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길동이 절을 하고 엎드려 아뢰었다. ‘소인이 대감의 정기를 입어 당당한 남자로 태어났고,
육축(가축)도 부모의 은혜를 아는데,
소인은 어찌하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옵니까?’”
이는 소설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호부호형(呼父呼兄) 못 하는 서얼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는 대목입니다.
▲ 서얼이었던 홍길동, ‘호부호형’하지 못함을 한탄하다.(ChatGPT 생성)
서얼(庶孼)은 조선 시대 양반 가문에서 정실부인이 아닌 첩의 몸에서 태어난 자녀를 통칭하는 신분 계급인데
그 가운데서도 양인(일반 평민) 신분의 첩이 낳은 자식은 서자(庶子)고,
천인(노비 등) 신분의 첩이 낳은 자식 얼자(孽子)라고 했지요.
서얼은 태종 때 도입된 서얼금고법과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라 문과 과거 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의 《연산군일기》 26권, 연산 3년(1497년) 8월 5일의 기록처럼
서얼이라도 의료 업무를 맡은 관청에 들어가려는 과거는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의공(醫工)은 천해서 오랫동안 선비에 끼이지 못했습니다.
어찌 문ㆍ·무 양과(兩科)와 견줘서 흠이 있는 자를 모두 취택하지 않을 수 있으리까.
신 등의 생각엔 신묘년 《대전(大典)》에 ‘서얼(庶孽)의 자손은 시험을 치르는 것을 허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사실은 문ㆍ무 양과를 두고 한 말인데, (가운데 줄임) 서얼로 하여금
이미 의사(醫司, 의료 업무를 맡은 관청)에 속하게 하였으니, 그 과거를 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