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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韓中日近現代史 원문보기 글쓴이: 정암
쓰시마 해전 (1) - 제 2 태평양함대출처: http://blog.naver.com/dsi90/221110918293 1904년 4월 13일 뤼순에서 마카로프 제독이 전사하고 2주가 지난 시점에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극동으로 함대를 추가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이제부터 뤼순의 함대는 제 1 태평양함대로 불리게 되고 새로 보내게 될 함대는 제 2 태평양함대로 명명되었다. 함대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휘관을 임명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에는 100명에 가까운 제독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바다에 나가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단 몇 명만이 후보에 올랐고 황제는 지노비 로제트벤스키 Zinovy Rozhestvensky 소장을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로제스트벤스키 Zinovy Rozhestvensky 제독 (출처=위키피디아) 55세의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해군 군의관의 아들로 태어나 해군사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강직하고 때로는 난폭한 제독이었지만 전사한 마카로프와 함께 러시아 해군의 몇 안되는 진짜 제독 중 하나였다. 제 2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로제스트벤스키는 해군참모부장이었다. 서열상 해군 장관과 사령관에 이은 3위의 위치였으나 계급은 소장으로 많은 중장급 제독들이 러시아 해군에 있었다. 로제트벤스키 제독은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의 성공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그는 뤼순의 함대가 자신이 도착하기 전에 전멸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함대가 칠레나 아르헨티나에서 구매할 수 있는 순양함들로 보강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을에는 출항하고자 했다. 더 늦어질 경우 그 동안의 준비가 소용없어지고 특히 긴 항해 중에 보급이 원할하지 못 할 것을 걱정했다. 제 2 태평양 함대의 전력함대는 다양한 함정을 모아 구성되었다. 가장 강력한 전력은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직접 지휘하는 제 1 전함 전대였다. 이 전함들은 모두 1903년에서 1904년 사이 취역한 신형 전함으로 18노트의 최고 속력을 낼 수 있었고 12인치 2연장 포탑 2기와 6인치 2연장 포탑 6기가 주무장이었다. 2 전함 전대는 구형 전함과 순양함으로 편제되었다. 이들은 15노트가 최대 속도로 신형 전함들과 행동하는데 제약이 있었다. 전함에 비해 더 심각한 것은 순양함 전력이었다. 올레크와 오로라 2척을 제외한 나머지 함정들은 노후되었거나 상선 또는 요트를 개조한 순양함으로 일본 연합 함대의 장갑 순양함들과 대적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함정들이었다. 제2 태평양함대의 주요전력 제 1 전함 전대 (Vice-Admiral Zinovy Rozhestvensky) 러시아 해군 최신의 전함 보로디노 Borodino (출처=위키피디아) 러시아 구형 전함 나바린 Navarin (출처=위키피디아) 러시아 방호순양함 이줌루트 Izumrud (출처=위키피디아) 러시아 장갑순양함 올레크 Oleg (출처=위키피디아) 함정의 구성보다 더 큰 문제는 승조원들이었다. 대부분의 장교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승조원들은 경험이 부족했고 함대는 합동 훈련을 할 기회가 없었다. 특히 포술 훈련이 부족했다. 각지의 전대들은 개별 훈련을 진행했고 부족한 훈련은 아시아로 항해 중 실시할 생각이었다. 8월말 함대는 샹트페테르부르크 앞에 있는 크론시타트 섬에 집결했다. 9월초가 되자 황제가 함대들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9월 11일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황제의 배웅을 받으며 공식 출발을 위해 함대를 레발(현재의 에스토니아 탈린)로 이동 시켰다. 10월 9일 황제가 레발에 도착하여 함정들을 방문했다. 이틀 동안 22척의 함정을 방문한 황제는 제독들 함장들과 만찬을 하고 10일 밤 돌아갔다. 다음 날인 11일 함대는 출항하여 라트비아의 리바우로 향했고 상태가 좋지 못 한 함정들은 같이 출항하지 못 했다. 출발 시부터 전력에 차질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리바우에 도착한 함대는 보급품을 적재하고 15일 출항했다.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황제에게 그들이 출발했음을 알리는 간결한 전문을 황제에게 보냈다. 출항하는 제 2 태평양 함대 (출처=국방부 블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