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기자.
중국 산동성 자오저우시 다뎬촌의 한 마스크 생산공장.
중국 산동성 자오저우시(胶州市)에 적을 둔 캉다(康達) 마스크.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 알리바바에서 전화번호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캉다마스크의 뉴(牛)모 경리가 제시한 마스크 개당 가격은 2.6위안(약 460원). 앞서 자오저우의 다른 업체에서 제시한 3.5위안(약 620원)보다 더 낮은 가격이었다. 뉴씨는 “일회용 항균 마스크를 구해서 한국으로 보내줄 수 있다”며 “국내가 아니라 한국은 관세와 운송비 등으로 개당 단가가 좀 비싼데 많이 주문하면 우대가격으로 내줄 수 도 있다”고 했다.
내가 자오저우에 대뜸 국제전화를 건 까닭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후 요즘 금값이 된 마스크 때문이다. 자오저우시의 시골 마을 다뎬촌(大店村)은 중국에서 ‘마스크촌(口罩村)’으로 통한다. 지난해 11억개의 마스크를 생산한 중국 최대 마스크 가공기지다. 주민 수 2700여명의 시골 마을에는 ‘마스크 협회’까지 있다. 다뎬촌 빈하이(濱海)마스크 사장인 장수빈(姜秀彬)씨는 다뎬촌 마스크 협회장을 맡고 있다. 심드렁히 나의 전화를 받은 장 사장은 “항균용 일회용 마스크는 생산하지 않는다”며 “면(綿)을 원료로 한 마스크만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유행하는 소위 ‘패션 마스크’를 가공생산하는 곳도 다뎬촌이다. ‘패션 마스크’는 면마스크에 각종 문양과 장식이 들어가 있다. 중국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한다 해도 대개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탈 때 봄철 황사방지용 겸 겨울철 보온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마스크의 경우 사치라고 생각해 착용하는 사람이 더욱 적다. 때문에 평범한 마스크에 디자인을 가미한 패션 마스크는 전 중국을 강타했다.
다뎬촌은 산동성 칭다오(靑島)에서 자동차로 60㎞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로, 한국 중소기업이 대거 진출해 있는 칭다오 청양(城陽)구와도 멀지 않다. 다뎬촌 내 700여가구 가운데 300여가구가 마스크 관련업에 종사한다. 2012년에는 중국경공업협회로부터 중국 유일의 ‘중국 마스크 가공산업기지’란 공식 인증도 받았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와 코트라 상하이 무역관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중국 마스크 시장 규모는 15억개. 다뎬촌에서 생산하는 마스크가 연간 11억개니, 중국 전체 마스크 시장의 80% 가까이를 차지한다.
요즘 메르스로 한국에서는 마스크가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다지만, 다뎬촌에는 굴러다니는 게 마스크다.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조류독감(AI)은 물론이고 돼지독감(신종플루), 미세먼지, 황사(黃沙)가 몰려든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다뎬촌에는 바이어들의 주문이 폭주한다. 최근 중국에서도 ‘중동호흡기종합증’ ‘아랍감기’로 알려진 메르스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커지면서 역시 주목을 받고 있다.
다뎬촌은 산동성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다구허(大沽河) 옆에 1300여년 전부터 형성된 평범한 시골 마을이다. 장(姜·강)씨들의 집성촌으로, 옛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인 강희발(姜姬發·기원전 1087~1043)의 후손들이 모여 산다. 주 무왕은 강태공(姜太公)의 도움으로 은(殷)나라의 폭군 주왕을 몰아내고 주나라를 세웠다. 지금도 마을 주민의 90% 가까이는 장씨 성을 쓴다고 한다.
다뎬촌이 마스크 생산에 나선 것은 이 마을에서 ‘마스크 원로’로 추앙받는 장이시(姜義錫·79)씨가 1988년 간쑤성 란저우(蘭州)에 가면서다. 중국 서부 란저우는 황사와 모래폭풍으로 유명한 건조지대다. 당시만 해도 먹고살 것이 없어 란저우에 살던 누나에게 몸을 의탁하러 갔는데, 란저우에서 악명 높은 황사를 만났다.
이때 란저우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얀 마스크를 끼고 다녔는데, 이걸 착용해 보니 황사와 모래폭풍을 막을 뿐만 아니라 따듯하기까지 했다. 모래폭풍만 불어닥치면 당시 돈으로 1위안에 불과했던 마스크 가격이 무려 3배인 3위안까지 치솟는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수소문해 보니 마스크 1개 생산단가는 고작 2마오(毛·0.2위안)에 불과했다. 수십 배의 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이에 고향인 산동으로 돌아가 마스크를 도매가에 대량으로 떼어가 란저우에 가서 팔기로 작정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이 같은 사업모델을 친지들에게 설명하자 호응이 크지 않았다. 어렵사리 친척 2명을 모아서 마스크 3만개를 칭다오에서 2마오에 떼다가 란저우까지 짊어지고 가서 2마오5펀(分)에 팔았다. 이들은 란저우에서 1000위안을 손에 쥘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하루 건축잡부 일당이 5위안일 때였는데, 이들의 1년치 연봉을 벌어들였다.
장씨는 1990년부터는 아예 마스크 생산설비를 도입해 직접 마스크 생산에 나섰다. 면마스크의 경우 기술이 크게 요구되지 않아 부인, 자식들을 총동원했다. 장씨 일가들도 1992년부터는 마스크 생산에 하나둘씩 뛰어들었다. 사실 초기에는 큰돈이 남지는 않았다. 워낙 푼돈 장사고, 마스크 판매를 위해 동부 칭다오에서 36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서부 란저우까지 가야 해 몸이 고되기도 했다.
2002년 말부터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중국 남부 광동성을 시작으로 사스가 전 중국을 강타했다. 사스로 인해 중국 대륙에서만 349명이 죽었다. 홍콩·대만서도 각각 300명과 180명이 사망했다. 사스를 초기 은폐한 장원캉 위생부장(장관)이 경질되고 수도 베이징 시장이 교체되는 등 정권이 흔들거렸다.
이에 마스크를 생산한다는 소문이 난 다뎬촌으로 전 중국에서 바이어들이 몰려들었다. 바이어들은 부르는 대로 값을 치르고 마스크를 매집해 갔다. 마을은 ‘마스크 특수’를 누리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마스크 생산·유통망을 장악한 덕에 마스크촌 사람들은 돈방석에 올라 앉았다. 마스크촌을 찾은 중국 언론은 “집집마다 차를 사고 집을 샀다(買車買房)”고 보도했다.
사스가 잠잠해진 이후에도 신종플루, 미세먼지가 계속 이어지며 재미를 봤다. 사스가 터진 직후인 2004년에는 ‘다뎬촌 마스크 협회’까지 만들었다. 각 공장의 관리감독과 함께 은행 대출을 주선하는 일을 한다. 그 결과 초창기 20곳가량에 불과했던 마을의 마스크 공장은 300여곳까지 폭증했다고 한다. 실제 2003년 당시 연간 2800만개에 불과했던 다뎬촌의 마스크 생산량은 2013년 10억개를 돌파했다. 지금은 연간 생산량만 11억개에 달한다.
요즘에는 중국에서도 마스크 흐름이 단순히 모래를 막는 면마스크에서 세균과 바이러스까지 막는 일회용 마스크 쪽으로 변하는 추세라 다뎬촌 역시 변화의 압력을 받는 중이라고 한다. 마스크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물류환경이 월등한 인근 칭다오를 비롯해 상하이, 저장, 광동 등지서도 너도나도 마스크 생산에 뛰어들고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이 지역 상인들은 상술도 월등히 뛰어나다. 한국 등 인접국 수출은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일부 도매상은 아예 알리바바 등에 ‘한국 수출’이라는 안내 문구를 걸어놓고 활로를 모색 중이다.
알리바바와 타오바오(淘宝) 등 중국 전자상거래 사이트에 나오는 중국산 마스크는 성능과는 별개로 엄청난 가격경쟁력을 자랑한다. 일례로 중국 최대 B2B(기업 대 기업) 전자상거래 알리바바에서는 마스크가 대개 1위안(약 180원)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 심지어 한 도매상의 경우 100만개 이상 구매할 경우 0.01위안(약 1.80원)에 마스크 물량을 내놓고 있다. 사스 때 중국에서 한국산 김치와 홍삼이 불티나게 팔렸는데, 이제는 메르스로 중국산 마스크가 한국을 덮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이동훈 기자
주간조선:6/22
첫댓글 동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산동성 사람들은 대체로 잔잔한 푼돈은 성에 안 차고 보다 굵직한 거래를 선호합니다.틈새를 찾을뿐 아니라,근면.성실.노력이 푼돈을 모아 큰 사업체를 이룰수 있다는 姜선생의 사업적 혜안이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