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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폴란드와 헝가리의 외교정책 구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시작된 뒤 폴란드와 헝가리의 외교정책 노선이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폴란드는 대미동맹 외교를 강화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헝가리는 러시아와 협력체계를 고수하며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제재에 대해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새로운 결과이기보다는 기존 양국의 외교정책이 현실에서 심화 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폴란드는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군사력을 강화하여 자주국방 체계와 함께 대미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고자 힘쓰고 있다. 반면 헝가리는 중재자까지는 어렵더라도 편승과 동맹 사이에 서서 EU의 기조와 다소 대비되는 노선을 선택했다.
본고에서는 이렇게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폴란드와 헝가리의 대외정책을 두가지 관점에서 분석해 보려고 한다. 역사적 맥락에서는 외교적 특징과 민족적 특징을 분석하고, 현실적 맥락에서는 지정학 특징과 정부의 특징을 나누어 논하고자 한다. 나아가 양국의 외교정책에 따른 한계와 가능성을 진단해 본다.
역사적 맥락과 외교적 특징
폴란드와 헝가리는 1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추었고,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소련의 사회주의화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1989년이 되어서야 민주적 정부를 자주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공통점 속에서 흔히 동구권 또는 동부유럽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양국은 중부유럽의 역사에서는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행위자였다. 폴란드는 리투아니아와 연합하여 17세기까지 동부유럽(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서부, 흑해 연안)까지 위세를 떨쳤고, 헝가리 역시 합스부르크 제국과 오스트리아를 통한 연합 왕국으로서 중부유럽의 강자로 군림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근현대적 시민사회는 굴욕의 역사로 점철된다. 폴란드는 18세기 말부터 123년 동안 주변국가(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러시아)에 의해 분할 점령을 당했다. 그리고 독립한 지 불과 20여 년 만에 다시 나치 독일과 소련에 침공당하며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그리고 소련에 의한 해방과 함께 위성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주도의 이중왕국을 경험하며 주권의 자주적 활용을 기대해 왔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면서 영토와 인구를 대거 잃게 되었고, 2차 세계대전에서도 나치독일과 협력함으로써 패전을 경험하게 된다.
과거 폴란드는 중부유럽에서 동맹의 형태보다는 단독 행위자로서 자주적 대외정책의 행보를 보였다. 그럼으로써 주변 강대국들의 흥망에 따라 국가적 안위가 결정되는 상황을 경험하였다. 근대에는 러시아와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의 흥망에 따라 국가의 주권체계가 결정되었고, 현대에 들어서는 독일과 소련의 흥망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단독적 행위자로서 자주권을 지켜갈 때에는 국가적 안보능력이 절대적으로 결정적이겠지만, 폴란드의 역사에서는 국가적 안보능력을 지켜나갔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폴란드가 민주적 시민사회로 체제전환을 한 오늘날에 NATO와 EU,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며 러시아를 견제하는 모습은 과거의 단독적 행위자로서 실패했던 경험을 답습하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편승이 자주권의 희생을 담보하기에, 폴란드는 자주권을 최대한으로 지켜나가되 동맹을 통한 지역 세력균형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헝가리는 동맹 또는 연합을 통해 주권을 유지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합스부르크 제국과 오스트리아와 결성한 이중왕국, 나치독일과의 협력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들 모두 세계대전을 통해 패전하고 해체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그 결과 연합체계에서 누려왔던 이권들(영토와 인구)을 상실하게 되었다. 특히 1920년의 트리아농 조약(Treaty of Trianon)으로 헝가리는 300만 명의 자국민을 주변국 국민으로 넘기게 되었다. 이는 결국 주변국과 신중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숙제로 남았다. 소련의 위성국가에서 벗어난 오늘날 헝가리는 지역협력체인 EU와 안보동맹체인 NATO 모두에 속해 있지만, 이와 더불어 이들의 정책에 편승하지도 않으려는 독립적 요소를 보이기도 한다. 이는 과거 동맹과 편승에 의한 실패 경험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결과로 볼 수 있다.
역사적 맥락과 민족적 특징
폴란드는 중세시기부터 유대인을 포함한 다양한 주변국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리투아니아인, 러시아인, 유대인이 함께 모여 살던 다민족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795년 러시아와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해 분할되어 통치를 받으면서 많은 이들이 미국과 프랑스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300만 명에 가까운 유대인이 폴란드 땅에서 희생되었다. 소련에 의해서는 30만 명 이상이 시베리아와 만주, 연해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이러한 역사를 거치면서 외부적 요소에 의해 단일민족이 되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서부는 오랜 기간 폴란드 문화가 공존하던 지역이었지만, 소련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는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정치구도에서 지역적 특색이 서부와 동부로 나뉘는 데에 결정적인 역사적 배경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폴란드 정부가 민주화가 필요한 주변국가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꼽는 데에는 지역의 안정 측면도 있지만, 역사적 배경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폴란드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민주적 시민사회연합은 러시아에 최대의 위협요소로 자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자르 민족으로 주로 구성된 헝가리는 앞서 언급한 트리아농 조약으로 수백만 명의 동족이 이산(離散)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는 헝가리 민족의 보호 차원에서 친선을 도모해야 한다. 소비에트 연방 체제에서는 사회주의의 국제화 측면에서 민족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을 수 있겠지만, 소련의 해체 뒤에는 지역의 민족 문제가 민감한 사안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헝가리는 체제전환 뒤에 주변국들과 차례로 평화적 기본조약을 체결하며 상호 소수민족을 존중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이것은 지역 안정은 물론 EU 가입에 대한 선결 조건 이행 차원에서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따라서 세르비아를 포함한 주변국과의 관계는 러시아를 포함한 슬라브 민족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에 헝가리의 민족 문제는 러시아와 관계를 위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영역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마자르 민족의 역사적 유래와 활동을 고려한다면, 헝가리는 중앙아시아와 몽골, 오스만 투르크와 교류한 전통을 지니기에 폴란드의 대서양 지향성과 다른, 유라시아 지향성을 보여줄 수 있다.
현실적 맥락과 지정학 특징
폴란드는 러시아와 독일, 오스트리아의 흥망에 따라 국가의 존폐가 좌우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러시아와 서방의 긴장구도 사이에 위치하여 국가의 존립을 고민해야 한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 맞닿은 형세는 그 긴장도를 더 높인다고 할 수 있다. 체제전환 뒤 폴란드 정부는 미국, 서유럽과 관계 강화를 꾀하며 대서양 지향성을 드러내었다. 1999년 NATO에 가입하고, 2004년 EU에 가입하며 국가철학을 현실로 만들었다. 특히 2003년에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하였고, 이후에는 미군을 자국 영토에 주둔시키며 지역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에 비해 대미관계를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는 원자력 협력, 천연자원 수급 협력,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한국과의 군사 협력 역시 강화하고 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부터 외무부 전략발표를 통해 러시아를 자국 안보의 최대 위기로 지정하였다1). 이를 견제하기 위해 가장 먼저 대미동맹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몰도바의 경제개방과 민주사회 성숙을 위해 후방 지원을 자처하고 있다. 폴란드의 과거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정부의 열망을 보이되, 그 지렛대로 대미동맹을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와중에 발발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폴란드가 그간 준비해 온 프로그램의 활성화 기회라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돕되, 폴란드화 또는 서방화가 가능한 재건을 유도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과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며 미군의 영구주둔, 국방비 고도지출, 무기의 현대화를 이룩하고자 한다. 역내 세력 강화를 목표로 하되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최대한 동원하려는 폴란드 정부의 의지가 엿보인다.
헝가리는 마자르 민족으로서 슬라브 국가들에 둘러싸인 섬의 형태를 보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갈등관계, 폴란드와 러시아 간 갈등 관계를 모두 포함한 슬라브 민족 내 세력 우위를 놓고 벌이는 긴장과 경쟁 관계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다. 지역 협력체를 통해 지역의 안정화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경쟁과 대립 구도에서는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헝가리 역시 폴란드와 동시에 NATO와 EU에 가입했지만, 폴란드가 보여주는 대미동맹관계와는 다른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유럽이 러시아로부터 천연자원 수입을 줄여 나가고 있는 반면 헝가리는 오히려 유지, 활성화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사법개혁과 언론개혁의 이름으로 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EU와 마찰을 보이고 있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도 동참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밝혀 왔다. 이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사태부터 견지해 온 입장이다.
러시아와 지리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고, 국가적 안보능력 또한 중소국과 가까운 면모를 보이는 것을 이유로 헝가리 정부는 분쟁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대외정책을 선택할 수 있다. 패권 간 경쟁구도의 근거리에 위치하지 않은 것이 헝가리 대외정책 결정의 한 요소라 볼 수 있다. 오히려 동방정책(Eastern Opening)을 통해 실용적 경제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2). 중앙아시아와 중국, 러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모두 아우르는 경제 지형을 대외정책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실제로 러시아와 천연가스, 원자력에 대한 협력을 오랜 기간 보여주면서 다른 유럽 국가들의 행보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현실적 맥락과 정부의 특징
폴란드와 헝가리 공히 체제전환 이후 사회주의 세력이 집권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양국 모두 친서방 정책을 취하며 NATO와 EU에 가입하였다. 대외정책에서 지역협력과 동맹체제에는 일관성을 보이고 있지만, 운영방식에서는 집권당마다 차이가 있다. 현재 폴란드의 집권당인 법과정의당(PiS)은 우파적 성격을 띠고 있고, 과거 정부 또는 야당과 대비했을 때, 대외정책의 원칙이 국가주의적으로 뚜렷하다. 폴란드의 역내 세력 확장과 부흥을 꿈꾸며 대서양 지향성을 강화하고 있다. 과거 집권당에 비해 러시아와 대립구도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또한 과거 체제청산에 적극성을 보이며 사법부와 언론에 대한 태도에서 EU와 갈등을 보이고 있다.
헝가리의 집권당인 피데스(Fidesz)는 다소 유동적 성격을 지닌다. 과거 1990년대 초반 집권시기에는 자유주의적 면모를 보이다가도 2010년대 재집권 시기에는 우파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실용성과 불안정성을 모두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집권당인 사회당과 차이를 본다면, 현 집권당은 집권체제의 강화를 위한 행보를 보이며 EU와 역시 갈등 관계에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 관계 설정에서는 과거 사회당보다 더욱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외정책의 한계와 가능성
폴란드의 대외정책은 대서양 지향성을 통한 역내 세력 강화를 목표로 두고 있다. 대서양 지향성을 통해 대미동맹관계는 강화하겠지만, 러시아와 긴장관계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역내 세력 강화를 위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조지아 문제에 깊이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정부가 보이고 있는데, 이럴수록 러시아와 관계 역시 긴장도가 높아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미국과 투자 협력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 전통적 강대국과 견주어 재래식 군사력이 강화될 것이다.
헝가리의 대외정책은 유라시아 지향성을 통한 실용적 경제구도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되 군사적 긴장관계에서는 거리를 두겠지만, 역내 협력 구도의 약화를 가져올 것이다. 즉 EU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동인으로서 작용할 것이고, 나아가 NATO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양국 모두 집권당의 변화에 따른 변수를 가지고 있다. 현재 폴란드의 야당이 집권할 경우, 러시아와 긴장도를 낮추기 위한 실용적 방식을 모색할 것이다. 군사력 강화를 경계하고 EU 시민주의를 확산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헝가리의 경우 집권여당이 바뀐다면, EU 내에서 경제협력과 제재참여를 보다 활성화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교체의 가능성이 여전히 모호하고, 기존에 구축된 구도를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폴란드와 헝가리의 대외정책 구도는 당분간 지속되리라 본다.
*각주
1) MSZ RP. “Strategia Polskiej Polityki Zagranicznej 2017-2021.” MSZ RP. 2017.
2) István Tarrósy and Vörös Zoltán. “Hungary’s Pragmatic Foreign Policy in a Post-American World,” Politics in Central Europe 16-1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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