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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백천계곡은 농축된 초록의 냄새가 진하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원시림의 짙은 상큼함에 담배를 물고 살았던 골초의 폐라도 금방 정화될 것만 같은 진한 숲향이 일품이다. 사람의 손을 탄 숲이 아닌 원시림이어서 수종이 다양하고 풀과 넝쿨이 많아 정돈된 분위기의 숲은 아니다. 그래서 여느 거목숲처럼 시원시원한 풍경은 없다. 정글처럼 빽빽해 시각적으로는 지저분하다. 그러나 입에 써야 약이듯 이 빽빽한 숲에 들어서서 호흡하면 몸속 내장이 전부 좋아질 것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싱싱한 피톤치드가 지배하는 땅인 것이다.
백천계곡은 경북 봉화에 있다. 태백산 부소봉과 문수봉, 아래의 깃대배기봉과 청옥산의 골들이 모여 만든 16km에 달하는 깊은 계곡이다. 대부분의 등산객이 이용하는 북쪽 태백시 방면이 아니라 태백산 남쪽의 계곡인 것이다. 백천계곡의 매력은 청정함에 있다. 백천계곡은 1962년 열목어 서식지로서 천연기념물 74호로 지정됐다. 이로 인해 20년간 출입이 통제되다 2007년부터 길이 열렸으니 깨끗함은 두 말할 나위 없다.
백천계곡을 이루는 나무 종류는 다양하며 주로 신갈나무·소나무·박달나무·층층나무 등이 많다. 한국환경생태학회지에 실린 2002년 논문에 따르면 이곳 소나무의 나이는 50~70년, 신갈나무림은 40년 내외로 밝혀졌다. 남한에서 흔치 않은 원시 식생의 숲이라는 게 증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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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소봉에서 백천계곡으로 내려서는 지능선에서 만난 거대한 소나무. / 백천계곡의 편안한 숲길. 40년 이상된 신갈나무와 소나무 등으로 무성한 원시림이다.
- 산행은 현불사 앞 주차장에서 시작해 백천계곡에 올라 칠반매기골에서 문수봉으로 오른 다음, 능선을 종주해 부소봉에 가서 남동릉을 타고 다시 백천계곡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가 일반적이다. 산행 거리는 13km이며 6시간 정도 걸린다.
백천계곡은 구불구불한 국도 깊숙한 곳에 있다. 국도에서 계곡 임도로 접어드는 길목에 백천계곡임을 알리는 안내판 같은 것은 없다. ‘現佛寺(현불사)’라 적힌 커다란 표석이 있을 뿐이다. 도로 옆 계곡은 철망에 쳐져 있으며 취사나 야영·물놀이가 금지되어 있어 여느 관광지의 계곡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열목어 서식지이기 때문에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4km 정도 들어가면 현불사 앞 대형 주차장이다. 현불사는 지은 지 30여 년 정도 된 불승종의 본찰이다.
차는 이곳에 주차한 후 임도를 따라간다. 1.5km 정도 더 들어가면 차단기가 나타나며 콘크리트 임도가 끝난다. 여기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백천계곡의 원시숲도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계곡은 아담해 깊어도 무릎을 넘지 않는 정도다. 원시숲이라 해도 비포장임도가 나 있어 걷기 편하다. 연륜 있는 나무들이 높고 빽빽하며 계곡의 습기를 머금은 진한 숲향이 제대로다.
백천계곡의 천연기념물인 열목어는 연어과에 속하며 큰 것들은 60cm에 달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몸에 검은 반점이 있다. 냉수성 어종으로 수온 20℃ 이하에서 살 수 있다. 백천계곡의 물이 한여름에도 그만큼 차갑다는 의미다.
대형 산행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칠반매기골로 가야 문수봉에 이른다. 칠반매기골은 어둑어둑할 정도로 깊은 골짜기로 길들여지지 않은 거친 계곡미가 있다. 길은 얼마 안 가 계곡을 버리고 지능선 위 가파른 비탈에 이르고, 비탈을 1시간 넘게 오르면 주능선에 닿는다. 능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10분을 가면 문수봉이다. 정상부는 넓은 너덜광장이며 돌탑이 있다. 전망은 탁월해 가까운 곳의 부소봉과 천제단, 망경사가 선명하고 멀리 백운산과 함백산이 아득하다.
서쪽 능선으로 직진하면 부소봉이다. 부소봉 부근에서 태백산 장군봉 갈림길로 빠지지 않도록 유의하며 가야 한다. 장군봉 가는 길이 좋아 수풀이 짙은 계절에는 길을 잘못 들기 십상이다. 부소봉 부근에는 헬기장이 있다. 계속 직진하면 경치 좋은 나무 데크 전망대다. 여기서 조금 더 진행하면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이며 왼쪽으로 내려가면 백천계곡에 닿는다.
지능선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에는 거목순례에 어울리는 실로 거대한 금강송이 있다. 둘레가 5m는 넘을 듯한 큰 소나무다. 지능선을 따라 2시간쯤 내려서면 백천계곡이다. 산행의 피로를 씻으려 발을 담그면 싸늘한 냉골이라 얼마 안 가 발을 빼게 된다. 왔던 길을 돌아 나가면 현불사 앞 주차장이다.
- 교통
승용차 이용시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북영주ㆍ풍기ㆍ봉화 방면으로 나와 36번 국도를 타고 영양 방면으로 가다 31번 국도로 좌회전해 태백 방향을 따르면 된다. 백천계곡 진입로에 ‘現佛寺(현불사)’라 적힌 커다란 표석이 서 있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태백이 봉화보다 가깝고 차편도 잦다. 대현에서 하차해야 하며 태백시외버스터미널(033-552-3100)에서 영주ㆍ대구ㆍ안동ㆍ대전행 버스가 보통 대현리(백천계곡 입구)를 거쳐 간다. 40분 정도 걸리며 1일 11회(07:00~19:10) 운행한다.
숙박
백천계곡에 숙소는 거의 없다. 인근의 청옥산자연휴양림은 공사로 문을 열지 않는다. 태백시내로 나가야 한다. 대현리에는 슈퍼와 태백식육식당(672-6617), 봉평막국수(672-8233), 백천계곡가든(011-377-1160), 모리가든(672-6446), 청옥기사식당(054-673-4459) 등이 있다.
/ 글 신준범 기자
사진 이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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