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스님의 본생담으로 읽는 불교
34. 비두라 현자 본생 (‘본생경’ 545번) ① 사문과 번뇌의 미끼
지혜 없던 용왕 가족이 일으킨 욕망의 도미노
설법 듣고 싶던 왕비 "현자의 심장 갖다 달라” 잘못된 요구
무지한 용왕, 딸 용녀에 "현자 데려올 남편 구하라” 부추겨
애욕 사로잡힌 용녀, 기다렸다는 듯 남편감 유혹하러 나서
인도 아잔타 2번 석굴의 비두라 본생담 벽화. (오른쪽부터) 남편감을 찾아나선 이란다티가 꽃으로 장식된 그네에 앉아 노래를 부르자 말을 타고 지나가던 야차 장군이 그 노랫 소리를 듣고 말에서 내려 이란다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혜는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이다. 기원정사에서 제자들이 부처님께는 큰 지혜, 넓은 지혜, 밝은 지혜, 민첩한 지혜, 예리한 지혜, 투철한 지혜가 있어서 다른 유파의 학설을 타파하고 현자들을 조복시킨다고 하자, 부처님께서 다음 이야기를 말씀하셨다. 아잔타 2굴 우측벽에 그려져 있다.
옛날 쿠루 왕국의 인다팟타시에서 다난쟈야 코라비야가 나라를 다스릴 때, 비두라라는 대신이 왕에게 속사(俗事)와 성사(聖事)를 모두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마음에 드는 비파음색으로 코끼리를 매혹시키듯, 아름다운 음성의 설법으로 염부제의 모든 왕들을 사로잡았다.
그때 바라나시의 거사로서 서로 친구인 4명의 부호 바라문이 애욕의 위험을 보고 출가하여 설산의 선인이 되었다. 산중에서 오래 살던 그들이 소금과 식초를 얻기 위해 앙가국의 카라챤파 도성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그 성내에 또 서로 친구인 4인의 부호가 그 선인들의 단정한 행장에 신심을 일으켜 그들에게 예배하고 각각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음식을 대접한 뒤 왕원에 머물게 하였다. 그 선인들은 각각 33천, 용, 금시조, 쿠루 왕의 미가치라 동산을 다녀와서 그 세계의 영예와 행복, 호화, 번영을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4인의 친구 부호는 그 세계에 재생해서 제석천, 용왕, 금시조 왕, 쿠루 왕의 왕자로 태어났다. 그 선인들은 범천계에 태어났다.
쿠루 왕의 왕자는 아버지가 죽은 뒤 쿠루 왕이 되었다. 그는 내기를 좋아하였지만, 비두라 현자의 가르침을 따라 보시, 계율, 포살(계율을 지키고 참회하는 행사)을 하였다. 어느 날 네 왕이 포살일에 쿠루 왕의 정원에서 사문의 법을 닦았다. 저녁에 연못가에서 만나 자비심을 굳게 가지고 부드러운 소리로 인사를 나누고 앉았다. 하늘 세계나 금시조의 세계나 용궁에서는 포살의 실행에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제석천이 말했다. “우리는 다 왕인데, 우리 중 누구의 계율이 제일 클까?”
용왕 바루나가 말했다. “금시조왕은 용과는 원수이다. 그런데도 나는 우리 생명을 빼앗는 원수를 보고도 성을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 계율이 제일 크다.”
‘성내야 할 자에게 성내지 않고/ 성품이 좋아 언제나 성 안 내며/ 또 성내어도 겉으로 나타내지 않나니/ 이런 이를 세상에서 사문이라 부른다.’
금시조 왕이 말했다. “이 용이 내게 가장 적당한 음식이다. 그러나 나는 제일 좋은 음식을 보고도 굶주림을 참으면서, 먹고 싶다는 악을 범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 계율이 제일 크다.”
‘견딜 수 없는 배고픔 잘 견디어/ 섭근(攝根=감각기관의 단속)의 행자, 그 음식에 절제 있으며/ 음식으로 조금도 악을 범하지 않나니/ 이런 이를 세상에서 사문이라 부른다.’
신들의 왕 제석천이 말했다. “나는 안락한 여러 신들 세계의 행복을 버리고, 계율을 지키기 위해 인간 세계에 왔다. 그러므로 내 계율이 제일 크다.”
‘이 세상의 모든 놀이와 즐거움 다 버리고/ 이 세상에서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으며/ 몸의 장식도 또 음욕도 모두 다 버렸나니/ 이런 이를 세상에서 사문이라 부른다.’
쿠루 왕 다난쟈야가 말했다. “나는 오늘 막대한 재물도, 1만 6천의 무희(舞姬)가 가득 있는 궁전도 버리고 이 왕원에서 사문의 법을 닦고 있다. 그러므로 내 계율이 제일 크다.”
‘진실로 바른 요해(了解)에 의하여/ 온갖 재물과 탐애를 모두 버리고/ 마음을 제어하고 확고히 서서, 무사무욕(無私無欲)하나니/ 이런 이를 세상에서 사문이라 부른다.’
용왕은 인욕(忍辱), 금시조는 단식(斷食), 제석천은 이락(離樂), 쿠루 왕은 무욕(無欲)을 말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자기 덕만을 칭찬하다가, 쿠루 왕에게 “당신 집에 있는 어느 현자로서 누가 이 문제를 밝혀 줄 만한 사람이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쿠루 왕이 자신에게 속사와 성사를 다 가르쳐 주는, 견줄 데 없는 훌륭한 현자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에게 가서 이 문제의 해결을 청하게 되었다.
비두라 현자는 그 게송들을 다시 읊어보라 하고 다 들은 뒤에 게송을 읊었다.
‘그 게송 모두가 잘 되었구나/ 어느 것이나 못 된 말 없다./ 그것들을 모두 다 잘 가지어/ 바퀴통에 수레 살이 모이는 것처럼/ 한 사람이 그 네 가지 모두 갖추면/ 이런 이를 세상에서 사문이라 부른다.’
이렇게 비두라 현자는 그 네 가지 덕을 평등하다고 했다. 현자의 해답을 듣고 왕들은 매우 기뻐하여 제석천은 아름다운 옷을, 금시조는 황금 화만을, 용왕은 마니주를, 쿠루 왕은 천 마리 소를 현자에게 공양하였다.
용왕 바루나가 용궁으로 돌아왔다. 왕비 비말라가 용왕의 머리를 장식했던 마니주가 보이지 않자 “대왕님, 마니주는 어찌 하였습니까?” “왕비, 챤다 바라문의 아들 비두라 현자의 설법을 듣고 신심을 일으킨 나는 마니주를 그에게 공양하였다. 그것은 나만이 아니다. 제석천은 신의 옷을, 금시조는 황금 화만을, 다난쟈야 왕은 천 마리 소를 공양하였다.”
이 말을 듣고 그녀는 비두라 현자의 설법이 못 견디게 듣고 싶었다. 왕비는 용왕이 자신을 비두라 현자에게 데려다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병자(病者) 모양을 하기로 하였다. 마침내 그녀는 시녀들과 짜고 병상에 누웠다.
용왕이 왕비가 앓는다는 말을 듣고 가보니, 그녀는 창백하고 몹시 여위고 힘이 다 빠져있었다. 왕이 “어떻게 아프냐?”고 물으니, 왕비는 “비두라의 심장을 가져다 달라” 하였다. 왕이 차라리 해와 달을 가져다 달라고 하라 하자, 왕비는 이대로 죽어버리겠다고 하며 돌아누워 옷자락으로 얼굴을 감쌌다.
용왕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때 그의 딸인 아름다운 용녀 이란다티가 들어와 아버지의 초췌한 안색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 용왕은 어여쁜 딸 이란다티에게 “네 어머니가 비두라의 심장을 바라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어 “딸아, 비두라를 내게 데리고 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는 네 어머니를 위해 생명을 내던지고, 비두라를 데리고 올 수 있는 남편을 구하지 않겠는가?”하며 번뇌의 기쁨을 미끼로 딸에게 당치도 않은 요구를 하였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그 밤으로 용궁을 떠나 사랑을 구해 헤매어 설산에까지 도달하였다. 빛깔도 향기도 맛도 좋은 꽃들을 꺾어 산을 아름답게 꾸미고, 그 꼭대기 평지에는 꽃자리를 만들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심장은 핵심이다. 현자의 핵심은 지혜이다. 그러나 심장이 육신의 심장살인 줄만 안 용왕의 무지 때문에 무욕의 차가운 실천이 구애의 뜨거운 행동으로 급반전하고 있다. 번뇌의 기쁨을 미끼로 해서, 떠나야 할 즐거움과 시작되는 욕망! 끝없는 윤전이다.
[1684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