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님들은 어제와 그제 휴일을 어떻게 잘 지내셨나요?
등산이나 여행가서 봄꽃 구경을 하셨든, 결혼식과 같은 애경사가 있어서 바쁘셨든
뜻깊은 시간을 보내셨겠죠.
저도 나름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1주 전처럼 등산가서 멋진 꽃구경을 한건 아니었지만,
토요일은 쇼핑을 다녀온 외에는 모처럼 가족과 집에서 쉬면서 오붓한 날을 보냈고,
어제 주일에는 새벽에 본당에서 주일미사를 참례하여 전례위원으로 독서봉독을 하였고,
오후에는 인터넷 야후(yahoo)의 어느 중년카페 정기모임이 있어서 다녀왔어요.
전국 여기저기에서 50여분이란 많은 카페회원님들께서 대전에 모이셨는데,
작년 모임에서 만났던 회원님들도 계셨고, 처음 뵙는 분들도 많았어요.
평일에 날마다 이어지는 제 글을 재밌게 보고 계시다면서 칭찬을 많이 하시던데,
무척 감사했지요.
제 찍사(=사진사) 역할은 변함없이 계속 되었습니다.
이 모임이야기는 정리하여 몇 일 후에나 하겠어요.
지난 18일 있었던 개신교 카페 회원 목사ㆍ권사ㆍ집사님들과의 만남이야기도 아직 못 했건만...
제가 인터넷 여기저기 수많은 곳에서 활동을 하다보니, 요즘은 정기모임ㆍ번개모임이 거의 매주 있다시피 해요.
모두 참석할 수는 없겠지만, 저는 가능하면 여러 님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합니다.
지금 이 글을 봐주시는 님들과도 언제 함 만나면 좋겠죠. (ㅎㅎㅎ)
별로 잘 나지 못했고, 그저 평범한 저이지만, 제 글을 잘 봐주시고 격려하시는 님들과 함께하니 기쁩니다.
이제 오늘의 본론으로 가겠어요.
저는 지난주 주일이던 16일 저녁 여덟시에 행사가 끝나자 곧바로 집에 갈까 하다가
모처럼 유성에 왔으니, 그전에 살았던 곳을 둘러보고 싶었어요.
사실, 같은 대전 시내인데도 시내 은행동ㆍ대흥동 같은 원도심 중심가 쪽으로는 직장이 있어 자주 다녀도 유성쪽으로는 거의 안 다녔었죠.
그래서, 유성시장을 들러보고는 서울에서 이사와 살았던 유성초등학교옆 동네를 갔다죠.
그런데...
제가 살았던 집은 물론 동네가 온통 아파트신축공사현장에 들어가 모두 철거되었고,
신축중인 아파트만 보이는 거였어요.
허무한 심정이라니...
대전에 처음 와서 부모님과 살았던 집(남의 집에서 셋방살이였지만...)이 있던 곳인데...
유성시장 안에서 살았던 다른 집은 다행히 남아있었지만...
저는 날이 저물어 어두워진 아파트신축공사장 옆길로 빙 돌아서 호남고속도로아래 굴다리로
건너편에 있는 다른 집에도 가봤어요.
오래전 기억을 되새겨 찾았건만, 그 집은 없어지고 지금은 공터가 되어있던데...
그 집은 아주머님과 따님이 살았었는데, 그들에게는 “정신지체”가 있었어요.
남들은 “정신이상자”라고 했었는데, 그들이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을지...?
제 어머님께서 아버님과 저희 자식 둘을 서울에 두고, 혼자 셋방살이 하셨던 집이었구요.
제 어머니가 대덕연구단지 생길때 서울 홍릉에서 이전해 오는 연구소 따라 저희 가족들을
두고 홀로 고생하셨었거든요.
제 어머니가 세 살았던 집이 있던 공터 앞의 돼지우리는 비어있는 채로 그냥 남아있어서 30년 전을 기억하게 해주었어요.
저는 회식 후에 에틸알코올로 전신소독 확실히 한 몸으로도 기왕에 다니는 것,
그전 회상을 더 하고자 호남고속도로 유성I.C.옆의 나지막한 동산에도 올라갔어요.
그런데, 큰 바위가 드문드문 있고, 잡초가 자라서 마치 잔디가 깔려있는 운동장처럼 아이들이 놀기 좋았고, 서울에서 이사 와서 대학시절 당시 제가 키웠던 개(멍숙이와 일남이)를
데리고 놀러 다녔고, 그 녀석들이 죽은 다음에 묻어주었던 곳을 가보니 못 찾겠던데,
일남이 묻은 곳은 아얘 아파트 신축 공사장으로 알아볼 수 없게 되어있고,
그 어미인 멍숙이를 묻은 곳은 오랜 기간 지났어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저는 사진을 찍었지요.
“멍숙이와 일남”이는 제가 대학졸업반이던 1982년까지 키웠던 “애완견”이었습니다.
얼마전 제가 개이야기를 하면서, 저희가 고향에서 키웠던 개 “베니”이야기를 했었는 데,
“베니”는 식용으로 키웠던 누렁이 였고,
여기서의 “멍숙이와 일남”이는 식용이 아닌 순수한 애완견이었어요.
애완견 “찐”종류라면 아시려나요?
“멍숙이와 일남”이 이야기도 언제 시리즈로 하겠어요. 기대하시길... (하하하)
저는 여건만 가능하면, 언제든 애완견을 다시 키우고 싶어요.
개 뿐 만아니라 애완동물을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님들의 마음을 저도 잘 알고 있죠.
그전 시절 회상에 젖었던 저는 아파트 신축부지 옆에 철거를 면한 집에 계신 분에게 언제
여기가 이렇게 변했냐고 여쭈니
2년전 봄부터 철거되고 아파트공사가 시작되었다 하시던데, 저는 유성에서 가까운
서구 월평동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전혀 몰랐으니... (ㅠㅠㅠ)
불량주택이 철거되고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는게 어찌보면 지역발전을 위한 좋은 일이라
하겠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이 깃든 곳이 사라진 게 아쉬워요.
제가 유성에서 살았던 때는 시장 앞까지 대부분 논이고 농촌 풍경이었었는데...
지금은 대도시 번화가가 되었어요.
저는 산을 내려와 유성성당으로 걸어갔어요.
제가 ’72년 성탄때 고향인 경기도 동두천성당에서 성세성사(=영세,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된 이후,
서울 청량리성당, 대전 유성성당, 충북 청주 사직동성당, 충북 보은성당,
대전 도마동성당, 대사동성당, 갈마동성당, 월평동성당을 거쳐, 현재의 만년동본당까지.
제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쉰 한번을 이사 다녔던 듯이, 본당도 여러 번 옮겨 다녔거든요.
셋방살이의 어려움을 저만큼 겪은 분도 드믈 겁니다.
아참, 우리 신자들은 잘 아시겠지만, 신자가 아닌 분들은 이해가 안 되실 텐데,
"성당(=ecclesia)은 가톨릭(천주교회) 교회당으로, 하느님 경배를 위해 지정된 거룩한 건물”을 의미합니다.
“본당(=parochia)은 교구장에 의해 설정된 일정한 지역신자들의 공동체이며, 본당 신부님에게 사목이 맡겨진 교구의 한부분”을 뜻합니다.
그래서, 제게는 “만년동성당”이 본당이죠.
유성 신자 분께는 유성성당이 그분의 본당이 되는거구요.
당연히 예전에 제가 유성에서 살고 있을 때는, 교적이 유성성당에 있었으니 당연히 본당이 유성성당이었구요.
물론, 자신의 본당이 어느 성당이더라도 우리 신자들은 모두 한 형제자매입니다.
제가 역마살 뻗힌 듯이 이사 다니며 어렵게 살아온 지난날이었지만,
그래도 한결같이 제 신앙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온 때문에 우리 주 하느님께서 축복과 은총을 주셨다고 믿어요.
님들도 어떤 신앙이든 좋으니, 종교를 가지시고 올바른 믿음으로 열심한 생활하시길...
이미 믿음 갖고 계신 분들은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구요.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알라님이든 한얼님이든... 진실로 믿고 의지하면 (불가에서는 귀의(歸依)라고 하시죠?) 믿음의 절대자께서는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보람을 찾게 해 주시죠.
저도 아직 많은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어도 자주 실감합니다.
제가 청주공단 월세 3.5평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말로 표현 못할 힘든 날이 많았지만,
한결 같은 믿음을 갖고 열심히 살아온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믿지요.
그날 저는 유성성당에 17년만에 간 거 였어요.
’89년 2월 제가 도마동에서 따로 살 때 어머님과 같이 사시던 제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때 장례미사를 어머님의 본당이었던 유성성당에서 드렸었거든요.
그러고, 생활에 바쁘고 제 본당이 있다보니 유성에 갈일이 별로 없었죠.
그랬다가 지난 주에 계룡산 등산후 회식 끝내고 간 “저”였으니...
오랜만에 갔지만, “유성성당”을 바로 찾아갔어요.
성당건물 외관도 17년전과 달라지지 않았고, 성당 옆 사제관도 그대로 였구요.
마침, 사제관 전등이 켜져 있어 신부님께 인사나 드리고 가야겠다며 초인종을 눌렀는데,
외출중이신지 응답이 없었어요.
그래서, 성당과 사제관 사이에 있는 성모님상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드렸습니다.
유성에서 가까운 월평동에서 살면서도 17년동안 못 와서 죄송하다며,
어머님께 매달려 용서 구하는 아들 처럼요.
앞으로 자주는 아니라도, 제 본당 뿐만아니라, 그전에 다녔던 대전시내 유성ㆍ도마동ㆍ대사동 성당에도 가끔 가보려 해요.
떠난 지 오래되어 저를 아는 신자 형제자매님들이 별로 없으시겠지만,
“사람을 보고 가는 게 아니고 주님을 보고 가는 것”이기에
제가 가면 하느님도 기뻐하시겠죠.
물론, 대흥동주교좌성당은 제 본당이 아니었어도 가끔 가지만요. (하하하)
오늘은 4월24일입니다.
즐거운 한주를 밝게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내일 글과 모레 글까지 미리 예고하겠어요.
내일(25일)은 제 모친 박아가다께서 불행하게 돌아가신지 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옛날 조상님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3년상을 치르셨는데,
바쁜 현대사회 생활에서 그렇게 하진 못해도 그 정신자세는 간직해야겠죠.
그래서 내일은 제 어머님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하겠습니다.
벌써 제 모친의 피눈물 나도록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을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
모레(26일)에는 지난주 화요일인 18일에 있었던 개신교 목사ㆍ권사ㆍ집사님들과 함께 했던 카페 정기모임에서의 만남이야기를,
글피(27일)는 어제 있었던 중년카페 모임이야기를 하려는데, 다른 일이 또 안생기려나...?
제가 대부분은 다음날 글을 예고 않고 그냥 올려 드리는 데,
그래도 궁금해 하시는 님들이 많다시는 건, 특별히 안내해 드립니다.
오늘은 무슨 글이 있을까 하고 기대감을 가지시는게 더 좋겠는데요? (하하하)
그럼, 오늘도 좋은 날 만드시구요~!!!
이번 주에도 기쁘고 행복한 일 많아 지셔야죠.
샬롬~!!!
첫댓글 활동을 많이 하시나보네요...보기조아욤^^
네, 감사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