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골 호수
말을 타고 한 바퀴 호수를 돌았으면 좋겠구나. 자세히 견주어보니 글쎄, 1,825 평방Km인 제주도
에 비해 홉스골(Khovsgol)은 2,760이라니! 승마로도 열흘에서 보름은 잡아야 한다는데 고작 2박
3일만 더 머물기로로 했으니 어쩌나. 찰진 고무줄처럼 시간을 늘려서 극대화 해야겠네.
(하얀 게르들 앞에서 멈췄던 토일록트/ Toylogt의 화미한 호반,)
여기 하트갈(Khatgal)에 머물면서 도보 트레킹(trekking)이나 말을 빌려 타고 호수로 오르내릴 수
도 있다. 아니면 호반으로 가서 물가에 묵을 것인가를 엊저녁에 종결짓지를 못하였다. 게르 주인
은 영어를 잘 했다, 성수기라면서 호수 안쪽으로 갔다가 방을 구하지 못할 수가 있다며 은근히 자
기 집에 더 머물기를 시사했다.
자동차로는 대략 20km 쯤 북쪽으로 올라가야 호숫가의 숙소들을 만나게 되고, 보행으로나 마상
(馬上)으로 튀어나온 호수의 남쪽 끝에만 가는데도 여기에서 십리는 된다. 호수에서 흘러넘치는
작은 강 에긴골(Egiin Gol)이 옆에 흐르는 하트갈에서는 숙박비나 말을 빌리는데도 거의 절반이나
저렴하다고 했다. 그래서 여기에 자리를 잡고 주변과 호수로 관광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운전사도 그의 눈치를 보면서 한 번만 가지 험한 길이라 두 번을 거기까지 드나들 수는 없
다고 동조를 했다. 이 점은 울란바터에서 떠나기 전에 합의한 사항이기도 했고 착한 네마는 자주
오면 만나게 되는 그를 도우려고 하겠지. 홉스골 호수가 이번 여행의 백미(白眉)로 여기는데 비록
방이 없더라도 한 번 가보기로 우리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할리마는 여기 머물겠다고 떨어지
고 한국인 다섯 명만 출발을 했다. 숙소가 없어 두 번 가야 할 경우에는 기름 값이랑 따로 더 주겠
다고 네마에게 제안을 하여 안심을 시켜두었다.
(자갈도 맑은 호수)
호수를 향하는 자동차는 먼저 하트갈 마을에서 서북쪽으로 향하더니 넓고 마른 강바닥의 덜컹덜
컹 돌밭을 달리면서 험한 계곡으로 들어간다. 어느 홍수엔가 뿌리째 밀어다 놓은 큰 소나무도 종
종 누워있고 분간할 수 없는 자갈길을 운전사는 잘도 찾아서 간다.
높은 강둑을 오를 때는 사륜구동도 뒤로 밀렸다가는 후진을 하여 새로 시도를 했다. 힘차게 기름
을 주어서 올라왔을 때는 우리 모두가 신나게 박수를 치면서 성공을 축하해 주었다. 험한 길 중에
도 더 거칠었다, 북쪽으로 자꾸 오르더니 침엽수가 무더기 진 북동쪽 비탈로 산을 넘는다.
야생화가 곱게 핀 풀밭과 돌 섞인 언덕을 꼬불꼬불 오르는데 산길은 진흙으로 부풀리기도 했고
개울에 나무로 만든 작은 다리는 아예 무너져버렸다. 서너 명 인부들이 생나무를 베어다 걸치고
는 나무다리를 새로 만들고 있었다. 봉쇄된 길은 옆으로 산언덕을 돌아서 시도했지만 우리를 태
운채로는 헛바퀴를 돌릴뿐 먼지만 날렸다. 네마가 연장을 꺼내더니 사륜구동의 차에다가 한 가지
장치를 더 걸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도 승객이 모두 내려서야 간신히 올라서 넘어간다. 러시아제인 이 중고차가 정말 튼튼하
였으니 4기통이지만 험한 길을 잘 달려왔다. 이 차로 몽골여행을 마친 한 미국인이 했다는 농담에
그제서야 나도 웃을 수가 있었다, “차를 너무 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 타기 위해 만들지는
않은 것 같아요." 승용차로는 적합지 않았다는 말이니 실로 엉덩이가 심히 아플 정도로 편안치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내 좌석에 슬리핑백을 덧깔고 앉아서 다녔으니까.
(복슬강아지처럼 털이 늘어진 홉스골 호숫가의 야크)
아, 화미(華美)한 홉스골 호수! 환성을 지르면서 못 참는 아이들처럼 이제는 설레기까지 했다.
골짜기의 우거진 솔숲에서 내려다보이는 호수 물은 참으로 아름다웠으니, 들판과 풀밭, 스텝
(steppe)이라는 그 빈 초원만을 계속 지나온 뒤라서 더욱 신선하였다. 하트갈에서 정확히 17km
에 와서야 비로소 침엽수로 덮인 가지 사이로 호수를 첫 대면 하게 된 것이다. 남북으로 긴 이 호
수는 북쪽 멀리에 큰 폭이 있고 이 남쪽은 아직 좁은 부분이지만 짙은 색깔의 호해(湖海)로 눈 앞
에 나타났다.
수림을 뚫고 내려오니 호숫가의 푸른 풀밭에는 드디어 몇 마리 양과 야크(yak)가 풀을 뜯는 호변
의 진풍경이다. 하얀 게르가 있는 잔디밭으로 가다가는 물가에 차를 세웠다. 순록(馴鹿) 한 마리
가 우리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풀을 먹고 있다. 이 레인디어(Reindeer)가 마침내 보이자 우리는
카메라를 들이댄다, 산타클로스가 아니어서 수줍어하나? 뛰지 못하게 앞다리와 뒷다리를 묶어
놓아서 빠르지는 못해도 나무숲으로 자꾸 들어갈 때 어디서 또 한 마리가 나타났다.
관광객들을 위하여 다카(Dakha)라는 소수민족인 이 북쪽 본토인들이 야생의 북극순록을 길들여
키우는 것이다. 그 수가 적지만 이 순록들도 여기는 환경에 맞지가 않아서 해마다 죽어간다고도
했으니 해발 고지에서만 자라는 이끼가 이 호수 근처에는 없어 먹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추운 지
방의 사람들이 순록을 타기도 하고 썰매를 끄는 교통의 수단이며 그 가죽으로는 텐트를 두르고 옷
을 만들며 고기를 먹기도 하니 실로 소중한 그들의 동물이라 했다.
(홉스골 호숫가의 키우는 순록)
게르 안에서 젖먹이 하나가 뒤뚱대면서 우리에게로 걸어 나왔다. 친구가 그리운가, 낯도 안 가린다, 엄마는 뒤 따라 오면서 웃기만 했다. 오래 전에 시골에서 자라던 우리네 그런 아이였다, 몽골 인들이 우리를 그렇게 닮아 있었으니까. 호반에 매 둔 몽고말을 가까이에 저근하여 갈기를 쓰다듬으니 승마를 하고 싶었다. 호수와 말과 아기랑, 그리고 뿔이 큰 순록과 하얀 게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선 김에 호수가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먹었다.
날은 맑아 파란 하늘에 여름 구름 드물게 떠다니고 맑은 호수로 구름이 모두 또 내려잠긴다. 개도 뛰고, 망아지도 뛰고, 아기도 뛰는 풀밭을 떠나서 공공차가 진입할 수 있는 호변이 토일록트(Toilogt)라고 했으니 거기까지 내쳐 가자고 했다. 숙박 시설이 관광객들을 위하여 설비 되어 있었다, 통나무집도 짓고 하얀 게르를 여러 개씩 세워두었다. 북극 침엽수 들어찬 토일록트의 찻길이 끝 간 데에서 우리가 내렸다.
서양 사람들이 쉽게 그냥 ‘토일레트(화장실/ toilet)’라고 발음한다는 토일록트는 호숫가에 곶이 튀어나와서 나무들과 어우러진 어여쁜 지점이었다. 숙박 게르를 흥정하는데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몽고인이 있어서 놀랐다. 한국에서 살았었다며 한국인 친구도 한 사람 나와서 더욱 반가웠다.
울란바터에서 놀러 왔다는 그와 그 몽골친구가 있어 좋을 것 같았는데 네마는 그 집을 싫어하는 눈치였다. 전에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쨋거나 우리는 네마의 조언을 따라 도로 돌아서 블루 펄(Blue Pearl)이라는 곳으로 왔다. 가격도 2천 토그록이 더 저렴하였고 한국과 중국 및 일본인들이 많이 오는 집이란다.
여름 해가 서쪽 산으로 기울 때 우리는 2만 토그록을 거두어서 네마에게 팁으로 주었다. 1만은 되돌려 주면서 사양을 했으나 막무가내 받게 했더니 그는 정말 만족해했다. 대개 묵는 숙소에서 운전사 숙식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손님을 데려왔기 때문인 모양이었지만 이 호수 안에서는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기를 얼마나 잘 했나, 방들도 이렇게 많았는데. 8월 하순이면 이미 여기의 피크(peak)는 지나는 모양이어서 방 구하기가 하트갈에서의 경고와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아주 쉬웠다, 이번 주말에 축제가 있다는데도 말이다.
한길벗
첫댓글 몽고여행을 하는것같아요...이글을읽고있으면..어렵더라도 계속이곳에 써주시면...감사히읽겠습니다.... 호수가..엄청크다는것 들었는데...대단한것같아요,,,,부럽습니다..~~~안녕히~~~(^_^)+
관심을 가져주서서 감사합니다. 아쉽게도 사진이 보이다가 지워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