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 무렵
이동순
말복 앞두고
우리는 벗들과 삼척 덕풍리에서
개장 추렴을 했습니다
팔순이 가까워보이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묵묵히 수육을 썰며
상차림을 하는 시골 토방
가마솥에선 허연 김을 내뿜으며 국이 설설 끓고
풍뎅이들은 평상에 날아와 곤두박질합니다
마침 비 온 직후인지라
집 앞 개울물은 소리도 요란히 흘러가는데
벗들은 평상에 앉아
산골의 초록을 흠씬 받아들이느라
모두 정신들이 없습니다그려
방 벽에 걸린 부부의 사진을 유심히 보아하니
할아버지는 진작 돌아가시고
필시 부엌에서 일하시는 할머니로 여겨지는
웬 젊은 부인네가 액자 속에 다소곳이
앉아 있습니다
사진과 할머니를 번갈아 대조하며
꼼꼼히 이목구비를 보아하니 틀림없습니다
아, 이 깊은 산골에도
세월은 백발처럼 많이도 흘러간 것입니다
- 이동순,『가시연꽃』(창작과비평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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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 무렵 / 이동순
함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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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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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벽에 걸린 부부의 사진을 유심히 보아하니
할아버지는 진작 돌아가시고
필시 부엌에서 일하시는 할머니로 여겨지는
웬 젊은 부인네가 액자 속에 다소곳이
앉아 있습니다
사진과 할머니를 번갈아 대조하며
꼼꼼히 이목구비를 보아하니 틀림없습니다
토방에 걸터앉아 정겨움을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