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수교 30년, 극동러-한국 경제협력의 과거, 현재, 미래
2020-10-23 우상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무역관
- 여러 난관 속에서도 극동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
- 극동러시아의 미래가치를 보고, 보다 긴 호흡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 -
1990년 9월 30일 한국과 소련(1991년 소련 해체 후 러시아)은 뉴욕의 UN 본부에서 양국의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성명서에 서명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1990년 9억 달러에 못 미쳤던 양국 간 교역액은 2019년 223억 달러로 증가했다. 인적 교류도 2014년 비자 면제 협정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해 2019년 양국 간 관광객 수가 77만 명에 달했다.
한-소 수교 장면
자료: 중앙일보
극동러시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러시아 지역이다. 우리나라는 극동러시아를 신북방 경제의 관문으로 오랫동안 주목해왔다. 극동러시아와 우리나라의 경제협력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극동러시아와 한국의 경제협력은 그 폭과 깊이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평가다.
1992년 문을 연 블라디보스톡
극동지역 최대 항구인 블라디보스톡 지역은 1991년까지 러시아 시민들만이 방문할 수 있는 폐쇄도시였다. 태평양 함대의 본부이기도 한 블라디보스톡의 군사 보안을 이유로 외국인은 드나들 수 없었다.
1990년부터 러시아와 교역이 이뤄졌지만 블라디보스톡항의 출입 제한으로 극동지역을 통한 교역은 활발하지 못했다. 당시 블라디보스톡과 부산항을 오가던 러시아 선원들이 도시락 라면, 초코파이, 마요네즈 등을 한국에서 사다 러시아 시장에 팔았던 보따리 무역이 대부분이었다.
1991년 9월 20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외국인들의 블라디보스톡 방문을 위한 개방” 법률 No.123에 서명하면서 1992년 1월 1일부터 극동러시아와 한국 간에 제대로 된 무역이 시작됐다. KOTRA 블라디보스톡 무역관도 이에 맞춰 1992년 2월에 문을 열었다.
본격적으로 무역이 가능해지자 그 동안 보따리 무역에 의존했던 마요네즈, 커피프림, 초코파이 등을 대량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물동량이 많아지자 부산에는 러시아로 식품을 수출하는 수출상사가 세워졌다. 그리고 우리의 식품 회사들이 블라디보스톡에 판매법인을 세웠다.
1990년대 극동러시아에서 한국 기업의 가장 의미있는 투자는 현대호텔이었다. 현대그룹은 1997년 당시 9600만 달러를 투자해 블라디보스톡에 호텔현대VBC(Vladivostok Business Center)를 완공했다. 3100여 평의 대지에 연면적 7000평 규모로 지상 12층, 지하 1층에 250개 객실과 식당, 수영장을 갖춘 블라디보스톡 최초의 초현대식 호텔이었다.
1997년 문을 연 호텔현대VBC(현대 계동사옥과 똑 같은 외관이 특징)
자료: 동해크루즈
북방에 애착이 많았던 정주영 명예회장의 결정이었다. 정회장은 당시 기념사에서 “호텔현대의 개관을 통해 한국과 러시아는 보다 가까워지고 이 호텔이 세워진 블라디보스톡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떠오르는 아시아 태평양 시대를 향한 전초기지가 될 것으로 본다.”라고 강조했다. 당장의 계산보다 미래를 향한 비전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긴 정체기에 빠졌던 극동러시아와의 경제협력
현대그룹이 블라디보스톡에 호텔 겸 비즈니스센터를 개관하고 1998년부터 북방 협력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 시작된 김대중 정권의 북한에 대한 햇볕 정책으로 남북러 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급속히 커졌기 때문이었다. 이 즈음에 한국의 개인 사업자들이 연해주에 봉제업을 하는 사례들이 나왔다.
그러나 기대만큼 우리 기업들의 극동 러시아 진출은 많지 않았다. 2000년에 갑자기 푸틴 대통령이 취임한 러시아는 정치적 리스크가 커 보였다. 2000년 초반 에너지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살아났지만, 급속히 유입된 외화로 임금이 오르면서 저임금을 찾아 해외에 공장을 짓던 우리 기업에 러시아는 적당치 않았다. 봉제공장을 운영하던 한국인들도 점차 철수하거나 업종을 변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극동러시아 시장이 너무 작고 분산돼 있다는 점에서 수요를 바라보고 현지에 생산공장을 짓기도 마땅치 않았다.
이런 배경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극동러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물류운송, 무역 및 판매 등에 한정돼 있었고 진출 기업 수도 기대만큼 많지 않았다. 2005년 한국과 극동러시아의 교역액은 1억 달러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다. 한국은 자동차, 전기기기, 신발을 주로 수출했고 원유와 목재를 수입하는 아주 단순한 구조였다.
2000년대 중반 한-극동러 교역(2005년)
(단위: USD 천)
수출(한→극동러) | 수입(극동러→한) | 교역액 |
175 | 126,692 | 126,867 |
자료: 극동세관
2000년대 중반 가장 눈에 띄었던 한국 기업의 극동러시아 진출은 계룡건설의 아파트 건설이었다. 계룡건설은 2004년 계룡-하바롭스크를 설립하고 하바롭스크시에 200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총 사업금액은 360억 원이었다.
계룡건설이 지은 하바롭스크 아파트(1차)
자료: 계룡건설
모멘텀을 살리지 못했던 2010년~2015년
‘식량자주화’가 이슈였던 2009년 현대그룹이 연해주에서 농장 경영을 시작했다. 현대중공업의 자원개발회사인 현대자원개발이 현대아그로를 설립해 연해주 하롤 지역 1만 ha에서 콩과 옥수수를 재배했다. 이 즈음 남양알로에 등 다른 영농기업들의 진출도 뒤따랐다.
또한 대우조선해양이 러시아의 국영 조선사 USC(united shipbuilding corporation)와 합작해 Zvezda-DSME를 설립하고 즈베즈다 조선소 현대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쌍용자동차는 러시아의 Sollers와 계약을 맺고 CKD(Complete Knock Down) 수출을 진행했다. 쌍용자동차가 부품을 수출하면 Sollers가 블라디보스톡 공장에서 조립해 판매했다.
쌍용자동차 - Sollers 계약 장면
자료: 조선비즈
이렇게 조금씩 한국 기업들과 극동러시아 간의 경제협력이 단순 교역에서 벗어나 가치사슬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2012년 APEC이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되면서 한국과의 경제협력은 보다 탄력을 받았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톡을 비롯한 극동지역 개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1년 현대중공업은 연해주 아르쫌에 고압차단기 공장 건설을 결정했다. 러시아 법인 현대일렉트로시스템을 설립하고 6000만 달러를 투자해 총 10만㎡ 부지에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 연간 250여 대의 고압차단기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2013년 준공식에 참석한 현대중공업의 이재성 사장은 축사를 통해 “현대일렉트로시스템은 성공적인 해외투자 사례이자 향후 극동지역 발전의 큰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의 고압차단기 공장
자료: MK뉴스
그러나 이러한 협력 움직임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먼저 2014년 크림반도 병합으로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취하면서 러시아 경제가 요동친 것이 원인이 됐다. 1달러당 35루블 정도였던 환율은 갑자기 2배가 됐다. 사업성이 절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쌍용차는 2015년 CKD 수출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2017년 현대중공업은 고압차단기 공장을 매각했다. 러시아의 연방송전공사(FSK)로부터 주문이 전혀 없었다. 공장을 지을 때만 해도 장기공급계약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발주시스템이 공개 입찰로 바뀌었다. 2015년부터 시작된 경기침체로 예산이 부족했던 러시아는 현대중공업의 고압차단기를 구매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까지 나서 러시아 측에 공급계약 이행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 기업의 극동러시아 투자 대표사례로 기대됐던 현대중공업이 공장을 매각한 것은 한국 기업에도 러시아 정부에게도 큰 아픔이었다.
대우조선해양도 9년 넘게 추진했던 즈베즈다 조선소 현대화 사업에서 손을 뗐다. 2018년 Zvezda-DSME가 운영비 부담을 이유로 파산 신청을 한 것이다. 2009년 합작 법인 설립 때만 해도 2012년 APEC에 맞춰 최신식 조선소를 지을 것처럼 보였지만 사업 추진은 지지부진했다.
이렇게 2010년을 전후로 나오기 시작한 한국 기업들의 극동러시아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 사례들은 2014년 말부터 시작된 러시아 경제위기로 모멘텀을 살리지 못했다. 러시아 정부는 2015년부터 블라디보스톡에서 동방경제포럼을 개최하면서 외국인 투자유치에 나섰지만 우리 기업들을 붙잡지 못했다. 의욕은 넘쳤지만 예산이 부족했고 우리 기업들이 소위 ‘돈이 되는’ 사업을 하기에는 아직 시장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관광과 조선산업에서 협력의 활로를 모색하는 현재
2017년부터 우리나라의 관광 테마 TV 프로그램에서 블라디보스톡을 앞다퉈 내보내기 시작했다. 2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에 이색적인 관광지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2016년 5만 명이었던 블라디보스톡 한국인 관광객은 2017년 10만, 2018년 22만, 2019년 30만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런 수요에 맞춰 한국의 저가항공사들이 앞다투어 블라디보스톡으로 정기편을 띄웠고 미니호텔과 여행업이 급속히 늘어났다. 올해 코로나19로 관광업은 큰 타격을 받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풀리면 블라디보스톡 관광도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의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블라디보스톡
자료: tvN
현재 가장 주목되는 협력 사례는 조선 분야이다. 2017년 현대삼호중공업이 즈베즈다조선소와 합작법인 즈베즈다-현대를 설립하고 2018년부터 아프로막스급 유조선을 건조 중이다. 그리고 2018년에는 삼성중공업이 즈베즈다와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LNG선을 건조하고 있다.
러시아는 야말 LNG 프로젝트, Arctic LNG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LNG 운반선 수요가 생겨났고 대부분 즈베즈다로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 그러나 즈베즈다 조선소는 LNG선을 자체 제작할 기술이 없기 때문에 한국의 조선소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즈베즈다 조선소에서 마무리 공정을 위해 들어가고 있는 선박
자료: 즈베즈다 조선소
2019년 기준 극동러시아와 한국 간의 교역액은 100억 달러를 넘겼다. 2005년과 비교하면 80배나 증가했다. 한국의 극동러시아 수출이 7억100만 달러, 수입은 94억2000만 달러 규모다. 수입액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은 문제이다. 그러나 수출 상품이 식품, 화장품부터 중장비까지 다양해지는 등 조금씩 교역구조가 탄탄해 지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2019년 한-극동러 교역
(단위: USD 천)
수출(한→극동러) | 수입(극동러→한) | 교역액 |
701,185 | 9,420,285 | 10,121,470 |
자료: 극동세관
시사점: 극동러시아의 미래가치를 보자
한-러 수교 30년이라고 하지만, 극동러시아와 제대로 된 교류가 시작된 것은 10여 년 전부터라고 할 수 있다. 2009~2010년 정도 대우조선해양이 즈베즈다 현대화 계획에 참여하고 쌍용자동차가 조립생산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러시아도 극동개발에 나서기 시작하고 우리 정부도 신북방정책으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기대만큼 극동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은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극동지역이 시장이 작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2014년부터 이어진 러시아 경제 침체로 극동지역 개발 예산을 확대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전설적인 투자가인 짐로저스가 동북아의 한반도와 러시아와 중국의 접경지대를 가장 투자가 유망한 지역으로 꼽았다고 한다. 권구훈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은 TV프로그램 ‘명견만리’ 강연에서 “중국의 훈춘,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북한의 나진 선봉지역을 잇는 지역을 기회의 삼각지대로 부르겠다.”라고 한 바 있다.
극동러시아는 인구도 작고 시장이 분산돼 있는 데다 제조시설도 많지 않아 우리 기업들에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지역의 미래가치는 적지 않다. 보다 긴 호흡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료: 극동개발부, ria.ru, 즈베즈다조선소, 연해주주정부, vl.ru, 극동세관, zr.ru, tvN, MK뉴스, MBCNEWS, 동해크루즈, 조선비즈, 중앙일보 등 KOTRA 블라디보스톡 무역관 자료 종합
첨부: 한국-극동러시아 경제협력의 역사
No | When | What |
1 | 1992년 2월 | KOTRA 블라디보스톡 무역관 개소 |
2 | 1997년 8월 | 블라디보스톡 호텔현대VBC(Vladivostok Business Center) 개관 |
3 | 2004년 | 계룡건설, 하바롭스크에 200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설 시작 |
4 | 2009년 | 현대자원개발, 현대아그로 설립, 연해주에서 콩과 옥수수를 재배 |
5 | 2010년 | 대우조선해양, USC와 Zvezda-DSME 설립 |
6 | 2010년 | 쌍용차, Sollers와 2017년까지 총 16만 8000대 CKD 수출 계약 |
7 | 2011년 9월 | 현대중공업, 현대일렉트로시스템 설립, 고압차단기 공장 착공 |
8 | 2012년 | 블라디보스톡 APEC 개최 |
9 | 2013년 1월 | 현대중공업, 고압차단기 공장 완공 |
10 | 2015년 3월 | 쌍용차, Sollles에 DKD 수출 중단 |
11 | 2015년 9월 | 제1차 동방경제포럼 개최 |
12 | 2016년 9월 | 제2차 동방경제포럼 개최, 박근혜대통령 참석 |
13 | 2017년 6월 | 현대삼호중공업, 즈베즈다조선소와 합작 법인 설립 합의 |
14 | 2017년 7월 | 제1차 한국 투자자의 날 개최 |
15 | 2017년 11월 | 현대중공업, 고압차단기 공장 러시아 회사 ‘Dobroflot’에 매각 |
16 | 2017년 9월 | 제3차 동방경제포럼 개최, 문재인 대통령 참석, 9-bridge 구상 발표 |
17 | 2017년 10월 | 제주항공 인천-블라디보스톡 취항 |
18 | 2017년 11월 | 현대중공업, 호텔과 농장 롯데그룹에 매각 |
19 | 2018년 3월 | 제2차 한국 투자자의 날 개최 |
20 | 2018년 7월 | 롯데호텔 블라디보스톡 개관 |
21 | 2018년 8월 | Zvezda-DSME LLC 파산 신청 |
22 | 2018년 9월 | 제4차 동방경제포럼 개최, 이낙연 총리 참석 |
23 | 2018년 9월 | 삼성중공업, 즈베즈다 조선소와 합작 법인 설립 합의 |
24 | 2018년 11월 | 제1차 한러 지방협력 포럼 개최(포항) |
25 | 2018년 11월 | STX, 러시아 LPG 탱크터미널 사업 진출 |
26 | 2018년 11월 | IBK기업은행, 블라디보스톡 사무소 개소 |
27 | 2019년 2월 | 제3차 한국 투자자의 날 개최 |
28 | 2019년 9월 | 제5차 동방경제포럼 개최, 홍남기 부총리 참석 |
29 | 2019년 9월 | 삼성중공업, 즈베즈다 조선소와 쇄빙 LNG운반선 설계 계약 체결 |
30 | 2020년 8월 | 삼성중공업, 즈베즈다-SHI사 지분인수 완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