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홉스골로
어제보다는 먼 거리인데다가 홉스골(Khovsgol)까지는 길도 많이 덜컹대야 한다고 운전사가 말했다. 우리의 하이라이트(highlight)에 이르는 만큼 오늘은 그래도 신나는 날이다. 남한보다 좀 더 커서 10만 평방킬로미터가 넘는 홉스골 주(아이막)는 몽고의 북단 러시아 접경지역인데 수정처럼 맑은 큰 호수로 인하여 몽골 제일의 화미(華美)한 관광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홉스골 호)
‘홉‘자를 원음대로 하려면 가래침 뱉을 때와 같이 목에서부터 키읔과 히읗의 섞인 소리를 한꺼번에 내야하므로 영어 표기에서는 K와 H를 함께 쓰는 것이다. 35개의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복합적인 음운(音韻)을 내는 독특한 발음 때문인데 그 현대의 글자는 서양의 로마자이나 실상은 러시아어의 영향으로 희랍 알파벳을 닮은 것도 섞여 있었다.
물론 내몽고와 같은 중국 쪽에 사는 몽골족들은 옛날 글자를 아직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티베트나 만주(滿洲) 글자와 비슷하게 막대 하나에다 꼬불꼬불 수식하는 모양을 그냥 그리지만 몽골에서는 공산당 전성기에 소련의 영향을 입어 서양식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개방 된지도 얼마 안 된 사회에서 영어를 제법 잘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았다.
(위쪽의 옛 몽골문자와 아래의 서양화된 현대 알파벳으로 표기한 숫자 )
울란바터(Ulaanbaatar)에서 곧 바로 간다면야 더 빨랐겠지만 우리는 하루 한 주(州)씩 드라이브를 했으니 첫 날은 셀렝게(Selenge) 주의 서남부를 기역자처럼 거꾸로 꺾어 아말바이야스갈란트(Amarbayasgalant) 승원(僧院) 옆에서 숙박했고, 둘째 날은 불간(Bulgan) 주를 거의 다 달려서 쿠탁 온도르(Khutag Ondor)의 셀렝게 강변에서 잤다.
사흘째인 오늘 아침엔 한 시간을 오니 홉스골 주가 되었다. 풀밭을 마구 달려서 길은 여러 갈래였으니 고속도로라면 4차선도 되겠네. 자유한 들판을 달리던 차량들이 한 길이 나빠지면 옆으로 초원을 또 지나다녀서 통로를 더하였으니 그러기가 여럿이었다는 말이다. 임자 없는 땅이라 그랬겠지만 정작 도로를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면 그렇게 일탈(逸脫)할 수는 없었을 게다.
모든 토지는 국가의 소유라는 공산주의 개념을 시행하고 있었으며 시민은 누구나 살아 갈 지정된 양의 땅을 무상으로 받을 권리가 있다. 물론 대도시의 경우는 원하는 땅을 쉽게 얻을 수가 없지만 땅 많은 이 나라는 대부분의 시골에서 그리할 수가 있다고 했다. 초원도 지정된 임자가 따로 없어 누구든지 가축을 몰고 오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풀이 좋은 곳으로 일 년에도 몇 번씩 이동할 수가 있게 된다.
(모론/Moron으로 가는 한 도로의 모습)
점심을 위해서는 또 다시 소풍 나온 것 같이 사방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고개위에다 자리를 폈다. 라면을 먹으려고 버너에 불을 붙이는데 바람이 말긴다, 경험자인 네마가 자동차 뒤 타이어 옆으로 가져가서 버너의 케이스를 병풍 같이 둘러막고서야 켤 수 있었다.
바람이 써늘하여 한낮인데도 재킷을 입어야할 정도라 따끈한 라면 국물이 좋았다. 쓰레기를 싸 모아 담고는 길 아닌 풀 비탈을 운전사가 몰아내리니 실로 자연 그대로에다가 야성적인 모습이 되었다.
홉스골 주도(州都)인 모론(Moron)은 오후가 기울었을 때에 지나게 되었다. 애초에는 거기서 하루를 경야(經夜)하기로 되어있었으나 거길 건너뛰는 대신 홉스골 공원에서 사흘을 자기로 변경했던 곳이었다. 그래도 이메일을 점검하려고 우리는 한 작은 인터넷 카페에 섰으나 한글은 쓸 수가 없고 속도도 많이 느렸다. 그나마도 홉스골로 들어가면 인터넷을 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홉스골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입장권은 3천 토그록씩인데 운전사 네마가 우릴 보고는 한 눈을 감아 윙크를 하고서는 한 사람은 안내자(guide)라고 말하여 다섯 명만 냈으니 운전사와 가이드는 면비(免費)인 모양이다.
하트갈(Khatgal)은 모론(Moron)에서 100km였고 홉스골 입구를 들어오면서 만나는 작은 동네이다. 구소련 시기에 기름 실은 트럭들이 시베리아로 드나들 때 여기서 숙박하곤 했었단다. 비행장이 있는 모론에서 쉬지 않으면 이 마을에 묵었다가 가는 곳이었다. 바쁜 사람은 울란바터에서 모론으로 날아와 다시 작은 하트갈로 비행할 수 있는 것 같다.
MS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해는 지고 없었는데 사람들은 친절하게 맞이하였으며 여러모로 서비스도 참 좋았다. 불 피울 나무는 충분하였고 처음에도 붙여주어 온 밤이 따뜻하였고 다음날 아침에도 일찍 와서 꺼진 난로를 다시 피워 주었다. 식사도 이제까지의 게르 음식 중에선 제일 나았다.
(하트갈/Khatgal에서 숙박했던 Monkh Saridag 게르/ger)
홉스골 호는 그러니까 100리 너비에 길이가 대략 300리 이상이라고 보면 되겠고, 605 평방 km인 우리 서울의 네 배가 넘는 크기이다. 들판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산만도 열 개 이상 주변으로 둘러있고 소나무와 시베리아 낙엽송 같은 침엽수가 우거진 산속 경치를 이루기 때문에 몽고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라는 것이다.
세상에 개방의 문을 연지가 불과 10여 년인데 많은 외국인들이 여길 찾아오게 되어 몽고정부는 1992년에 홉스골 누르(Khovsgol Nuur) 국립공원을 지정한 면적(83만 ha.)이 우리의 전라북도를 능가하였다.
(홉스골에서 넘쳐 흐르는 하트갈의 에긴/Egiin 강)
몽고에서는 두 번째로 큰데 제일 크면서 얕은 호수가 서쪽에 하나 있으나 짠물이라서 담수호(淡水湖)로는 이것이 제일이다. 가장 깊은 곳은 자그마치 262미터나 된다니 중앙아시아에서는 제일 깊은 호수이며 전 세계의 맑은 물 수장 양의 1%도 더 될 정도라니 청결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50년이 못가서 물 때문에 국제적 분쟁이 심각해 질 것이라는 경고를 하기도 하는데 몽골은 이용만 잘 한다면 이 호수만으로도 마실 물은 넉넉하고도 엄청 남겠다. 그 생수의 저장양이 세계에서 14번째로 커서 380조 리터라고 계산 한다니까 말이다.
유라시아(Eurasia)에서는 가장 큰 시베리아의 바이칼(Baikal) 호수보다는 2천3백만 년 뒤에 생겨서 그의 동생 호수인 셈이다. 여기서 바이칼 호수는 동북쪽으로 195km 거리에 있고 홉스골에서 넘쳐나는 물은 남쪽으로 흘렀다가 셀렝게 강이 되어 마침내 북쪽으로 그 형님 호수에 다시 들어간다. 여름에 사람이 제일 많지만 사방에 눈 덮이고 가장 아름다운 하늘은 맑은 겨울날이라고 했다.
이 때는 120cm까지 호수의 표면이 얼 정도로 춥지만 명경 같은 얼음 밑으로 투명한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일품이라고 말들하고 있다. 이리하여 전에는 러시아로 올라가던 트럭들이 모두 그 얼음 위를 겨울이면 다녔다는데 1990년부터는 금지했다.
물을 오염시키기도 하고 그간에 호수에 빠진 트럭이 40여대나 된다니까. 6월초까지도 어름이 다 녹지 않아 봄이 더디지만 이 때가 또한 방문할 좋은 기회가 된다니 여긴 사철 언제라도 좋은 모양이다.
여러 가지 생선, 북극송어(arctic trout)와 철갑상어(sturgeon) 등 수많은 민물고기들이 풍성하고, 검은 황새(black stork)와 머리에 막대무늬의 거위(bar-headed geese) 및 바이칼 물오리(Baikal teal)와 멧닭 등 200종 이상의 각가지 조류들이 서식하며, 무스(moose)나 곰은 말할 것도 없고
큰 뿔 양(argali)과 산 염소(ibex)며 너구리 종류인 검은담비(sabel)까지 온갖 야생 동물들이 또한 이 주변에 다양하다고 했다. 거기다가 호반의 초원에는 말들과 야크와 양들이 풀을 뜯고 산타클로즈가 타고 온다는 북극사슴(reindeer)의 순록(馴鹿)까지 관광객들을 위하여 길들여 키우고 있다.
한길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