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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방[6319]古方4자성어81~90
고방서예명제(81) 執 持 專 一
(執: 잡을 집. 持: 가질 지. 專: 오로지 전. 一: 한 일)
온전히 한 가지만을 붙들어 지키는 것.
즉 학문을 하면서 잡다하게 신경을 쓰지 말고 한 곳에 집중하라는 말.
[출전]《조익(趙翼)의 포저집(浦渚集) 卷之二十四 도촌잡록(道村雜錄)上》
이 성어는 조선(朝鮮) 효종(孝宗) 때의 문신(文臣) 조익(趙翼)의 저서
포저집(浦渚集) 도촌잡록(道村雜錄)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마음을 잡는 것은 힘을 쓰는 일이요, 마음을 놓는 것은 힘을 쓰지 않는 일이다.
힘을 쓰는 일은 수고스럽고, 힘을 쓰지 않는 일은 편안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항상 수고스러운 것은 싫어하고 편안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어떤 일을 막론하고 근면해야 성공하고 안일하면 폐기되는 법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힘써야 할 것은 근면이요, 사람이 경계해야 할 것은 안일이라고 하겠다.
인(仁)을 자기의 임무로 알고서 죽은 뒤에야 그만두어야 할 것이니,
힘쓰는 일을 어찌 잠시라도 그만둘 수가 있겠는가.
고어(古語)에 “생소한 곳은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곳은 생소하게 만들어야 한다.〔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매우 좋다. 별의별 생각이 분분하게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익숙한 곳이요, ‘붙잡아 지키면서 전일하게 하는 것〔執持專一〕’이 바로 생소한 곳이다.
생소한 곳을 연습해서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곳을 연습해서 생소하게 만드는 이 일이야말로 심술(心術) 공부에 있어서 절실하고 중요한 방법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연습해서 생소한 곳이 날로 익숙해지게 하고 익숙한 곳이 날로 생소해지게 해야 할 것이니, 이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공부가 본격적으로 효과를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집지전일(執持專一)이라고 하는 이 네 글자를 벽에다 써 붙여놓고 언제나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 用力事。舍。不用力事。用力爲勤。
不用力爲逸。人常厭勤而好逸。然凡事未有不成於勤而廢於逸。然則勤。
人之所當勉者也。逸。人之所當戒者也。仁以爲任。死而後已。用力豈可頃刻而廢乎。古語云。生處放敎熟。熟處放敎生。此語甚好。思慮紛紜。是熟處也。執持專一。
是生處也。生處宜習之使熟。熟處宜習之使生。此心術工夫切要之法也。
至於習之不已。生處日見其熟。熟處日見其生。到此。工夫方始有效矣。
執持專一四字。宜書諸壁。常常見之也。浦渚先生集卷之二十四 道村雜錄 上
고방서예명제(82) 惜 福 修 行
惜: 아낄 석. 福: 복 복. 修: 닦을 수. 行: 갈 행
복을 아낀다는 뜻으로, 검소한 생활을 영위하여 복을 길이 누린다는 말.
이덕무의 '입연기(入燕記)'에 “각로(閣老= 재상급) 부항(傅恒)의 아들 부융안
(傅隆安)은 집안이 큰 부자인데, 지금 액부(額駙= 공주 배우자의 봉호)가 되었다. 부항이 죽은 뒤 부융안이 석복(惜福)을 하려고 집안에 있는 보완(寶玩)을
방매(放賣)하니, 가치가 은(銀) 80만 냥(兩)이었다.” 다는 얘기가 나온다.
석복은 더 넘칠 수 없는 사치의 극에서 그것을 덜어냄으로써 적어도 그만큼
자신의 복을 남겨 아껴두려는 행위였다. 송나라 여혜경(呂惠卿)이 항주(杭州)
절도사로 있을 때 일이다. 대통선사(大通禪師) 선본(善本)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선사가 말했다. "나는 그대에게 출가해서 불법을 배우라고 권하지는 않겠다. 단지 복을 아끼는 수행을 하라고 권하겠다(我不勸爾出家學佛 只勸爾惜福修行)." 석복수행(惜福修行)! 즉 복을 아끼는 수행이란 현재 누리고 있는 복을 소중히 여겨 더욱 낮추어 검소하게 생활하는 태도를 말한다. 여기에는 단단한 각오와
연습이 필요하다. 구체적 지침을 몇 가지 들어본다. 송나라 때 승상 장상영(張商英)이 말했다. "일은 끝장을 보아서는 안 되고, 세력은 온전히 기대면 곤란하다. 말은 다 해서는 안 되고, 복은 끝까지 누리면 못 쓴다(事不可使盡 勢不可倚盡 言不可道盡 福不可享盡)." '공여일록(公餘日錄)'에 나온다. 송나라 때 진단(陳慱)도 '사우재총설(四友齋叢說)'에서 말했다. "마음에 드는 곳은 오래 마음에 두지 말고, 뜻에 맞는 장소는 두 번 가지 말라(優好之所勿久戀 得志之地勿再往)." 비슷한
취지다. 한껏 다 누려 끝장을 보려 들지 말고 한 자락 여운을 아껴 남겨두라는
뜻이다. 명나라 진계유(陳繼儒)의 말은 이렇다. "나는 본래 박복(薄福)한 사람이니 마땅히 후덕(厚德)한 일을 행해야 하리. 나는 본시 박덕(薄德)한 사람이라
의당 석복(惜福)의 일을 행해야겠다(吾本薄福人 宜行厚德事 吾本薄德人 宜行惜福事)." '미공십부집(眉公十部集)'에 나온다. "일은 통쾌할 때 그만두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적막함을 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화를 능히 부릴 수 있다.
말은 뜻에 찰 때 멈추어야 한다. 몸을 마치도록 허물과 후회가 적을뿐더러 취미가 무궁함을 느낄 수 있다(事當快意處能轉 不特此生可免寂廖 且能駕馭造化 言當快意處能住 不特終身自少尤悔 且覺趣味無窮)." 오종선(吳從先)의 '소창청기(小窓淸記)'의 말이다. 끝장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에서, 멈추고 덜어내는 석복의 뜻이 깊다.
조선일보[정민의 세설신어] [225]
고방서예명제(83)光風霽月(광풍제월)
[요약] 光: 빛 광. 風: 바람 풍. 霽: 갤 제. 月: 달 월
비가 갠 뒤의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뜻으로,
마음이 넓고 쾌활하여 아무 거리낌이 없는 인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황정견이 주돈이의 인품을 평한 데서 유래 함.
[출전]《송서(宋書) 주돈이(周敦滯傳)》
[내용] 유교(儒敎)는 북송(北宋) 중기에 주돈이(周敦滯 : 1017-1073)가 나와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通書)를 저술했고, 그 뒤에 정호(程顥)와 정이(程滯) 형제가 사서(四書 : 大學 中庸 論語 孟子)를 정하여 성도(聖道)를 밝히었으며, 주자(朱子)가 이것을 집대성(集大成)하여 형이상학(形而上學) 으로서의 경학(經學)을 수립하여 소위 송학(宋學)을 대성(大成) 시켰다고 알려지고 있다. 주돈이는 옛사람의 풍도가 있으며, 정사를 베풂에는 도리를 다 밝힌 사람이라고 한다. '연꽃은 군자다운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는 <애련설(愛蓮說)> 한 편은 글 안에 도학(道學)의 향기도 풍기지만 그의 인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소식(蘇軾)과 함께 북송(北宋) 시대의 시를 대표하는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은 주돈이에 대하여 깊은 경의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의 인간성에 대하여, “춘릉(春陵)의 주무숙(周茂叔)은 인품이 몹시 높고,
가슴속이 담박 솔직하여 맑은 날의 바람과 비갠 날의 달과
(基人品甚高 胸懷灑落 如光風霽月光風霽月)과 같다.” 고 평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示二子家誡)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도 경구가 된다. '사대부의 마음가짐은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아 털끝만큼도 가려진 곳이 없어야 한다.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윤택해져 호연지기가 나온다'는 것이 편지 내용이다.
광풍제월(光風霽月)이란 , "깨끗하게 가슴 속이 맑고 고결한 것, 또는 그런 사람"에
비유하여 사용되고 있다. 또 "세상이 잘 다스려진 일"을 뜻하기도 한다.
또 '제월광풍(霽月光風)', 줄여서 '광제(光霽)'라고도 한다.
愛 蓮 說
水陸草木之花,可愛者甚蕃。물과 육지에 나는 꽃 가운데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晉陶淵明獨愛菊;自李唐來,世人盛愛牡丹;진(晋)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이(李)씨의 당(唐)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매우 모란을 좋아했다.
予獨愛蓮之出淤泥而不染,濯清漣而不妖,中通外直,不蔓不枝,
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香遠益清,亭亭靜植,可遠觀而不可褻玩焉。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予謂菊,花之隱逸者也;牡丹,花之富貴者也;내가 말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 속세를 피해 사는 자요,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자요, 蓮,花之君子者也。연꽃은 꽃 중에 군자다운 자라고 할 수 있다. 噫! 菊之愛,陶后鮮有聞;蓮之愛,同予者何人;牡丹之愛,宜乎眾矣。 아!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일이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이는 나와 함께 할 자가 몇 사람인가? 모란을 사랑하는 이는 마땅히 많을 것이다.
고방서예명제(84)몽환포영(夢幻泡影)
(夢: 꿈 몽. 幻: 변할 환. 泡: 거품 포. 影: 그림자 영)
꿈과 허깨비, 거품과 그림자와 같다는 뜻으로, 인생(人生)의 헛되고 덧없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출전]《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내용] 이 성어는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끝부분에 사여게(四如偈)에 나오는 말로서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第三十二 應化非眞分 <金剛般若波羅蜜經 終>
須菩提 若有人 以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 持用布施 若有善男子 善女人
수보리 약유인 이만무량아승지세계칠보 지용보시 약유선남자 선녀인
發菩薩心者 持於此經 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人演說 其福勝彼
발보살심자 지어차경 내지사구게등 수지독송 위인연설 기복승피
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 何以故
운하위인연설 불취어상 여여부동 하이고
一切有爲法 일체유위법 如夢幻泡影 여몽환포영
如露亦如電 역로역여전 應作如是觀 응작여시관
佛說是經已 長老須菩提 及諸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尼
불설시경이 장로수보리 급제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一切世間 天人 阿修羅 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
일체세간 천인 아수라 문불소설 개대환희 신수봉행
"수보리야, 어떤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은 일곱 가지 보물로 무한한 공간과 같은 세계를 가득 채우는 보시행을 하는 공덕으로 얻은 즐거움은 깨달은 마음을 일으키고 이 경전을 읽고 외우고 그것을 실천하며, 단지 네 구절만이라도 남을 위해 설명해 주는 사람이 얻은 것에 비할 수가 없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것을 설해야하는가? 상에 집착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말하되 동요하지 말라. 왜 그러한가?
이루어진 모든 법은 꿈이나 환영과 같고 이슬방울이나 번개와도 같으니 이와 같이 그것을 명상하고 지켜보라. 수보리존자 비구와 비구니, 재가 남녀신자, 천신과 아수라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경을 듣고 모두들 크게 기뻐하며 믿음을 가지고 이 가르침을 실천에 옮겼다
[출처] 꿈과 허깨비, 거품과 그림자와 같다|작성자 몽촌
서예명제(85) 業 精 於 勤
업 업, 정할 정, 어조사 어, 부지런할 근 [출전]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
‘학업은 부지런히 분발하는 데서 정밀해진다’는 뜻으로,
학문에 매진할 것을 강조하는 말.
[내용] 이 성어는 진학해(進學解)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국자선생이 아침 일찍 태학에 들어가 학생들을 불러
교사 아래에 세워 놓고 훈화하셨다. “학업은 부지런한 데서 정진되고 노는 데서
황폐해진다. 행실은 생각하는 데서 이루어지고, 마음대로 하는 데서 허물어진다.
지금 성군과 현명한 재상이 서로 만나 법령을 고루 펼쳐 흉악하고 사악한 무리들은
제게 해 내고 영준한 인재들을 등용하여 우대하고 있다. 조그만 장기라도 가진 자는
모두 수록되고, 한 가지 재주라도 이름이 난 자는 쓰이지 않음이 없다.
손톱으로 긁어내고 그물질하기도 하고 척결하기도 하여 때를 닦아내고 문질러 광을
내듯이 하고 있다. 대개 요행으로 선택된 자도 있겠지만 누가 재주는 많은데
드날려지지 않았다고 하겠는가? 제군들은 학업이 정진되지 않음을 근심할 것이지
관리가 현명하지 못함을 근심하지는 말고, 행실이 완성되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지
관리가 공정하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라.” 國子先生, 晨入太學, 招諸生立館下,
誨之曰: 業精于勤, 荒于嬉. 行成于思, 毁于隨.方今聖賢相逢, 治具畢張,
拔去凶邪, 登崇俊良. 占小善者, 率以錄, 名一藝者, 無不庸. 爬羅剔抉,
刮垢磨光. 蓋有幸而獲選, 孰云多而不揚! 諸生; 業還不能精, 無患有司之不明,
行患不能成, 無患有司之不公.
-이하 세계일보 [황종택의新온고지신] 업정어근(業精於勤)
당나라 때 대문장가인 한유(韓愈)가 “학업은 부지런히 분발하는 데서 정밀해지고
장난스럽게 하는 데서 거칠어진다. 행동은 신중하게 생각하는 데서 성공하고 게으른
데서 실패하게 된다(業精於勤 荒於嬉 行成於思 毁於隨)”고 말한 것은 공자의 솔선
모범적 정진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다. 물론 스승의 가르치는 열정 못지않게
제자의 힘써 배우려는 열성이 있어야 학문적 성취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예기(禮記)’에도 “옥은 가공하지 않으면 그릇을 이룰 수 없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삶의 이치 곧 도를 알 수 없다
(玉不琢 不成器 人不學 不知道)”고 했던 것이다.
[출처] 학업이 정진되지 않음을 근심할 것이지 |작성자 몽촌
서예명제(86) 廉 者 大 賈
廉: 청렴할 렴, 者: 놈 자, 大: 큰 대, 賈: 장사 고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라는 뜻으로,
청렴한 자만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
청렴은 목민관의 기본 임무 이며 모든 선(善)의 원천이요.
모든 덕(德)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는 목민을 할 수 있었던 자는 사람도 없다.
청렴이란 천하의 큰 장사와 같다. 그러므로 크게 탐하는 자는 반드시
청렴한 것이니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지혜가 깊은 자는 청렴으로써 교훈을 삼고 탐욕으로써 경계를
삼지 않은 자가 없었다.
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
廉者 天下之大賈也 故 大貪必廉 人之所以不廉者 其智短也.
故 自古以來 凡智深之士 無不以廉爲訓 以貪爲戒.
목민심서(牧民心書)율기육조(律己六條)2. 청심(淸心)
[출처] 청렴이란 천하의 큰 장사와 같다|작성자 몽촌
전국시대 제나라 위왕(威王)은 순우곤을 초나라에 보내 구원을 청하고
안으로는 정치를 개선해 나갔다. 먼저 즉묵(卽墨)땅을 지키는 대부를 불러
“경이 즉묵을 지키게 된 이래 소문이 안 좋았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알아봤더니 들녘은 개척이 잘 되고, 백성들은 살림이 넉넉해졌고,
관청 사무도 지체없이 잘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경의 치적이 훌륭한데도
나쁜 소문이 난 것은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청렴하다”며 칭찬하고 일만 호의 땅을 주었다.
반면 아(阿) 땅의 대부는 칭찬하는 말이 들렸다. 위왕이 알아보니 정반대였다.
논밭은 묵고 백성의 살림은 피폐했다. 간신들을 가까이하고 환심을 샀던 것이다. 위왕은 아의 대부와 간신들의 목을 잘랐다.
고방서예명제(87)持滿戒盈(지만계영)
持: 가질 지. 滿: 찰 만. 戒: 경계할 계. 盈: 찰 영
가득찬 것을 유지하는 것은 넘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
공자가어(孔子家語) 卷二에 나오는 이 내용은 좌우명(座右銘)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공자께서 노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구경했다. 사당 안에 의기(欹器), 즉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운 그릇이 놓여 있었다. 묘지기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그릇인가?"
"자리 곁에 놓아두었던 그릇(宥坐之器)입니다. 비면 기울고, 중간쯤 차면 바르게 서고,
가득 차면 엎어집니다. 이것으로 경계를 삼으셨습니다." "그렇구려."
제자에게 물을 붓게 하니 과연 그 말과 꼭 같았다. 공자께서 탄식하셨다.
"아! 가득 차고도 엎어지지 않을 물건이 어디 있겠느냐?" 제자 자로(子路)가 물었다.
"지만(持滿), 즉 가득 참을 유지하는 데 방법이 있습니까?" "따라내어 덜면 된다."
"더는 방법은요?" "높아지면 내려오고 가득 차면 비우며 부유하면 검약하고 귀해지면
낮추는 것이지. 지혜로워도 어리석은 듯이 굴고 용감하나 겁먹은 듯이 한다. 말을 잘해도 어눌한 듯하고 많이 알더라도 조금밖에 모르는 듯이 해야지. 이를 두고 덜어내어 끝까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방법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지덕(至德)을 갖춘 사람뿐이다."
孔子觀於魯桓公之廟,有欹器焉。(欹傾)夫子問於守廟者曰:「此謂何器?」對曰:「此蓋為宥坐之器。」孔子曰:「吾聞宥坐之器,虛則欹,中則正,滿則覆,明君以為至誡,故常置之於坐側。」顧謂弟子曰:「試註水焉。」乃註之,水中則正,滿則覆。夫子喟然嘆曰:「嗚呼!夫物惡有滿而不覆哉?」子路進曰:「敢問持滿有道乎?」子曰:「聰明睿智,守之以愚;功被天下,守之以讓;勇力振世,守之以怯;富有四海,守之以謙。此所謂損之又損之之道也。」孔子家語/卷二 三恕第九
의기(欹器)에 관한 얘기는 '순자(荀子)' '유좌(宥坐)'편에 처음 보인다. 한영(韓嬰)의 '한시외전(韓詩外傳)'에도 나온다. 이 그릇의 실체를 두고 역대로 많은 학설이 있었다. 그릇을 복원하려는 시도도 계속되었다. 원래 이 그릇은 농사에 쓰는 관개용(灌漑用) 도구였다. 약간 비스듬하게 앞쪽으로 기울어 물을 받기 좋게 되어 있다. 물을 받아 묵직해지면 기울었던 그릇이 똑바로 선다. 그러다가 물이 그릇에 가득 차면 훌렁 뒤집어지면서 받았던 물을 반대편으로 쏟아낸다.
마치 물레방아의 원리와 비슷하다. 환공은 이 그릇을 좌우(座右)에 두고 그것이 주는 교훈을
곱씹었다. 고개를 숙여 받을 준비를 하고, 알맞게 받으면 똑바로 섰다가, 정도에 넘치면
엎어진다. 가득 차 엎어지기 직전인데도 사람들은 욕심 사납게 퍼담기만 한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뒤집어져 몰락한다. 가득 참을 경계하라. 차면 덜어내라.
고방서예명제(88) 明鏡止水
밝을 명/ 거울 경/ 멈출 지/ 물 수
출전(出典)-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
노(魯)나라에 왕태(王駘)라는 올자(兀者= 형벌로 발 뒤 금치가 잘린 사람)가 있었는데,
그를 따르는 제자의 수가 공자(仲尼)의 제자와 맞먹었다.
상계가 공자(常季= 노나라 현인. 혹은 공자의 제자)가 물었다.
“왕태는 올자이지만 그를 따라 배우는 이의 수가 선생님과 노나라를 양분할 정도입니다.
그는 서서도 가르치지 않고 앉아서도 깨우치지 않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은 빈 마음으로 찾아갔다가 가득 차서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말하지 않는 가르침이 있어서 비록 눈에 보이는 가르침은
없어도 마음으로 느껴 이루어지는 걸까요? 그는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는 성인이다. 나도 진작 한번 가서 뵈려 했는데 기회가 없어 못 갔을 뿐이다.
나도 장차 그를 스승으로 모시려 하거늘, 하물며 나만 못한 사람에 있어서는 어찌하랴!
그리고 노나라뿐이겠느냐? 나는 장차 천하를 이끌고 그를 따를 작정이다.”
魯有兀者王駘,從之遊者與仲尼相若。常季問於仲尼曰:
「王駘,兀者也,從之遊者與夫子中分魯。立不教,坐不議,虛而往,
實而歸。固有不言之教,無形而心成者邪?是何人也?」
仲尼曰:「夫子,聖人也。丘也直後而未往耳。丘將以為師,
而況不若丘者乎!奚假魯國!丘將引天下而與從之。」
[중략] 상계가 말했다.
“그는 자기 몸을 닦음에 있어 자기의 지혜로 자기의 마음을 찾고
자기의 마음으로 영원히 떳떳한 참 마음을 깨달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 들까요?”
공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에 자기의 얼굴을 비춰 보지 않고 고요한 물에 비춰 본다.
오직 고요한 물만이 능히 제 모습을 비춰 보려는 사람들을 멈추게할 수 있다.
땅으로부터 목숨을 받은 것 가운데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가
홀로 겨울이나 여름이나 푸르르며, 하늘로부터 목숨을 받은 인간 가운데
오직 요, 순 임금만이 홀로 올바라서 다행이 자기의 천성을 바르게 지켜
만물을 바로 잡았다. ............” [하략]
常季曰:「彼為己以其知,得其心以其心。得其常心,物何為最之哉?」
仲尼曰:「人莫鑑於流水而鑑於止水,唯止能止衆止。
受命於地,唯松柏獨也在冬夏青青;
受命於天,唯舜獨也正,幸能正生,以正衆生。.....」 莊子/德充符
이하 동아일보 [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 감어지수(鑑於止水) 글.
흔들림이 없는 물에 비춰본다는 말로 장자 ‘덕충부(德充符)’ 편에 나온다.
노나라에 형벌로 한쪽 발이 잘린 왕태(王태)라는 불구자가 있었다.
그는 덕망이 매우 높아서 그를 따라 배우는 이가 공자의 제자와 비슷할 정도였다.
그래서 노나라의 현자(賢者) 상계(常季·공자의 제자라고 하기도 한다)가
공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왕태는 외발이입니다. 그런데 그를 따르는 이가
선생님의 제자와 노나라 인구를 나눌 정도입니다.
서서 가르치지도 않고 앉아서 의논하지도 않았는데,
빈 마음으로 찾아가면, 꽉 채워서 돌아옵니다.
본래 말 없는 가르침이라는 게 있어서 형체가 없어도
마음이 완성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王태, 兀者也, 從之遊者, 與夫子中分魯. 立不敎, 坐不議, 虛而往,
實而歸. 固有不言之敎, 無形而心成者邪? 是何人也?)”
공자는 이 말에 그분은 성인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스승으로 삼고자 하고 있으며
자신이 온 천하 사람들을 이끌고 가서 그를 따르고자 한다고 말했다.
상계는 궁금하여 공자에게 왕태라는 사람이 스스로 수양하여
마음속으로 터득하고 본심을 터득했을 뿐인데, 왜 세상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들게 되느냐고 재차 물었다. 공자의 답은 이러했다.
“사람이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말고 멈춰 있는 물을 거울로 삼아야 하니,
오직 멈춰 있어야 모든 것을 멈춰 있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能止衆止).”
공자의 말은 “지수(止水)”, 즉 정지되어 가라앉은 물만이 비춤이 가능하듯
왕태에게 제자들이 달려가는 이유는, 그가 사람들을 일부러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상심(常心)을 얻은 자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고 나서 공자는 소나무와 측백나무만이 늘 푸른 것도
바로 정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순 임금과 같은 성군만이 중생들의 마음을 올바르게(正)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상계와의 문답을 끝냈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고방서예명제(89)浩 然 之 氣
클 호(浩)/ 그러할 연(然)/ 갈 지(之)/ 기운 기(氣)
출전(出典)- 맹자(孟子) "공손축(公孫丑)" 상(上)
①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정기(精氣).
② 공명정대(公明正大)해 조금도 부끄러울 바 없는 도덕적 용기(勇氣).
③ (잡다한 일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느긋한 마음.
맹자(孟子)는 제자 공손축(公孫丑)과 함께 진정한 용기(勇氣)와
부동심(不動心)에 대해 문답하게 되었는데,
그 대화(對話)가 거의 끝날 무렵 공손축(公孫丑)은 이렇게 물었다.
"감히 묻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디에 장점(長點)이 있으십니까?"
"나는 말을 알며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
"감히 묻겠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고 합니까?"
"말하기 어렵다. 그 기(氣)의 양상은 지극히 크고 굳세니, 곧게 하는 것으로써
길러서 해침이 없으면 하늘과 땅 사이에 꽉 차게 된다. 그 기(氣)의 양상은
의(義)와 도(道) 에 짝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쭈그러든다.
이는 거듭되는 의(義)가 만들어 내는 것이니 하나의 의(義)가 엄습하여 취하는
것이 아니다. 행한 것이 마음에 만족스럽지 아니함이 있으면 쭈그러든다.
나는 그러므로 '고자(告子)는 애당초 의(義)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니,
그 의(義)를 바깥에 있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을 일삼으면서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도 말며, 조장하지도 말아서 벼의 싹을 자라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뽑아 놓은 자가 있었는데,
비실거리며 돌아와 자기집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피곤하다. 나는 벼의 싹을 도와서 자라게 했다'고 하자 그 아들이
달려가서 보니 벼의 싹은 말라 있었다. 천하(天下)에는 벼의 싹을 도와서
자라게 하지 아니하는 자가 적다. 유익(有益)함이 없다고 생각해서 내버려두는
자는 벼의 싹에 김을 매지 아니하는 자이고, 도와서 자라게 하는 자는 벼의
싹을 뽑는 자이니, 다만 유익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해치는 것이다."
호연지기란 인간의 본래 모습을 실현할 수 있는 호연(浩然)한 기운을 말한다.
호연지기를 잘 기르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本性) 그 자체가 얼마나
고귀(高貴)하고 가치 있는 것인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법은 곧은 마음을 지속적으로 가지는 것과 의(義)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인데, 이 두 가지를 조금도 게을리하지 말고
늘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성급해서는 안 된다.
고방서예명제(90) 自 强 不 息
自: 스스로 자. 强: 강할 강. 不: 아닐 불. 息: 쉴 식
스스로 힘을 쓰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최선을 다하여 힘쓰고 가다듬어 쉬지 아니하며 수양(修養)에 힘을 기울여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의미. [출전]《역경(易經= 주역) 건괘(乾卦) 상전(象傳)》
동양의 바람직한 인간상인 군자(君子)는 항상 스스로 돌아보고,
모든 문제를 자기에게서 찾는 사람이었다. 남 핑계 대지 않고
묵묵히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다.
『주역(周易)』 64괘(卦) 중 첫 괘인 ‘건괘(乾卦)’에는
“하늘의 운행은 건장하니 군자는 그것을 본받아 스스로 강건하여 쉼이 없어야
한다(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는 말이 나온다.
‘평생 쉬지 않고 스스로 연마하라’는 뜻을 담은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는 말은
중국 최고의 명문 칭화(淸華)대학의 교훈이기도 하다.
『 중용 』은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군자는 자기를 바르게 할 뿐
다른 사람에게서 이유를 찾지 않고, 원망도 하지 않는다
(正己而不求於人, 則無怨).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을 탓하지 아니한다
(上不怨天, 下不尤人)’고 했다. ‘화살이 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과녁을 탓하지 말고,
자기 몸의 자세를 바로잡으라(失諸正鵠, 反求諸其身)’는 충고다.
노자(老子) 33장 역시 자기 단속의 중요함을 설파하고 있다.
‘남을 아는 것을 지혜라고 한다면, 자기 스스로 아는 것은 현명하다고
할 것이다(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이기는 것을 일컬어 힘이라고 한다면,
스스로 이기는 것은 강이다(勝人者有力, 自勝者强)’. 뛰어난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아는 사람이요, 자기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글귀 뒤에는 ‘스스로 족함을 아는 것이 바로 부자(知足者富)’라는
유명한 구절이 뒤따른다.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은
승패의 원인을 항상 자기에게서 찾았다. ‘이길 수 없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고,
이길 수 있는 것은 적에게 달렸다 (不可勝在己, 可勝在敵)’.
‘홀로 서 있어도 자기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홀로 잘 때에도 이불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獨立不慙影, 獨寢不慙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