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새 외 4편 〈*2022 《다층》이 찾은 새로운 시인 추천 당선작〉
이동호
부지런한 새는 넙치로 변하는 배를 맴돈다. 갈팡질팡하는 저 아래 풍경을 겨냥한다. 길 잃은 아이들이 정신을 놓을까, 새는 하염없이 오가는 비를 맞는다.
눈을 감아야 보이는 새가 있다. 바다 위로 힘차게 날갯짓한다. 쉬이 허락된 고요를 읽고 비상하는 새가 있다. 속눈썹에 닿을 듯, 천의 얼굴을 향하여. 눈을 뜨면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새.
깃털처럼 금지옥엽은 진다. 새와 물고기의, 비와 바다의, 노랑과 색의 경계를 긋는 사이 한쪽에 자리 잡은 넙치의 두 눈이 보이지 않는다.
무량의 시간이 흘러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새. 무한한 허공과 물속 심연은 새의 날갯짓만큼 비었다 채워진다.
바라볼 수 없는 새, 칼날 같은 눈을 가진 새, 물의 틈새를 수직으로 파고든다. 모래를 비집고 넙치가 눈을 뜬다. 깊은 바다에 배를 깔고 아이들의 눈을 밀어 올린다. 깃털의 부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입술 같은 부리에 닿을 수 있을까.
틈새로 숨겨둔 진실을 찾아내는 사이.
소년병*
1. 소년兵
군복을 벗어 날리는 괴뢰군. 허공에 실려 어깨춤을 들썩인다. 총구가 휜 소총 대신 기타를 잡는다. 언제나 고향을 마주하는 고향의 봄. 빨갱이는 밤송이 사이에 싸리꽃, 강아지풀, 탄피, 풋개암, 댕강나무 잎을 둥글게 엮는다. 괴나리봇짐 같은 군장을 산비탈에 풀고 물기 있는 시를 적는다. 예술극을 읽어 내리며 사랑을 고백하는 늑대. 휘파람을 부는 총구. 휘, 휘휘 호호호 휘휘 호호, 호 휴전선 너머로 소롯하다. 대북 방송을 타고 자유민주주의가 독재의 어깨를 관통한다. 가시면류관을 쓰고 날리는 우리의 주적! 꼭두각시의 악몽이라니. 곁을 지키는 웅덩이와 무덤이 서로를 나눈다.
2. 소년病
학교는 잠을 저장하는 곳. 중독은 달빛에 신명을 다하지. 클릭! 게임 하다 죽으면 돌파구가 필요해. 댓글 앞으로! 클릭! 철수도 영희도 마초일 뿐. 민주화는 비추. 일베로 추천! 추천! 추천! 수명은 단 하루. 내일은 개나 주라지. 임.전.무.퉤. 클릭! 아름다운 건 눈꼴시어. 듣고 있니 동지들! 넷, 반달리즘! 어그로 끌다 보니 좃나 배고프네, 씨발. 자발적 좀비에겐 대놓고 어묵탕. 클릭! 후루룩. 캬, 죽인다. 아씨발, 또 죽었네. 클릭! 클릭! 클릭! 머, 클리닉이라고!
*사진을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해 연속 상영하는 작가 박찬경의 작품.
원만이 아저씨
소문1
81학번으로 골수 운동권이었다. 늦은 봄 강의를 듣다가 나비의 날갯짓에 홀려 나갔다. 한여름 돼서야 물간 고등어처럼 안암동 길거리에 버려졌다. 파고드는 햇살이 두려웠는지, 지하도를 떠나지 않고 '백원만'을 외쳤다. 안기부에 잡혀간 후배의 주머니에서 동전이 나왔다. 채취한 지문이 나비 문양이었다. 수배 중이던 친구와 나비를 바라본 게 전부였다.
소문2
러시아문학을 사랑한 문청이었다. 사시사철 때에 절어 눈부신 파카만 고집했다. 〈닥터 지바고〉, 끝없는 설원이 펼쳐진 자작나무 숲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응원단장 출신이기에 눈빛 또한 살아있었다. 안기부도 탐낼만한 이력인데 취직을 할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빨치산이었다. 다시 태어날 욕심에 수면제를 마구 삼켰지만 꿈꾸는 그만이 깨어났다. 수면제가 한 알에 100원이었다.
소문3
얼굴 없는 엄마를 찾아 나섰다. 미아리 밤 골목을 헤매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후유증으로 정신지체아가 되었다. 겨울의 끝자락을 잡으려다 길을 잃었다. 정의는 살아있다는 대학교 앞에 터를 잡았다. 미아 찾기 캠페인이 미화되던 시절이었다. 우유곽에서 검정 파카를 입은 유년의 그를 본 학생도 있었다. 이름이 백원만이었다.
후일담
한쪽으로 기운 채 경쾌하게 리듬을 탄다. 지하도 바닥을 파고들며 두 다리가 뿌리를 내린다. 백원만, 백원만, 울림은 벽을 타고 출구 쪽으로 가지를 뻗는다. 어둑한 조명이 배부른 거미가 되는 사이, 사람들의 붓질에 벽화는 시나브로 드러난다.
성당과 우리 집
Scene #1
그날이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문득 그림자가 말을 걸었다. 너희 집에 가보고 싶다고. 등지고 돌아서는데 건너편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샤미나드피정의집이라고 쓰여있었다. 저 정도 높이의 집이 아니라 데려갈 수 없다는 핑계를 댔다. 아담한 벽도 없이 막다른 골목에 마음의 벽만 높고. 붉은 꽃떨기 수북한 배롱나무 대신 피마자 한 그루 장승처럼 서 있다고. 기도보다는 기름진 잎에 굶주려 있다. 무허가 건물이라 쌓고 부수기를 반복해 층층이 어긋났다고. 층층이 붉은색이 흘렀다고. 십자가를 앞세우며 길쭉한 그림자가 정류장을 덮었다. 그날 이후였다.
Scene #2
낮은 하늘에 키스하던 날 그림자가 속삭였다. 피를 바꿔 주겠다고.
Scene #3
키스의 대가는 달콤했다. 피를 바꾸는 것은 혁명과도 같았다. 개신교도였던 내가, 절에 다니던 엄마가, 신을 부정했던 아내가 카톨릭신자가 되었다. 성호를 그으며 터득한 4분의 4박자 리듬이 평화를 주었다. 세례를 받고 베네딕도로 거듭났다. 기도하라, 그리고 일하라! 그의 외침을 따라 기도하고, 시를 썼다. 그림자를 붙들고 써 내려갔다. 그제야 옛집을 찾았다. 그림자와 함께.
Scene #4
피마자가 무성했던 자리에 아버지가 주운 폐지가 쌓이고 더 이상 쌓이지 않을 때 엄마도 우리 집을 떠났다. 성 베네딕도 피정(避靜)의 집도 있었다.
배스킨라빈스 31
사계절 지지 않는 봄이 펼쳐진 쇼 윈도우
저장된 봄은 시들지 않습니다
달콤한 속삭임에 꿀꺽,
봄을 담아 식탁으로
춤추는 혀를 부려
핥아먹고, 갉아먹고, 흡입하고
게걸스레 봄을 욱여넣는다
서른한 번째 신공
절대 미각을 얻어야 해
얼어붙은 봄날이 녹기 전에
몸속엔 곰팡이가 피지 않습니다
몸속 나만의 정원
목련부터 뭉개야 해
민들레, 진달래, 양귀비, 제비꽃
물오른 송화까지 흩뿌리면
무지개가 뜰 거야, 서른한 번째 봄
배부른지 모르고
수만 갈래로 피어나는 봄날
곰팡이처럼
무지갯빛 미라를 꿈꾸며
배스킨도 라빈스*도 봄을 당겨쓰는 바람에
때 이른 꽃구름 타고 하늘로 올랐을까요
봄을 당겨쓰는 건 무이자입니다.
*baskinrobbins의 두 창시자
―계간 《다층》 (2022 / 겨울호)
이동호
강원도 강릉시 사천 출생. 〈신서정21〉〈청사문학회〉〈소래문학회〉 동인으로 활동. 현 경안고등학교 영어교사.
추천소감
시를 만난 어느 지점을 늘 사랑하며
스물아홉에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을 본 소감을 시로 써보라는 과제를 받아 들고 난감해하며 첫 시를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의 설렘과 위로가 지금까지 저를 이끌었습니다. 완성도 있는 시편이라고 느꼈을 즈음 응모를 시작했지만 바라는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여기까지인가, 시를 계속 쓸 수 있을까. 고민을 나눴던 선배의 조언으로 신인추천에 응모하고 감사하게 추천을 받게 되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신인추천을 받아 〈다층〉에 누를 끼친 듯해 마음 한편이 무겁습니다.
저에게 시는 늦은 만남이자 우연한 발견이었고, 악몽이자 삶의 기록이었습니다. 몰입과 환상이 더해지면 생물 같은 시편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서재에 시집이 쌓이는 만큼 시편이 모였고, 저와 아내의 병이 깊어질수록 시는 예리해졌습니다. 어느덧 시집은 더 늘지 않고, 병만 깊어가던 차에 제 작품이 세상과 소통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시를 만난 어느 지점을 늘 사랑하며 일상에서 우연한 발견(sersedipity)을 놓치지 않도록 물리적 그리고 영적 정밀함을 간직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시를 과제로 내주신 어도선 교수님, 〈신서정21〉로 이끌어주신 박명진 누님과 동인들, 깊이 있는 합평회를 만들어주신 〈청사문학회〉와 〈소래문학회〉 동인들, 제 시편들을 기꺼이 읽고 조언해주신 지인들, 문학회를 나온 후에도 격려해 주시고 마음을 써주신 임경묵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저의 예민하고 급한 성격을 견뎌 준 아내와 두 아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전하며, 부족한 시편들을 추천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엄마,
항상 거기에 계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