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골에 배를 띄워
블루 펄(Blue Pearl) 게르에다 짐을 내려놓고는 서둘렀다. 해지기 전에 고기를 잡을
까하고 운전사를 앞세워 도구를 빌리려갔지만 아뿔싸! 이 캠프에는 낚시도구가 없단다.
바다 같이 넓고 수정처럼 청결한 홉스골에는 고기도 많다는데 낚을 장비가 없다니 이
아니 안타까운가. 그러나 그물은 있다네! 창고로 쓰는 뒤쪽 게르에서 그물과 두 개의
노, 구명조끼 다섯을 꺼냈다.
(호심에 마음도 드리우고)
차라리 초망이었으면 호수에 직접 던져나 보련만 보트 하나로 저 그물을 어떻게 하려
나? 정녕 자주 쓰지는 않는 것 같았으니 헝클어져 한참이나 헤치면서 그물을 고른 다음
에야 물가로 향 할 수가 있었으니까.
이를 쳐본 경험이 없는 나는 단지 그들의 처분을
따를 뿐 고기 잡을 기대만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많다고는 해도 물이 그리 깊다는 호
수에서 그렇게 쉬 잡을 수가 있을 런지. 여학생들을 기다리면서 호반으로 나아가는데
말 탄 사람들 한 패거리가 달려와서 목책(木柵) 앞에 멈추었다.
미려한 물가에서 말 타기를 기대하던 차라 관심이 쏠릴 수밖에. 구리 빛 몽고 사내들
틈에서 하얗고 키 작은 여자 하나가 까만 부츠에 빨간 승마 모자까지 쓰고서 멋지게 내
린다. 고희(古稀)는 되었을 성싶은데, 몽고말이 어떠냐며 접근을 했다. 경치 좋은 이곳
으로 멀리 말 타러 온 영국 할머니였다.
그녀의 경험과 나 같은 초보자에게 유익할 조건을 귀담아 듣고 있는 중에 몽고 사나이는 몇 마디 영어로 내일 자기 말을 빌리라고 제안을 해온다. 하트갈(Khatgal)에선 하루에 5달러였으나 여긴 9달러 정도인 1만 토그록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8천 토그록만 받겠단다. 낮에 토일록트에서도 한 필에 1만 토그
록을 불렀었다. 다섯 명에 안내 하나 딸려서 우리를 위한 말 다섯 필에 4만8천 토그록에 합의를 했다.
내일 아침 10시에 출발키로 협약을 하고서 안장도 없는 맨 말 등(on the bare back)
에 올라 시승(試乘)을 해본다. 습지의 풀밭을 걸려 물가로 갔다, 내일의 협약을 알리자
첨 타보게 될 일행들이 더욱 들뜬다. 두어 번 타본 적이 있긴 했었지만 안장 없이 총
총걸음으로 갈 때는 내 엉덩이가 몹시도 시달렸다.
(안장 없는 시도)
말은 돌려주고 이번엔 한 시간에 8천 토그록씩으로 빌린 보트를 탔다. 낚시 대신 그
물을 먼저 친다, 한 끝은 호숫가에 비끄러매고 그물을 싣고 물속으로 노를 저어가면서
늘인다, 50미터나 될까. 그리고는 돌을 그 끝에 달아 내리고서는 부표로 플라스틱 빈병
한 개를 물위에 띄워 놓는다.
그걸 내일 아침에나 걷어 올린다네, 공연히 부풀리기만했던 기대감이 쭈그러졌다, 그걸 끌고 다니면서 펄떡펄떡 뒤는 홉스골 고기를 곧바로 건저 올리고 싶던 가망성이 거품처럼 꺼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가이드까지 여섯 명이 바람 넣은 튜브 보트를 타고 이제는 노 젓는 재미를 휘저어야지
.
일출, 일몰 전후의 양쪽 한 시간씩이 제일 잘 물린다는 게 일반적이니까 지금이 최적
기이련마는, 춥지도 덥지도 아니하고 바람도 없는 잔잔한 호수에서 신나는 대어를 낚지
못할 바에는, 홉스골에 배 띄우는 즐거움이라도 건져야 했다. 듣던 바대로 정말 물은
맑았으니 노저어서 일렁이는 물결만 주의하면 깊지 않은 바닥이 다 내려다보일 정도였으
니까.
물속에다 손발 담가서 투명도를 확인해본다. 말이 통하지 않는 몽골 가이드는
맥주 한 캔을 다 비우더니 손으로 호수 물을 움켜다 퍼마신다. 호반에서 키우는 가축들
이 오염시킨다는 걱정이 대두된다지만 이 넓고 깊은 호수는 저리 그대로 퍼마실 만큼 청
결하다고는 했다.
(정온한 저녁 녘의 정화)
한 캔의 맥주에 취할 리도 없겠는데 말은 서로 통하지 않아도 장난 끼가 조금 있는 가
이드가 사진을 찍어달라면서 여학생들 옆을 번갈아 가며 바싹 붙어 앉기도 하여 분위기
를 부드럽게 했다. 저무는 호수 안으로 우리는 번갈아 가면서 노 저어 흥을 돋우었는데
서투른 경우에는 보트가 돌기만 해서 멀리 나가질 못한다.
낮에 갔던 십 리 거리의 토일록트(Toylogt)까지 물 위로 가보자고 내가 제안했으나 그런 솜씨로는 시간이 너무 걸릴 뿐이었다. 바람도 없이 잔잔하나 물 위의 기온은 해가 기운 뒤라 서늘해진다. 멀리
토일록트에 튀어나온 곶에 나무들을 건너다보면서 홉스골의 보트를 띄워 딴 세상 같은
물 위에서 뱃놀이를 즐긴다.
(유일 (홉스골의 유일한 몽골 해군 선박)
어느 지점인지는 몰라도 200미터 이상의 깊이나 된다는 게 믿겨지질 않을 정도로 호수
는 정다웠고 플라스틱 튜브는 두둥실대기보다는 조심해야하리만치 기우뚱 거리기도 했지
만 아무도 무서워하지는 않았으니 빈 호상(湖上)에 평화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몽골의
여름 볕에 진하게 그을린 가이드가 맥주의 흥을 입어서인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노래 를 부르라고 손짓으로 요청을 했다, 몽골 사람들도 한국인들처럼 가무를 즐기는 것 같다,
한곡을 불렀지만 우리네 감흥과는 달라 그저 넓은 호수만 가만히 빨아들여 감상 할뿐이
었다.
사흘 동안 양고기 누린내를 맡아온 터라 우리가 친 그물에 굵은 고기가 걸리기를 희망
한다니까 가이드는 많이 잡힐 거라고 응답하는 것 같았다. 표식의 부표로 이쪽 그물 끝
에 매단 병이 멀찍이 아주 작게 보였으니 우리가 이만큼은 떠나 왔나보다. 아들과 한국
청년이 힘을 써서 토일록트 방향으로 노를 자꾸 저었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어려웠다,
흐려지는 하늘 밑에는 호수도 저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내가 이번에는 노를 잡더니
속도를 내어 호변으로 방향을 바꿔 나아갔다. 가이드는 내리고 우리만 다시 호변을 따
라 남쪽으로 좀 더 내려갔다. 청년은 얕은 곳이라 바지를 적시면서까지 물에 내려 보트
를 끌다가 이런, 풍덩 빠졌네. 이로서 모두를 더 즐겁게 했다.
다음날 아침 그물은 일찍 거두었고 고기는 두 마리만 건졌단다
, 북극송어(Arctic trout)라는 월척(越尺)은 아직도 살아서 움직였고, 작은 놈은 비린내가
안 나는 독특한 생선이란다. 좋은 낚시도구까지 가지고 온 이태리 낚시꾼이 조예가 깊
어 설명도 잘했다. 우리 게르 앞에서 깨끗이 다듬고는 여학생들에게 조리하도록 맡겼더
니 고추장을 발라 살짝 지졌다.
모두가 또 흥분한 게 북극송어의 맛이 궁금하였기 때문이었다. 생선은 생선이었으나 맛조차 깨끗하여 홉수골 호수처럼 담백하였다. 단지 흠은 다섯 명에게는 부족하였다는 것, 낚시 도구를 담에는 준비해서 길이가 목에 차도록 크다는 깊은 물속의 그 레녹(lenok)의 대어(大漁)를 한번 낚아야만 쓰겠다.
길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