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지
오탁번
말복날 개 한 마리를 잡아 동네 술추렴을 했다
가마솥에 발가벗은 개를 넣고
땀 뻘뻘 흘리면서 장작불을 지폈다
참이슬 두 상자를 다 비우면서
밭농사 망쳐놓은 하늘을 욕했다
술이 거나해졌을 때
아랫집 김씨가 나에게 말했다
ㅡ이건 오씨가 먹어요, 엘레지요
엉겁결에 길쭉하게 생긴 고기를 받았다
엘레지라니? 농부들이 웬 비가(悲歌)를 다 알지?
ㅡ엘레지 몰라요? 개 자지 몰라요?
30년 동안 국어선생 월급 받아먹고도
'엘레지'라는 우리말을 모르고 있었다니!
그날 밤 꿈에서 나는 개가 되었다
가마솥에서 익는
나의 엘레지를 보았다
- 오탁번,『벙어리 장갑』(문학사상사, 2002)
첫댓글 그날 밤 꿈에서 나는 개가 되었다
가마솥에서 익는
나의 엘레지를 보았다
아...엘레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역시 이런 시에는 오탁번..ㅎ
저두 처음 알았습니다
한국 사람이면서두 모르고 있어네요
오탁번 선생님은 원래 이런 류의 시를 잘 쓰십디다. 아 아 우리 마을 고마 좃 대 뿌심다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