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전 스님의 본생담으로 읽는 불교
35. 비두라 현자의 본생(‘본생경’ 545번) ➁세속 삶의 지혜 두 가지
절제와 겸손, 현대에도 유용한 으뜸 처세술
이란다티 노래에 연정 일어난 푼나카 “현자 데려오겠다” 자청
왕과 내기해 비두라 요구…패한 왕 만류에도 결과 승복한 현자
“푼나카 죽여라” 왕의 명령 “옳지 않다” 거절하고 가족과 이별
내기에 흥이난 쿠루왕과 푼나카.
사천왕 중 비사문 천왕의 조카 푼나카라는 야차 장군이 3가부타 크기의 신마(神馬)를 타고 야차 회의에 가는데, 이란다티의 노래 소리가 피부를 뚫고 뼈에까지 스미었다. 그는 연정이 일어나 말을 탄 채 “부인, 나는 지혜와 정법과 고요한 마음을 가지고 그 현자의 심장을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하였다.
그 둘은 용왕에게 갔다. 용왕은 왕비의 의견대로 “비두라 현자의 심장을 법답게 얻어 오면 딸을 주겠다” 하였다.
푼나카는 비사문 천왕의 허락 없이는 인디팟타시에 갈 수 없었다. 마침 비사문이 두 신의 아들의 궁전에 관한 재판이 끝나 이긴 편의 아들을 향해 “너는 네 궁전에 가서 살아라” 하였다. 푼나카는 “너는 가라”는 소리를 듣고는 곧바로 귀는 백은(白銀), 발굽은 붉은 파리(보석의 일종)로 된, 황금 가슴받이를 붙인 신마를 타고 떠났다. 쿠루 왕이 내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푼나카는 왕과 내기를 해서 그 왕의 현자인 비두라를 얻기로 작정했다. 그는 왕에게 자신을 카차야나(푼나카는 ‘하인’이라는 뜻)라고 소개하고, 내기의 재물로 자신의 신마와 마니주를 제시했다. 마니주는 왕사성의 비풀라 산에 있는 전륜성왕의 것으로, 모든 재보를 만들어내는 신비한 구슬이었다. 왕은 “내 몸과 흰 일산 외에는 무엇이든 내게 있는 것은 다 주겠다” 하였다.
왕은 백 명의 왕을 대동하고 도박장에 들어섰다. 내기는 주사위 던지기로 하였다. 왕이 손바닥에 주사위를 굴려 던져 올렸다. 왕이 손재주가 교묘하여 지도록 떨어지는 주사위를 중간에서 고쳐 잡아 다시 던져 올리기를 두 번이나 하였다. 이것은 왕의 3생 전의 어머니가 그의 수호신으로 있으면서 그 신력에 의한 것이었다. 푼나카가 눈을 부릅뜨고 그 여신을 흘겨보자 여신은 깜짝 놀라 철위산 꼭대기까지 달아나서 떨고 있었다.
왕은 세 번째 주사위를 던졌지만 푼나카의 신력에 의해 다시 잡지 못한 채 그대로 떨어졌다. 연이어 푼나카가 주사위를 던지자 이김으로 떨어졌다. 푼나카가 손뼉을 치면서 큰 소리로 “내가 이겼다” 외치자 그 소리가 온 염부제를 진동시켰다.
이긴 푼나카는 비두라 현자를 달라 하였다. 왕은 현자는 자신의 몸과 같다고 했다. 푼나카는 비두라 현자에게 왕과 무슨 관계인가 물었다. 현자는 나면서부터의 노예, 재물에 팔린 노예, 자진해서 되는 노예, 두려움에 쫓겨 되는 노예가 있는데, 이 중 자신은 나면서부터의 노예로서 왕에게 속한 것이라고 했다.
왕은 자신의 몸과 왕위를 제외하고는 다 주기로 약속했었다. 현자를 주지 않을 수 없게 된 왕은 화가 나서 “나만큼 영예를 주는 이를 돌아보지도 않고, 처음 본 저 젊은이의 말을 따르느냐?”고 하면서, 푼나카에게 “만일 이 자가 노예라면 데리고 가도 좋다” 하였다.
그러나 왕은 현자가 지금 여기 있을 때 재가자의 삶을 물어보기로 하였다.
‘남의 아내 범하지 말고/ 맛난 음식 혼자 먹지 말며/ 궤변하는 자 따르지 말라/ 그것은 지혜를 돕지 않는다.//모든 제도와 계율 지키고/ 게으르지 말고 생각 깊으며/ 겸허하여 고집 부리지 말고/ 인정 있고 친애하고 온화하라//친구에 대해 호의 가지고/ 인색하지 말며 보살펴 주고/ 언제나 저 사문 바라문에게/ 음식 보시로 만족시켜라//법을 즐기고 들은 것 기억하고/ 모르는 것을 물어볼 줄 알라/ 계율 지키는 이와 많이 들은 이/ 그들을 존경하고 잘 받들라’
이렇게 답하고, 현자는 푼나카에게 삼 일간 자기 집에 있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현자는 자신의 아름다운 궁정인 삼시전(三時殿) 7층에 훌륭한 침대와 음식을 준비하고 500명의 천녀 같은 여자를 푼나카에게 제공하였다.
부인 방에 와서 천 명의 아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는 자신이 떠난 뒤, 왕이 “너희들은 모두 나와 같은 지위에 있으라. 너희들을 두고 누가 왕위에 나아갈 것인가” 하거든, “왕이여, 비천한 우리 이리떼가 어떻게 사나운 호랑이 같은 왕의 지위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답하라 하고, 왕주(王住)라는 영예를 얻는 수단을 설하였다.
‘신하가 가진 덕행과 지혜와/ 깨끗한 마음을 왕이 알게 될 때/ 왕은 끝까지 그를 신뢰해/ 그에게는 비밀을 가지지 않으리//마치 잘 균형 잡힌 저울대가/ 평형을 유지하려 즉시 움직이듯/ 명령 받거든 어떤 부담에도 주저하지 말라/ 그러면 왕궁에 머물 수 있으리//왕이 가는 길 잘 만들어지고/ 왕을 위해 잘 준비돼 있어/ 네게 이 길로 가라는 말 듣고도 가지 말라/ 그러면 왕궁에 머물 수 있으리//언제라도 쾌락 있을 때/ 왕과 같이 즐기지 말고/ 어디에서나 왕의 뒤에 가라/ 그러면 왕궁에 머물 수 있으리//왕에게서 너무 멀지도 말고/ 너무 가깝지도 말고, 항상 마음 쓰면서/ 왕의 앞에 언제나 서 있어/ 그 왕과 서로 마주 보는 곳에 있으라//왕은 필부처럼 헤아려지는 자가 아니고/ 누구와 오래 짝짓는 자도 아니다./ 왕이란 성내기 쉬운 존재로/ 눈에 드는 가시에 눈이 반응하는 것과 같다.//모든 계율을 견고하게 지키고/ 일에 익숙하고 능력 갖추었으면/ 노예나 노동자, 하인이라도/ 주후(主候)의 지위에 나아가게 하라//왕이 하고 싶어 하는 것 다 잘 알아/ 그의 마음 있는 곳 잘 파악하고/ 거기에 거슬림 없게 하라/ 그러면 왕궁에 머물 수 있으리//왕에게 향 발라주고 목욕 시키고/ 머리 숙여 그 발을 씻어주고/ 매 맞더라도 성내지 말라/ 그러면 왕궁에 머물 수 있으리//언제나 고요하여 흔들리지 말고/ 생각이 깊고 감관을 잘 제어하고/ 마음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으면/ 그러면 왕궁에 머물 수 있으리’
사흘 뒤 왕궁에 나아가 왕에게 고별할 때, 왕이 푼나카를 죽이라 명하였다. 현자는 “대왕님, 죽이고, 망치고, 멸망시키는 일, 그것은 실로 법이 아니니 해서 안 될 일입니다. 더구나 나는 성내지 않는 사람, 출발하겠습니다” 하고, 슬퍼하는 백성에게는 “모든 것은 덧없는 것이다. 보시 등을 게을리 하지 말라” 하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큰아들 담마팔라를 가슴에 꼭 껴안고 눈물이 두 눈에 가득 넘쳐 큰 방으로 들어가니, 천 명의 아들, 천 명의 딸, 천 명의 아내, 칠백 명의 기녀, 그 밖에 종, 하인, 친족, 벗들이 두 팔을 벌리고 울부짖으며 바람에 꺾여 넘어진 사라나무처럼 쓰러졌다. 현자는 그들을 위로하고 마침내 떠났다.
현자는 내기의 승자인 푼나카를 죽이라는 왕의 명령을 단호히 거부하고 내기의 결과에 승복한다. 비법은 비법이며, 약속은 약속이다. 재가자 게송은 핵심을 찌른다. 깨끗한 마음, 윗자리 넘보지 않기, 즉각적 일 처리, 아랫사람의 인정 등 왕주의 지혜는 현대 조직에서도 으뜸가는 처세술이다. “언제나 고요하여 흔들리지 말고, 생각이 깊고 감관을 잘 제어하고, 마음이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라”는 세속사 속에서 출세간의 지혜를 여는 열쇠이다.
[1686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