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날아가는 아이가 있었네
그가 처음으로 본 첫 사물 그는 그것이 되어버렸네
그리고 사물은 아이의 일부가 되어버렸네
그날 그날의 얼마동안
또는 여러해동안 또는 길게 뻗어가는 세월의 주기 동안
이른 라일락은 이 아이이의 일부가 되었네
그리고 풀,희고 붉은 나팔꽃,희고 붉은 클로버꽃,딱새들의 노래
.......
헛간 앞마당의 재잘거리는 병아리들 또는 연못가의 진흙
그리고 그 밑에서 호기심 가득 유영하는 물고기와 아름답고 진기한 물
......그 모두 그 아이의 일부가 되었네...
휘트먼(나아가는 아이가 있었네...)
내 마음 속 영악함이 열두살이 넘어버렸을까, 계산적이 될 때마다 채찍질하는 마음으로 즐겨 읽어보는 시이다.
어린아이의 고운 심성이 자연을 통해서 더욱 더 자아 세계가 확대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시인 것 같다.
그때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야 없었을까만은 그저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싶다.
내 유년의 기억은....
특히나 내 스스로와 끊임없이 소통하던, 그 아름다웠던 열다섯살의 그 애틋한 낭만이 내겐 아련한 향수다.
열다섯 살에 도스토예프스키와 스탕달을 만난 뒤론 ,친구들과 그저 웃고 떠드는 게 무의미하고 공허하단 생각을 했다. 나에게로 침잠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혼자서 라디오를 듣고 ,수십장의 일기를 써내려가면서 그렇게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또래에 비해 사춘기가 일찍 온 듯 싶었다.
주말이 되면 나 혼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순위를 매기는 날이다.
좋아하는 DJ전 영혁, 성시완, 좋아하는 노래들.. 가고싶은 나라..들
매주 순위가 들쑥날쑥 왔다갔다 하지만. 한번도 순위가 변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다.
스페인..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
이유는 단 하나.. 라디오에서 들었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아랑훼즈 협주곡이 너무 좋아서
알함브라 궁전에 얽힌 이야기들과 그 처연하게 아름다운 궁전의 모습은 가슴 속에 꿈으로 아로새겨져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내 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잡히기 시작했을 때부터 유럽 몇 개년 여행계획을 세웠다.
출장으로 동남아나 중국, 미국, 오세아니아,일본쪽은 꾸준히 다녔지만, 이상하게 유럽은 나와 인연이 닿질 않아서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많이 욕심을 부리지 않고 1년에 한 나라씩.. 스위스,영국,프랑스.이태리, 독일,오스트리아, 체코,헝가리,유럽 여행의 맨마지막에 스페인을 넣었다.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를 가장 뒤에 넣은 이유는..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의 희망과 풍성함으로 일상의 남루함을 버티는데 힘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해서 스페인을 다녀왔다.
처음 스위스부터 시작할 때는 모든 것을 아꼈다. 음식도 최대한 패스트푸트로 아꼈고 호텔비도 아꼈다.
그러나 스페인 여행을 계획 할 때쯤엔 그 전에 비해 여유있어졌다.
항공권은 마일리지를 이용해서 비즈니스로 ,호텔은 시내한복판에 , 교통 편하고 쾌적한 곳으로 ,음식도 분위기와 맛이 좋은 곳에서,와인까지 꼭꼭 챙겨마시며 우아하게 다녀왔다.
(영국에선 맥도날드만 줄창 갔던 것 같다.여행 끝날 때쯤엔 M자가 싫어졌다.)
유럽에서 스페인이 가장 좋다고 기억되는 이유는 어쩌면 ,그렇게 조금은 여러가지 조건들을 편하게 이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스페인 일정을 정리해보자**
스페인은 직항이 없어서 루프탄자 독일 항공 이용해서 프랑크 푸르트 경우 바르셀로나 도착
여행 노선은 바르셀로나--밤 기차로 그라나다 도착.--세비야,-- 마드리드,--톨레도,--마드리드
빌바오를 놓고 가느냐를 한참 놓고 고민하다가 나중에 빌바오를 빼버린 것이 지금도 서운하다.
하나-- 바르셀로나-- 아름다움, 화려함, 자유로움
바르셀로나- 리시유 역이 번화가이다.
쇼핑가도 줄지어 있고,플라멩고 공연도 이 근처에서 많이 한다.
리시유 역에서 투어버스 패스를 끊고 내리고 싶은 곳에서 내리면 된다. 평소 이 투어 버스 타는 게 소원이었다.
(리씨유 거리에서)
유유자적 2층에서 바라보는 시내 풍경이 더없이 환상적이고 여유로움에 상쾌한 바람까지 맞을 수 있다,
간 곳은 성가족 성당,구엘 공원,몬주익 공원이었다.
그중에서 맨 처음 간 성가족 성당은 1882년 공사를 시작해서 지금의 속도로 공사를 한다면 200년 정도 후에 완성이 된다고 하니 그 건축 규모만 해도 상상이 안간다.
하늘을 향해 벋은 옥수수 같은 네 개의 기둥은 마태,마가,누가 요한을 상징한다고 한다.
완성이 되면 모두 12개의 첨탑이생기는 것이다.
가우디는 성 가족 성당에 대해서 엄청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전 재산까지 모두 쏟아부으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는데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스페인이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가우디의 작품을 보고싶다.
가우디의 천재적인 개성과 자유로움이 어떤 것인지 너무너무 보고싶었다.
제일 가보고 싶었던 1순위 여행지 스페인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 기쁨과 감격은 다 뭘로 표현하랴..~
바르셀로나 도처에 있던 가우디의 흔적들..
내 큰 기대를 하나도 무너뜨리지않고 오히려 더 큰 기쁨과 화려함과 웅장함으로 나를 만족시켜주었다.
가우디와 같은 천재적인 감수성을 지닌 사람을 늘 부러워하는 콤플렉스 많은 나는 이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로움만으로도 넘 감사할 일이다)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은행가인 구엘의 이름을 따서 붙인 공원이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여유로운 산책을 할 수 있는 곳인 것 같았다.
햇볕 아래서 책을 보기도 하고 담소도 나누고 하는 모습이 꼭동화 속의 공원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구엘 공원의 중앙에 자리잡은 이구아나 조형물이 넘 앙증맞고 귀여웠다.
10월에 갔는데도 바르셀로나 하면 태양의 느낌이 강렬했다.
반팔을 입고 돌아다녔는데도 따스한 태양의 느낌이 넘 좋았다.
저녁에는 몬주익 언덕으로 갔다.
몬주익하면 우리에겐 황 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안겨준 곳으로기억 되는 곳이다.
가기 전에 스페인의 치안 상태가 좋지않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밤엔 외출을 삼가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조심조심 주위해가면서 밤거리도 거닐었는데 생각보다 험악하진 않았던 것 같다
마드리드 아토차 역과마드리드 시내는 밤에 약간 불안하긴 했다.
마드리드의 가장 번화한 거리 중의 한곳인 그랑비아에서
저녁에 한가롭게 밥을 먹고 있었는데..
바로 눈 앞에서 흑인 여러명이 경찰에게 쫓기는 장면을 목격했다.
.
내가 그들에게 돈을 잃어버렸다면 무척 화가 났겠지만..
흑인 들이 워낙 먹고 살만한 일자리가 없어서 그런게 아닌 가 하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대부분 ,길거리 가수,연주자 ,짝통 파는 잡상인들이 다 흑인이었다.
좋은 식당의 웨이터도 전부 백인들이었고
아주 조금은 그들을 이해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마음이 뭉클했다.
두울---플라멩고
피카소 미술관을 오전에 갔다.
안내 책자를 자세히 보고 갔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월요일은 휴관일인데 체크를 못해서 허탕쳤다.
돌아오면서 카테드럴을 갔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규모도 크고 내부가 아름다웠다.
근처에 스포츠 용품점에 가서 기념 티셔츠를 샀다.
직접 좋아하는 선수들 등번호를 새겨주는데 호나우딩요를 부탁해서 그 사람의 등번호를 새겨 넣었다.
생각보다 가격이 엄청 비싸다.
길거리 잡화점에서도 파는데 질이 떨어져서 정품을 샀다.
오후엔 계속 걷다가 엘 코트 엥글레스 백화점까지 걸어왔다.
거리가 꽤 됐는데도 거리 모습이 예쁘고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어서 지치지 않고 계속 걸어다녔다..
엘코트 엥글레스는 바르셀로나에도 몇 개가 있는 것 같았다.
굉장히 화려하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그냥 그랬다.
우리 나라에 없으면서 값도 싸고 좋은 것이 있는지 열심히 살펴봤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디자인이 발달한 나라라서 멋진 디자인의 핸드백이나 의류가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없는 듯 했다.
스페인에서 젊은이 들이 주로 입는다는 망고도 그냥 평범한 수준인 듯피고 . 우리 나라에도 들어와있지..
로에베의 디자이너가 바뀌어서 디자인이 참신하고 고급스럽긴 한 데
여기서도 가격이 만만치는 않다~
스페인에서 쇼핑을 한다면 액세서리가 가장 좋을 것 같다.
피카소 미술관 근처에 손님들이 직접 원석을 고르면 직접 조립해서 만들어 주는 곳이 있었는데 예쁜 디자인이 많았다.
나도 웬만하면 구입할 요량으로 들어갔는데 대기자가 넘 많아서 그냥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고 말았다.
워낙 악세사리를 좋아하는 나지만 반나절이상을 거기서 지낼 수는 없지않은가..
오후 내내 특별한 목적지 없이람블라스 거리,포트 벨까지 계속 걸어다녔다.
포트 벨은 쇼핑가다.
그곳에서 쉴 요량으로 수족관을 갔는데 변변한 의자 하나 없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돈만 날리고 왔다.
포트 벨 내에 쇼핑가는 저렴한 쇼핑가라서 젊은 이들이 많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생동감 있고 활기찬 느낌을 주었다.
2층에 스타벅스 커피숍에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바다가 환상이다
(햇살에 부서지던 바다..스타벅스 커피 숍에서..)
햇빛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니 여행의 피로도 다 날라가 버리는 듯 했다..
저녁에 다시 리시유 거리로 와서 플라멩고 공연을 갔다.
주로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 하는데 동양인들은 얼마되지 않았다.
그리 넓지 않은 바같은 분위기였는데 사람들이 빼곡하다.
동양인들은 다 뒤에 자리를 주었는데..지금도 궁금하다.
동양인이라서 뒷자리 배정한 건지..늦게예약해서 그런건지..
자리가 비교적 가까워서 플라멩고 추는 사람의 하나하나의 손놀림 노래 부르는 사람의 숨소리까지 생생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젤 좋았다.
TV 를 통해서만 봤고 실제로는 처음 봤는데도 너무 흥미롭고, 가슴도 팔딱팔딱 뛰기도 하고, 또 마음이 짠해지는 느낌도 있었다..
집시들의 애환을 담은 구슬픈 가락이 마음을 아프게..그러나 이내 황홀함으로 이끌고 간다
“집시들의 깊은 슬픔을 우리의 한의 개념을 빌려 이해하면 가장 쉬울 것이다.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 풀 수 없어 가슴에 맺힌 것이 바로 한의 정서이다.맺힌 한은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야 한다. 이 한풀이 개념이 무속적으로 발전한 것이 살풀이일 것이다. 어찌 보면 집시들의 살풀이,한풀이가 바로 플라멩고라 할 수 있다.
이 살풀이를 이해할 수 있는 민족은 그것을 경험한 우리 민족이다. 이 플라멩고의 신명남과 어두운 감정의 두 가지 극단 모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 민족뿐일 수도 있다. “--원초적 에너지를 품은 플라멩고 --중에서
여행이 좋은 점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색다른 문화적인 경험을 깊숙하게 온 몸으로 진하게 할 수 있다는 거..
셋--피카소 미술관(바르셀로나)
아침 일찍 서둘러서 피카소 미술관 개관 시간에 맞춰서 갔다.
조금 늦은 것 같은데 사람들이 좁은 골목에 엄청 늘어서 있다.
그래도 우리 나라 같으면 안내원들이 착착 빨리 진행해서 입장 시켜줄텐데 여긴 천하태평이다.
세월아 네월아~ 한참을 뙤약볕 아래서 기다리는 데 누구하나 인상을찌푸리는 사람이 없다.
어딜 가던지 웬만한 일들은 이 사람들은 여유롭게 행동한다.
가진 자의 여유..?
이들은 우리처럼 기를 쓰고 살지 않아도 조상 잘 둔 덕에 웬만큼 살 수 있으니 그런 여유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피카소 미술관에는 피카소가 파리로 가기 전 그의 유년 시절에
그린 스케치와습작,데생 등 그가 추상화가로써 이름을 날리기 전에 청년기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부분 형태가 잘 드러나 있기 때문에 추상적인 그림에 질렸다면 추천하고 싶은 미술관이다.
아주 어린 시절에 그린 영성체와 과학과 자비 같은 경우는 참 잘 그린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파리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에 있는 그림이 난 더 좋다
그곳에 올가의 초상화 하나로 나를 사로잡았다.
피카소 미술관이 내 기억에 더 강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피카소의 그림보다 더..
그 좁은 골목길에 다투어 쏟아지던 햇빛이 생각나서이다.
(내가 사랑하는 좁은 골목 길...)
스페인이나 모로코 같은 나라들은 햇빛이 강하기 때문에 좁은 골목길을 제법 볼 수 있다.
알록달록한 유년을 생각할 때마다 , 나도 그 골목길에서 배운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김주영 씨가 쓴 글에(궁핍한 골목길에 햇볕이 들었습니다) 중에---
“가난의 휠대로 휜 삶의 땟국이 켜켜이 묻어났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어느 누구도 가난의 실체를 경험했다고 대답할 수 없는 고결한 삶이 있었습니다 담벼락에 묻어있는 아침 햇살을 즐기려고 헐벗은 아이들이 미어켓처럼 시린 똥배를 내놓고 해바라기 하던 곳,이웃끼리 서로 모여 지지고 볶고,욕하고 말타기 하고 무동태우며
때로는 드잡이 하고 삿대질하는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곳이 바로 골목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신체적 접촉이 사라질 때,이웃과의 진정한 소외는 완성된다는 것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골목은 그저 아이들이 놀던 그런 곳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소통과 울림이있던 곳이었다.
내가 하고 싶던 것을 많이 제공해주었던 공간
환한 햇살 ,사람과 사람사이의 따뜻한 온정, 놀고싶은 것을 맘껏 뛰놀 수 있던 자유로움, 자아가 확대되는 경험
골목이 주던 그 아늑함,, 그 피카소 미술관의 그 골목 또한 그 아늑함으로 기억된다.
피카소 미술관을 보고 나서 시내 근처를 쇼핑했다.
엘코트 엥글레스 백화점 위층에 가서 조금은 호사스런 점심 식사를 했다.
조금 비싼 곳이었는데 전망도 너무 근사하고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들의 기품있는 서비스가 일품이었다
그날 저녁에 야간 열차를 차고 그라나다로 이동을 해야했다.
호텔이 마침 역근처인지라 저녁까지 로비에서 졸면서 기차를 기다렸다.
저녁 21시 30분 에 출발해서 아침 8시 57분 에 도착하는 엄청난 대장정이다.
야간 열차에 대한 안좋은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긴장을 많이 했지만.. 안에서 잠금 장치가 잘 되어 있어서 크게 위험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처음 타보는 야간 열차인지라 긴장을 많이 했다..
아침에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바르셀로나보다좀 많이 춥다.
옷을 껴입고 그라나다 투어 버스를 탔다.
여유있게 시내를 한바퀴돌고 알함브라 궁전을 갔다..
입장 시간이 정해져있어서 투어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다가 관광을 시작했다
넷--알함브라 궁전(그라나다)
그렇게 몇 십년을 나의 마음 속에 품어왔던 알함브라 궁전..
애잔하고 서정적인 기타 선율에 이끌려 머언 그리움을 간직한 채 지나온 수십년의 세월~만에 드뎌 꿈을 이루다..
알함브라 궁전에 간 날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몇 번을 의심했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슴 벅차게 다가왔던 궁전의 화려함과 섬세함..
그 기세에 눌려서 할 말을 잃어버리다..~
이 궁전을 빼앗기고 모로코로 피신해 간 마지막 아랍 왕은 죽을 때까지 이 궁전을 그리워했다고 하는데..
어련하랴~
자기가 정붙이고 살던 공간을 빼앗겨버린 사람은 아픔과 한에 묻혀서 평생을 그리워했을 그 왕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딱 하루 동안 정붙이고 감상했던 나도 불현듯 가끔씩 이 궁전을 다시 내 눈으로 보고싶은데 말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백미..~헤네라리페 정원
최고로 아름답다는 곳..
연못과 주위에 나무들이 너무 조화로운 곳..
우리가 알함브라 궁전을 보았을 때 가장 많이 보아왔던 곳이다..
영화로움 뒤에 묻어있는 자신의 성을 빼앗긴 울분이 묻어이있는 곳이기 때문에..
인생무상.. 가진다는 것의 덧없음.. 자기 것을 지키지 못할 때의 한..~
뭐 이런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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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궁전에 대한 환상은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음악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 애수에 젖은 차분하고 감상적인 그 곡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알함브라 궁전에 간다는 거 자체가 완전 꿈만 같은 일이다.
내 생전에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생각했던 기대했던 이상으로 나를 감동시키고 놀랍게해 준 알함브라 궁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 정교함에 대해서무슨 언어로 표현을 해야할지 답답함마저 느낀다.
대충대충 넘어가지 않고 하나하나 작은 것마저 아름다움으로 채워넣으려던 사람들의 작은 정성에 경의를 표현하고 싶다.
다섯-- 스페인의 예술적 자부심--프라도 미술관(마드리드)
유럽의 3대 미술관 루브르 미술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에서 기억나는 그림은 무엇보다 벨라스케즈와 고야의 그림들, 안젤리코, 엘 그레고,보스,,,보티첼리,치치아노, 브뤼겔
벨라스케스는스페인 태생의 화가로 24살에 궁정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스페인에서는 고야,벨라스케스,엘 그레코를 3대화가라고 칭한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이 약 50여점 정도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이 바로 이 시녀들(LAS MENINAS)라는 그림이다.
이 시녀들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가운데 앙증맞은 표정으로 서있는 마르가리타 공주이다.
벨라스케스는 이 공주를 여러차례에 걸쳐서그렸다.
핑크 마르가리타,블루마르가리타..(이 그림은 빈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어린 공주가 너무 보고 싶어서 빈으로 마드리드로 달려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그림은 공주가 5살때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데 5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품있고 당당하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해맑은 그 표정 지워지지가 않는다..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의 예쁜 공주가 무슨 걱정이 있으랴싶지만 그공 주에게도비극적인 이야기가 있다.
그 당시 왕가에 근친혼의 풍습이 있어서 유전병으로 공주는 커가면서 얼굴이 점점 길어졌다고 한다.
커가면서는 어릴 때 통통하면서 맑은 모습이 점점 없어졌던 것 같다.
공주는 나중에 오스트리아로 시집을 가서 22살의 어린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어릴 때 여자라면 한 번씩 꿈꾸었던 공주에 대한 환상
현실 속의 공주는 유전병에 대한 후유증으로
원치않는 정략 결혼에 희생양이 되기도 했고..
공주에 대한 세심한 애정과 배려로 공주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알 수 없는 아련함과 애잔함이 묻어나온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만난 마르가리타 공주--
참 많이 기다려온 전시라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밥도 안먹고 달려가서 전시회 첫 날 보고 왔다.
예전에 비엔나 에서빈 사 박물관에 갔을 때 느꼈던 그 감동을하루라도더 빨리 누리고 싶어서였다..
가장 많이 보고싶었던 그림은 역시 벨라스케스의 그림이었다..
한참을 서서 마르가리타 공주를 보고왔다.
내 안의 가장 유치하고도 속물스런 근성은 공주위 화려한 삶에 집착을 한다..~
22살에 유전병이 의심되어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궁정 안에서 마음껏 누렸을 그 호사스러움이 자꾸만 부러워진다..
20살 시절엔 누군들 화려한 삶을 동경하지 않겠냐만 신데렐라 처럼 화려한 비상과 불꽃처럼 살다가 죽은 사람에 대한 부러움은 현실의 삶을 왜곡 시키기도 했다..
보여지는 화려함이 전부가 아닐진데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집착은 아주 평범하면서도 편안한 일상을 누추함으로 느껴지게 한다는 것을..
나이가 이렇게 들고나서야 아주 조금씩 천천히 깨닫게 된다..
내가 평범한 일상을 거부하는 것은 평범한 나의 일상이 지루하다는 것이 아니다..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아무런 몸짓을 하지않고도편하게
살아가는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에 대한 반감일 뿐..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최선의 노력을 다 하며 그 안에서 얻어지는 보람과 행복으로 나 자신을 가꾸는 이 평범한 삶.. 부족함없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공주의 삶..
그러나 다 보이는 대로가 전부나 진실이 아님을 ..
아니, 이 세상에는 어쩌면 진리라는 게 정말로 없을지도 모른다.
니체의 말대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힘만 있을테지..
보이는 부분이 얼마만큼 나를 대변하고 있는지..
마르가리타 공주 뒤에 있었을 그 속의 애잔함..
여섯--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스페인 현대 미술의 산실
파카소,달리, 미로,칼더, 디에고 등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이 미술관을 찾은 이유는 무엇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때문이다.
교과서에 워낙 조그맣게 나와서 그 정도로 큰 줄은 몰랐는데 엄청난 대작이다.
3x7미터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 바스크 지역에서 일어난 독일군의 무차별 폭격을 그린 그림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폭격을 당하는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전쟁이 주는 부조리함을 고발한 작품이다.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면 몸서리 쳐진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는 저런 부조리한 상황이 없을까.
인간이 존엄하다는 게, 저렇게 뒹구는 동물들과의 틈사이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런 전쟁과 같은 부조리한 상황에선, 인간은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으며,아무런 대응책도도 없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아도르노 말처럼, 아우수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건 정말 야만인지도 모른다.
내가 사람이란 사실이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 절망의 비이성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를 건져주고 일으켜 세워준 것은 무엇에 대한 기대 ,희망이었을까..?
일곱-- 정열적인 세비야와 중세 도시의 모습 ,톨레도
세비야는 김 태희의 선전으로 한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끌던 도시
세이뱌의 스페인 광장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던 김 태희의 모습으로도 기억는 곳..
세비야는 이슬람이 지배했을 때 이슬람교도들의 수도였던 곳으로,비제의 화려한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된 곳이고, 로시니의 (세빌리야의 이발사)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세비야를 모르면 세상으 멋을 모르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이 말은 현지인들이 자신들의 고장을 알리기 위한 과장이 섞여져 있기도 하겠지만, 그럴법도 하다는 수긍의 마음도 생긴다.
흥겨운 음악이 어디서든 흘러나오고,오렌지 향기 가득하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쫓겨난 이슬람교도들의 한이 느껴져서 일까
지독히도 햇빛이 눈부시고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는 이 도시 어디에선가 은근히 묻어나는 슬픔의 냄새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말
어쩌면 너무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워서 그렇게 서러운 도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게 그렇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도시들이 있다
세비야도 그렇고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왜 그토록 그곳에서 사람들이 자살을 생각하는지..
우리의 야경의 한강이 넘 아름다워서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느낌을 간 직 한 채 떠나는 그 느낌들을..
이 도시는 화려한 느낌의 세련된 여인들보단 귀도 레니가 그린 아직은 청순하기만한 어린 소녀의 풋풋함과 그 이면의 수줍음과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과 두려움 뒤범벅이 된 베아트리체 혹은 뭉크의 그림에서 보는 사춘기 소녀를 보는 느낌이 든다.
따사로운 햇빛, 줄지어 있던 노천 카페 ,선술집 형태의 타블라오에서 기분 전환 하며 흥겨움을 토해내는 사람들, 오렌지 향기 가득했던 환했던 세비야대학교의 낭만, 이 대학이 오페라 카르멘의 주인공이었던 카르멘이 일하던 담배공장이었다고 한다.
톨레도,마드리드 근교에 있는 중세적인 모습을 간직한 곳
좁은 골목길, 엘 그레코의 집--,그리스 출신이지만, 스페인을 사랑해서 스페인에서 활동했던 화가
비슷한 시기의 다른 화가들과 비교해서 친근하고, 우아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성직자들을 표현해서 더 많이 친근한 느낌을 주는 화가이다.
크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 도시들도 좋지만, 아스라한 느낌을 주는 이런 작은 도시들도 참 정이 간다.
스페인은 아직도 내겐 정말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어설프게 알아서, 더 많은 것에 대해 알고 싶어 안달이 나고 몸살나지만,좀체로 알려주지 않는..
누군가에 대해 얼핏 호기심이 생기고 많은 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순간에 무슨 연유인가로 그 소통의 단절이 되었을 때 많은 아쉬움이 남는 거처럼, 스페인도 내겐 마찬가지이다.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해 뭘 안다고 말할 수 있겠냐먄은, 더 없이 차올랐던 그 느낌은 생생하다.
잠시나마 ,그래도 내 일부인 것처럼 다정했던 도시를 상실할 때 그 공항에서의 느낌은 아직도 짠하다.
어느 나라에 대한 후기를 쓸 때 척척 못써내려가는 것은 그 도시에서 받았던 그 좋았던 느낌과 마지막에 헤어지는 그 상실감의 느낌을 다시 또 겪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말미에는 더할 나위없이 힘들다,
동여맸을 때는 못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달래주어야 하니까..
상실감은 더 이상 내 앞에 존재하지 않을 것에 대한 ,어차피 이제는 돌아갈 수 없어,되돌릴 수 없어 아픈 그 감정들을 구체화시켜서 괴롭힌다.
일시적으로라도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것들을 ,다른 지금의 상태로 되돌리는 이행의 과정들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마음을 다시 열어보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일종의 애도 과정을 통해서,,내가 쏟았던 감정이 혹은 부질없는 것은 아니었다라는 위안과,새로운 도시로 내 마음을 채울 수 있도록 .
조금이나마 친숙했던 도시를 뒤로 한 채,새로운 도시로의 호기심 내지 욕망은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삶이라는 행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증거..다시 또 아플지라도..
마지막--페르소나 벗기
아름다운 것에 대해 유난히 집착을 하는 나로서는 나이 든다는 것이 참으로 많은 상실감을 가져 오게 하더군요. 늘 언제나 화려한 외모, 재치있는 말솜씨, 다양한 화제들로 중심의 한가운데 서서, 영혼의 허기짐을 달래곤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조금씩 밀려나야함을 알았고, 그것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많이 아팠고, 그래서 아마도 공부를 미친 듯이 혼자 해댄 것 같아요. 아마도 여전히 젊은 날처럼 싱그럽고 청순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겁니다. 공부를 통해서 나를 끈질기게 들여다보면서, 내가 가진 문제점들과 그동안 나를 억압하거나 나를 불안하게 했던 것들의 실체를 희미하나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결론은 나의 진실한 내면이 아닌 포장으로 보여주는 부분에 대한 환호가 늘 불안했던 것이지요. 사람들이 칭찬과 탄사를 받기 위해 난 언제나 밝고 강하고, 당당한 모습만 연출했던 거지요.
연예인을 했으면 잘 했을거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이 그걸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공부를 혼자 하고부터, 서서히 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내 안의 있는 그 침울하고도 ,우울한 느낌들. 벤야민이 가졌다던 그 심오한 슬픔.
자신의 내면의 그러한 성향을 은닉하고 감추며,하나라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했던 그 처절한 싸움들.
결국은 어쩌면 내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듯한 고통이었을지도..
이제는, 내 자신이 알고 있는 나의 나약함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지요.
남들 앞에서 강해보이고 멋있어 보일 필요가 없었지요.
나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고 글로 말로 풀어가면서, 나자신을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만난 나 자신의 울퉁불퉁을 껴안게 되었지요.
왜 그토록 남들의 사랑과 인정에만 목말라 했을까요. 나를 숨겨가면서..
내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이젠 더 이상 불안하고 알 수 없던 세계가 아닌, 그저 내가 나인 그 이유에 가깝게 ,나자신에게 맞춰가면서 살아야겠다,그게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가을이면 심하게 앓는 그 우울의 늪에서도, 예전같으면, 그 모습 감추고 또 사람들 앞에서 시시덕 거렸겠지요. 그러나 그냥 나 우울하니 혼자 일어설 수 있게 놔두라, 혼자 바닥까지 갔다가 다시 일어서겠다 그렇게 말하고, 조금씩 손 잡아 줄 수 있는 , 공감 잘 하는 친구들과만 맘을 터놓았습니다.
내 모습이 아닌 과장된 모습으로 타인들과 함께 있는 게 가장 벅차지요.
그렇게 가을 내내 노벰버 레인을 들으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받아들인다고 해서 포기하기는 아니겠지요.
쓸데 없는 곳으로 빠져나가는 에너지를 , 정말로 필요한 곳으로 나가게 해야지요.
많이 아프고, 많이 쓰리면서, 제가 얻은 가장 귀한 체험은 공감입니다.
타인에 이르는 가장 선한 길이라는 공감..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주는 능력이지요.--내 마음에 다다르면서 얻게 된 선물
누군가의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누군가가 감추고 있는 ,억압하고 있는 마음은 없는지, 타인을 전혀 판단하지 않고 , 그저 들어주는 , 같이 치열하게 겪어내주는,그러면서 서로 보듬으며 감싸안는..
세상에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은 나라는 확신에서 시작되는 타인의 마음에 진정으로 다다르는 길..
그렇게 관계의 가시에 찔려서 휘청거리는 누군가에게,혹은 내게 서로에게 흡수가 아닌 공존으로 상호의존으로 나아가는 길.
오늘은 유난히도 늦가을의 햇빛이 따뜻합니다.
스페인에서 느꼈던 그 아찔했던 햇살..
신청곡--에릭 사티--짐노페티
비내렸던 봄 날에 쓴 글..~!
늘 듣던 노래인데도,어느 순간 갑자기 내게 깊숙이 들어와 나의 맘을 후벼놓는 노래가 있다.
비 오던 저번 주 목요일갑자기 이 노래가 나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마음이 너무 쓰리고 아파진다.
마음이 여러 갈래로 흐른다.
다 잡아지지가 않고 불안한 마음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
무엇 때문인지, 노래에 의지해서 겨우 마음을 추스리려고 노력한다.
비 오는 가만가만 이 노래 들으면 비소리와 제법 잘 어울린다.
빗소리 사이로 들리는 짐 노페티.에지간히 서럽다.
첫댓글 굴 한번 못보고 1년동안 글로만 소통했던 분들을 올 겨울에 만나게 되네요.
글로 흔적을 4일동안 보이지 않았다고 슬며시 제게 (어디 아픈 건 아니냐, 마음이 아직도 어려우냐)라고 물어보시던 분.
아~가슴이 갑자기 눈시울이 시큰해지고, 올 해가기 전에 죽어도 이 분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바로 실천, 그 공간에 들어오는 다른 분들까지 함께 모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저도 누군가가 손내밀어 주기만을 바랄뿐 먼저 문을 열 용기는 없었지요. 그럼에도 너무 고마워서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더군요.
아 두드렸더니 모두 열리네요. ㅎㅎ
올겨울엔 누군가의 아픔을 상처를 함께 경험하고 나누면서 희석이 되고 치유되어가는 따뜻함만 있었으면 좋겠네요.
내 마음을 열어 사랑해줘라는 공주는 너무도 외로워보여요.
아침에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하는데,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의 가슴저린 사랑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그 뒤에 이어서 나온 에릭 사티의 짐노페티가 나오는데, 참 묘하게 잘 어우러지면서,,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수요일에 비가 내렸네요..
페르소나벗기님, 제 예상대로 무척 아름다운 분이시군요! 우선 사진만 보고 나가요. 또 올게요~
아이고.. 그런 환상 혹시나 가지고 계실까봐.. 실물에 가장 근접한 가장 최근의 사진을 올린 겁니다. 현재는 그리 아름답지 않아요. 한땐 아름다웠으나. ㅎㅎ 근데 어쨌든 감사드려요. 저를 워낙 예쁘게 봐주시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요. ㅎㅎ
언젠가 꼭 페르소나님과 플라멩고를 같이 추고 싶네요 ^^ 벨라스케스 저 그림을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라는 소설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책에서는 바르톨로메를 개 인형으로 생각하며 놀던 철없는 공주의 모습으로 그려지지요. 지금 찾아보니 저 그림에서 착안해 소설을 썼다고 하네요.
영화 '밀양'에서 빛을 담아낸 것을 보고 놀라고 전율한 적이 있어요. 스페인 골목에서 느낀 빛과 가을날 남쪽으로 기차타고 가면서 느끼는 빛 페르소나님께서 점심시간에 미술관에 걸어가면서 느꼈을 빛들... 아마도 가장 인간을 사랑해주는 것은 빛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드네요. 빛.. 빛.. 빛..
보리님 ㅎㅎ 플라멩고. ㅎㅎ 아고 참 다정한 말인데요. 같은 동성끼리도 체온으로 전해지는 사랑이 있겠지요. 기다려집니다. 저도. ㅎㅎ 우리 만나게 되면, 우리 악수부터 진하게 해요. ㅎㅎ 빛..이 아마도 인간을 사랑해주는 것이 빛은 아닐까.. 아.. 넘 기가막힌 표현이네요. 보리님의 그 예리한 감각에 전율이 오는데요. 밀양에서 빛을 담아낸 거.. 아 전 기억이 잘 안나요. 어쩜 좋아요. 영화 보는 내내 넘 우울해서 질식할 것 같은 그 기분만 남았는데.. 거기에 또 빛이 있었구나..이런 무감각.. 스페인 그 골목에서의 그 빛.. 아 정말.. 아직도 생생해서 정말 그 나라를 생각하면.. 그저 .. 그저 맘이 .. ㅎㅎ
저도 저 그림은 몇 번 본 적이 있어요. 공주의 모습이 왠지 비정상적으로 보였었는데요, 가슴은 죽어있고 머리만 살아있다고 할까, 그런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마치 몸통은 나무토막으로 이루어져있고 머리만 사람인,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불운의 공주군요. 마르가리타 공주, 벨라스케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으로도 공주의 비정상적인 느낌을 받으셨군요. 맞아요. 약간의 박제 인형같다는.. 가슴은 텅비어..바람만 부는.. 제대로화가의 마음을 읽으신거겠지요. 저도 저 그림 앞에서 너무 슬프더라구요,.저 그림 앞에 사람이 워낙 너무 많아서 혼자 조용히감상 할 순 없었지만.. 그 은근 스산한 느낌..들
음악의 선율이 마음을 동요시키기도 하고 가라앉히기도 합니다. 스페인, 여행기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여전히 풍부하고 왕성한 기운 얻어가요~
유월님이 음악에서 받은 느낌을 제대로 표현해주신 것 같아요. 들었나 놨나..사람의 마음을.. 비오는 날마다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곡중의 하나더라구요. 제 글에서 그렇게 좋은 기운을 느끼셨다니 제가 오히려 늘 더 고맙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