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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과 정수 제 14차 정기 답사-망우리시민묘지..8/15(토)
답사특징 1)
만해 한용운 묘, 시인 박인환 시비, 우두의 창시자 지석영묘,
소파방정환, 독립운동가 유상규, 문병권,오세창, 의학자 오긍선,
죽암 조봉암 묘소 참배 5)
교통편..1호선 청량리, 회기역, 7호선 상봉역에서 노선버스가 많습니다. 신청방법: 1.
닉네임/id/주소/연락처/답사의
임하는 소감이나 자기소개를
기재하여 '망우리 답사신청' 게시판에 올린다. (모놀답사가 하도 빨리 마감이 되어 메일로 항의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똑같은 기회를 골고루 드리고자 이같은 조치를 취했으니 양해바랍니다.) 3. 임금은행 신한은행 300-02-303074.,,입금자 이종원 4.
답사신청을 먼저 하시고 입금해주셔야 합니다..입금후..신청하시면 곤란합니다. 4
취소사유가 발생하면 바로 답사취소를 게시판에 올려 주셔야
대기자가 참석할수 있습니다. 8월 8일까지
취소자: 전액환불 5. 부모 대동한 아이들은 회원에 가입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 답사여행의 특징 1. 모놀답사도 벌써 14차가 되었네요...이번엔 특별히 공휴일에 진행됩니다. 신자들도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왔네요. 아이들과 함께 우리 역사를 둘러보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2. 답사에 대한 자료와 약도는 추후 게시판에 올려놓겠습니다. 3. 이번 답사부터 선물 기증을 받지 않습니다. 회원들에게 부담될 뿐 아니라 문제 내기가 너무 힘들어요.하하 문의: 이종원 016-219-6001 |
* 참고자료 만해선생님은 망우리에 계십니다.
망우리 고개 망우리 시민공원에 갈려면 망우리고개에 올라서야 합니다. 이곳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면 기분이 묘합니다. 빽빽한 무덤 밑에는 아파트가 뺑 둘러쳐 있어요.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지요. 태조 이성계가 그의 능지를 둘러보고 서울로 들어오는 길에 이 고개를 이르러 "이제야 근심을 잊었구나" 라고 해서 '忘憂里'라는 이름을 얻었답니다. 얼마나 좋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망우리근처에 산다고 하면 듣는 사람 표정이 좋지 않네요. '망우리'라는 어감이 좋지 않은가 아니면 공동묘지가 가까이 있어서 그런가 저는 이 고개를 넘을 때마다 근심을 잊을려교 애쓰고 있어요. 넘어가면 근심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이 길을 따라 왕의 행차가 있었겠지요. 동구능을 향해 문무백관들이 길게 늘여선 모습은 아마 장관이었을겁니다. 망우리시민공원 죽으면 다 똑같을 것을... 왜 그리 세상을 매정하고 바둥바둥하게 살아야 하는지..반성하게 합니다. 아마 묘지만큼 좋은 교육효과도 없을 겁니다. 이름없는 민초부터 유명인사까지..그리고 많은 업적을 이룬사람..한을 품고 죽은 사람이 함께 묻혀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앞에는 누구나 평등하답니다. 결국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이곳에 왜 공동묘지가 생겼을까요? 그 이유는 일본의 숨은 계략이 있답니다. 조선 왕릉의 집결지인 동구능이 지근거리에 있고 또 같은 능선에 자리하고 있답니다. "왕이 뭐 특별하냐? 일반인과 똑같지." 라는 것을 주입하면서 민족정신을 말살할려는 의도가 숨어있지요. 경복궁마당에 불교 유물을 가득 모아두고 물산박람회를 개최한 것과 같은 이치랍니다. 총 면적이 60만평에 무려 33만기의 묘가 펼쳐져 있답니다. 높은 곳에 보면 둥그렇게 튀어나온 봉분들이 집합체가 묘한 감흥을 일으킵니다. 비운의 청년 박인환시인 관리 사무소에서 직진하면 두 갈래 길이 나옵니다 유명인사들 대개가 좌측 길로 들어 서 한강을 보고 있는데 박인환시인만은 우측에 있답니다. 죽어서도 고독을 지키는 시인의 모습이랄까요? 박시인은 참으로 비극적 시대를 산 사람이지요. 청소년기에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보냈고 해방후에는 좌우익의혼란을 겪고 그리고 6.25때는 종군기자의 역할을 하고, 그리고 31세의 짦은 나이에 요절합니다.박시인 묘비에는 '세월이 가면'의 1연이 새겨져 있답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공원내 순환도로의 길이가 5.2km나 된답니다. 선혈들의 넋을 기리며 걸어봅니다. 요새 온갖 꽃들이 활짝 피어 있어 걷기만해도 기분이 상쾌합니다. 살랑이는 바람에 꽃가루가 눈처럼 떨어집니다.
송촌 지석영묘 누구나 팔뚝에 우두자국은 있을 겁니다. 어머님의 자국은 큼직한 도장이고, 저는 작은도장 , 제 아들은 희미한 자국이더군요. 그런데 요새는 발바닥에다 주사를 놓는다고 합니다. 만약 이 주사를 맞지않았다면 천연두로 죽어갔으며, 살았다 하더라도 평생 곰보로 살아야 합니다. 성형수술 잘 못했다고 자살까지 하는 세상인데...곰보로 살아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천형을 면해주신 분이 바로 지석영선생님이랍니다. 종두법에 관심을
갖고 홀로 부산에 내려가 일본인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종두법을 익힙니다.
그걸 임상실험을 해야한는데.. 선생은 충주에 있는 장인을 찾아갑니다.
2살된 처남에게 종두를 실시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장인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거절합니다. 선생은 의학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은 한글 학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개화가 늦어지는 이유가 어려운 한문 때문이고 널리 교육을 펼치기 위해 한글을 쓸 것을 주장하셨답니다. 동래 부사까지 지낼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도 있었지요. 그러나 한일합방이 되고 일본의 구애도 뿌리친째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재야에 묻혀 생을 마감하신 분이랍니다. 지천에 널려있는 무덤속의 사람들도 선생의 도입한 종두를 어깨에 하나씩 달고 있겠지요. 그리고 천연두 때문에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선생의 애민정신.... 죽어서도 그런 민초들과 함께 누워 있습니다. 선생의 묘 주변에는 이렇게 예쁜 꽃들이 한아름 피어 있습니다. 선생의 고귀한 정신을 꽃이 표현해줍니다. 독립운동가 유상규선생,문병훤 선생 묘를 거치면 의학자인 오긍선선생님 가족 묘가 나옵니다. 다른 묘와 차이가 납니다. 지붕모양의 검은 대리석이 덮혀 있습니다. 오긍선선생님은 세브란스 의전의 한국 최초의 교장이었고 또 서양의학의 도입에 적극 나선 분이랍니다. 그 아래 동락 약수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뼈국물'이라고 표현하면서 껄껄 웃습니다. 약수가 아주 달콤합니다. 주변엔 쉴 수 있는 나무의자와 운동기구가 있네요.
소파 방정환 선생님 어린이 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분이지요. 어찌보면 어린이 노동위원장이기도 하지요.. 선생의 비문에 나온 글이 하도 좋아서 이곳에 일부 옮겨봅니다. "사람이 오래 살기를 어찌 바라지 않을까마는 오래 살아도 이 민족이 겨레에 욕된 이름이 적지 않았건만 불과 서른 셋을 살고도 이 나라 이 역사위에 찬연한 발자취를 남긴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소파 방정환 선생이다. 나라의 주권이 도적의 발굽아래 짓밟혀 강산이 통곡과 한탄으로 어찌 할 바를 모를 때 선생은 나라의 장래는 오직 이 나라의 어린이들을 잘 키우는 일이라 깨닫고 종래 '애들, 애놈'등으로 불리면서 종속윤리의 틀에 갖힌 호칭을 '어린이'라고 고쳐 부르게 하였고 그들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존대말을 쓰게 부르짖었으니 이 어찌 예사로운 외침이라고 하겠는가? 선생은 솔선하여 어린이를 위한 모임을 만들어 밤을 지새워 '사랑의 선물'이란 읽을 거리를 선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라는 잡지를 만들고 어린이날을 제정하여 이를 실천하였다...... 근처에 정자가 있어 한강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문일평 선생은 민족주의 사관(史觀)에 입각한 국사연구에 힘쓰신 분입니다. 방형의 묘에 꽃이 한아름 놓여 있네요. 오세창 선생묘 오세창 선생은 유홍준교수의 완당평전에서 접했습니다.. 추사의 글과 그림을 감식하고 정리하는데 큰 일을 했을 뿐 아니고 금석학의 대가라고 들었답니다. 본인 스스로도 전서와 예서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33인의 한 분으로 구학문을 바탕으로 신학문을 전개한 분이지요. 육당 최남선, 위당 정인보도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후배랍니다. 석물 만해 한용운 만해선생님의 연보비가 입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만해 한용운 선생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지키고 실천했던 분도 없을 겁니다. 만해를 이렇게 가까이 뵐 수 있는 것도 제게는 큰 영광이랍니다. 3.1운동때 33인중에 한사람이고 일생을 저항문학에 앞장선 분이지요. 만해 같은 분이 지금도 계셨다면 통일운동에 앞장섰을 겁니다. 만해 입구에 이렇게 일본풍의 조경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만해 묘지 아래밑 개인 묘지를 이렇게 꾸며 놓았네요. (비석 뒤에 비문이 없다.) 죽산 조봉암 이 곳에 비문이 없은 묘소가 하나 있답니다 . 이승만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죽산 조봉암 선생님 묘소지요. 59년 진보당사건으로 간첩혐의로 사형된후 창령 조씨문중에서 지금까지 비문제작을 거부했기 때문이랍니다. 죽암은 비운의 정치인이지요. 제헌국회의원 , 초대 농림부장관, 2대국회의원, 국회부의장까지 탄탄대로였지요. 52년, 56년 대선때 이승만과 맞서 선전했지만 낙선합니다. 그러나 무려 200만표나 얻었기에 이승만의 최대 정적으로 올라섭니다. 독재자의 입장에서 최악의 선택을 합니다. 호시탐탐 노리다가 기어코 진보당에 붉은 색을 입혔고 죽산을 간첩혐의로 잡아들여 사형을 언도합니다. 죽산은 "정치적으로 조작된 사건이니 사형아니면 무죄를 달라" 라고 당당하게 최후진술을 합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정치활동을 했다는 것밖에 없오.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잔 주시오" 그러나 그 마지막 청도 거부한채 서대분 교도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됩니다. 밋밋한 비문이 무언의 항의를 합니다. 'x'를 그린 마스크를 착용한 것 같습니다. 조작된 사건에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빨리 복원되어 선생의 이력과 철학이 가득 채워지길 바랄 뿐입니다. 다음에 올 때는 술이나 한병 사 가지고 와야겠습니다. 마직막 유언이나 다름없는..."술이나 한잔 주시오." 라는 소원을 풀어주고 싶습니다. 선혈들과 넋이 살아 있는 공원을 둘러봅니다. 길에는 꽃가루까지 깔려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참으로 열심히 삶을 사신 분들도 있고, 목숨바쳐 국가를 위해 애쓰신 분들도 있습니다. 저승에서나마 이 꽃길 즈려밟고 가십시요. 저명인사들은 죽어서나마 가까운 곳에 함께 묻혀있답니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지켜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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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까운 곳이라 부담없이 꼭 가고팠는데...담주는 엄니생신과 휴가겸해서 경주에 내려갑니다. 잘 다녀오세요~
근데,,, 종워님 달력엔 8월15일이 토요일 인감유? 큰글씨로 (토)라고 되어있어서 의아~~ 지는 참가하고싶은디 그날 아무래도 가족동반야유회가 있을듯 하네요.ㅜㅜ
꼭 ---- 가고 싶었는데, 꼭 가야만 하는데 ---- 너무나 아쉽답니다. 정말 취소할 수 없는 8/15-8/19[휴가스케쥴] 때문에 --- 그만..... 그러나 수없이 읽고 있는 [답사정보]로, 다녀 온 듯 그 정경이 눈에 선합니다. 주인님!! 보람된 답사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