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011) - 조문국(召文國)의 자취 살피고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로(의성군청 – 군위 의흥면사무소 26km)
- 제9차 조선통신사 옛길 서울-도쿄 한일우정걷기 기행록 15
4월 14일(금), 구름 끼고 선선하여 걷기에 좋은 날씨다. 7시에 숙소 부근의 식당에서 아침을 들고 10여분 걸어 의성군청에 도착하였다. 정문에 들어서니 곧바로 조선통신사 문화사업회가 2007년 4월 조선통신사가 첫발을 내딛은 400주년을 맞아 세운 조선통신사의 길 이정표가 눈에 띤다. 서울 – 의성 311km, 의성 – 부산 203km.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출발 준비 중 김주수 의성군수가 일행 앞에 나와 인사를 한다. 그 요지, ‘조선통신사의 역사적 행로를 따라 의성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가시는 길 무사히 걸어 목적지까지 편한 여정이기를 빈다.’
의성군청 출발에 앞서 기념촬영
기념촬영 후 군수와 간부들의 전송을 받으며 8시에 군청을 출발하여 군위 방향으로 향하였다. 직선으로 뻗은 길 따라 2km쯤 걸으니 넓은 마늘밭이 펼쳐진다. 의성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마늘산지인데 곳곳에 복숭아꽃도 한창이다.
군위, 영천으로 이어지는 국도 28번 따라 5km쯤 걸어 고개 마루에 있는 의성읍쓰레기 매립장 공터에서 휴게, 집행부에서 나눠준 약과가 맛있다. 잠시 후 금성면에 들어서 한 시간여 더 걸으니 조문국박물관에 이른다. 금성산 고분군 인근에 위치한 조문국박물관은 2013년 4월에 문을 연 현대적 외관의 건축물로 각종 전시실과 야외 공연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조문국(召文國)은 고대 의성지역에 있었던 초기국가형태(읍락국가)의 작은 나라로 삼국사기를 비롯한 여러 고서가 이를 고증하고 있다고 팸플릿에 적혀 있다. 30여 분간 2,3층의 여러 전시실을 살펴보고 1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조문국 사적지, 같은 장소에 있는 문익점 면작기념비(기념비에는 고려 때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의 손자가 의성현감으로 재직하면서 본격적으로 목화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다고 적혀 있다.), 30여분 걸어 금성면소재지 탑리의 신라시대 5층 석탑(국보 제77호) 등을 살피는 역사문화탐방이 뜻깊다.
의성군 금성면 조문국 사적지를 배경으로
역사문화탐방을 마치니 12시 반, 면소재지의 작은 식당에서 한식뷔페로 점심을 들었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의 메뉴가 깔끔하고 음식 값도 다른 음식점에 비하여 저렴한 편이어서 반갑다. 일주일 전 주말에 함께 걸었던 황명석(주일대사관에 근무할 때 일본멤버들과 친분을 쌓은) 씨가 다시 찾아와 함께 걸은 후 동료인 경상북도 기획조정실장 심영재 씨와 합석하여 점심을 대접한다. 뜻깊은 행사를 조용히 격려‧응원하는 공직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13시 10분부터 오후 걷기, 의성 –군위 간 국도보수공사가 진행 중인 도로변을 따라 한 시간여 걸어서 한적한 휴게소에 들르니 주인이 손수 만든 매실차를 큰 병에 담아 와사 일행에게 한 잔씩 따라준다. 그 마음씨가 갸륵해서 이름을 물었다. 친절한 강점희 씨, 고마워요!
오후의 간식은 일본대원 고바야시 카츠이치 씨가 대접, 걷기 초반에 넘어져 타박상을 입었는데 일행들에게 폐를 끼쳐서 죄송하였다며. 천만에요, 상처 덧나지 않고 잘 아물어서 한 시름 덜었지요!. 고된 여정을 가볍게 해준 이들의 호의에 힘이 솟는다.
오후 3시 못미처 의성군 금성면에서 군위군 우보면으로 경계가 바뀐다. 군위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쓴 곳으로 널리 알려진 진 곳, 삼국유사면도 있다. 유서 깊은 고을을 30여분 걸어 우보역에 이르러 휴식 중 우리를 태울 버스가 도착한다. 걸은 거리는 26km. 원래는 3km쯤 더 걸어 의흥면사무소에서 종료할 예정이었는데 이래저래 잘 되었다. 연일 강행군에 모두 체력이 떨어진 상태, 의흥면에 마땅한 숙소가 없어 다음날 도착지인 영천에 숙소를 정하고 전세버스로 이동하려던 계획이었다. 오버페이스를 막고 체력소모를 줄일 수 있어 다행, 예정시각보다 빨리 영천에 도착하여 곧바로 여장을 풀었다. 6시에 저녁식사, 하루 내내 잘 먹고 열심히 걸었으니 충분히 쉬자.
걷기 끝나고 우보역 앞에서 휴식 중
* 전날 안동의 낙동강 다리 건너며 영남 4대 누각 중 하나인 영호루를 살폈는데 오늘 의성에서 출발할 때는 읍내 산언덕에 우뚝 선 문소루(聞韶樓)를 바라보았다. 안동에서 하회마을을 안내한 집안의 장손이 우리 일행이 의성에 들어선 때에 맞춰 관련 정보를 가문의 카톡에 올렸다. 그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문소루는 진주의 촉석루, 밀양 영남루, 안동 영호루와 함께 영남지방의 4대 누각으로 알려져 있다. 둔와 임수간의 동사일기(東槎日記)에 1711년 5월 26일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들을 위로하기 위한 연회가 있었을 것이다. 문소루에 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에 있고, 여기에 김지대(金之岱,1190~1266)의 시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가 경상도 안찰사로 있을 때 문소루에 대해 읊기를,
문소의 공관 깊숙한 후원에
백 척의 높다란 누각이 있네
향기로운 바람 십리 주렴이 걷히고
밝은 달빛에 한 줄기 피리소리 들리네
가벼운 연기 버들 그림자 가늘게 이어졌고
비 갠 뒤 산 비 지어 듣는 듯 하네
오랑캐 무찌르던 최고의 무사가
난간에 기대면서 더욱 조심하네
이 시는 문소루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이다. 김지대는 고려후기 문신이고 청도김씨(淸道金氏)의 시조이다.’
나는 청도 김씨 27세손, 의성 땅 지나며 시조의 시문을 접하고 이를 기록할 수 있게 한 섭리가 오묘하다.
장손이 가문의 카톡에 올린 문소루 자료