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393〉
■ 벌레길 (김신용, 1945~)
산에 올라 산나물을 따다 보니 알겠네.
저 벌레도 사람살이의 길을 가르쳐준다는 것을
명아주 수리취 화살나무 홑잎까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벌레도 먹고 있다는 것을
마치 길라잡이처럼 벌레가 먼저 먹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 벌레가 먹은 잎은 벌레를 보듯 모두 버렸었다.
된장 속에서 맛있게 익은 깻잎도 벌레 자국이 있는 것은 먹지 않았다.
그러나 보라, 산그늘 수풀 속에 숨어 있는 이름 모를 잎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벌레가 먼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무슨 징표처럼, 잠식과도 같은 자국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산 속 수풀을 헤치며 산나물을 따다 보니 알겠네.
그 이름 모를 풀의 잎에 새겨져 잇는 벌레 먹은 자국이
허기에 겨운 보릿고개를 넘을 때, 수풀 속 이름 모를 풀의 잎에 새겨진
그 벌레의 길을 따라 구황의 세월 견뎌왔으리라는 것을
내 이제야 알겠네. 사람이 먹지 못하는 것은 벌레도 먹지 않는다는 것을
길바닥에 깔린 질경이의 잎에도 그 벌레의 길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 2007년 시집 <도장골 시편> (천년의 시작)
*시골에서 살다 보면 도시에서는 거의 보지 못한 송충이나 나방, 벌 등 다소 징그럽게 보이는 존재들과 수시로 마주치게 됩니다. 그런데 해로운 것으로 인식되는 벌레들 대부분은 화초나 야채, 산나물 또는 열매 등을 파먹고 살기 때문에 오히려 깨끗한 존재가 아닐까 여겨지는군요.
그래도 선입견 때문인지 우리는 야채나 나물, 혹은 과일을 고를 때 벌레가 파먹은 흔적이 보이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버리고, 모양이 온전하고 예쁜 것 위주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모양이 온전한 놈들은 대개, 벌레를 인위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열심히 농약을 뿌려 댄 것들인데 말입니다.
이 詩는 은퇴 이후 익숙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산골로 이주한 시인이, 실제 경험을 통해 깨달은 자연의 이치에 대해 담담하면서 리듬감 있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산나물을 채취하다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벌레도 먹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벌레 먹은 자국이 오히려 사람에게 길라잡이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벌레가 먹은 것을 따라 먹으며 배고픔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詩는 결국, 그간 하찮게 여겼던 벌레나 벌레가 먹은 잎을 함께 먹는 사람 모두가 자연 생태계의 일부이며, 조화롭게 공생해 나가야 하는 동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이야기해 준다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시인과 평론가들이 ‘2006년 가장 좋은 詩’로 꼽은 것들 중 하나라고 하는군요.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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