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의 추억
비교적 가난한 유년시절을 지낸 저는 음식을 가리는 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형제가 많아 양푼에 밥을 담아 놓으면 빨리 먹어야 내 차지가 되므로
비교적 밥을 먹는 속도도 빨랐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빠른 식사의 이유이기도 하지요.
먹거리가 있기만 해도 감사했던 시절이고 보면
반찬투정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그렇게 먹성이 좋던 제가 15년 동안 먹지 못한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순대인데요...
옛날에는 결혼식을 집에서 올렸습니다.
기러기 대신 닭을 잡고 가마타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전통혼례를 한 것이지요.
먹거리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고 보면 결혼식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마당에 천막을 치고 3박 4일 정도 동네잔치를 벌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문제는 순대를 만드는 것을 지켜본 것이지요.
돼지 창자를 뒤집어 소금으로 깨끗이 씻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선지에 찹쌀과 숙주나물, 당면... 등등의 소를 섞어서
병 주둥이를 깔때기처럼 만들어 창자에 소를 채우는데.....
그 과정에서 피칠갑을 한 모양이 얼마나 섬뜩하던 지요.
만드는 것을 보니 순대에 오만정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 기억을 잊어버리는데 무려 15년의 세월이 걸렸지요.
물론 지금은 없어서 못 먹습니다. ㅋㅋ
맛은 혀의 미각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겠지만 추억일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해서도 어머니의 손맛을 잊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리 맛있지는 않아도 옛날 느끼던 맛을 만났을 때 기분이 좋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맛은 추억이 채색 합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순대 한 봉지에 소주나 일 배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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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운복> 님이 보내 준 글입니다.
비슷한 경험이 내게도 있습니다.
선지국을 40대 중반까지 못 먹었었습니다.
철원 동송의 시장 안에 '수원순대'란 순대국집이 있습니다.
철원 동송에만 16년을 근무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집 순대국이 참 마음에 듭니다.
물론, 오랜만에 들러도 푸짐히 내 놓는 인심이 더 좋은지도 모르겠지만.
첫댓글 저도 어릴적 도계 흥전에 있던 큰집에서 장손이던 큰집 형님 결혼식 준비로 순대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하동안 순대를 먹지 않았고, 요즘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