨어있던 마초가 드디어 고개를 내밀었던 것일지도.
내 유전자 속에 마초가 은밀하게 도사리고 있었던 걸까.
오늘은, military look 반팔 티를 네벌 샀다.
앞으로 나의 인생은 마초의 삶이 될 것인가.
나의 신념과는 상관도 없이, 난 마초가 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