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주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칠 것이라 하셨습니다.
내 안에도 늘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함께 하셨던 우리 주님께서 성령으로 늘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새 날을 주셨으니 이 하루도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한 날 되게 하시고 나의 마음을 주님께서 온전히 장악하사 빼앗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진흙과 더러운 것을 솟구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이 세상의 소욕을 뿜어내려는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박고 또 박아도 다시 살아나는 이 옛 사람은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십자가밖에는 없사오니 험하지만 우리의 죄를 못 박은 그 십자가에 오늘도 못 박습니다.
하여 오늘 하루 주님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나의 의지가 아니라 주님이 이끄시는 그 손길에 순복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모든 것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딛 2:1-15
제목 : 눈에 보이는 행함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아들의 생명을 누리다.
1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
2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3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4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5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6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7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9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10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5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 나의 묵상
사도 바울은 영적 아들인 디도에게 성령의 계시로 어떻게 목회할 것인가에 대한 목회서신을 써서 보낸 것이 디도서이다.
1장에서 중요한 핵심내용은 다름 아니라 디도가 목회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복음의 핵심을 적시한 것이다.
그것은 창세전 언약으로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으로 창세전에 택하여졌음을 근거하고 있다.
이제 오늘 본문인 2장에서는 디도로 하여금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에 대한 생활지침을 가르치라고 권면한다.
늙은 남자들에게는 절제와 경건과 근신을 가르치고 믿음과 사랑과 인내에 있어서 온전하도록 교훈할 것을 권한다.
늙은 여자들에게는 거룩한 행실과 술의 종이 되지 않을 것 그리고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될 것을 권면한다.
나아가 늙은 여자들은 젊은 여자들을 교훈할 것이며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도록 권한다.
그리고 매사에 신중하고 순결하며 집안 일을 하며 친절하고 남편에게 복종하는 자가 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제 사도는 디도로 하여금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게 한다.
이들 역시 매사에 신중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 디도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라고 권한다.
무엇보다 남을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청렴하고 단정하여 흠이 잡힐 만한 것이 없도록 건전한 말 곧 바른 말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대적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수치를 느껴 복음 사역자들을 비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제 종들에 대한 지침을 가르친다.
종들은 상전들에게 매사에 순종하여 상전을 기쁘게 하되 거역하여 말대꾸를 하거나 훔치지 말 것이다.
이렇게 행하여 자신의 신실함을 나타낼 것을 교훈한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교훈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함이다.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에게 차별 없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를 양육하여 소극적으로는 불경건과 세상의 정욕을 버리게 하며 또한 적극적으로는 이 세상에 살면서도 근신하며 올바르며 경건한 삶을 영위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복된 소망, 곧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재림을 기다리게 한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을 입으신 것은 우리를 불법에서 건지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목회자는 이런 교훈으로써 성도를 권면하며 또한 모든 권위를 가지고 책망하기도 하고 누구에게도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할 것이다.
디모데전후서나 디도서 등 목회서신을 보면 목회자와 성도들이 지켜야 할 항목들이 구약의 율법에 버금간다.
아니 그보다 더 세부적이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성도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지침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구약의 율법은 그것을 낱낱이 지켜서 구원에 이르고자 함이다.
따라서 바리새인과 서기관 등 구약의 랍비들은 그것을 더 잘 지키기 위하여 율법을 세분화하였다.
가령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율법에 대해서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은 몇 Km이상 걸으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라든지, 산 사람을 업고 가는 것은 괜찮지만, 죽은 사람을 업고 가는 것은 일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는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라는 등의 세부적인 법을 말한다.
이러한 것을 랍비들이 모아놓은 것을 미쉬나라 하고, 이런 것으로 교훈적인 설교를 하는 것을 미드라쉬라고 한다.
만약 구약의 율법을 100개 중에 99개를 지키고 마지막 한 개를 어겼다면 그는 모든 율법을 다 어긴 것이 되어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이 땅에 오고오는 어떠한 사람도 의인은 없으며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한다.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다윗이 쓴 이 시를 인용하여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롬 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따라서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을 자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다름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 분은 죄가 없으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오직 그 분만이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속하실 수 있으며 이를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로 창세전에 약속이 되신 것이다.
(벧전 1: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따라서 이렇게 약속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때가 되어 이 땅에 여인의 후손으로 오셨고 우리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갈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나는 목사가 되기 전에는 복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자였다.
심지어 목사가 되어서도 복음은커녕 창세전 언약은 더더욱 알지 못하였다.
그저 막연하게 예정이라는 교리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성경 어디서 이 교리를 설명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였다.
그런 와중에 신앙에 대한 열심은 있어서 목사가 되었고 나의 의와 열심으로 최선을 다해 사역을 하였다.
이런 사역은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나의 의만 더욱 드러나기 때문에 그 속이 생명으로 채워지기보다는 나의 의와 자랑으로만 채워질 뿐이었다.
그 결과 사망의 증상으로 환난과 곤고만 더욱 심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나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큰 시험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은 물론 나의 실수로 인함이기도 하겠지만, 하나님의 징계였음을 믿는다.
하나님의 징계는 죄의 수렁에 빠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건지시는 하나님의 신비이다.
그 신비에 속한 고난의 징계를 통하여 나를 복음이 선포되는 자리로 초청하셨고 그 복음을 듣고 창세전 언약과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을 듣게 된 것이다.
나는 목사가 되어서도 연약하지만, 목사가 되기 전 육신적으로도 너무나 연약한 자였다.
끈기도 부족하고, 무언가 일을 시작하면 그 끝을 잘 맺지 못하고 중도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이렇게 연약한 자를 주님께서는 그냥 두지 않으시고 복음을 들려주셨으며 그 복음으로 오늘도 이렇게 주님과 함께 교제와 사귐을 갖는다.
내가 만약 성경에 기록된 마땅히 지켜야 할 법들을 지키려고 했다면 과연 몇 %나 지킬 수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사람은 자기에게 어떤 사명이 주어지면 그것을 잘 수행해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려는 본성이 있다.
그것이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 안에 있는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함이다.
하지만 옛 언약을 완전케 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새 언약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신약에 기록된 마땅히 행해야 할 항목들을 지켜서 구원받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나 또한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써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기에 감사함으로 주어진 그 일들을 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힘과 자원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나는 먼지요 티끌에 지나지 않는 아벨(없음)이기 때문이다.
하여 오늘도 나의 손을 붙잡고 나를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며 나아갈 뿐이다.
나의 집은 하늘에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집을 두고 잠시 이 세상에 나와 있는 둘째 아들임을 믿는다.
내가 지금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내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니다.
다만 둘째 아들이 경험했던 돼지우리이며 그곳에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라도 좀 얻어먹으려 했던 그 자리일 뿐이다.
하여 나는 돼지우리와 같은 이 세상에서 금칠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이 세상에서 주어진 인생을 살다가 나의 진짜 집이요 본향인 그 나라를 사모하며 살 뿐이다.
외국인과 나그네인 인생에서 더 깊이 우리 주님을 알아가며 친밀해지길 원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 삼으시려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내가 해야 할 선한 일은 세상 사람들이 착하고 선하다고 인정하는 그 선한 일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일은 사람의 도리이기에 마땅히 행해야 하겠지만, 그런 선함을 넘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곧 하나님이 보내신 이 곧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야 말로 최고의 행함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을 향하여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으며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했다고 한 자들을 향하여 주님께서는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일갈하셨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그 마음을 빼앗았던 거짓 선지자들이었음을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지적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행함은 다름 아니라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임을 확신합니다.
그 믿음은 나를 부인하는 믿음이며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믿음이며 함께 무덤에 장사되는 믿음입니다.
참 믿음으로 더 가까이 주님과 연합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