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요14:3-4) 용인에 있는 한 호스피스병원에서 40년 동안 오직 예수만 전하시다가 병환으로 고생하신 한 목사님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한국교회의 복음의 문제점을 실감한 적이 있습니다. 도무지 육신의 죽음 그 너머에 대한 확신이 없어보였습니다. 옆에서 찬송을 부르는데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가사에 접근하면 어느새 코를 골았습니다. 말기 증세에 이르러서도 전혀 가고 싶지 않은 거죠. 준비가 안 됐지요.
며칠 전에 내노라 하는 한 목사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발인예배의 이름이 천국환송예배였습니다. 그리고는 오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설교의 요지는 그분이 충성된 하나님이 종이었다는 것과 하나님이 계신 천국이 있어 그곳에 목사님이 가셨고 우리도 가야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은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다음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오르시고 난 뒤에 진리의 성령을 보내셔서 주님이 계신 곳으로 우리를 영접하여 주님과 하나가 되게 하시겠다는 유언 곧 예언의 말씀입니다. 유언은 유언한 분이 죽은 후에 발효가 됩니다.
문제는 주님이 가셔서 예비하실 거처가 하늘에 있는가 아니면 이미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가 거기에 영접되어 그 안에 거하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주님께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는 날, 그 날에는 주님이 아버지 안에 우리는 주님 안에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시는 새 언약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요14:20)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미 주님께 영접이 되어 그 안에서 새 생명을 얻으므로 주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음을 압니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임한 거죠. 이런 사람에겐 현재천국이 그대로 장래천국으로 연속이 됩니다.
육신의 장막을 벗고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의 영원한 집이 덧입히는 순간입니다(고후5:1-2)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그 안에 있는 계명을 지켜(요14:21) 주님의 처소(요14:23)가 된 사람에게는 죽음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곡식의 씨가 땅에 떨어져 썩는다고 죽는 겁니까? 여전히 살아서 싹도 내고 잎도 피고 열매도 맺습니다. 죽지 않습니다. 또한 이미 천국에 들어와 있는 사람에게 천국환송을 왜 하지요? 천국에 들어가는 절차는 완료가 되었는데요. 다만 그리스도인들의 장례는 평생 입었던 흙집을 정중히 흙으로 되돌려 주는 의미밖에는 없는 겁니다. 설교를 하는 분과 그 호스피스 병원의 목사님과 데자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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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