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뉴욕 굿모닝 내사랑(City Slickers)
최용현 (수필가)
‘여름휴가’ 하면 가족과 함께 더위를 피해 계곡이나 바다를 찾아 떠나는 피서여행을 떠올리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 피서여행을 한 번이라도 떠나본 사람은 알리라. 휴가란 떠나기 전에 지도를 펴놓고 도상(圖上) 여행을 하면서 짐을 꾸릴 때가 즐거운 것이지, 막상 길을 떠나면 바로 그 순간부터 고생이라는 것을.
그래도 우리는 아마 올 여름에도, 또 내년 여름에도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런 고행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휴가를 떠나는 이유가 심신의 휴식을 통한 재충전에 있음을 상기하면서, 오늘은 휴가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할까 한다.
‘굿바이 뉴욕 굿모닝 내사랑(City Slickers)’은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 대자연의 품에 안겨보고 싶은 도시인의 잠재적인 욕망을 다룬 오락영화이다. 원제목에서 ‘Slicker’는 ‘닳아빠진 사람’ 혹은 ‘약삭빠른 사람’을 의미하는 속어이다. 원제목을 직역하면 ‘도시의 뺀질이들’ 정도가 되는데, 제목을 왜 이렇게 엉뚱하게 붙였는지 모르겠다.
라디오방송국에 다니는 주인공 미치(빌리 크리스탈 扮)의 39번째 생일날이다. 새벽에 어머니에게서 축하전화가 걸려온다. 며느리도 잘 있느냐고 어머니가 묻는데, 미치의 대답이 걸작이다.
“몸 팔러 나가서 아직 안 들어왔어요. 좀 있으면 들어올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어머니도, 옆에 누워서 듣고 있는 아내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고 있는 것이 가히 미국적이다. 이 영화가 코믹터치의 오락영화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
방송국에서의 잦은 실수 때문에 상관에게 엄중한 경고를 받은 데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도 좋지 못하여 우울증에 빠져있는 미치에게는 단짝인 두 친구가 있다. 처가의 도움으로 슈퍼마켓을 차린 필(다니엘 스턴 扮)은 아내의 구박과 등살에 시달리던 중, 경리아가씨와의 불륜관계가 들통이 나서 최근에 이혼을 당했다. 스포츠용품 가게를 운영하는 에드(브루노 커비 扮)는 수년 전에 매력적인 모델과 결혼을 했으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
모두 한 가지씩 문제를 가지고 있는 중년의 삼총사는 그날 저녁 미치 집에 모여 작년 휴가 때 부부동반으로 스페인의 소몰이축제에 참가했던 추억을 회상한다. 올해는 남자들 셋이서 뉴욕을 벗어나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2주일간의 카우보이 수련행사에 참가하기로 의견을 모은다.
이 행사는 도시 토박이들의 심신단련을 위해 뉴멕시코의 목장에서 콜로라도의 목적지까지 직접 소 떼를 몰고 야영하면서 행군하는 것으로, 한 여행사의 기획상품이다. 이들 삼총사 외에도 5~6명의 지원자가 더 있었고, 그 중에는 예쁘고 발랄한 보니(헬렌 슬레이트 扮)라는 아가씨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각자 임무를 배정 받는다. 드디어 도시의 뺀질이들이 대장정에 나선다.
삼총사는 행군 중에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각자 자기가 처한 현실을 되돌아본다. 미치는 길 안내를 맡은 노(老) 카우보이 컬리(작 파란스 扮)와 친해지고 그와 함께 산고(産苦)로 죽어가는 암소로부터 송아지를 받아내면서 삶의 의미와 진정한 사랑을 배워간다 .
미치의 실수로 소 떼가 집단으로 탈출한다. 안내인 컬리가 도중에 숨을 거두고, 설상가상으로 식량마저 떨어지자, 모두들 우왕좌왕하다가 많은 지원자가 소몰이 행군을 포기하고 돌아간다. 그러나 끝까지 행군을 계속하기로 의기투합한 삼총사는 폭우 속에서 소 떼를 몰고 강물을 건넌다. 이때 미치가 받아낸 송아지가 급류에 휩쓸리자 미치가 강물에 뛰어든다.
결국 송아지를 구한 미치 일행은 목적지인 콜로라도의 목장에 무사히 소 떼를 몰고 도착한다. 도시의 뺀질이 삼총사가 결국 해낸 것이다. 그 어려운 행군 중에서도 세 사람은 진지하게 상의하고 숙고를 거듭한다.
미치는 다시 라디오방송국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히며 마중 나온 가족들과 함께 송아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혼으로 갈 곳이 없게 된 필은 행군하면서 사귄 보니와 새 출발을 약속한다. 또 에드는 마침내 혼란스런 마음을 정리하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굿바이 뉴욕 굿모닝 내사랑’(1991년)은 땅속의 괴수 영화 ‘불가사리’(1990년)를 감독한 론 언더우드가 연출을 맡았는데, 미국에서의 경이적인 흥행기록에 힘입어 국내 개봉 때도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LA비평가협회에서 뽑은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었고, 늙은 카우보이로 열연한 개성파 배우 작 파란스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늑대와 춤을’(1990년)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은 딘 새믈러가 카메라에 담은 스페인 소몰이축제의 박진감 넘치는 장면과 뉴멕시코에서 콜로라도에 이르는 미국 남서부의 장쾌하고 광활한 자연경관을 담은 화면은 문자 그대로 장관이다. 또, 암소가 송아지를 출산하는 장면, 미치가 급류에 휩쓸린 송아지를 구하기 위해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 등은 감동적이고 휴머니티도 물씬 풍긴다.
주인공 빌리 크리스탈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년)에서 해리 역을 맡아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은 종합 예술인이다. 브루노 커비는 그 영화에서 해리의 친구로 나왔던 배우이고, 다니엘 스턴은 ‘나홀로 집에’(1990년)에서 꺼벙한 도둑으로 나왔던 키 큰 배우이다. 이들 삼총사가 처한 문제의 설정과 해법이 너무 도식적(圖式的)인데다, 소몰이 행군 중에 벌어지는 해프닝에서 작위적인 설정이 더러 눈에 띄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다.
예술성이나 작품성의 잣대로 보면 다소 미흡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으나, 고달픈 일상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도시의 소시민들에게 휴가의 진정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듯하다.
첫댓글 내용으로 볼 때 제목이 엉뚱 하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뉴멕시코에서 콜로라도 까지 2주간 좋은 상품이네요...
제목이 엉뚱하다는 것은 영어 제목과 맞지 않는다는 뜻이고, 영화 내용과는 관련이 있는 제목인 것은 맞지요.
우리나라도 서울둘레길이나 제주올레길,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상품이 나오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