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가을 노랑나비
저 가을 노랑나비 산 넘어 소식 듣고
여행자 길동무로 짝지어 날아드니
뜰앞의 석산화 꽃잎 다투면서 피는데
이승 문턱 종말 꽃 피우는가 수행자여
환대의 날갯짓도 저 문 앞서 멈춰다오
거울 달 미끄러지듯 별 뒤에 숨어든다
행여나 오는 길에 꽃씨라도 뿌렸는지
풍문에 들었을까 기도가 닿았는지
여행자 귀에 들릴까 슬몃슬몃 앉는다
한 되 가웃
쌀가게 주인이 외치던 한 되 가웃
육십갑자 넘어가며 그려내던 춘란 꽃대
삐죽이 뚫고 나온 듯 먹물 닮은 그 날이
볏집을 걷어찬 새벽달 이부자리
허세로 주정뱅이 대원 대감 한 되 가웃
왜 하필 춘란 화폭에 가뭇가뭇 환청이
싸전 옆 비실비실 걸으며 들었어도
미친 척 병인박해 천신만고 넘기고야
해마다 봄날 오듯이 춘란 꽃대 세웠네
달맞이꽃
노랗다 천지에 널 만나 나 혼자
강바람 앞세워 비질하듯 걷는다
달 사냥 구름 흘러서 달맞이꽃 가는 길
가냘픈 머리마다 노오란 나비처럼
행여나 잊었을까 읊조리는 방죽 길
님에게 앙탈 부리며 달빛마저 허옇네
파도의 원리
수평선 저 멀리서 내 노래 들어볼래
잠수부 숨비소리 건져 온 사분음표
딱딱한 바닷게 돌 등 두드리는 파도 춤
해풍이 소문 듣고 발 빠르게 달려와서
하나도 부스러기 남기지 말라 하니
달 허리 착 달라붙어 껍질 채로 너울너울
난간에 별 수 없다 꼼짝 않고 기다리던
거북이 인근 해변 무리 지어 기어오네
암벽에 따개비처럼 따닥따닥 잘 붙어
믿었던 성급함은 제발 멀리 밀어붙여
처절히 혼자서 맞아가며 부서져라
심장이 내려앉도록 집중하던 파열음
- 시집 『환승 파란선』 고요아침,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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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덕이 시인 시조집 『환승 파란선』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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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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