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은 구경꾼이 아니다.
<연중 제17주간 월요일>(2023. 7. 31. 월)(마태 13,31-35)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마태 13,31-32).”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마태 13,33).”
‘겨자씨의 비유’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한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함부로) 판단해서 미리 포기하지 말고,
하느님만 믿고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시작 단계만 보고 자만심에 빠지지 말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하느님 나라 건설’을 포함해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입니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이라는 말씀은, “인간들은
어떤 일의 시작 단계에서 그 일이 너무 보잘것없다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면서 실망하고 포기하지만”이라는 뜻입니다.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신다.” 라는 뜻입니다.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라는 말씀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는 그 일들은
전체 인류에게 내리는 은총이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겨자씨의 비유’의 한 예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창세 15,5)”
“나를 보아라. 너와 맺는 내 계약은 이것이다.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창세 17,4-5).”
그 당시에 아브라함은 세속의 눈으로 보면,
정말로 보잘것없는 떠돌이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가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고(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이라는 작은 겨자씨를 심으셨고,
그 씨는 수많은 신앙인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그 당시에 사도들이 이스라엘 밖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을까?
혹시 있었더라도 그렇게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다른 민족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성령강림이 이루어지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사도들은 ‘모든 민족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척 긴장하고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또 “우리가 과연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자신들의
능력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었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두려워하고, 또 의구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라고 약속하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떻든 예수님께서는 인간 세상이라는 밭에
사도들이라는 작은 겨자씨를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을 위해서 성령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씨만 심으신 것이 아니라, 그 씨가 잘 자라도록
여러 가지로 보살펴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약속을 믿었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갔고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모든 신앙인은 누구나 예외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의 겨자씨로 심어진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도 그렇고,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자기 자신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노력하는 일입니다.
‘나 자신’이 먼저 성장하려고, 또 성숙해지려고 노력해야
다른 사람들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놀랍게만 보이는구나.” 라고
감탄하기만 하고,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구경하는 것으로만 그친다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신앙인은 구경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도와드리는 일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아버지의 집’이고, ‘나의 집’입니다.
‘밖에서’ 구경만 하는 구경꾼은 그 집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누룩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는 뜻은 같은데, ‘겨자씨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외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비유이고,
‘누룩의 비유’는 ‘내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 비유입니다.
신앙인은 모두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는 누룩입니다.
우선 먼저 할 일은 자기 자신이 변화되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세상을 복음화 하려면 ‘나의 복음화’가 먼저
이루어져 있어야 합니다.
‘복음화’의 반대말은 ‘세속화’입니다.
만일에 신앙인이, 또는 교회가 세상을 복음화 하기는커녕
세속화된다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부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될 뻔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부패를 발효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고.>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사도들은 예수님의 약속을 믿었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갔고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